데일리 히어로 098화
언젠가부터 누군가와 말을 섞는 것조차 내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속을 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건 레드 텅 용변단원들뿐이었다.
난 그저 수박 겉핥기식의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다.
그리고 내겐 그런 대화를 나눌 만한 이들이 이제 없었다.
하물며 눈앞의 마인들과는 더더욱 말을 섞기가 싫었다.
문답무용.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달려 나갔다.
본색을 드러낸 마인들은 오로지 마기만으로 날 상대하려 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걸 보니 스스로 마인임을 각성하기 이전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테리안보다 약했다.
내게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내가 지금껏 상대했던 마인 중 가장 강한 건 살라반이었다.
일전에 만났던 두 명의 마인도 마테리안보다 강했지만 살라반보다는 약했다.
내가 이런 놈들에게 질 일은 절대로 없다.
수백 갈래로 나뉜 마기가 소나기마냥 내 몸을 두들겨 댔다.
하지만 간지럽지도 않았다.
난 그 마기들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마인들의 지척에 다다랐다.
그리고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달빛에 젖은 바드타스 소드가 한 줄기 섬광을 남겼다.
서걱!
반리보보다 앞에 서 있던 재칼의 목이 잘렸다.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고,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털썩.
재칼은 찰나의 순간 목 없는 시체가 되었다.
이를 본 반리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먹질을 했다.
‘느려.’
서걱!
바스타드 소드는 놈의 손목을 잘랐다.
꽉 쥔 주먹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난 바스타드 소드로 작은 호를 그리다가 반리보의 정수리에서 세로로 내리그었다.
서걱!
“……!”
반리보의 정수리에 떨어진 거대한 칼날은 그를 완벽하게 두 조각으로 나누어 버렸다.
두 조각 난 반리보의 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쓰러졌다.
반리보는 육신을 파르르 떨다가 이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녀석의 머리에선 피와 뇌수가, 몸뚱이에선 오장육부가 쏟아져 나왔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쉬어 호흡을 갈무리하고 바스타드 소드를 휙 털었다.
마인의 피가 깔끔하게 털려 나갔다.
바스타드 소드를 등에 메고서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
진짜 더럽게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이런 날은 유독 더 동료들이 그립다.
그런데 거지 같은 건, 다른 녀석들보다 살라반이 더 그립다는 것이다.
“오늘도 제대로 자긴 글렀군.”
나는 계속해서 마인들을 사냥하고 다닐 것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걸로 만족하느냐고?
……만족한다.
나는 복수를 원했지만, 그보다 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만 했던, 그래서 무작정 살라반을 원망했던 과거의 인생보다, 차라리 지금이 낫다.
내 선택에, 그리고 내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고통과 아픔에 불만은 없다.
이것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띠링!
―‘길버트의 복수’ 퀘스트를 완료하셨네요~ 비록 길버트는 가혹한 진실을 마주했고, 평생을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길버트를 도와주셨으니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겠죠? 선행을 쌓아 36링크가 주어집니다.
뭐? 36링크?
띠링!
퀘스트 종료.
일체화되었던 영혼의 기억에서 분리되어 현실로 복귀합니다.
길버트의 눈을 통해 보고 있던 세상이 갑자기 멀어졌다.
시야가 확장되며 내 영혼은 길버트의 육신에서 빠져나왔다.
길버트는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난 그런 길버트에게 오래도록 연민을 느낄 수 없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탓이다.
‘대체 36링크가 말이 돼?’
이번 퀘스트는 다른 영혼의 퀘스트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웠다. 그런데 주어진 링크는 고작 36이라니?
도무지 모르겠다.
영혼의 퀘스트가 링크를 산정하는 기준이 무언지 알 수가 없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끌어안고 끙끙대는 사이, 환한 빛이 날 감싸 안았다.
늘 그렇듯이 현실로 복귀하는 과정은 좋지 못했다.
전신에서 엄청난 진동이 일며,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길버트의 세계가 사라졌다.
꿈
현실로 돌아왔다.
난 여전히 버스 뒷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아, 정말 길었어, 이번 건.”
나도 모르게 크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되었다.
“크흠!”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달래고서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는 척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영혼의 퀘스트가 주는 링크는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는 걸까?’
이거 정말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놓고 고작 36링크밖에 얻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한 처사 아닌가?
특히 이번 퀘스트에 난 길버트로 반년을 살아야 했다.
그동안 현실의 시간은 멈춰 있었지만 길버트로 산 반년의 시간은 고스란히 내 것이었다.
현실에서 행하는 선행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몇이었는지에 따라서 링크의 값이 결정된다.
하지만 영혼의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링크의 값은 그것과는 다르다.
‘처음 소라스의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얻었던 링크가 대략 300 정도였었지?’
바레지나트의 퀘스트를 완료했을 땐, 170링크가량을 얻었다.
그리고 리조네의 퀘스트에선 482링크가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길버트의 퀘스트에서 얻은 링크는 36이다.
내가 얻은 이 링크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의 수는 아니야. 퀘스트의 난이도도 아니고. 그렇다면 퀘스트를 준 영혼들이 그 세계에 끼치는 기여도? 혹은 그들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그들의 위치나 입지?’
그런 걸로 따지자면 소라스 퀘스트보다는 길버트의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더 많은 링크를 줘야 한다.
소라스는 가진 것도 없고, 실력도 변변찮은 하급 용병이었다.
하지만 길버트는 제법 이름 있는 용병단의 우두머리였다.
세상에 끼치는 기여도, 차지하는 비중, 위치나 입지, 어떤 것을 따져보아도 소라스보다 위다.
‘나이?’
이것도 무리가 있다.
내가 접촉했던 영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건 길버트였다.
‘뭘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난 그들이 살고 있던 시기를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네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는 전부 달랐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봤기 때문에, 그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같은 대륙에 사는 이들이었으나 동일한 시대를 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리조네가 가장 오래된 역사 속을 살았던 이였지. 그다음은 소라스, 그리고 바레지나트. 마지막으로 길버트였어.…… 어?’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콰르르르릉!
그리고 전율이 일었다.
‘알았다!’
비밀이 풀렸다.
영혼의 퀘스트에서 들어오는 링크의 값!
소라스는 지금으로부터 312년 전의 사람이었다.
‘그래! 정확히 나는 그때 소라스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312링크를 받았었어!’
바레지나트는 176년 전에 죽었지. 그래서 176링크를 받았을 테고.
리조네는 482년 전에, 길버트는 36년 전에 죽었던 인물이다!
즉, 영혼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는 링크는 영혼이 죽은 시점부터 나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하…… 하하. 그런 거였다니.’
답을 알기 전에는 답답해 죽겠더니, 알고 나서는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별것도 아닌 건데 이토록 골머리를 썩을 줄이야.
‘그나저나 레이브란데도 악취미네. 이런 식으로 링크의 보상값을 정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뭔가 더 납득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면 단순히 귀찮아서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지금까지 겪어본 사람의 입장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그렇든 저렇든 아무튼 간에 또 한고비 넘겼다. 이번엔 진짜 어려운 퀘스트였어.’
영혼의 퀘스트는 사실 무엇 하나 녹록한 게 없었다.
길버트의 퀘스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다.
다른 사람으로 반년을 살았더니 정신적으로 지쳐서 피로가 극에 달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난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액정에는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의 의뢰 게시판이 떠 있었다.
50개가 넘는 새로운 의뢰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의뢰들을 분별해 내야 한다.
띠링!
― 많은 건설업 노동자분들께서 김 반장님을 구한 영상을 굉장히 좋아하네요~ 선행을 쌓아 5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의뢰인 동생에게 줄 선물을 대신 사주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포근한 미소를 짓게 만드네요. 선행을 쌓아 16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 복학생의 대리 고백 영상은 계속해서 화젯거리예요. 선행을 쌓아 32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고양이를 찾아주는 장면은 꼭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아요. 선행을 쌓아 8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링크가 적립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동영상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이렇게 금방금방 쌓이는 링크를 반년 동안 길버트로 그 개고생해서 고작 36링크밖에 벌지 못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히든 소울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 영혼의 퀘스트를 안 할 수도 없었다.
완전히 선행의 노예, 퀘스트의 노예가 된 기분이다.
착잡한 생각은 한편으로 미뤄두고 게시판의 의뢰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버스가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할 때쯤 되어서야 모든 의뢰글을 다 읽어볼 수 있었다.
의뢰 중 삼분의 이 정도가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무슨 로또마냥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반장난처럼 의뢰를 올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오천만 원을 주세요’라는 의뢰도 있었다.
이런 의뢰들은 과감하게 무시.
그리고 이 게시판에 한 아이디로 작성할 수 있는 글은 한 개뿐이다.
1인 1의뢰의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 만든 원칙이다.
시스템상 같은 아이디로 다시 글을 작성하려 하면 작성이 되지 않는다.
그땐 본인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새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해야 글을 올릴 수 있다.
물론 그때도 이상한 의뢰를 올리면 무시당한다.
괜히 아이디를 새로 만드는 수고만 더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쓸데없는 걸 제외한 나머지 의뢰 중에서 내가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일곱 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의뢰를 해결해 나가다 보면 노하우가 늘어서 실현 가능한 것들이 또 늘어날 수도 있다.
“일단 며칠은 좀 쉬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며 당분간은 좀 쉬자고 마음먹었다.
길버트의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너무 지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