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96화
마기에 당한 상처는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고 해도 아물지 않고 지속적인 출혈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지쳐 있던 상황에서 피까지 쏟아내고 나니 점점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물이 초점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반면 살라반의 상처는 마기가 스며드는 순간 빠르게 치유되었다.
“젠장…… 자가 치유 능력을 깜빡했어.”
마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계속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라모나의 능력이 자가 치유였지만, 그 능력은 나한테 없다.’
라모나의 능력은 지구에 있는 또 다른 나, 유지웅의 어머니에게 넘겨준 상황이다.
지금처럼 그 능력이 간절할 때가 없군.
“딴 생각 하면 바로 죽어.”
살라반이 경고와 함께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마기의 덩어리가 대포알처럼 날아들었다.
퍼억!
양팔을 엑스 자로 겹쳐 막았다.
그러나 마기의 덩어리는 날 그대로 밀어냈다.
콰당탕!
힘겨루기에서 밀린 난 뒤로 널브러졌다.
그런 날 지나쳐 계속해서 날아간 마기의 덩어리가 공동의 벽과 부딪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크윽!”
얻어맞은 양팔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여유는 없었다.
바로 일어나 바스타드 소드를 고쳐 쥐었다.
어느새 살라반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난 바스타드 소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휘이잉!
살라반은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기묘하게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온몸의 관절이 도저히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였다.
내 검을 피해낸 그는 자세를 확 낮춰 내 정강이를 후려치려 했다.
난 바스타드 소드로 그런 살라반의 정수리를 내리그었다.
이번에는 살라반보다 내가 더 빨랐다.
하지만.
카앙!
내 검은 갑자기 나타난 검은 방패에 막혔다.
마기로 만들어낸 방패였다.
반면, 나는.
퍽!
“큭!”
정강이를 얻어맞고 옆으로 붕 떠서 땅에 처박혔다.
콰직!
“크악!”
살라반이 그런 내 옆구리를 짓밟았다.
“길버트. 네가 날 방해하게 둘 순 없어. 난 널 죽이기 싫어. 내가 널 죽이겠다고 한 건, 네가 죽일 각오로 내게 달려들어야 나도 널 무력화시킬 마음이 들 것 같아서였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살라반은 대답 대신 내 오른쪽 발목을 밟아 부러뜨렸다.
콰드득!
“아악!”
마인으로 각성한 이 괴물 같은 녀석 앞에선 내 아이언 스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겐 더 이상 누군가를 죽여야 할 이유가 없어. 그러니 널 죽일 마음 역시 없고.”
그러면서 이번엔 내 왼쪽 발목을 밟았다.
콰직!
“끄윽!”
이 미친 자식이 대체 뭐하자는 거야!
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잡고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살라반의 발은 검을 쥔 팔의 어깨를 으깨놓았다.
콰드드득!
“크흡!”
손에 힘이 빠지며 바스타드 소드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사지 중 멀쩡한 건 왼팔뿐이었다.
주먹을 말아 쥐고 영력을 확인해보니 1이라는 수치가 차올라 있었다.
낭아권을 한 번은 시전할 수 있었다.
“낭아권!”
난 바로 낭아권을 시전했다.
쐐애애액! 퍽!
내 주먹이 정확히 살라반의 허벅지에 작렬했다.
콰지직!
놈의 허벅지 뼈가 조각났다.
살라반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무너졌다.
나는 그사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그러나 살라반은 가능했다.
부러진 허벅지 뼈 속으로 마기가 마구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회복하고서 벌떡 일어섰다.
“역시 너는 대단해, 길버트.”
콰지직!
“끄으…… 씨팔!”
빌어먹을 자식이 칭찬을 하면서 왼쪽 어깨를 으깼다.
내가 사지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
기이한 굉음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살라반이 흠칫하며 제단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 없어.”
그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초조해 보였다.
왜지?
마왕의 재림을 원한 게 아니었나?
살라반의 시선이 다시 내게 향했다.
그는 꼿꼿이 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그래, 항상 살라반은 이런 느낌이었지.
내가 대장이었고 녀석은 부대장이었다.
검술 실력도 나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라반은 늘 저 위에서 지금처럼 날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건 살라반에게 주어진 당연한 특권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 네가 화를 내도 내게 덤벼들 수 없을 테니까.”
“무슨 수작이야.”
“길버트. 너는 화가 나면 가끔씩 상식을 벗어난 괴력을 보여주곤 하잖아. 그게 걱정됐어.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를 들으면 넌 이해하기는커녕 화를 낼 테니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눈 뒤집어진 길버트를 상대하기란 힘든 일이겠지.”
“이미 오래전에 뒤집어져 있었다, 개자식아.”
“그런가?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 무력화시켜 놓고 얘기하자…… 그게 내 생각이었지.”
“잡소리 그만하고 본론이나 말해!”
속에서 불길이 일어 버럭 소리쳤다.
살라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소중한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재림 의식의 제물로 사용한 건 맞아. 분명한 사실이야.”
“드디어 네가 개새끼라는 걸 실토하는 거냐?”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내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왜? 그 엿 같은 마인의 본능이 동료들을 잡아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꼬드겨서! 고작 그따위 본능에 넘어갔다는 걸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면죄부 같은 건 받을 자격이 없지 않을까.”
연신 화를 내는 나와 달리 살라반은 계속 침착했다.
저건 그가 마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언제 어느 때든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늘 미소로 사람을 대하며,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던 이가 바로 살라반이었다.
“내가 마인임을 알고 각성한 이후부터 분명 마인의 본능이 내 이성을 짓누르려 했던 건 맞아. 하지만 내 고집 알잖아. 누군가 날 제멋대로 하려는 걸 참지 못한단 말야.”
“말 잘해야 할 거다. 만약 네가 마인의 본능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면, 인간 살라반의 의지로 레드 텅 용병단을 괴멸시키려 했다는 게 되니까.”
내가 그의 말을 끊으며 경고했다.
한데 살라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말을 인정했다.
“맞아. 동료들을 제물로 삼은 건 내 의사였어.”
점점 더 모르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왜 그런 거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묻는 것뿐이었다.
“나랑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제물로 삼을 순 없으니까.”
제발 부탁인데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아듣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전 대륙의 모든 마인이 각성하기 시작했어. 우리가 마왕을 재림시키지 않으려 해도 다른 마인들이 나섰을 거야. 한마디로 내가 주변의 다른 마인들을 막아봤자 또 다른 곳에 있는 마인들이 마왕의 재림 의식을 행할 거라는 말이지.”
“넌…… 진정으로 마왕의 재림을 원치 않았다는 거냐.”
“응. 하지만 마인 중 누군가는 마왕을 재림시키려 할 테지. 그래서 생각했어. 어차피 재림해야 하는 마왕이라면 내가 재림시켜야겠다. 그리고 마왕이 재림하는 그 순간…… 다른 차원으로 데리고 사라져야겠다……라고.”
“뭐……?”
살라반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둘둘 말린 양피지였다.
“이게 뭔지 알아?”
“말린 양피지……?”
분명히 무언가 대단한 걸 꺼내서 물어봤을 텐데 뭔지 모르겠다.
내 얼빠진 대답에 살라반이 피식 웃었다.
“양피지긴 하지. 하지만 보통 양피지가 아니야. 마법 스크롤이야.”
“마법 스크롤……!”
마법 스크롤은 마법의 힘이 담긴 양피지다.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크롤을 찢으면 된다.
그러면 마법 스크롤에 담긴 마법이 발동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게 무슨 마법 스크롤이지?
“어디서 산 건 아니야. 우리가 머물던 숙소 창고에서 꺼내온 거니까.”
“저택 창고?…… 설마!”
“응, 그 설마야.”
콰르르릉!
내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레드 텅 용병단의 숙소 창고에 있는 마법 스크롤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불안정한 차원 이동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미쳐 버린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집단 ‘매드 메이지(Mad Mage)’ 토벌에 참여했을 때 의뢰금 대신 받았던 것이다.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용병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지 그딴 마법 스크롤이 아니다.
그런데 의뢰인이었던 굴든 백작은 우리에게 마법 스크롤을 주었다.
무려 차원 이동 마법 스크롤이라면서.
9서클의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니만큼 어디 가서 팔면 일확천금을 얻을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였다.
하지만 그건 불안정한 차원 이동 마법 스크롤이었다.
한마디로 실패작이란 뜻이다.
그걸 사용했다가는 어디인지 알 수 없이 아공간에 갇히게 된다.
두 번 다시 자신이 살던 세계로는 돌아오지 못한다.
게다가 차원 이동에 대한 마법적 이론은 이미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빛의 탑에서 오래전에 연구를 끝냈다.
때문에 불안정한 차원 이동 마법이 연구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매드 메이지들도 제대로 된 차원 이동 마법 공식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부러 이런 불안정한 마법 스크롤을 만들어낸 것이다.
왜?
재미있으니까.
말 그대로 미친 것들이라 미친 짓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스크롤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아공간에 가두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집단이니까.
그렇다 보니 9서클 급의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라고 해도 돈이 될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게 되면 이상한 오해를 받아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하나 귀족이 돈 대신 준다는 것을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며, 그걸 그보다 높은 귀족이나 국왕에게 일러바치기도 난감했다.
어차피 그들은 용병의 말 따윈 새겨듣지 않는다.
모두가 한통속이다.
그래서 골칫덩이가 된 불안정한 차원 이동 마법 스크롤은 창고에 처박히게 되었다.
사실 난 버리고 싶었지만, 레드 텅 용병단원들 중 누군가가 그래도 혹시 쓸데가 있을지 모르니 가지고 있어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때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살라반.
그래, 살라반이 그런 말을 했었다.
“반년 전이었나? 우리가 매드 메이지를 토벌하고 이걸 받게 된 게.”
“그러고 보니…… 그 의뢰를 받아왔던 것도 너였지.”
“응. 사실 굴든 백작에게 의뢰금 대신 그 스크롤을 달라고 한 것도 나였어.”
“뭐?”
“굴든 백작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잖아? 나갈 돈이 굳어 버리니 좋았나 봐. 어차피 그 마법 스크롤이야 쓸데도 없으니, 기꺼이 그러겠다 하더라고.”
“너…… 그럼 처음부터 이걸 여기에 가져올 작정으로…….”
살라반이 빙그레 웃었다.
“맞아. 오늘을 위해서였어.”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