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93화
그런데 사건을 파고들어갈수록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어려워졌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내가 겪어내야 할 내 팔자다.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스르릉.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달렸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큰 모퉁이를 꺾자, 넓은 공터가 나왔고, 그곳에 백여 마리가량의 좀비들이 서 있었다.
녀석들은 날 보자마자 무작정 다가오기 시작했다.
“와라.”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좀비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히려 불쌍한 존재들이다.
죽어서 시체가 된 몸, 편히 쉬지도 못하고 마인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짓이겨 버리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어어어어!
좀비들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쉬이이익!
바스타드 소드가 매섭게 휘둘러졌다.
마인 VS 길버트
서걱! 서거걱!
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바스타드 소드를 쉴 새 없이 휘둘렀다.
거대한 검날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서너 마리의 좀비가 두 동강 났다.
하지만 좀비들은 몸이 잘린다고 해서 전투 불능이 되지 않는다.
이미 혼이 빠진 망자의 몸.
동강 난 몸뚱이는 제각각 움직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것들은 다시 바스타드 소드에 다져졌다.
순식간에 스물 정도 되는 좀비가 전투 불능이 되었다.
바닥은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들로 가득했다.
난 좀비 무리에게 손을 뻗어 화 속성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고열의 불덩어리가 허공에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불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쐐애애애애액!
퍼어엉! 화르르르륵!
“그워어어!”
“그우우우우……!”
좀비 서른여 마리가 전부 불길에 휩싸여 바닥을 굴렀다.
좀비들의 몸을 태우는 불은 내 영력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좀비들은 얼마 못 가 살이 까맣게 타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남은 좀비는 오십 남짓.
녀석들에게도 다시 한번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쐐애애애액!
퍼엉!
이번에도 서른가량의 좀비가 까맣게 탄 재가 되어 쓰러졌다.
남은 건 스물셋밖에 되지 않았다.
그놈들은 바스타드 소드로 아작을 냈다.
백여 마리의 좀비를 정리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좀비를 전부 전투 불능으로 만들고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빠르게 더 가까워졌다.
‘두 명이다.’
하나는 투박했고, 하나는 리드미컬했다.
서로 너무 대조적이라 발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윽고 동굴의 넓은 통로에서 난 낯선 사람 둘과 조우했다.
한 명은 덩치가 크고 각진 얼굴에 큼직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였다.
다른 한 명은 풍만한 몸매에 하얀 피부, 작은 얼굴을 하고서 상당한 색기를 뿜어내는 여인이었다.
“네가 길버트냐.”
남자가 물었다.
“남의 이름을 물을 땐 자기소개부터 해라.”
그러자 남자의 갈색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몸에서 검은 기운, 마기가 일렁였다.
이어, 이마에서는 검은 뿔이 돋아났다.
그들은 마인이었다.
현재 마테리안과 손을 잡고 마왕의 재림을 꾸미는 마인은 마테리안을 포함해 총 네 명이다.
그중 한 명은 살라반이니, 이 둘이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나머지 둘인 모양이다.
남자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말했다.
“자쿤 마르탄이다.”
“난 셀리아 랭. 잘 부탁해.”
무뚝뚝한 자쿤과 달리 셀리아는 생긋 웃으며 윙크까지 날렸다.
서로 목숨을 걸고 죽여야 할 판국에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키지 않으면 죽인다. 비켜도 죽인다.”
나는 좀비의 피가 묻은 바스타드 소드를 자쿤에게 겨누었다.
그러자 자쿤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낮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너 역시 무조건 여기에서 죽을 거다.”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나랑 재미 많이 봤을 텐데. 딱 내 타입이란 말야, 너.”
셀리아가 허리에 감고 있던 채찍을 풀어 휙 털었다.
채찍은 뱀처럼 요동치더니 바닥을 짝! 때리고서 축 늘어졌다.
한 명은 무투가에, 다른 한 명은 채찍을 다룬다.
‘상성이 좋다.’
자쿤은 무투가이니 나와 근접전을 벌이게 되겠지.
그러면 셀리아는 멀리서 채찍을 휘둘러 내 움직임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팔이든, 다리든, 목이든, 채찍으로 휘감겨 빈틈이 생기면 자쿤의 돌덩이 같은 주먹이 급소를 치고 들어온다.
그게 뻔한 패턴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마테리안에게 내 얘기를 자세히 듣지 못한 모양이군.”
“아니, 자세히 들었는데? 하지만 말야~ 마테리안은 약해.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마인들 중에서는 제일 약한걸? 우리는 마테리안처럼 약하지 않아.”
셀리아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사이 자쿤이 땅을 박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빠르다.’
녀석은 눈 깜짝할 새,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거구의 덩치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속도였다.
쐐애애애액!
이어 전광석화처럼 놈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바람을 찢는 거대한 주먹을 마기가 쇠망치처럼 감싸고 있었다.
미처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공격을 견제하거나 막아낼 시간이 없었다.
난 상체를 낮추고 팔을 들어 올렸다.
콰앙!
마기에 둘러싸인 자쿤의 주먹이 내 팔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 힘이 어찌나 무식한지 내 몸은 그대로 떠서 뒤로 죽 날아갔다.
타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몸의 균형을 잃지 않아, 바닥에 구르는 꼴은 면했다.
자쿤의 주먹을 막았던 팔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피부나 뼈에 이상은 없었다.
‘어마어마한 힘이긴 하지만 막을 수 있다.’
해볼 만한 싸움이다.
확실히 마테리안과는 비교가 안 되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약했다.
변수는 셀리아다.
그녀가 뒤에서 자쿤을 얼마나 잘 백업해 주는지, 그것이 관건이다.
자쿤이 다시 달려들었고, 셀리아가 채찍을 휘둘렀다.
차르륵!
허공에서 몸을 부르르 떤 채찍이 자쿤과 거의 동시에 내게 다가왔다.
그때 채찍을 든 셀리아의 손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촤라락!
내 다리를 노리던 채찍이 갑자기 대가리를 쳐들어 궤도를 바꾸더니 오른쪽 팔을 휘감았다.
미처 피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화였다.
난 채찍에 감긴 오른팔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셀리아가 채찍으로 내 팔을 감아 버린 건 대단했지만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건 결국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나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내 자세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
셀리아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채찍을 끌어당겼다.
내 팔은 안쪽으로도 바깥쪽으로도 끌려가지 않은 채 바들바들 떨려왔다.
‘나와 힘이 대등해?’
놀라고 있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자쿤이 주먹을 날렸다.
난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했다.
동시에 왼손에 쥐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자쿤은 몸을 낮게 숙여 이를 피하면서, 내 배에 박치기를 했다.
퍽!
“윽!”
주먹만이 아니라 머리도 무쇠와 같은 놈이었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내 몸은 또 한 번 허공에 떠올랐다.
그 순간 팔에 감긴 채찍이 날 강하게 당겼다.
붕 떠오른 내 몸은 갑자기 땅에 곤두박질쳤다.
콰앙!
“큭!”
돌바닥에 그대로 등을 부딪혔다.
고통은 크지 않았으나 복부의 충격이 남아 있어 계속 숨이 막혔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공에 붕 떠오른 자쿤이 보였다.
녀석의 무릎이 무서운 속도로 내 목을 노리며 내리꽂혔다.
난 상반신을 모로 틂과 동시에 허리를 튕겨 일어났다.
콰아앙!
조금 전까지 내가 누워 있던 자리에 자쿤의 무릎이 꽂혔다.
그 무식한 힘에 돌바닥이 깨져 나가 움푹 파였다.
‘감탄할 때가 아니야.’
내 오른팔엔 아직 채찍이 감겨 있다.
셀리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채찍을 당겼다.
난 힘겨루기를 하지 않고 그녀 쪽으로 달려들었다.
“어?”
셀리아가 당황한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그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쐐애액!
셀리아의 지척에 다라라 검을 휘둘렀다.
내 검은 빠르고 강하다.
어지간해서는 피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셀리아는 찰나의 순간 몸을 퉁 튕기더니 빠르게 뛰어올랐다.
천장에 거의 딱 달라붙을 정도로 도약한 셀리아가 몸을 180도 빙글 뒤집었다.
그러고서는 두 발로 천장을 박찼다.
탁!
그녀의 몸이 쏜살처럼 튕겨져 나왔다.
셀리아는 내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등 뒤에 섰다.
후미를 잡힌 나는 얼른 몸을 돌렸다.
그때 셀리아의 주먹이 내 명치를 가격했다.
뻑!
“큭!”
강했다.
이건 자쿤과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결국 난 또 한 번 허공에 떠올라 뒤로 날아갔다.
셀리아가 채찍을 자신의 팔에 여러 번 휘감아 길이를 조정해 확 잡아당겼다.
내 왼팔에 감긴 채찍이 팽팽해졌다.
날아가던 내 몸이 허공에 탁! 하고 정지했다.
그때였다.
퍽!
“윽!”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자쿤의 주먹이 내 허리를 가격했다.
뻐근한 통증을 느끼며 앞으로 날아가니, 그곳엔 셀리아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빠악!
“크허…….”
타격당하는 소리는 하나였지만, 맞은 부위는 세 군데였다.
찰나지간 명치, 왼쪽 옆구리, 오른쪽 뺨을 얻어맞았다.
그리고.
퍼억!
셀리아의 팔꿈치가 등을 때렸다.
콰당탕!
난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퍽퍽퍽퍽!
대자로 뻗은 내 몸을 셀리아와 자쿤이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
마테리안만 상대하고서 다른 마인들도 상대하기 쉬울 것이라 여겼다.
한데 아니었다.
자쿤도 셀리아도 강했다.
사실 자쿤과 일대일로 붙었다면 이미 제압하도고 남았을 것이다.
문제는 셀리아였다.
그녀의 힘과 스피드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공격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울러 그녀의 공격이 내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위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법이다.
이렇게 작은 대미지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나중에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싸움을 정리해야 한다.
퍽퍽퍽퍽퍽!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발길질은 계속됐다.
‘우선은 자쿤부터 잡는다!’
난 주먹을 말아 쥐고 낭아권을 시전했다.
“낭아권!”
오른 주먹이 나를 마구잡이로 짓밟던 자쿤의 정강이를 향해 날아갔다.
“피해!”
셀리아가 소리치며 자쿤의 몸을 밀치려 했다.
하지만 낭아권이 더 빨랐다.
빠가악!
“크악!”
내 주먹에 얻어맞은 자쿤의 정강이가 깔끔하게 부러져 이상한 각도로 휘었다.
셀리아가 자쿤의 몸을 밀친 건 그다음이었다.
콰당!
자쿤이 부러진 정강이를 보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