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92화
이 고양이는 마테리안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의 정체까지 동물의 육감으로 꿰뚫고 있었다.
[혹시 살라반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이 도시에서 살라반을 모르는 고양이가 있을까?]
[뭐?]
이 도시 고양이들은 모두 살라반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살라반은 우리들에게 새벽마다 늘 밥을 주었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길고양이들 밥을 가끔 챙겨주었던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살라반은 한결같이 새벽마다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준 모양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그것조차도 마인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수작질이었던 건가?
[이상했어. 살라반도 마테리안 남작처럼 속이 시커먼 인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우리들을 챙겨줬던 건지.]
[나도 의아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행이야.]
[왜?]
[살라반이 사라졌거든. 그가 어디로 간 건지 너희들은 종적을 알 수 있겠지.]
[사라졌다고?]
[그래.]
[왜?]
참 묻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군.
[살라반과 마테리안 남작은 이 도시는 물론이고 세상 전체를 망가뜨리려 하고 있거든.]
[왜?]
[이유를 말해도 너희들은 이해 못 할 거야.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그들을 어서 찾아내 막지 않으면 너희들도 무사하진 못할 거라는 거야.]
[음…… 그래.]
고양이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이었다.
난 그런 고양이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너희들.]
[그래.]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죽음이? 그다지. 태어났으면 죽게 되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게 왜 무서워.]
이건 뭐지.
길고양이들의 사고방식인 건가?
[우리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어 버리든 이상할 게 없어. 그래서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이 도시의 모든 고양이들이 죽는 건 원치 않아. 우리는 어떻게든 핏줄을 남겨야 돼.]
[너희들이 날 도와주면 파국을 막을 수 있어.]
고양이는 잠시 동안 말없이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넌 말이나 행동은 거칠지만 속은 깨끗하고 맑아.]
[그럼 도와주겠다는 거지?]
[그래야지. 아마 내 동료들은 다 봤을 거야. 마테리안이나 살라반이 어디로 갔는지.]
[부탁할게.]
[여기서 기다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난 담벼락에 기대어 고양이를 기다렸다.
* * *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리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담벼락에 올라섰다.
녀석들은 형형하게 빛나는 시선을 일제히 내게 던졌다.
그중에는 조금 전 여길 떠났던 삼색 고양이도 섞여 있었다.
[이 인간인가?]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맞아.]
삼색 고양이가 대답했다.
[신기하군.]
[아무튼 너희가 본 걸 얘기해 줘.]
그러자 하얀 고양이가 내게 말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어제 시장 골목이었지.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나오는 듯했어.]
어제라…… 그럼 전투에 나가기 전이었나 보군.
살라반은 혼자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었으니.
이어,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난 세 시간 전 중앙 광장 시계탑에서 그를 봤어.]
[세 시간 전?]
[그래. 뭔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
세 시간 전이면 내가 아직 트롤의 무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살라반은 그때 도시로 돌아와 시계탑을 찾았던 것이다.
거기서 뭘 하려 했던 거지?
다음으로 말을 한 건 치즈색 털이 난 고양이었다.
[살라반은 두 시간 전에 서쪽 출구로 나갔어.]
[서 쪽 출구? 도시의 서문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이후로 다른 고양이들은 조용했다.
대신 삼색 고양이가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래. 다른 고양이들은 이후로 살라반을 보지 못했대.]
[그렇군.]
한마디로 두 시간 전에 서문을 나간 이후로 도시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의 재림을 위한 의식은 도시 밖의 어딘가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나머지 정보는 도시 밖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어. 물론 그들과도 대화가 통한다면 말이야.]
[가능해.]
[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 고맙다.]
난 고양이들에게 가볍게 목례한 뒤, 골목길을 벗어났다.
* * *
난 도시의 서문으로 나와 대로를 따라 달렸다.
말이라도 한 필 구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내 처지에 말을 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훔치자니, 그게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가뜩이나 마테리안 남작가의 대학살 건으로 모든 경비대원이 도시에 풀린 상황이었다.
해서 난 경비대의 시선을 피해 겨우 내 한 몸만 빼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로를 따라 한참 걷다 보니 미르나유 숲이 나왔다.
미르나유 숲은 본래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커다란 정글 같은 숲이었다.
한데 사람들은 그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들었다.
해서 지금은 마차 두 대가 넉넉히 지날 수 있는 넓은 길이 쫙 뚫려 있었다.
‘여길 지나간 게 맞을까?’
알 수 없다.
대로를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만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살라반이 여기를 지나갔을 것이라 믿고 나아가는 것뿐이다.
숲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길 양옆으로 수림이 울창했다.
난 주변에 동물이 있는지 살피며 빠르게 걸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니 야행성 동물들만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청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주변의 소리에도 집중했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흘렀을 때.
‘빙고.’
저 멀리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부엉이 한 마리가 보였다.
난 부엉이에게 애니멀 링크의 능력으로 의지를 전했다.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
부엉이가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네게 물어볼 게 있다.]
부엉이는 날 가만히 응시하다가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의지를 전해왔다.
[난 일반적이지 않은 지금의 상황, 불편하다. 도망가는 게 맞다.]
[널 해칠 생각은 없어. 그저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야.]
[어떻게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한 거지?]
[고양이들도 내게 똑같은 걸 물었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해줄 수 없었지.]
[위험해. 좋지 않아. 강한 인간이야, 너는. 도망가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어. 네가 마음만 먹으면 난 날갯짓을 하는 순간 목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겠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저 내 물음에 답해주면 돼.]
부엉이의 고개가 절도 있게 뚝뚝 끊기며 움직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부엉이가 다시 의지를 전했다.
[뭐가 알고 싶지?]
[두 시간 전, 이 숲을 지나간 사람이 있나?]
[두 시간…… 숲을 지나간 사람…… 있었지.]
[있었다고?]
[한 사람이 지나갔지. 그리고 거대한 새가 조금 전 이 숲을 날아갔지.]
[거대한 새?]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새였지. 흡사 사람의 형상과 닮았었지.]
사람의 형상을 닮은 거대한 새?
……마테리안 남작이군.
그 녀석이 날아서 숲을 지나간 거야.
부엉이는 그걸 거대한 새로 봤던 거고.
[아무튼 그가 이 숲을 가로질러 갔다 이거지?]
[가로질러서 밖으로 나갔는지는 모르지. 아직 숲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고. 난 그저 이 부근을 지나가는 걸 봤을 뿐이지.]
[그렇군.]
[이제 된 거지?]
[그래, 됐어. 고마워.]
[빨리 지나가 줘. 네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미안. 가볼게.]
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숲을 지나는 동안 부엉이 외에도 다른 야행성 동물 셋을 더 만났다.
그들에게 계속해서 물어본 결과 살라반은 이 숲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르나유의 숲을 벗어나면…… 프란츠 시로 가는 대로가 나온다. 하지만 마인들이 프란츠 시로 향할 이유는 없어. 마왕의 재림 의식을 행하려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게 좋겠지. 굳이 대도시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프란츠 시를 지나쳐 더 먼 곳으로 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와중,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가 내 발목을 콱 잡았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고블린의 동굴이 있었지.’
일 년 전이었을 것이다.
프란츠 시로 향하는 대로에서 고블린의 출몰이 잦아, 고블린 퇴치 의뢰가 용병 길드에 들어왔었다.
그것을 내가 받아왔고, 레드 텅 용병단은 고블린 토벌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살라반도 레드 텅 용병단이니 그 동굴을 기억하고 있을 테지.
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고블린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인지라 대로가 사라지고 대신 황무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황무지의 흙바닥에 바람이 다 지우지 못한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지나갔다.’
살라반은 이곳을 지나갔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마인들은 고블린 동굴에서 모여 마왕의 재림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목적지가 확실해졌다.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난 빠르게 달렸다.
이윽고 고블린 동굴의 입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 * *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청력을 높여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아직까지는 동굴 입구에서 흘러드는 바람 소리만 귓전을 맴돌았다.
이 고블린 동굴은 대단히 넓고 복잡하다.
자연이 만들어낸 대미궁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다행히 고블린을 토벌할 당시 그 수가 많지 않았기에 큰 피해 없이 의뢰를 완수할 수 있었다.
만약 고블린들이 많았다면 전멸당하는 건 레드 텅 용병단이었을 것이다.
고블린들은 이미 동굴의 구조에 익숙해져 있으니, 미로 같은 그 공간 속에서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게 되어 버리면 더 빨리 지치고 피로해지는 건 레드 텅 용병단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번 둘러봤던 곳인지라 동굴의 구조는 전부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나아가던 어느 순간.
‘……!’
저 멀리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 그으으으.
흉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탁한 소리.
그것은 망자의 울음소리였다.
‘좀비다.’
이곳에도 좀비가 있었다.
마인들이 죽은 시체들을 좀비로 만들어 동굴의 가디언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소란을 피워야 하나.’
최대한 조용히 접근해서 마인들과 결단을 보려 했는데, 그건 힘들 듯했다.
‘워낙 스펙터클한 인생이긴 했지만, 끝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
죽음에서 되살아나 두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땐, 비교적 쉽게 내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살라반이 왜 우리를 배신했는지, 그것만 알면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