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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92화 (92/153)

데일리 히어로 092화

이 고양이는 마테리안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의 정체까지 동물의 육감으로 꿰뚫고 있었다.

[혹시 살라반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이 도시에서 살라반을 모르는 고양이가 있을까?]

[뭐?]

이 도시 고양이들은 모두 살라반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살라반은 우리들에게 새벽마다 늘 밥을 주었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길고양이들 밥을 가끔 챙겨주었던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살라반은 한결같이 새벽마다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준 모양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그것조차도 마인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수작질이었던 건가?

[이상했어. 살라반도 마테리안 남작처럼 속이 시커먼 인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우리들을 챙겨줬던 건지.]

[나도 의아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행이야.]

[왜?]

[살라반이 사라졌거든. 그가 어디로 간 건지 너희들은 종적을 알 수 있겠지.]

[사라졌다고?]

[그래.]

[왜?]

참 묻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군.

[살라반과 마테리안 남작은 이 도시는 물론이고 세상 전체를 망가뜨리려 하고 있거든.]

[왜?]

[이유를 말해도 너희들은 이해 못 할 거야.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그들을 어서 찾아내 막지 않으면 너희들도 무사하진 못할 거라는 거야.]

[음…… 그래.]

고양이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이었다.

난 그런 고양이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너희들.]

[그래.]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죽음이? 그다지. 태어났으면 죽게 되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게 왜 무서워.]

이건 뭐지.

길고양이들의 사고방식인 건가?

[우리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어 버리든 이상할 게 없어. 그래서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이 도시의 모든 고양이들이 죽는 건 원치 않아. 우리는 어떻게든 핏줄을 남겨야 돼.]

[너희들이 날 도와주면 파국을 막을 수 있어.]

고양이는 잠시 동안 말없이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넌 말이나 행동은 거칠지만 속은 깨끗하고 맑아.]

[그럼 도와주겠다는 거지?]

[그래야지. 아마 내 동료들은 다 봤을 거야. 마테리안이나 살라반이 어디로 갔는지.]

[부탁할게.]

[여기서 기다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난 담벼락에 기대어 고양이를 기다렸다.

* * *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리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담벼락에 올라섰다.

녀석들은 형형하게 빛나는 시선을 일제히 내게 던졌다.

그중에는 조금 전 여길 떠났던 삼색 고양이도 섞여 있었다.

[이 인간인가?]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맞아.]

삼색 고양이가 대답했다.

[신기하군.]

[아무튼 너희가 본 걸 얘기해 줘.]

그러자 하얀 고양이가 내게 말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어제 시장 골목이었지.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나오는 듯했어.]

어제라…… 그럼 전투에 나가기 전이었나 보군.

살라반은 혼자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었으니.

이어,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난 세 시간 전 중앙 광장 시계탑에서 그를 봤어.]

[세 시간 전?]

[그래. 뭔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

세 시간 전이면 내가 아직 트롤의 무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살라반은 그때 도시로 돌아와 시계탑을 찾았던 것이다.

거기서 뭘 하려 했던 거지?

다음으로 말을 한 건 치즈색 털이 난 고양이었다.

[살라반은 두 시간 전에 서쪽 출구로 나갔어.]

[서 쪽 출구? 도시의 서문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이후로 다른 고양이들은 조용했다.

대신 삼색 고양이가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래. 다른 고양이들은 이후로 살라반을 보지 못했대.]

[그렇군.]

한마디로 두 시간 전에 서문을 나간 이후로 도시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의 재림을 위한 의식은 도시 밖의 어딘가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나머지 정보는 도시 밖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어. 물론 그들과도 대화가 통한다면 말이야.]

[가능해.]

[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 고맙다.]

난 고양이들에게 가볍게 목례한 뒤, 골목길을 벗어났다.

* * *

난 도시의 서문으로 나와 대로를 따라 달렸다.

말이라도 한 필 구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내 처지에 말을 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훔치자니, 그게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가뜩이나 마테리안 남작가의 대학살 건으로 모든 경비대원이 도시에 풀린 상황이었다.

해서 난 경비대의 시선을 피해 겨우 내 한 몸만 빼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로를 따라 한참 걷다 보니 미르나유 숲이 나왔다.

미르나유 숲은 본래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커다란 정글 같은 숲이었다.

한데 사람들은 그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들었다.

해서 지금은 마차 두 대가 넉넉히 지날 수 있는 넓은 길이 쫙 뚫려 있었다.

‘여길 지나간 게 맞을까?’

알 수 없다.

대로를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만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살라반이 여기를 지나갔을 것이라 믿고 나아가는 것뿐이다.

숲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길 양옆으로 수림이 울창했다.

난 주변에 동물이 있는지 살피며 빠르게 걸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니 야행성 동물들만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청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주변의 소리에도 집중했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흘렀을 때.

‘빙고.’

저 멀리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부엉이 한 마리가 보였다.

난 부엉이에게 애니멀 링크의 능력으로 의지를 전했다.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

부엉이가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네게 물어볼 게 있다.]

부엉이는 날 가만히 응시하다가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의지를 전해왔다.

[난 일반적이지 않은 지금의 상황, 불편하다. 도망가는 게 맞다.]

[널 해칠 생각은 없어. 그저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야.]

[어떻게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한 거지?]

[고양이들도 내게 똑같은 걸 물었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해줄 수 없었지.]

[위험해. 좋지 않아. 강한 인간이야, 너는. 도망가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어. 네가 마음만 먹으면 난 날갯짓을 하는 순간 목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겠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저 내 물음에 답해주면 돼.]

부엉이의 고개가 절도 있게 뚝뚝 끊기며 움직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부엉이가 다시 의지를 전했다.

[뭐가 알고 싶지?]

[두 시간 전, 이 숲을 지나간 사람이 있나?]

[두 시간…… 숲을 지나간 사람…… 있었지.]

[있었다고?]

[한 사람이 지나갔지. 그리고 거대한 새가 조금 전 이 숲을 날아갔지.]

[거대한 새?]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새였지. 흡사 사람의 형상과 닮았었지.]

사람의 형상을 닮은 거대한 새?

……마테리안 남작이군.

그 녀석이 날아서 숲을 지나간 거야.

부엉이는 그걸 거대한 새로 봤던 거고.

[아무튼 그가 이 숲을 가로질러 갔다 이거지?]

[가로질러서 밖으로 나갔는지는 모르지. 아직 숲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고. 난 그저 이 부근을 지나가는 걸 봤을 뿐이지.]

[그렇군.]

[이제 된 거지?]

[그래, 됐어. 고마워.]

[빨리 지나가 줘. 네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미안. 가볼게.]

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숲을 지나는 동안 부엉이 외에도 다른 야행성 동물 셋을 더 만났다.

그들에게 계속해서 물어본 결과 살라반은 이 숲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르나유의 숲을 벗어나면…… 프란츠 시로 가는 대로가 나온다. 하지만 마인들이 프란츠 시로 향할 이유는 없어. 마왕의 재림 의식을 행하려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게 좋겠지. 굳이 대도시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프란츠 시를 지나쳐 더 먼 곳으로 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와중,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가 내 발목을 콱 잡았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고블린의 동굴이 있었지.’

일 년 전이었을 것이다.

프란츠 시로 향하는 대로에서 고블린의 출몰이 잦아, 고블린 퇴치 의뢰가 용병 길드에 들어왔었다.

그것을 내가 받아왔고, 레드 텅 용병단은 고블린 토벌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살라반도 레드 텅 용병단이니 그 동굴을 기억하고 있을 테지.

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고블린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인지라 대로가 사라지고 대신 황무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황무지의 흙바닥에 바람이 다 지우지 못한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지나갔다.’

살라반은 이곳을 지나갔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마인들은 고블린 동굴에서 모여 마왕의 재림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목적지가 확실해졌다.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난 빠르게 달렸다.

이윽고 고블린 동굴의 입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 * *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청력을 높여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아직까지는 동굴 입구에서 흘러드는 바람 소리만 귓전을 맴돌았다.

이 고블린 동굴은 대단히 넓고 복잡하다.

자연이 만들어낸 대미궁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다행히 고블린을 토벌할 당시 그 수가 많지 않았기에 큰 피해 없이 의뢰를 완수할 수 있었다.

만약 고블린들이 많았다면 전멸당하는 건 레드 텅 용병단이었을 것이다.

고블린들은 이미 동굴의 구조에 익숙해져 있으니, 미로 같은 그 공간 속에서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게 되어 버리면 더 빨리 지치고 피로해지는 건 레드 텅 용병단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번 둘러봤던 곳인지라 동굴의 구조는 전부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나아가던 어느 순간.

‘……!’

저 멀리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 그으으으.

흉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탁한 소리.

그것은 망자의 울음소리였다.

‘좀비다.’

이곳에도 좀비가 있었다.

마인들이 죽은 시체들을 좀비로 만들어 동굴의 가디언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소란을 피워야 하나.’

최대한 조용히 접근해서 마인들과 결단을 보려 했는데, 그건 힘들 듯했다.

‘워낙 스펙터클한 인생이긴 했지만, 끝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

죽음에서 되살아나 두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땐, 비교적 쉽게 내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살라반이 왜 우리를 배신했는지, 그것만 알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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