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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91화 (91/153)

데일리 히어로 091화

하지만 좀비라는 존재가 상대하기 힘든 건 사지가 잘리고 목이 떨어져도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망자를 상대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나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분명 존재한다.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이들을 상대하면서 바들바들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미 한 번 죽음이라는 걸 경험해 봤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많이 희석시켜 주었다.

망자를 상대하면서도 그다지 큰 공포를 느낄 수 없었다.

이미 무서울 게 없는 팔자다.

사납고, 사납고, 또 사납기만 한 인생이었다.

그 인생의 배신과 동료들의 죽음, 그리고 내 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지옥 속에서 난 되살아왔다.

이깟 좀비 나부랭이들이 어찌할 수 있는 몸이 아니란 말이다!

“우워어어어어어어!”

가슴속 분노와 함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바스타드 소드는 더욱 무섭게 휘둘러졌다.

사방에서 좀비의 살이 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바닥에서 기어 다가오는 좀비의 머리를 바스타드 소드 끝으로 내리찍었다.

바스타드 소드는 놈의 머리를 박살 내고 땅 속 깊숙이 틀어박혔다.

난 아직도 몰려드는 좀비 무리에게 오른손을 내밀고 뇌 속성 중급 마법의 시전어를 외쳤다.

“라이트!”

순간 내 손에서 뻗어 나간 여러 다발의 뇌전이 좀비 무리를 강타했다.

번쩍!

파지지지직! 파지직!

“구어어어어!”

“그오어어어어!”

좀비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비명을 지르는 건, 고통 때문이 아니다.

몸을 속박한 뇌전의 힘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그런데 그냥 꿈틀할 뿐이다.

그게 사람에게 위협이 되진 않는다.

지금의 좀비들도 마찬가지다.

놈들이 발버둥치려 할수록 피부는 까맣게 타들어 가고, 나중엔 속살까지 모조리 타 버렸다.

뇌전이 끝나는 순간, 검게 그을린 뼈다귀만 남아 바닥에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마법?”

마테리안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분명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일 테지만, 파펠의 능력인 뛰어난 청력은 녀석의 목소리를 정확히 내게 전해주었다.

놀란 김에 선물 하나 줄까?

난 마테리안에게 오른손을 뻗고 화 속성 중급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마테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내 시전어와 함께 허공에서 바위만 한 불덩이가 만들어져 녀석에게 날아갔다.

쐐애애애애액!

마테리안이 그것을 피할 시간은 없었다.

녀석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흘러나와 검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묵빛 검의 날을 중심으로 마기의 장막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앙!

불덩이는 그 장막에 부딪혀 폭발했다.

마테리안은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뒤로 죽 날아갔다.

그러나 이내 날갯짓을 하며 다시 우뚝 멈춰 섰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낸 그가 죽일 듯한 시선을 내게 던졌다.

눈빛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미 좀비들도 대부분 정리되었다.

남은 녀석은 열둘 남짓.

하지만.

“파이어.”

쐐애애액! 콰앙!

방금 그 녀석들도 마법 한 방으로 정리했다.

이제 다시 마테리안과 나의 싸움이 되었다.

불에 타고, 번개에 그을려 살을 잃어버린 좀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원에 남은 거라고는 잘게 짓이겨진 살덩이와 뼛조각들뿐이었다.

“내려와라.”

내가 마테리안에게 말했다.

하지만 마테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내 차례가 아닌 것 같군.”

“뭐?”

다다닥. 다닥.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싶어 뒤돌아보니, 조각났던 뼛조각들이 한데 붙어 사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설마…… 스켈레톤?”

내 혼잣말에 마테리안이 대답했다.

“그래, 스켈레톤이다. 내 자식들은 끝까지 상대해야지?”

화가 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테리안 백작가의 사람들을 좀비로 부활시키더니 이번엔 스켈레톤으로 만들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마테리안의 어진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게 다 연극이었을 걸 생각하니 역겨움에 치가 떨렸다.

“그래, 다들 조각을 내주마. 다시는 마테리안이 너희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내 검이 다시 한번 불을 뿜었다.

* * *

스켈레톤을 처리하는 데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로소 마테리안은 더 이상의 언데드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닥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계속 하늘에서 날갯짓만 하고 있었다.

“뭘 하자는 거냐.”

마테리안은 무언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좋은 제안을 하지.”

“제안?”

“어차피 이 세상은 마왕의 천하가 될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지상계를 침략했다가 마계로 쫓겨났던 마왕이 그대로 포기했을 거라 생각하나? 아니지. 분명히 또다시 침략할 날을 기약하며 마왕 군단을 부활시키고 있을 것이다.”

“마왕의 재림을 막을 것이다.”

“네가? 어떻게 막겠다는 거지? 어디서 마왕 재림의 의식이 행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알아냈다고 해도 혼자서 네 명의 마인을 상대할 수 있을까? 미리 말해두지만 다른 마인들은 나보다 훨씬 강하다.”

“찾아내서 막는다, 반드시.”

“그렇게 고지식하게 나오지 말고 차라리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어떻겠는가?”

“손을 잡아?”

“네가 마왕의 편에 서서 우리를 도와준다면 마왕 천하가 되었을 때 개국공신의 대우를 해주지. 세상의 일부를 네 발아래 두는 것이다. 용병들이 가장 원하는 파라다이스가 그거 아닌가? 목숨 건 전장에서 살아남아 번 돈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것! 그 꿈을 들어주겠단 말이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내가 잘못 짚었는가?”

아니, 마테리안의 말이 맞다.

용병들은 단순하다.

그들은 늘 생사의 기로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살아남으면 돈을 벌고, 죽어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성정들이 하나같이 단순하다.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싫은 사람한테는 싫다는 티를 내고, 좋은 사람한테는 좋다는 티를 낸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은 곧 죽어도 한다.

그게 용병이다.

그런 만큼 꿈도 단순하다.

열심히 칼밥 먹어가며 번 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다.

만약 그 전에 큰 건 하나 잡아서 일찍 돈을 벌게 된다면 더 좋을 것이고.

나 역시 용병이었다.

그러니 마테리안의 말처럼 안락한 생활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레드 텅 용병단을 빨리 성장시키려 했다.

돈이 되는 큰 의뢰들만 받아 나와 내 동료들이 많은 돈을 빨리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용병들이 돈이나 안락한 생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동료다.

이 단순한 놈들은 의리에 목숨을 건다.

사실 전장에 나가서 죽는 용병 중 반은 동료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는 살 수 있었는데, 동료가 죽어 넘어지는 보는 순간 눈이 돌아 돌진해 버린다.

어떻게든 몸을 사렸다면 무사히 살아 돌아와 그토록 좋아하는 돈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가 죽는데도 자기 안위를 걱정하는 용병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모든 동료를 잃었다.

다들 나를 살리기 위해 온몸으로 오우거를 막아냈다.

한데 지금…… 그런 내게 그 더러운 손을 내밀어?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나갔구나, 마테리안.”

“……거절인가?”

“거절이다. 그리고 네놈의 목, 당장 거두어주마!”

“안타깝군.”

마테리안은 더 높이 날았고, 나는 녀석을 오른손으로 겨누었다.

추적

“라이트!”

뇌 속성 중급 마법의 시전어를 외쳤다.

허공에서 형성된 뇌전이 번쩍! 하며 마테리안에게 쏘아져 나갔다.

파지직! 지직!

마테리안은 불덩이를 막아낼 때처럼 마기의 장막을 펼쳐 자신을 보호했다.

번개는 그 장막에 맞아 마테리안에게 닿지 못했다.

마테리안이 날 조소하며 말했다.

“넌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절망 속에서 깨치거라.”

마테리안이 하늘 높이 솟구쳐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빠르게 달려 그를 쫓았지만, 결국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때 사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

다급히 뛰어오는 수십의 발소리.

경비대가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더 있다간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나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모습을 감춰 저택을 벗어났다.

* * *

인적이 없는 좁은 골목길에 몸을 숨기고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테리안 백작과 살라반은 본래 마인이었다.

인간과 마족의 피가 반반씩 섞인 이들을 마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를 숨긴 채 인간인 척 연기하며 살아왔다.

마인은 그들을 비롯해 두 명이 더 있다.

어쩌면 전 대륙적으로 더 많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지금 마왕의 재림을 위해 손을 잡고 있는 마인은 총 넷이다.

살라반과 마테리안, 그리고 아직 정체를 모르는 두 명.

그들을 막지 못하면 마왕이 재림하고 만다.

그러나 어디에서 마왕 재림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막아야 한다.

하지만 대체 무슨 방법으로 찾는단 말인가.

암흑이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마왕의 재림을 위한 의식은 계속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타닥!

우측 담벼락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틀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삼색 고양이 한 마리였다.

고양이는 담벼락에 네발로 서서 경계하듯 날 바라봤다.

“후.”

너무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몸에 힘을 빼고 다시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잠깐. 나한테는 카인의 능력이 있었지.’

카인의 능력은 애니멀 링크다.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살라반과 마테리안이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였다 해도 곳곳에 널려 있는 동물들의 시선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고 내 의지를 전했다.

[내 말이 들리니?]

[…….]

고양이는 흠칫거렸다.

적잖이 놀란 듯했지만,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널 해칠 생각은 없어.]

[인간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 어떻게?]

[그 메커니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엔 시간도 촉박하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인지라 네가 알아듣지도 못할 거야.]

고양이는 고개를 모로 살짝 꺾었다.

[특이한 인간이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뭘?]

[혹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니?]

[내가 사는 영역에서 유명한 인간이라면. 자주 보는 인간이라면.]

[바루스 마테리안 남작은?]

[제법 유명해서 잘 알아. 인간들이 엄청 좋아하는 그 인간이지? 이상해. 우리가 보기엔 속내가 시커먼 게 영 별로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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