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90화
그의 전신에서 일렁이는 검은 기운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지.”
마테리안이 오른손을 쫙 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에 늘어진 시체들에서 맑은 기운이 빠져나와 그의 손바닥 안으로 흡수되었다.
“뭘…… 한 거냐.”
“죽은 자의 영혼은 훌륭한 제물이 되지.”
“그 제물이라는 걸로 무엇을 할 셈이냐. 설마…….”
“뻔한 것 아닌가?”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녀석들은 너무나 위험한 걸 계획하고 있었다.
“마왕 재림.”
마테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아직도 제물이 모자라다.”
마테리안의 시선이 내 뒤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1층 창문에는 모두 환히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한바탕 인 소란에 잠에서 깬 하인들이 창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정체를 알았으니 더 이상 살려둘 순 없겠지.”
그 말과 함께 녀석의 검 끝에서 일렁거리던 마기가 수백 가닥으로 나뉘어 바람처럼 뻗어 나갔다.
콰차차차차차창!
마기들은 저택 1층의 유리창을 모두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으악!”
“꺄아아악!”
“크허억!”
하인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정적이 찾아들었다.
검은 마기가 다시 회수되고, 뚫린 창 너머에선 수백 개의 영혼이 빠져나와 마테리안의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이제 여기엔 너와 나 둘밖에 없다.”
마테리안의 붉은 눈은 점점 더 짙어지는 광기로 번들거렸다.
마인?
그래, 처음으로 만나본다.
그가 인간을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는 것도 알겠다.
한데 솔직히 두렵지는 않다.
한참 전부터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분노 때문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바꿀 기회를 손에 넣으며 함께 얻게 된 강인한 힘!
그것 때문이다.
탁 까놓고 말해서, 난 스스로를 마인이라 칭하는 마테리안이 가소롭다.
한데 아마 그건 마테리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놈이 내가 우스워 보였다면 굳이 마인으로 각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소 마테리안의 검술은 나를 능가할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더 강하다.
그래서 마테리안은 각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그보다 강했다.
마테리안은 각성한 이후로도 한참 동안 내 심기를 어지럽히려 들었다.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마테리안도 이 싸움이 힘들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평정심을 깨뜨린 다음 허점을 노릴 셈이었겠지.
그렇다면 속전속결이다.
다른 더러운 짓을 못하도록 먼저 벤다!
타탁!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소라스와 바레지나트의 영혼이 내 육신을 전보다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힘과 민첩성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렇다 보니 움직임 하나하나가 가벼웠다.
빠르고 힘이 있었다.
눈 깜빡할 찰나, 난 벌써 마테리안의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마테리안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의 기색이 어렸다.
쉭!
내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순간, 마테리안은 묵빛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그것은 거의 동물적 감각에 의한 행동이었다.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서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카캉!
내 검과 마테리안의 검이 부딪혔다.
나는 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힘을 실어, 마테리안을 밀어붙였다.
“큭!”
마테리안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오른쪽 다리를 후방으로 쫙 뻗어 바닥에 척 고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내 힘을 끝까지 버틸 수 없다.
내가 체중까지 실어 밀어붙이자 지지대처럼 고정해 둔 마테리안의 오른쪽 다리가 살짝 구부러졌다.
스앗!
순간 오싹한 소리와 함께 복부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난 내리누르던 검을 떼 밑으로 휘두르며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카캉!
내 검과 무언가가 부딪혔다.
그것은 마테리안의 몸에서 솟구친 검은 기운이었다.
저택의 하인들을 모두 죽여 버렸던 그 기운이 내 복부를 노렸던 것이다.
내가 물러나자 여유를 되찾은 마테리안이 히죽 웃었다.
“놀랐나? 이건 마기(魔氣)라는 것이다.”
“마기?”
“마족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기운이지.”
“조금 놀라긴 했으나 별건 아니군.”
“과연 그럴까?”
마테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의 전신에서 전보다 더한 위압감이 폭출되며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마기들은 수백 가닥의 실처럼 나뉘어 대가리를 내 쪽으로 향했다.
“막아낼 수 있나 보지.”
마테리안이 입을 다무는 순간 수백 가닥의 마기가 내게 짓쳐 들었다.
언데드
과연 마기라는 새로운 종류의 기운에 내 몸이 버텨낼까?
좀 전에는 그런 확신이 없어서 피했다.
난 지그문트의 능력으로 아이언 스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어떠한 무기로도 내 몸에 상처를 낼 순 없었다.
그러나 마기 역시 같을까?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힘들었다.
수백 가닥의 마기들은 풀어헤쳐진 실타래마냥 내 몸 곳곳을 향해 날아왔다.
난 바스타드 소드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카카카카카캉!
수백 가닥의 마기들은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의 날에 얻어맞아 모조리 끊어졌다.
하지만 모든 마기를 깔끔하게 막아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중 세 가닥이 빈틈을 뚫고 들어와 내 몸에 닿았다.
그래, 말 그대로 닿았을 뿐이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진 못했다.
‘아이언 스킨이 막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마기도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다.
난 세 가닥의 마기를 손날로 단숨에 잘라냈다.
후두둑.
힘없이 끊어진 마기가 바닥에 떨어져 연기처럼 흩어졌다.
마테리안이 흠칫거렸다.
“마기를 손으로 끊어?”
“간지럽군.”
“하, 하하하하하하하!”
마테리안은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허리를 뒤로 꺾은 채, 한 손으로는 이마를 잡고서 계속해서 웃어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매서운 시선을 내게 던졌다.
“하룻밤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녀석은 정말로 궁금해했다.
자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강해진 내 모습이 놀라운 모양이다.
“알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텐데.”
“죽어? 누가? 내가? 웃기고 있구나.”
“이미 너와 나 사이의 갭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을 텐데.”
“마인인 내 능력이 고작 이 정도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라. 네 묏자리에 어떠한 변명도 새길 수 없도록!”
“그 말…… 후회하게 해주마.”
물론 난 마테리안이 자신의 능력을 다 펼칠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주겠다고 말한 적 없다.
난 빠르게 달려들어 마테리안의 몸을 벴다.
서걱!
하지만 마테리안도 이미 내 행동을 예상했는지 뒤로 물러났다.
난 멈추지 않고 녀석을 따라잡아 재차 검을 휘둘렀다.
바스타드 소드는 거대한 검이다.
일반인은 드는 것조차 힘들다.
난 오래전부터 이 검을 사용해 왔고 언젠가부터 롱소드처럼 가볍게 다룰 수 있었다.
한데 영혼의 힘을 얻고 나서부터는 바스타드 소드가 깃털마냥 가벼웠다.
그러니 지금의 내 검이 얼마나 빠른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그것을 가까스로 피해내는 마테리안도 보통은 아니었다.
다만, 그에겐 반격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카캉!
다시 한번 내 검을 피하려던 마테리안이 찰나의 타이밍을 놓치고서 검을 들어 막았다.
일반적인 롱소드였다면 바스타드 소드와 이 정도의 힘으로 맞부딪히는 순간 부러졌을 것이다.
한데 마기를 머금은 묵빛 검은 견뎌냈다.
“이제 물러나지 않는다.”
마기가 내 몸에 해를 가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전처럼 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마테리안을 완벽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피해만 다녔겠느냐?”
“……?”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었다.
이 상황에서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그것은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분명 믿고 있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그게 무얼까, 궁금해하던 그때.
덥석! 덥석!
무언가가 내 발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내 움직임이 잠시 막힌 순간, 마테리안이 내 검을 쳐내고 뒤로 몸을 뺐다.
동시에, 녀석의 어깨에서 검은 날개가 솟구쳤다.
마테리안은 힘차게 날갯짓하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난 내 발목을 잡은 게 무언지 확인했다.
그건…… 내 칼에 맞아 죽은 병사였다.
“그으으…… 그으어어어어…….”
녀석은 입으로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두 팔로 내 발목을 꽉 쥐었다.
한데 놈은 하반신이 없었다.
내 검에 깔끔하게 잘린 허리에서는 오장육부가 튀어나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두 팔로 기어와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어어어…….”
“흐어어…….”
녀석 하나가 아니었다.
죽어 있던 병사와 기사, 하녀들이 모두 일어나 맹목적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 좀비!”
내가 소리치자 하늘에서 마테리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 그래, 맞다. 좀비지. 사령술은 본래 마계의 것! 죽은 모든 자들은 마(魔)의 노예가 된다. 내 몬스터 군단이 마음에 드는가? 싸워보거라, 길버트. 그들은 온몸이 가루가 되기 전까지 네게 달려들 테니!”
이렇게까지 치졸한 수를 쓸 줄은 몰랐다.
지금 내게 덤비는 좀비들은 본래 마테리안 남작가의 사람들이었다.
다들 무의미하게 죽어갔다.
마테리안을 향한 나의 분노 때문에.
제물을 필요로 했던 마테리안의 욕심 때문에.
그들은 마테리안 남작가를 지키려 했을 뿐이고, 늦은 밤 소란에 깨서 눈앞에 펼쳐진 무서운 광경을 숨죽여 지켜봤을 뿐이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을…… 마테리안은 좀비로 만들었다.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어도 부족할 판에, 그들을 욕보였다.
“그어어어!”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좀비가 입을 벌려 다리를 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 검이 먼저놈의 머리를 깨부쉈다.
퍼석!
“…….”
머리를 잃어 두 팔만 남은 좀비는 손톱을 세워 날 뜯으려 들었다.
난 그 팔마저 자르고 다시 손을 조각냈다.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지옥이라면…… 거절 않고 맞서주마.”
차갑게 식어 뻣뻣한 몸을 겨우 움직이며 좀비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그중 선두에 있던 세 마리의 목을 한칼에 쳐 냈다.
우르르 쓰러진 녀석들의 사지를 다시 잘랐다.
바닥에 구르는 머리를 발로 밟아 터뜨렸다.
그리고 좀비 무리 안으로 뛰어들어 가 바스타드 소드를 풍차처럼 휘둘러 쳤다.
서거거거걱!
“그어어어!”
“그오어어…….”
좀비들이 바스타드 소드에 얻어맞아 힘없이 쓰러졌다.
이 녀석들은 상대하기에 힘든 부류가 아니다.
분명 힘은 살아생전의 인간일 때보다 몇 배 이상 세진다.
그러나 움직임이 느리다.
맞지만 않는다면 치명상을 입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