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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88화 (88/153)

데일리 히어로 088화

게다가 정이 깊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를 철저하게 믿었다.

아니, 비단 살라반뿐만이 아니다.

레드 텅 용병단은 피보다 진한 의리, 우정, 믿음으로 엮여 있었다.

그런데 살라반이 배신했다.

녀석은 우리를 고블린 우리가 아닌 트롤의 숲으로 처넣고 도망쳤다.

용병 마흔 명이 여섯 마리의 트롤을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동료가 죽었다.

난 그 녀석들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레드 텅 용병단의 숙소로 가서는 안 되었다.

애초부터 우리들을 제거할 목적이었다면 용병단의 숙소도 이미 점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나중을 위해 동료들 몰래 사두었던 새로운 저택으로 향했다.

난 그곳을 비밀 아지트라 불렀다.

혼자서 몰래 내부 공사를 하며 훗날 놀라게 될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이미 레드 텅 용병단의 수가 40인데,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는 너무 작았다.

방을 배정받지 못한 녀석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놈들의 마음이 고마워서 조금이라도 빨리 내부 공사를 마치려 했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모든 준비가 끝날 참이었다.

한데 이런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미 내가 이 저택을 몰래 사두었다는 것도 살라반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우리를 배신한 살라반이 내 모든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이럴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용병단 활동을 하면서 어떠한 불만도 말하지 않았던 그였다.

……불만이 없던 것이 아니라, 감추고 있는 것이었나?

모르겠다.

살라반을 직접 만나야겠다.

그래서 우리를 왜 배신한 것인지 그 녀석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다.

어찌 되었든 지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죽었어야 할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

“……?!”

기사는 내 목에 닿은 검이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자 적잖이 당황했다.

기사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검은 내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캉!

결과는 똑같았다.

난 기사가 든 검의 날을 맨손으로 잡고 그대로 힘을 주었다.

콰장창!

강철로 만들어진 검날이 유리처럼 부서졌다.

기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무, 무슨……!”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기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말아 쥐고 시전어를 외쳤다.

“낭아권!”

쐐애애애액! 퍼어억!

빠르게 날아간 주먹이 기사의 안면을 제대로 강타했다.

“크헉!”

모든 힘을 다 실어 내지른 낭아권에 얻어맞은 기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하아, 하아.”

몸이 엉망인 상태에서 힘이 들어가는 기술을 사용하는 바람에 전신이 욱신거렸다.

기사에게 다가가 녀석의 상태를 살폈다.

두개골이 쪼개져 피를 주룩주룩 흘리면서 죽어 버린 상태였다.

난 기사의 몸을 뒤졌다.

기사들은 대부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늘 힐링 포션을 지니고 다녔다.

지켜야 하는 주군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주군에게 드리고,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스스로 마시기 위함이었다.

이 녀석에게도 힐링 포션은 있었다.

난 힐링 포션을 입안에 단숨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맑은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며 엉망이 된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후우, 다행이군.’

기사와 싸우던 도중 놓쳐 버렸던 내 바스타드 소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주워 들어 등에 차고 저택을 나섰다.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둠 속에 퍼진 피비린내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 냄새의 근원지는 저택 주변에 널린 사병들의 시체였다.

기사가 저택을 점거하며 대동한 사병들이었다.

물론 내가 죽였다.

저택 밖에 매복했던 사병들은 처리했으나 저택 안에서 기다리던 기사에게 난 죽음을 맞았었다.

하지만 다시 얻은 두 번째 기회로 죽음을 피해갔다.

이제 피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난 병사들이 걸치고 있는 갑주와 검을 살펴봤다.

그리고 검신에 박힌 호랑이 문장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루스 마테리안 남작 가문의 문장이었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었다.

이들이 마테리안 남작의 종자들이라고?

그럼 날…… 죽이려 했던 이가 마테리안 남작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테리안 남작은 그 누구보다도 레드 텅 용병단을 아껴주는 이였다.

우리가 용병이라고 무시한 적 한 번 없었다.

오히려 늘 낮은 자세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고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다.

다른 귀족들은 그런 마테리안 남작에게 격 떨어지는 짓을 한다며 안 좋은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테리안 남작은 그런 귀족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멋진 귀족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대체 왜?’

이상하다.

살라반도 그렇고, 마테리안 남작도 그렇고…… 절대 이런 일을 벌일 이들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알아내야 한다.

그들에게서 들어야 한다.

레드 텅 용병단을 배신한 이유가 무언지! 그리고 나와 내 동료들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언지!

* * *

바루스 마테리안 남작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두 명의 병사가 저택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거침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병사들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놀라서 들고 있던 창을 앞으로 세웠다.

한 병사는 호각을 꺼내 불려 했다.

경보를 울리려 함이다.

하나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난동을 피울 참이니까.

서걱!

내 손에 들린 바스타드 소드가 크게 휘둘러졌고, 두 병사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난 철문을 강하게 걷어찼다.

콰앙! 우저적!

쉽게 뜯겨 나간 철문이 뒤로 죽 날아가 정원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소란에 저택의 지하에서 기사와 사병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다들 급하게 나왔는지 갑주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상태였다.

“무슨 소란이야!”

저택의 중앙 현관문이 열리며 집사 포르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마는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50대의 중년 사내였다.

난 포르마에게 소리쳤다.

“나 길버트요!”

“길…… 버트?”

포르마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하, 이게 무슨 반응인지 알겠군.

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두 발로 걸어와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놀랍다 이거야?

이런 빌어먹을!

분을 삭이지 못하고 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발은 흙바닥을 크게 파고들었다.

충격에 휩쓸린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난 포르마를 노려보며 물었다.

“마테리안 남작님을 보러 왔소!”

포르마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는 저택에 안 계시네. 그러니 험한 꼴 당하기 싫거든 그만 돌아가게!”

“말로 하는 건 여기까지요.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난 지금 생사의 경계를 여러 번 넘은 데다가 동료를 모두 잃었소. 그게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거라 생각하오. 레드 텅 용병단의 동료들을 잃었다는 건…… 내 모든 것을 잃었다는 말이오!”

나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포효했다.

하지만 포르마는 여전히 똑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각하께서 안 계시다고 했네.”

“이제 말로 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소.”

“나 역시 더 이상 자네의 사정을 봐주지 않겠네!”

포르마의 말에 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다른 기사와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 포위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기사가 다시 한번 손짓했고, 전후좌우에서 병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카카카카캉!

그것들 중 단 하나도 내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었다.

병사와 기사들이 당황해서 일순 몸이 굳었다.

그때 내 바스타드 소드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서걱! 서거걱!

“악!”

“으억!”

무섭게 공간을 가르는 바스타드 소드에 일곱의 병사가 목이 잘렸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이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우어어어어어어!”

난 크게 고함을 지르며 전보다 더 매섭게 거대한 검을 사위로 휘둘렀다.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최소 하나 이상의 목이 떨어졌다.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병사들을 제치고 기사단이 튀어나왔다.

이전의 나였다면 기사단을 상대로는 버틸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달려드는 기사단에게 한 손을 뻗어 소리쳤다.

“라이트!”

시전어와 함께 허공에서 형성된 번개가 앞으로 날아갔다.

번쩍!

콰르르르르릉!

“으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악!”

번개에 얻어맞은 기사들이 몸을 떨며 쓰러져 나갔다.

선두에 있던 기사는 까맣게 탄 재가 되었다.

후미에 자리한 덕분에 전격 마법을 피할 수 있었던 기사 두 명이 망부석처럼 굳었다.

“마, 마법……?”

“용병이 마법을……!”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포르마 집사도 믿기지 않는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었다.

“내 경고를 무시한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아라!”

난 일갈을 내지르며 폭풍처럼 정원을 휩쓸기 시작했다.

사방팔방 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시전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시체가 만들어졌다.

푸른 정원에 붉은 피와 살덩이가 떨어졌다.

“아아악!”

“내, 내 다리!”

“쿨럭! 크흐으…….”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름답던 정원엔 삽시간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기사와 병사들이 모조리 난도질당해 죽음을 맞았다.

저택 내부에서 이를 지켜보던 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기 바빴다.

정원에 이제 자신의 두 발로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나와 포르마 집사밖에 없었다.

난 포르마 집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테리안은 어디 있나.”

포르마 집사가 공포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절대 내게 굴하지 않겠다는 듯 소리쳤다.

“나는 모른다!”

“그럼 너도 죽어라.”

바스타드가 다시 한번 한 사람의 목을 취하려던 찰나.

“멈추어라!”

누군가의 우렁찬 음성이 내 행동을 멈추게 했다.

바루스 마테리안 남작

바스타드 소드의 굵은 날은 피를 잔뜩 머금었다.

“마테리안은 어디 있나.”

내 입에서 분노로 점철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루스 마테리안 남작의 집사 포르마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왔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내게 맞섰다.

“나는 모른다!”

그건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다.

모른다?

그렇다면 도륙할 뿐이다.

이미 내 가슴속에서 활화산처럼 터져 버린 분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럼 너도 죽어라.”

바스타드 소드를 높이 들었다.

뚝. 뚝.

붉은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며 무서운 정적을 만들었다.

그때.

“멈추어라!”

천둥이 치는 듯한 노호성이 내 뒤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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