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87화
“믿어주세요! 닭발 옆차기도 제 말대로 해서 대박 나셨잖아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만…….”
“그러니까 이번에도 절 믿고 한 번만 진행해 보시라구요.”
“으음.”
아버지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담배를 꺼내 태우셨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갈 때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해보자!”
“정말이에요?”
“이번에도 우리 장남 한번 믿어보지!”
“네, 믿어보세요. 분명 잘될 겁니다!”
“단!”
아버지가 힘주어 날 노려봤다.
“안 되면 죽는다.”
“……네.”
괜히 말했나……?
* * *
12월 23일.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커플들에겐 좋은 날이지만 나 같은 싱글에겐 아무 의미 없이 하루 종일 배만 아픈 날이기도 하다.
상덕이는 학교에 오자마자 아침부터 4교시가 끝날 때까지 잠만 퍼질러 잤다.
어제 동영상 편집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래, 학교에서 푹 자고 집에 가서 열심히 회사 일 해라.
아주 좋은 직장인의 자세다.
하지만 집에는 가야지.
“상덕아, 일어나. 오전 수업 다 끝났다.”
조곤조곤 말로 해서 일어날 인간이 아니었기에 두 손으로 뒷덜미를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그런데도 이놈은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상덕이 죽겠다.”
그때 내 귀에 꽂히는 아름다운 목소리.
아랑이였다.
“괜찮아. 이놈은 둔해서 이렇게 안 하면 안 일어나.”
“호호, 상덕이도 참 재밌는 애 같아.”
“그렇긴 하지.”
“근데 지웅아, 너 크리스마스나 이브 날 뭐해? 약속 있어?”
“응? 딱히 약속은 없는데.”
“그럼…… 저기…… 내가 저번에 이랑이 일도 있고 해서 밥 한번 사겠다고 약속했었잖아.”
“아~ 그거 너무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어떻게 그래. 나한테…… 아니, 우리 가족한테는 정말 큰일이었는데.”
큰일이긴 했지.
까딱 잘못했으면 이랑이는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었어야 할 테니까.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인들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그날, 데이트 신청 받았다.’
그것도 우리 학교 퀸카 아랑이한테!
주책없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언제가 좋을까?
크리스마스? 아니지. 크리스마스에는 아랑이도 그렇고 나도 가족과 보내는 게 좋겠지.
그럼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
그래! 남녀가 함께하는 건 크리스마스 이브가 제격이지!
“나, 이브 날 시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내일이네?”
“응, 내일이야.”
“그래. 내일 하교하고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좋지.”
“아, 그런데…… 이랑이한테는 얘기하지 마.”
“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니 아랑이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살짝 난처해하며 말했다.
“내일은…… 둘이서만 보고 싶어.”
“어…… 어, 그래. 알았어.”
아랑이가 다시 활짝 웃었다.
“그럼 내일 봐, 지웅아~”
아랑이는 내게 인사를 건네고 후다닥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참 귀엽단 말이야.
* * *
집으로 가는 길.
띠링!
―김 반장님을 구하는 영상은 여전히 인기가 많네요. 선행을 쌓아 9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중딩 의뢰인이 동생에게 주고 싶어 했던 선물을 대신 사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훈훈하네요. 선행을 쌓아 3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복학생의 고백을 성공시켜 주는 장면은 거의 드라마였죠? 많은 사람들도 감동을 받고 있어요. 선행을 쌓아 28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고양이를 찾아주는 영상을 본 많은 애묘인들이 감동 받고 있네요. 선행을 쌓아 17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동영상들의 힘으로 숨만 쉬어도 링크가 마구 적립되었다.
어디, 얼마나 많은 링크가 모였는지 한번 볼까?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7/17
영매 : 18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2,976
“흠…… 일단 영력부터 업그레이드시킬까?”
난 영력 탭을 터치한 뒤, 링크를 소모해서 영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영력은 총 21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각 단계마다 소모된 링크는 500, 600, 800, 1,000이었다.
남은 링크는 76.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링크가 적립되는 중이었다.
띠링띠링 소리를 들으며 기쁘게 버스에 올라탔다. 뒤쪽 빈 좌석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의뢰 게시판에 새로운 의뢰가 50건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 혼자서 운영하기가 힘들겠는데.’
사이트가 인기를 끌수록 의뢰는 늘어가는데 내 몸은 한계다.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이 모든 의뢰들을 해결하는 건 무리다.
‘일단은 간단한 것들부터 해결하자.’
난 의뢰게시판의 내용들을 찬찬히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
길버트의 복수가 발동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영혼의 퀘스트가 발동했다.
복수의 서막
길버트의 능력은 굉장한 리더십이다.
난 아직까지는 이 능력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락해, 말아?’
영혼의 퀘스트를 수락해서 클리어할 경우 많은 링크를 벌 수 있다.
반면, 실패하면 그 영혼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근데 지금은 영혼의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링크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란 말이지.’
예전에는 2, 300링크가 참 큰 액수였다.
하지만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한 뒤에는 쉽게 벌리는 액수였다.
때문에 링크의 수입만 생각해 보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혼의 퀘스트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영혼의 퀘스트를 클리어할 경우 히든 소울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천상의 목소리를 내게 해주는 로레인의 영혼도 리조네의 퀘스트를 완료해서 특전으로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로열 그룹의 사람이자 자폐증을 앓고 있는 백설우를 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에도 히든 소울을 얻게 될지 모르니 수락하는 게 좋겠지.’
가만…… 그러고 보니 카시아스는 내게 총 50개의 영혼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이 끝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모든 영혼을 모으지 못할 경우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데 히든 소울로 얻게 되는 영혼도 50개의 영혼에 포함되는 건가?
그렇다면 영혼의 퀘스트에 실패해서 히든 소울을 얻지 못할 경우 모든 영혼을 모으는 데 실패하게 된다.
문제는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되는 건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네.’
만약 히든 소울이 내가 모아야 하는 50개의 영혼에 포함되는 거라면, 영혼의 퀘스트를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아울러 수락한 퀘스트 역시 무조건 클리어해야 한다는 말도 된다.
‘모르겠다. 일단은 수락!’
나는 ‘Yes’를 터치했다.
동시에 찬란한 빛이 날 덮쳤다.
그러자 아득한 느낌과 함께 눈앞이 까매졌다.
영혼이 육신을 탈출해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 * *
눈앞에서 칼이 날아든다.
나는 엉망이 된 몸으로 아무것도 못 한 채 서 있었다.
‘죽는다!’
그 생각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시린 칼날이 목까지 날아오는 찰나의 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띠링!
―길버트의 복수 퀘스트를 수락하셨네요. 지금부터 지웅 님은 길버트의 세상을 가상 체험하게 될 거예요. 지웅 님 본인이, 길버트가 되어서요. 길버트의 기억을 인스톨할게요.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 다음, 길버트의 기억들이 강제로 삽입되었다.
‘레드 텅 용병단은 무적이다! 지금까지 죽어간 동료들의 넋을 발판 삼아 더 강해질 것이다! 레드 텅 용병단은 정상에 오를 것이다! 우리는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죽는다!’
‘대장! 오늘은 아무도 안 죽었어! 학슬러가 등신 같이 오른팔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오른팔을 내주고 목숨을 건졌으니 제대로 득 봤구나!’
‘레드 텅 용병단이 창설된 지도 8년째야. 이제 식구들도 제법 모였고 슬슬 큰 의뢰를 물어 와도 괜찮지 않을까?’
‘곧 큰 건이 들어오겠지! 당장 내일 있을 고블린 토벌부터 확실히 하자고!’
‘어떻게 된 거야? 왜…… 왜 여기에 트롤이!’
‘고블린 토벌이라며!’
‘이번 의뢰를 받아온 게 누구였지? 살라반! 살라반!’
‘살라반이 없어!’
‘설마…… 살라반이……!’
‘으아아아아악!’
‘학슬러!’
‘꺄악!’
‘레지나! 젠장, 다들 정신 차려! 어떻게든 이 지옥을 뚫고 나간다! 살아서 나가는 거다!’
‘대, 대장…… 어서…… 도망…… 쿨럭!’
‘피피!’
‘빨리 나가라고, 대장! 우리 목숨을 제물로 바칠 테니 어떻게든 살아! 그리고…… 그리고 복수해 줘.’
‘예시…….’
‘이 멍청한 트롤들을 얼마나 잡아둘 수 있을지 장담 못 해. 어서 가라고, 길버트!’
‘번스타인……!’
‘함께해서 즐거웠어, 대장! 내가 여자 말고 남자한테 이런 말을 해보기는 처음이야.’
‘이하 동문.’
‘유슬란…… 마쿠샤.’
‘당장 안 꺼지면 엉덩이에 구멍 날 줄 알아! 내 활이 얼마나 따끔한지 알고 싶은 거야?’
‘쟈비아…… 제기랄……!’
‘역시 살아 돌아온다면 이 집으로 숨어들 것이라 예상했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의리 하나로 똘똘 뭉친 레드 텅 용병단의 단장께서 혼자만 내빼신 건가? 실망이군.’
‘네놈은…… 누구의 기사냐. 대체…… 대체 누가 이런 일을 꾸민 것이냐!’
‘어디 천한 용병 놈이 함부로 기사의 이름을 부르느냐!’
‘으아아아아악!’
‘분수를 알아라. 그 몸뚱이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입 다물어!’
‘꼴사나우니 그만 죽어라.’
갑자기 흘러들어 온 한 사람의 인생사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동시에 내게 날아들던 칼날이 목을 벴다.
아니, 베려 했다.
카앙!
하지만 칼날은 내 목을 베지 못했다.
‘아이언 스킨!’
지금의 난 길버트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의 길버트와는 다르다.
유지웅의 능력을 고스란히 전이 받은 길버트다.
띠링!
―길버트는 레드 텅 용병단의 2인자였던 살라반의 배반으로 모든 용병단원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어요. 트롤들과의 격전으로 심하게 다친 몸을 이끌고 비밀 아지트였던 작은 저택에 숨어들었지만, 이미 그곳의 위치도 드러난 이후네요. 결국 길버트는 그 저택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살아남아 꼭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싶어 하네요. 길버트가 만족스러운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아…… 하아아.”
그래…… 난 레드 텅 용병단의 단장 길버트다.
그리고 살라반은 날 배신했다.
녀석은 용병 길드에서 고블린을 토벌해 달란 의뢰를 가지고 왔다.
살라반은 강하면서도 상냥한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