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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85화 (85/153)

데일리 히어로 085화

퍽!

“악!”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입을 뭉개 버렸다.

그리고 놈의 오른 다리를 잡아 비틀었다.

두두둑!

“으아악!”

이어 왼 다리도 비틀었다.

두둑!

“아아아아악!”

그리고 양팔을 부러뜨렸다.

두둑! 둑!

“끄으으으…….”

사지를 못 쓰게 된 살인마가 바닥에 널브러져 죽는 소리를 냈다.

놈이 겨우 고개만 들어 날 보더니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했다.

“……죽여 그냥. 큭! 크크큭! 쿨럭! 쿨럭! 크으읍…… 흐으으. 너, 너도 신이 되는 기분을…… 느, 느껴봐. 흐, 흐히히히. 히히히히히.”

불쌍한 인간이다.

못된 인간이다.

내 손에서 처리하기 보다는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난 마비 독을 만들어 녀석의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놈은 이내 눈을 감고서 축 늘어졌다.

“후우.”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잘못된 가정에서 태어나 괴물이 된 녀석이었다.

녀석은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가족을 잃은 숱한 사람들에겐 백번 죽여도 시원찮을 쓰레기일 것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 놈을 죽일 순 없었다.

난 루시부터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루시가 갇힌 철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나와 살인마가 투덕거리는 사이, 함께 갇혀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숨을 거두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루시만 데리고 지하실을 나왔다.

‘사람의 눈에 띄어선 안 돼.’

이미 지하실에서 엄청난 것을 보고, 한바탕 일을 저지른 터였다.

이 지하실의 정체가 밝혀지면 분명히 언론에 보도될 게 뻔했다.

괜히 의심 살 건덕지를 만들어선 안 된다.

마당으로 나와 담벼락 너머 사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루시를 품에 안고 얼른 월담을 했다.

그리고 집 근처를 빠르게 달려 벗어났다.

바깥 의뢰, 집안 의뢰

루시는 내가 자신을 구하러 온 걸 눈치챈 건지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난 그런 루시에게 얼른 인피니트 포션을 꺼내 먹였다.

그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던 것인지, 루시는 허겁지겁 포션을 받아먹었다.

“그래그래, 잘 먹는다.”

루시가 인피니트 포션을 다 마시자 몸 곳곳에 있던 상처들이 빠르게 나았다.

그리고 전보다 더 기력을 찾은 얼굴이 되었다.

“됐다.”

자, 이제 어쩐다?

저 사이코 녀석을 신고하긴 해야 할 텐데.

내 스마트 폰으로 했다가는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볼 것이 뻔하다.

일단은 의뢰를 완수한 다음, 공중전화로 신고를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상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덕아, 찾았다.”

―어? 찾았어?

“그래.”

―어디서?

“그냥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에서 찾았어.”

―대박! 알았어! 어디로 갈까?

“민하늬 씨 집 앞에서 보자. 하늬 씨한테는 네가 연락해라.”

―오케이! 근처니까 바로 갈게!

* * *

“루시야!”

야옹~!

루시는 민하늬를 보자마자 내 품에서 얼른 그녀의 품으로 옮겨갔다.

“루시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야옹.

루시는 민하늬의 가슴에 안겨 자신의 몸을 열심히 비벼댔다.

그걸 본 상덕이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루시가 부럽다.”

우리 상덕이는 어쩜 이렇게 초지일관일까.

참 대단하다.

민하늬는 루시와 한참 동안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내게 물었다.

“루시 어디에 있었어요?”

“저쪽 골목 어귀에 쓰러져 있던데요?”

“네? 정말요?”

“네.”

“그런데 왜 우리 가족은 못 봤지?”

“그러게요.”

뭐 딱히 그 의문에 대해서는 해줄 말이 없었다.

민하늬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루시를 찾았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말 두 분한테 너무 감사드려요. 루시가 제 품에 다시 안기게 될 줄이야……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상덕이가 어디 재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던졌다.

아, 쪽팔려.

“아무튼 후기는 꼭 올려주세요.”

내 부탁에 민하늬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럼요, 꼭 올릴게요. 근데 정말 그거면 되나요? 제가 사례금이라도 챙겨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돈은 받지 않는다는 게 제 철칙입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루시 잘 돌봐주세요.”

“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조심히 올라가세요.”

“다음에 또 어려운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난 그리 말하는 상덕이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야야! 왜 그래!”

아파하는 상덕이를 무시하며 민하늬에게 말했다.

“공지 사항에 써 있다시피 우리 사이트는 한 사람이 한 가지 의뢰밖에 하지 못하는 거 알고 계시죠?”

“그럼요.”

“아…… 그랬지, 참.”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상덕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나도, 민하늬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민하늬는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의뢰 하나를 또다시 무사히 마쳤지만 발걸음은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연쇄살인마 때문이다.

설마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이런 식의 커다란 사건과 연결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잠깐 동안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을 곱씹으며 계속해서 주택단지를 거닐었다.

그런데.

“어? 고양이들이다.”

상덕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고양이 여러 마리가 담벼락에 올라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개중엔 하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도 보였다.

갈수록 고양이의 수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그러더니 결국 하얀 고양이 패거리와 검은 고양이 패거리가 모두 나타나 우리 뒤를 따랐다.

상덕이는 처음에는 별생각 없는 모양이더니 하도 많은 고양이가 따라오자 점점 겁에 질린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겁낼 건 하나도 없었다.

이 고양이들은 모두 날 배웅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고양이들은 우리를 주택단지의 입구까지 따라와서 멈춰 섰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자 고양이들이 동시에 울음을 흘렸다.

야옹. 야옹. 야오옹~

“컥!”

놀란 상덕이는 저 혼자 살겠다고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홀로 남은 난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감사의 말을 내게 전했다.

마지막으로 검은 고양이, 하얀 고양이와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 간다. 너희들 앞으로는 싸우지 말고 지내라.]

‘잘 가라, 인간. 보금자리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거 봐. 내가 저 인간 믿어도 된다 그랬지?’

‘시끄러워.’

하얀 고양이가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동료 길고양이들이 녀석을 따라 걸었다.

검은 고양이는 아직 가지 않고 날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물어봐.]

‘……다시는 안 돌아오겠지?’

그 녀석은 지금 나더러 다시 안 돌아올 것이냐 묻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버린 주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버린 애완동물을 다시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검은 고양이를 희박한 희망을 붙잡고 계속 아파하게 둘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잔인한 현실을 알려주는 게 낫다.

당장은 더 아플지 모른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했을 때 더 잔인한 것은 부질없는 희망인 법이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검은 고양이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잘 가. 고마웠어.’

검은 고양이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너도 잘 살아라. 이제 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두 번 다시 아프지 마라.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덕이와 전철역으로 향하다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했다.

난 공중전화를 들어 긴급 통화를 누르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 다음 연쇄살인마에 대해서 신고하고 통화를 끝냈다.

“갑자기 공중전화기는 왜?”

다시 전철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상덕이가 물었다.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었어.”

“혹시 나 몰래 민하늬 씨한테 연락한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인마.”

“그럼 됐어, 히히.”

하여튼 단순한 걸로 따지면 세계 제일이다.

* * *

춘천역에 도착해 상덕이와 헤어졌다.

저녁을 먹지 못했더니 배가 많이 고팠다.

“얼른 가서 밥부터 먹어야겠다.”

버스를 타고서 집 앞 정류장에 내렸다.

지금 시간이 오후 9시.

유주 누나와 진호 형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편의점 앞을 지나가며 유리문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을 살폈다.

‘배고픈데 들어가서 폐기 남는 거나 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는데.

‘어라?’

손님이 없는 매장 카운터에서 선 두 사람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유주 누나야 워낙 밝은 사람이니 저런 쾌활한 모습을 많이 봐왔었지만, 진호 형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장난을 치는 수위가 이상했다.

이건…… 그냥 친구끼리, 동료끼리의 장난이 아니라 연인 사이의 장난 같았다.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잠시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 진호 형이 보여줬던 이해 못 할 행동이 떠올랐다.

‘그래. 진호 형…… 내가 알바 그만둘 무렵부터 유독 유주 누나한테 살갑게 굴었었지. 지각도 안 하고. 유주 누나한테 유니폼 챙겨주고. 그럼 그게 다…….’

진호 형이 유주 누나를 좋아해서 그랬었던 거야?

유주 누나는 그런 진호 형한테 넘어간 거고?

“어어?”

이제는 은근슬쩍 서로 뽀뽀도 한다.

“허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참 놀랄 노 자다.

[왜 그러고 서 있어. 한유주를 네가 갖지 못해서 억울하냐?]

듣기만 해도 복장 뒤집히는 이 목소리는 카시아스였다.

녀석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서 있었다.

[억울하기는.]

[아랑이와 한유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으니 억울할 만하지. 이제는 선택이 쉬워지겠네.]

[시끄러워.]

난 다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시아스가 그런 내 어깨에 훌쩍 올라탔다.

[근데 넌 요새 뭐하고 지내냐. 갈수록 날 만나러 오는 시간이 줄어든다?]

[지구에서의 내 역할은 네가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이제는 스스로 잘 해나가고 있으니 전처럼 계속 붙어 다닐 필요가 없지.]

[그럼 집에만 있는 거야?]

[그래.]

[그럼 언제 집에 초대 좀 해줘.]

[와서 뭐하게.]

[그냥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카시아스와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집 앞에 도착했다.

카시아스는 내 어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간다.”

“그래. 조만간 초대해 줘.”

카시아스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집으로 돌아왔더니 벌써 밤이 되었다.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는데 누나가 문을 벌컥 열더니 터벅터벅 들어와서 내게 물었다.

“들어가도 되냐?”

“……들어오기 전에 물어보지 않나, 보통?”

“에이, 몰라.”

뒷발차기로 문을 쾅 닫은 누나가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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