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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83화 (83/153)

데일리 히어로 083화

고양이는 루시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던지 줄줄이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만났다는 거지?]

‘내가 쥐를 잡아먹고 있을 때 눈이 마주쳤지. 역한 냄새가 나는 깨끗한 털을 보고 집고양이라는 걸 알았어.’

[역한 냄새?]

‘너한테도 그 냄새가 나. 특히 머리에서.’

샴푸 냄새를 말하는 건가?

고양이들은 그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연약한 놈이었지. 그래서 짜증났어.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사람이 주는 밥을 먹고 아양 떨며 살아가는 꼬라지라니.’

[험담은 됐고, 루시가 어디로 갔는지 봤어?]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올리며 살살 핥았다.

‘내가 이빨 좀 들이댔더니 놀라서 저쪽으로 가더군.’

고양이는 앞발을 핥다 말고 옆 골목을 바라봤다.

[저 골목으로 갔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고마워.]

* * *

골목으로 들어와 한참 동안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갔던 길을 또 가보고 다시 가보고 다시 가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그 골목 안에 줄지어 늘어선 주택들은 대부분이 빈집이었다.

허술한 철문 너머로 유령처럼 늘어진 주택들이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가끔 사람이 사는 곳 같은 집도 있었는데 개를 키우지 않았다.

나는 지금 동물을 찾아 대화를 해야 하는데, 동물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오른편 담벼락 위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심상찮았다.

나를 몹시 경계하는 한편,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투지가 엿보였다.

난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인지 몸을 잔뜩 뒤로 빼며 자세를 낮추고서 입을 쩍 벌렸다.

하악!

상대방을 경계할 때, 공격 태세에 임할 때만 한다는 하악질을 했다.

난 두 손을 뒤로 감췄다.

그리고 한 발 물러나며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상태에서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깜빡깜빡거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고양이들끼리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이런 식으로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 건 ‘난 너와 싸울 의사가 없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렀다.

난 조심스레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내 말이 들리니?]

‘……!’

고양이가 몸을 바짝 세웠다.

난 그런 고양이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겁먹지 마.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아. 난 너와 싸우러 온 게 아니야.]

그러자 고양이가 다시 한번 하악질을 했다.

하악!

‘웃기지 마! 너도 그놈이랑 한 패지!’

[뭐? 그놈? 그놈이라니?]

‘우리들을 잡아가는 그놈!’

[잡아가? 너희들을? 누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거야?]

‘모르는 척하지 마!’

고양이는 발톱을 잔뜩 세우고서 전보다 더 무섭게 날 노려봤다. 그리고 위협적인 신음을 흘렸다.

으르르르르르!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내 주변의 담벼락에서 고양이 십수 마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저 하얀 고양이 녀석이 이 동네의 대장인 모양이다.

‘그 녀석은 보통 인간과 다른 기운이 느껴졌어. 너무나 강렬했어. 너처럼.’

[뭐?]

‘너도 그놈과 한패인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러 온 것뿐이야.]

‘시끄러워!’

하악!

하얀 고양이의 하악질에 다른 모든 고양이들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이거 난감하네.

고양이 찾으러 왔다가 온 동네 고양이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됐으니, 원.

하얀 고양이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앞발과 뒷발에 힘을 주었다.

당장에라도 내게 뛰어들 듯한 그런 포즈였다.

그리고 녀석이 뒷발을 쭉 튕기려는 순간!

야옹~

갑자기 들려온 평온한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하얀 고양이는 행동을 멈췄다.

모든 고양이의 시선이 오른쪽 담 너머 초가집 지붕 위로 향했다.

거기엔 나와 처음 만났던 검은 고양이가 서 있었다.

[너구나!]

내가 녀석을 알은척했다.

하얀 고양이도 검은 고양이를 보고 말했다.

‘반쪼가리는 끼지 마라.’

‘반쪼가리?’

하얀 고양이가 검은 고양이를 조롱하듯 설명해 주었다.

‘인간들과 살다가 길고양이 신세가 된 녀석들을 반쪼가리라고 부르지.’

뭐야, 그럼 저 녀석은 원래 사람의 손에 컸던 녀석이었단 말야?

그런데 아까는 왜 집고양이들을 경멸하는 발언을 했던 거지?

‘반쪼가리든 뭐든 지금 난 강해. 아무튼 저 인간의 말은 진짜야.’

‘인간을 경멸한다던 녀석이 다시 인간 편을 들려고 하는 거냐?’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잃어버린 우리 동족을 찾으려고 한다잖아.’

‘흥, 웃기는군. 키우던 주인에게 버려졌을 때 밤새 무서워 덜덜 떨던 꼴이 아직도 내 두 눈에 선하다.’

‘마음껏 조롱해. 그땐 그랬으니까. 설마 잘 키우던 날 버리고 이사 갈 줄은 생각도 못 했었어. 사람 손 탄 고양이가 밖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면 그렇게 책임 없는 행동은 못 했을 거야.’

검은 고양이는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은 것 같았다.

녀석은 하얀 고양이의 조롱을 담담하게 받아쳤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암울했던 과거를 모조리 털어놓아 더 공격할 거리가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에 하얀 고양이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죽고 싶냐?’

‘죽일 수 있었으면 벌써 죽였겠지. 그런데 죽을 위기를 견디고 성장한 반쪼가리들은 정말 강해지거든. 나랑, 내 친구들처럼.’

검은 고양이의 말이 끝나자, 그의 뒤로 상처투성이의 고양이 십수 마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 골목은 검은 고양이가 이끄는 ‘반쪼가리 무리’와 하얀 고양이가 이끄는 ‘길고양이 무리’가 세력 대결을 펼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으르르르르!

키야앙!

사방에서 고양이들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근데 사람을 사이에 놓고 완전히 무시하네?

짝!

내가 손바닥을 짝! 하고 치자, 놀란 고양이들이 우르르 도망쳤다.

그 자리에 남은 건 하얀 고양이와 까만 고양이 둘뿐이었다.

난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말대로 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고 있는 거야. 너희들을 해코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닐까? 먹이로 덫을 쳐놓고 숨어 있었겠지. 너희들끼리 싸우는 건 나중에 하고.]

말을 하며 스마트 폰에 저장된 루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생긴 고양이 본 적 있으면 말해봐. 난 얘만 찾으면 돼. 그 다음엔 조용히 떠나줄게.]

하얀 고양이가 그 사진을 가만히 보더니 눈을 파르르 떨었다.

‘바깥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까불던 꼬마잖아.’

[봤어?]

‘……봤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

‘……그 녀석이 잡아 갔어.’

[그 녀석이라니?]

‘너와 한패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녀석. 고양이들을 잡아가는 인간. 벌써 보름 동안 내 동료 열다섯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들은 여기를 떠날 참이었어.’

[그러니까 넌 그 인간이 루시를 잡는 걸 봤단 말이야?]

하얀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어?]

‘잡힌 고양이는 우리 동료도, 반쪼가리도 아니었으니까.’

동료가 아닌 고양이는 구할 의무가 없다는 건가?

[그 인간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

‘어디 사는지도 알지.’

[어디 사는데?]

‘이 구역에 살아. 우리가 이 구역을 떠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그랬군.

누군가 이 동네에서 살면서 고양이를 계속 잡아가고 있는 거였어.

루시도 그놈의 손에 잡혀간 것이고.

대체 무슨 목적으로 고양이를 납치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두어서는 안 돼.

[알려줘. 그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면?’

[그냥 두지 않겠어.]

‘……인간이 인간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고양이들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너희들이 같은 고양이지만 따로 세력을 나눠서 싸우는 것처럼 인간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동물 애호가마냥 고양이들을 마냥 옹호하는 것도 아니지. 다만 이유 없이 고양이를 납치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어.]

그때 검은 고양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난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밑져야 본전이잖아?’

하얀 고양이는 날 관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등을 보이며 말했다.

‘따라와.’

하얀 고양이가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네 덕분이야.]

‘고마우면 그 고양이 사냥꾼 좀 어떻게 해봐. 그 녀석이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도 이 동네에서 떠나야 할 판이야.’

[넌 여기서 떠나는 게 싫어?]

‘어딜 가도 반쪼가리들은 환영받지 못하니까. 또 세력 싸움을 해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많은 동료들이 죽어. 그리고…….’

[그리고?]

‘아직도 기다리고 있나 봐, 난.’

[…….]

검은 고양이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지붕을 넘어 모습을 감췄다.

저 녀석 설마…… 이사 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뭐해? 안 따라와?’

[아, 갈게.]

난 하얀 고양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검은 고양이의 씁쓸한 마지막 얼굴이 떠올라 괜히 마음 한편이 욱신거렸다.

센 척하고 있지만, 한번 손을 탄 사람의 정을 녀석은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나쁘다.

살생(殺生)의 이유

하얀 고양이는 날 허름한 철문이 달린 저택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야.’

철문 너머 보이는 마당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마당의 한 가운데엔 다 무너져가는 집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집 뒤편엔 텃밭이 있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 엉망이었다.

[루시를 납치한 인간이 여기에 산다고?]

‘그래.’

[알았어. 안내해 줘서 고마워.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하얀 고양이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네가 일을 잘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 보금자리를 떠나서 다른 구역에다 터를 잡아야 하는 건 힘든 일이야.’

[노력할게.]

‘간다.’

하얀 고양이가 미련 없이 뒤돌아 떠나 버렸다.

“후우, 여기가 고양이 사냥꾼의 집이란 말이지.”

난 청력을 확장해서 집 안의 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작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난 주변을 살핀 뒤, 지나가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을 휙 뛰어넘었다.

탁.

마당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다시 한번 집 안의 동태를 소리로 살폈다.

만약 누군가가 집 안에 있다면 숨소리라도 들릴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현관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러자.

끼이익.

낡은 나무 문이 힘든 신음을 흘리며 열렸다.

문을 잠가놓지 않은 것이다.

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다지 넓지 않은 거실이 나왔다.

거실의 오른편으로는 화장실이, 왼편으로는 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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