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81화
“그걸로는 부족하지.”
내 말에 세 녀석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어이, 후배들.”
“…….”
셋 다 대답이 없었다.
날 무시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이 동네 물관리 해라.”
“네?”
재성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너희 말고 다른 양아치들이 이 동네에서 비슷한 사건 일으키지 않게 관리하라고. 중고딩 새끼들이 골목길에서 담배 피우거나 편의점 들어와서 행패 부리면 너희들이 해결하란 말이야. 알았어?”
그제야 세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고 크게 대답했다.
“네!”
그러자 태진이가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타타탁!
“니들이나 잘해, 니들이나.”
동해가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내게 말했다.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선배님.”
“사과는 점장님한테 해.”
세 녀석은 얼른 점장님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십쇼.”
점장님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심으로 뉘우쳤으면 됐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다가오면 나 역시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서로 간의 의리! 너희들의 진심은 나에게 전해졌다!”
태진이가 점장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내게 귓속말을 했다.
“저분 원래 저래?”
“응.”
“특이한 분이네.”
“좋은 분이야.”
“아무튼 이제 됐지? 나 간다. 야! 니들도 꺼져!”
“네!”
양아치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태진이도 그 뒤를 따라 편의점을 나서려 했다.
“태진아.”
“왜?”
“너 축구 진지하게 생각해 봐.”
“……남이사.”
“그 정도 재능이면 국가대표도 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네가 나한테 재능이 어쩌고 할 입장이냐? 괴물 같은 새끼.”
“나랑 비교하지 말고 인마.”
태진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그냥 편의점을 나가 버렸다.
뭐야? 뭐 말하기 힘든 고민 같은 거라도 있었나?
“고맙다, 지웅아.”
점장님이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고맙긴요.”
“네 덕분에 일이 깔끔하게 정리됐어.”
“점장님은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우리 점장님 이러다가 나중에 한번 크게 데이는 거 아닌지 걱정이다.
* * *
집으로 돌아와 다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다 뭐야?”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의뢰가 자그마치 스무 개였다.
“대박이구나!”
드디어 제대로 터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띠링띠링거리면서 링크가 쉴 새 없이 적립되는 게 심상찮다고 느끼긴 했다.
아직 얼마나 적립되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두 배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잠들기 전에 확인해 볼 참이다.
“흠…… 이걸 다 들어주려면 시간깨나 걸리겠네.”
난 새로 올라온 의뢰들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양이를 찾아달라던 의뢰의 댓글이 달렸는지만 확인했다.
그런데 의뢰인의 댓글이 달렸다.
[아직 고양이를 찾지 못했어요. 제발 찾아주세요. 부탁 드릴게요. 사는 곳은 경기도 구리시구요, 제 번호 남길 테니 연락주세요. 010―27XX―82XX]
경기도 구리시면 춘천에서 그리 멀지 않다.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가면 한두 시간 이내에 도착한다.
난 의뢰인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걸 때에는 늘 발신번호표시금지 서비스를 이용한다.
혹여라도 내 주변 사람이 의뢰인일 경우 번호를 보고 이 사이트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 넘버 서비스를 신청해야겠어.’
아니면 스마트 폰을 하나 더 만들든가.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의뢰인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고양이를 아직 못 찾으셨다구요?”
―네…… 벌써 일주일째예요.
일주일이라.
애완동물이 밖으로 나가서 일주일이 지났다면 살아 있을 수도, 혹은 죽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이다.
우리 집도 예전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키웠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 고양이는 집 안에서 키웠다.
그런데 부모님이 털이 너무 날린다고 하여, 집 마당에 풀어놓고 방목했다.
처음에는 마당 밖으로 잘 나가지 않던 놈들이 하루 이틀, 간덩이가 커지더니 나중에는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밥 때가 되면 꼭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야옹거리며 울었다.
그렇게 밖에 내놓은 고양이가 암컷, 수컷 두 마리였다.
두 녀석은 서로 교배해서 새끼도 낳고 잘 사는 듯했다.
하지만 동네의 다른 고양이들과 수시로 싸움을 벌였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때까지도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 건 두 고양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중 유독 거대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놈이 아빠 고양이를 마당에서 쫓아내버렸다.
그 이후로 아빠 고양이는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얘기가 샜지만, 한마디로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은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귀소본능이 있어서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다.
고양이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네 가지로 예측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잡아갔거나, 로드 킬을 당했거나, 잠깐 밖에 나간 그새 다른 고양이에게 쫓겨 멀리 도망갔거나, 발정이 났거나.
차라리 발정이 난 경우는 교미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코빼기도 안 비치진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희망적이지는 않군.’
이거 괜히 의뢰에 착수한다고 한 건 아닌지 싶다.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너무 들떠 있었던 모양이다.
“근처에 고양이를 봤다는 사람도 없나요?”
―있긴 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행방을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만나서 의뢰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뵈면 좋을까요?”
―오늘은 안 될까요?
의뢰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만 구리시까지 가려면 두 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기다릴게요. 한시라도 빨리 우리 루시를 찾고 싶어요.
고양이 이름이 루시인 모양이다.
“네, 알겠어요.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음…… 구리역 1번 출구에서 뵀으면 해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
“네.”
전화를 끝내자마자 상덕이와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 넣어뒀던 인피니트 포션을 꺼냈다.
작은 유리병 안엔 맑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랑이에게 한 번 사용한 뒤 한 달이 지나서 저절로 가득 찬 것이다.
‘혹시 고양이를 찾았을 때 많이 다쳐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양이들은 의외로 생명력이 강하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당한 채 집에 돌아올 기력이 없어서 헐떡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인피니트 포션을 챙겼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끝냈는데 엄마가 과일을 들고 내 방에 들어오셨다.
“응? 지웅이, 어디 나가니?”
“응, 약속이 있어서. 아, 오늘 외박할지도 몰라.”
“그래…… 근데 지웅아.”
“응?”
“어차피 네가 대학 안 갈 생각인 건 잘 알겠고, 뭐 하고 싶은 일 없니?”
갑자기 시작된 엄마의 진로 공격에 살짝 멍해졌다.
“하고 싶은 거?”
“그래. 이제 그런 거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글쎄…… 아직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심각하게 생각해 봐. 그 전까지야 엄마랑 아빠가 능력이 안 돼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관심도 가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엄마도 건강하고 아빠 장사도 잘되잖니.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해 줄게. 그러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해줘, 알았지?”
날 생각해 주는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게.”
“그래, 착하다. 네 누나도 너처럼 말 좀 잘 들었으면 좋겠는데, 어찌나 쇠고집인지 모르겠다. 이제 직장 그만두고 다시 미대 시험 봐서 대학 들어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는데 듣는 척도 안 한다. 언제 네가 한번 얘기해 볼래?”
하하, 누나가 또 한 고집 하지.
누나의 고집은 꼭 아빠를 닮았다.
아빠가 무언가 자기 생각 하나에 꽂히면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타입이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내가 집안일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게 맞긴 맞나보다.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어느 정도 선에 올려놓으면 이제 시선을 안쪽으로 돌려야겠다.
한 달 전부터 생각했던 아버지 가게 분점 문제도 그렇고, 누나의 미대 진학 문제도 그렇고.
둘 다 확실하게 해결을 해야지.
돈이야 데일리 사이트의 의뢰 해결 영상을 통해 들어온 링크로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 * *
상덕이와 구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경이었다.
우리가 1번 출구에 도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데일리 히어로?”
뒤돌아보니 스무 살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번 의뢰인이었다.
상덕이가 의뢰인을 보고서 저도 모르게 말했다.
“예쁘다…….”
난 상덕이를 한심하게 쏘아본 뒤, 의뢰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사이트 운영자입니다.”
“전 민하늬라고 해요. 전 그냥 운영자님…… 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생각해 보니 전부터 이게 계속 불편했다.
딱히 나를 지칭할 만한 이름을 만들어 놓지 않았었다.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 내가 쓰는 메일 이름을 말했다.
“오들리(Oddly)라고 부르세요.”
“오들리? 오들리 햅번?”
“아니오. 그건 오드리 햅번이구요.”
“아…… 그런가요? 아무튼 오들리 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의뢰를 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하죠.”
“그런데 정말 아무 조건도 없이 의외를 들어주시는 건가요?”
“제가 의뢰를 무사히 완수하게 되면 후기란에 후기 글을 올려주세요. 그것만 지켜주면 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루시는 저한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에요. 꼭 좀 찾아주세요. 하루하루 루시가 걱정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정말 가슴속이 다 썩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상덕이가 나섰다.
“그럼요! 반드시 제가 루시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민하늬를 바라보는 상덕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여튼 이 녀석은 예쁜 여자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
“근데 어쩌다가 고양이를 잃어버리신 거예요?”
“아…… 저희 집 근처로 가면서 설명 드릴게요. 여기서 십 분만 걸어가면 돼요.”
“그러죠.”
* * *
우리 세 사람은 도로변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민하늬는 힘없이 걸음을 옮기며 루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