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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78화 (78/153)

데일리 히어로 078화

따지고 보면 착한 일 하려고 했던 건데, 참 불쌍하다.

라헬은 가운데에 있는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제피엘. 영혼의 능력은 지(地) 속성 중급 마법 더트(Dirt). 제피엘의 인생사는 이렇다 할 게 없군요. 잘나가는 백작 가문의 마법사단장으로 있다가 다른 귀족 가문과의 전투에서 패하는 바람에 숨이 끊겼답니다.”

라헬이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있는 영혼을 가리켰다.

“마지막 영혼의 이름은 파멜라지나. 영혼의 능력은 화 속성 중급 마법 파이어(Fire).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의 왕실마법사로 무난하게 살다가 무난한 죽음을 맞이했죠. 그러나 평생 남자 없이 혼자 살아갔답니다. 오래전부터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가 죽었고, 파멜라지나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이지 않았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면 주변에서 대시하는 인간들이 제법 있었을 텐데.

게다가 왕실마법사면 상당한 권력은 물론 돈도 괜찮게 벌었을 것이다.

한데도 사랑했던 남자를 잊지 못해 모태 솔로로 세상을 마감하다니.

모태 솔로 벗어나려고 애쓰는 누군가와는 확연히 다른 인생이구나.

선택적 모태 솔로라.

“어느 영혼을 사시겠어요?”

라헬이 물었다.

“흠.”

어떤 영혼이 좋을까?

화 속성, 수 속성, 뇌 속성 마법은 있는데 아직 지 속성 마법이 없다.

이참에 지 속성 마법을 살까?

아니면 화 속성 마법을 업그레이드시켜?

그것도 아니면…… 가만, 애니멀 링크?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라고?

그러고 보니 의뢰 내용 중에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게 있었지?

이거다!

“카인의 영혼을 사겠어.”

“카인이요? 정말이세요? 아니 왜 다른 좋은 영혼 놔두고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혼을 사려고 하시는 건가요?”

“늘 얘기하지만 그건 내가 판단해.”

“카인의 인생이 말년이 어땠는지 다시 들려드릴까요? 외롭고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될지 몰라요. 동물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커질 테니까요.”

“난 그럴 일 없어.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인간이거든.”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살 거예요?”

“내놔!”

“칫.”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서야 라헬이 카인의 영혼을 내주었다.

밝은 빛의 영혼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천 링크 받았네요.”

“팔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라헬이 갑자기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날 쏘아봤다.

“당신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순간 라헬과 나 사이에 흐르던 기류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어 말도 못 할 압박감이 내 정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윽!”

다리에 힘이 풀리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라헬의 입가에 깃든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모든 영혼을 다 사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뭐?”

“레이브란데의 인과율……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다일리아 카시아스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라헬이 눈을 부릅떴다.

붉은 눈동자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핏줄이 섰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그런 걸 왜 묻지?”

라헬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날 노려봤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왜 물어봤을까요?”

맥이 턱 풀리는 것 같았다.

라헬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

‘……대체 저 자식 정체가 뭐야?’

혼란스러운 와중에, 라헬이 한 손을 배에 대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가시지요.”

어둠은 사라졌다.

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

멍했다.

머릿속에서는 라헬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다일리아 카시아스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하아, 하여튼 진짜 께름칙한 놈이야.”

그건 그렇고 카시아스가 무슨 목적으로 내게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시전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하지만 카시아스는 아무것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뭘까.

내가 모르는 것, 그게 대체 뭘까.

그리고 내가 걷는 이 길의 끝엔 과연 뭐가 있을까.

* * *

다음 날.

하교하자마자 학교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춘천역으로 향했다.

상덕이와 함께 열차에 올라 용산역에 내렸다.

거기서 열차를 갈아타가며 홍대에 도착하니 3시 40분쯤 되었다.

우리 둘은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상덕이는 배가 고프다며 생과일 주스 한잔과 부리또를 주문했다.

녀석은 부리또를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난 복숭아 아이스티를 시켜 홀짝이다가 55분쯤 카페를 나섰다.

상덕이에게는 카페에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나오라고 언질을 해둔 이후였다.

정확히 4시가 되기 2분 전.

이하연이 일을 하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는 두 명의 알바생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밝게 인사를 건넸고, 다른 한 명은 손님이 오든 말든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가슴에 단 이름표를 보니 인사를 한 여인이 이하연이었다.

듣던 대로 예쁜 얼굴이었다.

게다가 상당히 밝고 쾌활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내들은 의외로 단순해서 잘 웃어주는 여자한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저러니 남자들이 빠져들지.’

4시 1분 전.

매장 안을 둘러보다가 적당히 음료수 하나를 들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슬쩍 매장 밖을 보니 저 멀리서 복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 칼 같이 지키네.’

나는 가지고 온 음료수를 이하연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내밀 때,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난 포이즌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몰라 어제 카시아스에게 물어봤었다.

하지만 카시아스 역시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잠들기 전까지 포이즌의 사용법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포이즌은 내가 그 기술을 사용하겠다는 의지에 따라 구현된다.

바로 지금처럼.

‘독이 필요해.’

내 의지가 발현되는 순간 수백 가지 독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정립되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 독들을 전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난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의 이미지를 택했다.

내 손끝에서 독성분이 만들어질 때, 이하연이 음료수 캔을 잡았다.

이하연의 손과 내 손이 살짝 맞닿았고, 그 찰나의 순간 독은 이하연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이하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음료수를 스캔했다.

삑.

“천 원입니다.”

“네.”

계산을 마친 뒤, 내가 편의점에서 나서는 순간, 복학생이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기에, 복학생은 날 알아보지 못했다.

“어, 오빠?”

이하연이 복학생을 알은척했다.

“어…… 하, 하연아.”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미 난 편의점에서 많이 멀어졌지만 파펠의 능력으로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아, 그게…….”

이하연의 질문에 복학생은 어쩔 줄을 모르고 더듬거렸다.

그때, 사건이 터졌다.

“아…….”

이하연이 아찔한 신음을 흘렸고.

콰당!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이건 동료 알바생의 비명 소리.

“하, 하연아!”

이건 복학생의 목소리.

“하연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이, 일일구!”

복학생은 119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얼마 안 있어 구급차 한 대가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복학생이 하연이를 업고 나오자 구급대원들이 그녀와 복학생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정안종합병원? 오케이.”

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뒤 상덕이와 합류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정안종합병원으로 향했다.

* * *

정안종합병원 응급실에 들어서서 복학생을 찾았다.

복학생은 구석 쪽 병원 침대 한곳에 서 있었다.

“하연아! 하연아~!”

나와 상덕이가 복학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상덕이는 병원 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며 이 상황을 몰래 촬영하는 중이었다.

“저기요!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다가가자 복학생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돌아봤다.

“여,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니…… 계획한 이벤트가 있어서 편의점으로 갔는데…… 갑자기 의뢰인께서 하연 씨를 업고 나와서는 구급차에 올라타던데요?”

“그게…… 하연이가…… 하연이가 갑자기 쓰러져서.”

“네?”

나는 모르는 체하고 이하연의 손을 잡았다.

“의식이 없으신 건가요?”

“네.”

“제가 좀 볼게요.”

복학생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하연의 손에다 마비 독을 해독시키는 다른 독의 성분을 흘려 넣었다.

마비 독이나 지금 만들어낸 독이나 그 자체로만 있다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만 두 독이 서로 만나면 중화되어 사라져 버린다.

“하연 씨, 정신 좀 차려보세요.”

이하연은 몸이 마비된 것뿐이지 정신은 말짱하다.

내가 독을 흘려보내 마비 독을 중화시킨 뒤, 몸을 살짝 흔들자, 옅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오케이.’

난 다시 뒤로 물러섰다.

복학생이 간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떤가요?”

이 사람이 지금 날 의사라도 되는 것마냥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괜찮아요…… 오빠.”

이하연이었다.

“하, 하연아!”

복학생이 이하연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이하연이 힘든 미소를 지으며 그런 복학생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제……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복학생은 저도 모르게 이하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이야? 정말 괜찮은 거야?”

“네, 헤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난 네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 말이야.”

“고마워요, 오빠. 오빠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연아…….”

복학생을 향한 이하연의 눈동자 속엔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이게 내가 바라던 거지.

“저…… 두 분, 이런 상황에서 좀 실례이긴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깐 끼어들겠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목걸이까지 같이 줘도 되겠지?

난 목걸이가 담긴 상자와 편지 봉투를 이하연에게 건네주었다.

이하연이 당황스런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사실 더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드렸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그건 이 남자분께서 이하연 씨에게 자기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선물과 편지입니다.”

“……네?”

이하연이 내게 되묻고서 복학생을 바라봤다.

복학생은 이하연의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제가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남자 분께서는 오래전부터 이하연 씨를 좋아해 왔답니다.”

“아…….”

이하연이 탄성을 흘렸다.

그녀는 선물 상자와 편지 봉투를 번갈아 보고서 잠시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둘 다 복학생에게 내밀었다.

‘뭐야? 고백 거부야?’

복학생이 잔뜩 실망한 얼굴로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러자 이하연이 복학생에게 말했다.

“선물은…… 너무 부담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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