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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77화 (77/153)

데일리 히어로 077화

어찌 되었든 인비는 날 꼬시려고 일부러 연락을 끊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오해야.”

“오해는 무슨. 그러고 보니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졸업이네? 완전히 성인 되는 거잖아? 시기도 딱 좋다. 오늘부터 1일 할래? 누나가 잘해줄게~

“그만하지?”

“쌀쌀맞은 건 여전하네?”

그때 사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건 또 못 보던 광경이네? 인비가 남자한테 이렇게 들이댈 줄이야!”

사장이 매우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인비가 내 팔에 더 찰싹 매달렸다.

“지웅이는 다른 남자들이랑은 다르거든요~!”

“이거 괜히 질투 나는데?”

“질투 나도 어쩔 수 없어요.”

교태 섞인 음성을 흘리는 인비.

난 그런 인비를 께름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서 후광이 일었다.

이어 머리 위에 내 눈에만 보이는 커다란 네 글자가 척척! 박혔다.

‘연.애.고.수!’

그렇다.

그녀는 연애 고수였다.

게다가 여자이니만큼 누구보다 여자의 심정을 잘 알 것이다.

나는 인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인비가 놀라움과 즐거움이 뒤 섞인 얼굴로 날 바라봤다.

“인비야!”

“어머! 왜, 지웅아?”

“부탁할 게 있어.”

“뭐든지 다 들어줄게. 얘기해 봐. 왜? 오늘 밤에 같이 있어줄까? 아니면…….”

“일단 나가자!”

나는 인비를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머~! 터프하기도 해라! 어디 갈까? 밖에 추우니까 따뜻한 모텔 갈래?”

헛소리를 해대는 인비의 뒤에서 가게에 홀로 남은 상덕이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야! 나 아직 우동 다 안 먹었단 말이야! 야! 아, 몰라! 난 다 먹고 간다! 네가 남긴 것까지 먹을 거야!”

그래.

다 먹어라, 다 먹어.

* * *

나는 인비랑 남춘천역 근처의 카페에 왔다.

서로 주문한 음료수를 앞에 두고서 대화를 나눴다.

“흠~ 대리 고백?”

“응.”

“그걸 왜 하는데?”

“아는 형이 워낙 숙맥이라서 내가 대신 고백해 주려고. 그런데 그냥 편지랑 선물만 전해주는 건 너무 뻔하잖아. 그래서 뭔가…… 좀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백하려는 여자가 어떤 여잔데?”

난 복학생에게 들은 이하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를 다 듣고 난 인비가 빨대를 물고 씩 웃었다.

“뭐야? 야생의 산이네.”

“야생의 산?”

“그래. 사람의 발걸음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야생의 산.”

“무슨 말이야, 그게?”

“생각해봐. 네 앞에 두 개의 산이 있어.”

인비가 빨대에 음료수를 묻혀서 테이블에 작은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그리고 왼쪽 동그라미를 콕 찍으며,

“이건 야생의 산.”

오른쪽 동그라미를 콕 찍으며,

“이건 뒷동산이야.”

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웅이는 어떤 산에 올라가는 게 더 편하겠어?”

“당연히 뒷동산이지.”

“왜?”

“가깝고, 누구나 올라갈 수 있고.”

“왜 누구나 올라갈 수 있을까?”

“말했듯이 가까우니까?”

“가까워도 올라가는 길이 지랄 같으면 힘들 텐데?”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으니까 오솔길이 뚫려 있겠지.”

“바로 그거야!”

인비가 테이블을 탁! 쳤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 본 산은 오솔길이 뚫려 있어. 오솔길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올라가기 쉬워. 하지만 야생의 산은? 그렇지가 않지. 올라가기 힘들어. 왜? 길이 없거든. 지금 네가 말한 그 모태 솔로 여자가 바로 이 야생의 산인 거야.”

“아…….”

역시 연애 박사다.

대번에 이해가 확 간다.

“그 여자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여는지 아무도 공략법을 몰라. 심지어 본인조차도 모르지. 그래서 이성의 어떤 행동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도 알 수 없어.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꼬시는 줄 알아? 이런저런 수작질을 걸면서 여자의 반응을 살펴. 이미 연애에 경험이 많은 여자들은 경계가 딱 서 있거든. 호감이 가는 남자와 가지 않는 남자. 그래서 그 경계를 살피면서 여자를 공략하는 게 남자들이야. 그런데 그 여자는?”

“경계가 없어?”

인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확히는 스스로 경계를 몰라. 자기가 그걸 모르니 작업 거는 남자들도 도무지 이 여자를 모르겠는 거야. 그러니 뭐 연애가 될 리 없지. 그게 모태 솔로들의 특징이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 한 번 안 해봤어도 그런 경계가 뚜렷한 거거든. 애매한 경우도 더러 있지만. 한데 이 모태 솔로들은 그 경계를 몰라. 그래서 더 공략하기가 어렵지.”

“그럼 어떻게 해야 돼?”

“그 남자가 주기로 했다는 선물이 뭐야? 봐봐.”

“응.”

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인비가 그것을 열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목걸이잖아?”

“목걸이야?”

“선물이 뭔지 열어보지도 않았어?”

“그야, 남의 거니까.”

“큰일 날 사람이네. 대리 고백 해준다더니 일 다 망칠 셈이야?”

“왜? 목걸이면 괜찮은 선물 아닌가?”

그 말에 인비가 샐쭉 미소 지었다.

“그럼 나한테도 목걸이 사줄 거야, 지웅 씨?”

“……우리 현재의 상황에 충실해지자.”

“재미없기는. 아무튼 이건 안 돼. 무조건 퇴짜야.”

“이유는?”

인비가 목걸이를 주섬주섬 자신의 목에 걸며 말했다.

“연애 경험도 없는 사람한테 이런 거 주면 부담스러워서 숨이 탁 막혀. 남녀 사이에 가장 위험한 게 뭔지 알아? 서로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는 거야. 그때부터 어색해지고 눈만 마주쳐도 이상한 공기가 감돌고 그러는 거라구.”

“그럼 뭘 줘야 돼?”

“위기에서 구해줘.”

“……뭐?”

“이런 타입은 커다란 자극을 주지 않는 이상 마음 열기 힘들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자기를 구해준다! 그 정도의 드라마가 없으면 안 될걸.”

“그게 말이 쉽지…….”

그럼 위기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낸 다음, 복학생이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그녀를 구출하게 만들고, 고백을 해야 한다 이거야?

“어렵지?”

인비가 날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렵네.”

“그럼 머리 복잡한 생각 그만하고 나랑 데이트나 하자!”

인비가 벌떡 일어나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 * *

집으로 가는 택시 안.

문자가 와서 확인해보니 인비였다.

―너 이렇게 예쁜 여자 퇴짜 놓고 가버리면 택시 뒤집혀서 크게 다친다?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저주를 해라, 저주를.

그나저나 인비의 말이 정답인 것 같긴 하다.

문제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

“머리 아프네.”

혼잣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카시아스의 의지가 들려왔다.

[네 능력을 십분 활용해라.]

[카시아스? 어디 있어?]

[네 옆에.]

손을 내밀어 아무것도 없는 왼쪽 뒷좌석을 만져 보았다.

무언가 만져졌다.

머리인가?

[엉덩이다.]

“미, 미안!”

내가 놀라 소리치자 택시 기사가 룸미러로 날 봤다.

“네?”

“아, 아닙니다, 기사님.”

[웬 호들갑이냐.]

[아무것도 아니야.]

카시아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뭔가 그녀를 대하는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하다.

전 같았으면 내가 녀석의 엉덩이를 만지건 더한 곳을 만지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고양이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만진 건 여자의 엉덩이였다.

[그런데 무슨 능력을 사용하라는 거야?]

[루카스의 능력.]

루카스의 능력이라면…… 포이즌?

[세상에 있는 모든 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루카스의 능력이다. 아울러 독이라는 건 또 다른 독으로 해독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

포이즌의 능력과…… 독으로 독을 제압하는 법?

아…… 그렇지!

[이제 그 답답한 머리가 좀 굴러가냐?]

[이왕 조언해 주는 거 끝까지 친절하면 어디 덧나냐?]

[바보에게는 조언도 사치다.]

[아무튼 고마워. 해결책이 떠올랐어.]

복학생의 고백을 이하연이 받아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백이 성공할 확률은 대폭 높일 수 있겠어.

그리고 그럴듯한 영상 또한!

애니멀 링크

집에 들어와 바로 복학생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데일리 히어로 홈페이지 관리자입니다.”

―아, 네.

“내일 무조건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네?

“그래야 하연 씨가 고백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져요.”

―하, 하지만…… 제가 뭘 할 자신이 없어서 부탁을 한 건데…….

“간단해요. 의뢰인께서는 오후 네 시에 편의점에 들르기만 하면 돼요.”

―그게…… 다예요?

“네.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단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해요. 네 시. 그때 하연 씨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들어오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러면 됩니다.”

―정말입니까?

복학생의 음성에는 불신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난 더 힘주어 말했다.

“네. 정말 그것뿐이에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내일 네 시라고 했죠?

“네 시 맞아요.”

―알겠습니다.

복학생은 여전히 찜찜한 음성으로 통화를 끝냈다.

난 다시 상덕이에게 연락해서 내일 하교하고 바로 서울에 갈 터이니 열차표를 예매해 놓으라고 한 뒤, 갈아입을 옷을 책가방에 챙겼다.

그렇게 서울 갈 준비가 끝났을 때.

띠링!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네요~! 김 반장을 구해줬던 지웅 님의 활약은 언제 봐도 멋지다니까요. 선행을 쌓아 19링크가 주어집니다.

링크가 적립되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그동안 심심찮게 조금조금씩 링크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아직 모인 액수를 한 번도 확인해보지 않았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7/17

영매 : 15

아티팩트 소켓 3/3

보유 링크 : 1,495

“우와,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이것도 무시 못 하겠네.”

자고로 모은 돈은 쓰라고 있는 법!

“소울 커넥트!”

* * *

라헬이 전에 날 봤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또 거지 취급이냐?”

“왕 대접 받고 싶으면 오천 링크 정도는 들고 오시죠? 천오백 링크로 영혼 하나나 겨우 사겠어요?”

“올 때마다 시비 걸면 평생 안 오는 수가 있다, 너.”

라헬이 피식 웃었다.

“퍽이나.”

“내가 살 수 있는 영혼이나 보여줘 봐.”

“그러죠.”

라헬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앞에 새로운 영혼 세 개가 나타났다.

“이 영혼들 전부 천 링크, 필요 영력은 16이죠. 왼쪽부터 소개할까요?”

라헬이 가장 왼쪽에 있는 영혼을 가리켰다.

“영혼의 이름은 카인. 살아생전 그의 능력은 애니멀 링크였답니다.”

“애니멀 링크?”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죠. 그는 동물들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 능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죠.”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 하나로 그런 게 가능한가?

“참고로 카인의 직업은 해결사였답니다. 미궁에 빠진 사건, 사고들을 해결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었죠. 그는 동물들을 이용해서 풀기 어려운 살인 사건, 도난 사건의 범죄자들을 찾아내 엄청난 유명세를 탔답니다. 하지만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죠. 사람들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죽어나가는 동물들을 안타까워하며,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동물애호가 정도 되겠죠. 그러나 데브게니안 대륙에서는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았어요.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 받으며 쌓아놓았던 부와 명예도 모두 잃고 외톨이가 되어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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