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75화 (75/153)

데일리 히어로 075화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의뢰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난 워드 창을 켜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의뢰의 법칙.

하나.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찾아주시는 의뢰인들께서는 1인 1의뢰만을 원칙으로 합니다.

둘. 의뢰는 익명으로 의뢰 게시판에 작성하되, 의뢰 확정은 직접 만나서 결정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로 중복 가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 의뢰 게시판에 올라온 의뢰를 모두 들어줄 순 없습니다. 수행 가능한 의뢰만 들어줍니다.

넷. 수행 가능한 의뢰 글엔 댓글로 개인 연락처를 알려 드립니다.

다섯. 상호 간 연락을 통해 대면해서 의뢰를 수락합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난 워드로 적은 글귀를 복사해서 의뢰 게시판에 공지로 붙여 넣었다.

“자, 이제 사이트 광고 좀 팍팍 돼서 일거리 마구 들어와라!”

상덕이는 영리하게도 동영상을 편집할 때, 한편에다가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 주소를 박아 넣어놨다.

동영상이 이슈만 된다면 이건 한 방에 뜬다.

빨리 떠라!

* * *

12월의 셋째 주 토요일.

순식간에 3주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곧 졸업이다.

정말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3의 말미에 하도 스펙터클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사실에 그다지 두려움이 없었다.

또래 중 몇몇은 앞으로 먹고 살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걱정도 없었다.

이틀 전부터 데일리 히어로의 방문자가 조금씩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링크가 쏟아져 들어왔으며, 오늘 아침엔 의뢰 게시판에 새로운 의뢰도 다섯 건이나 올라왔다.

이번에 상덕이가 찍어서 올린 공사장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제법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즉 사이트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만 간다면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거지!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3/13

영매 : 14

아티팩트 소켓 3/3

보유 링크 : 2,280

내가 이틀 전까지 모았던 링크가 300가량이었다. 나머지 링크는 하루 사이에 들어온 것이다.

“이걸 다 금괴로 바꾸면 이천팔백만 원이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사야 하는 영혼의 수가 서른여섯이다.

필요한 경비만 돈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영혼을 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일단은 저번에 못 샀던 루카스의 영혼만 사자. 나머지는 영력을 올리는 데 미리 투자해 두는 게 좋겠어.”

난 영력 탭을 터치했다.

팅―

영력 : 13

영력을 14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240링크입니다.

[Yes/No]

‘Yes’를 터치.

영력이 14로 올랐다.

그렇게 계속해서 영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영력 : 17

영력을 18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500링크입니다.

[Yes/No]

지금 남은 링크는 업그레이드를 하는 사이 32링크가 더 들어와서 총 1,052링크였다.

여기서 500링크를 사용해 버리면 700링크인 루카스의 영혼을 살 수가 없다.

“됐다. 소울 커넥트.”

* * *

“오래간만이시네요?”

라헬이 쌀쌀맞게 말했다.

“어디서 소박맞았냐?”

“소박 놓을 사람도 없네요.”

“왜 이렇게 틱틱대?”

“제가요? 기분 탓이겠죠?”

라헬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더니 훅! 하고 불었다.

저게 진짜…….

“그런데 엄청 간만에 오셨으면서 들고 온 링크는 쥐꼬리만 하네요?”

하, 결국엔 그거였군.

돈 많이 들고 오지 않아서 거지 취급한다 이거냐?

그건 그렇고 이 자식이 말하는 게 웃기네?

“전에는 100링크만 들고 와도 쩔쩔매던 놈이 1,000링크나 들고 왔는데 쥐꼬리라고 해?”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십 년 전 라면 가격이랑 십 년 후 라면 가격이 같던가요?”

아아, 피곤해.

이놈이랑 말싸움 해봤자 득 될 거 하나 없다.

“거래나 하자. 루카스의 영혼을 사겠어.”

“그러시든가요.”

라헬이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루카스의 영혼이 나타나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됐죠?”

“너 다음에 보자.”

돈을 아주 그냥 억 소리 날 만큼 들고 와서 제대로 농락해줄 테니.

“다음에 보자는 인간 하나도 안 무섭더라. 들어가세요.”

라헬이 쌀쌀맞은 음성이 흩어지며 사위를 감싼 어둠이 부서졌다.

나는 다시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루카스의 능력이 포이즌이었지?”

루카스는 체내에서 독을 만들어내는 이능력자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독을 만들 수 있으며 그 강도와 양도 조절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 이건 당연히 액티브 소울이겠지?”

마인드 탭을 열어 영매 탭을 터치했다.

영매

패시브 소울 : 10

―강인한 육신[소라스]

―뛰어난 청력[파펠]

―완벽한 절대 미각[리조네]

―뛰어난 요리실력[마르펭]

―뛰어난 민첩성, 근력[바레지나트]

―아이언 스킨[지그문트]

―굉장한 창술[블랑]

―굉장한 궁술[쟈비아]

―굉장한 리더십[길버트]

―포이즌[루카스]

액티브 소울 : 5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Burn)[마르카스/소모 영력 5초당 1]

―수 속성 초급 마법 아쿠아(Aqua)[레퓌른/소모 영력 5초당 1]

―천상의 목소리[로레인/소모 영력 5초당 1]

―뇌 속성 중급 마법 라이트(Light)[포포리/소모 영력 3초당 1]

어? 이거 액티브가 아니라 패시브 소울이네?

그럼 영력의 소모 없이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해야 독을 만들 수 있는 거야?”

방법을 모르겠다.

이건 이따가 카시아스에게 물어보기로 하자.

일단 지금은 다섯 가지의 의뢰 중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부터 정하는 게 우선이다.

“어디 보자…… 고양이를 찾아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신 고백해 주세요. 에이펑크 전원의 사인을 받아와 주세요. 엄마를 살려주세요. 다이러스 장난감 로봇이 갖고 싶어요.”

난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건, 말 그대로였다.

이틀 전 집을 나간 고양이를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집 나간 동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괜히 의뢰를 들어준다고 했다가 실패하면 더 골치 아파진다.

못할 일은 애초에 받지 않는 게 좋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대신 고백해 달라는 것 역시 별게 없었다.

그냥 자신이 적은 편지와 선물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24살 모태 솔로인데 세 살 연하의 여인에게 반했지만 편지와 선물을 전해줄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갖다 주기만 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의뢰 해결에 아무런 임팩트가 없다.

“이건 생각 좀 해봐야겠네.”

무언가 극적인 장치를 가미해 고백이 성공하는 모습까지 영상에 담을 수 있다면 좋을 듯한데.

다음 의뢰는 인기 아이돌 그룹 에이펑크의 전원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역시 불가능하겠지?

내가 연예계 쪽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깔끔하게 포기해야겠다.

그 다음 의뢰는 엄마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죽어가는 엄마를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이미 죽어 버린 엄마를 살려달라는 거였다.

‘내가 무슨 수로…….’

안타깝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재주는 없었다.

이 의뢰 역시 수락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의뢰는 가장 쉽고 간단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 최고가를 달리는 다이러스 장난감 로봇이야 얼마든지 사줄 수 있었다.

“그럼…… 당장 해결 가능한 의뢰는 다섯 개 중 두 개?”

대신 고백해 주는 것과, 다이러스 장난감 로봇을 사주는 것밖에 없었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과 무료로 의뢰를 들어준다는 점이 조금 터무니없어 보이는 의뢰들까지 몰려들게 한 모양이다.

모든 의뢰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항목을 공지 사항에 명시해 놓길 잘했다.

“일단은 의뢰인들을 직접 만나 봐야겠지.”

* * *

오늘은 일요일.

상덕이와 나는 의뢰인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ITX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명의 의뢰인 모두 서울에 살았다.

한 명은 용산, 또 다른 한 명은 홍대 근처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ITX청춘열차의 종착역은 용산이다.

그래서 용산에 사는 의뢰인을 먼저 만나고 홍대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먼저 만날 사람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 의뢰인이다.

우리는 11시가 조금 넘어서 용산에 도착했다.

의뢰인과 약속한 시간은 12시였다.

시간이 될 때까지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있다가 의뢰인의 연락을 받고 약속 장소인 용산역 광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만나게 된 의뢰인은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우리도 굳이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서로의 익명성을 보장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공사판 일을 나갔을 때처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상덕이도 마찬가지였다.

중딩 의뢰인은 이틀 뒤가 자기 동생 생일인데 꼭 다이러스 장난감 로봇을 선물로 주고 싶어서 의뢰를 했다고 한다.

나와 상덕이는 의뢰인과 당장 대형 마트로 갔다.

그리고 장난감 코너에서 가장 좋은 다이러스 로봇을 구매했다.

그것을 의뢰인에게 주자, 의뢰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리를 바라봤다.

“정말…… 그냥 주시는 거예요?”

“그래. 집에 잘 숨겨 놨다가 동생 생일날 줘.”

“감사합니다!”

“어서 가봐.”

“네!”

의뢰인은 해맑게 웃으며 장난감을 품에 꼭 껴안고 뛰어갔다.

상덕이가 그런 의뢰인의 뒷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촬영했다.

그러고서는 정지 버튼을 누른 뒤 내게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

“뭐가?”

“나는 쟤가 저 장난감 동생 주지 않고 그냥 가질 것 같다.”

“또 지랄이네, 이 자식이?”

“아니, 그렇잖아. 장난감을 무슨 보물단지마냥 끌어안고서 좋아하는 거 봐! 그리고 쟤 눈빛 봤냐? 장난감을 향해 끓어오르는 욕망! 저거는 동생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눈빛이 아니야.”

“소설을 써라.”

“내 예감이 맞을 거야. 저놈 저거, 애초에 외동아들 아니야? 저 나이 먹고도 장난감이 너무 좋은데 엄마, 아빠는 사줄 리 없고, 자기가 사기는 쪽팔리고. 그래서 우리한테 부탁 한 거지!”

“그러면 좀 어떠냐? 좋은 영상 찍었으면 됐지. 알지? 동영상 업로드할 때 의뢰인들 얼굴엔 모자이크, 음성은 변조. 확실히 해. 신상 안 털리게.”

“알았다.”

“그럼 다음 의뢰인 만나러 가자.”

띠링!

―동생의 선물을 사주고 싶어 했던 중학생을 도와주었네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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