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73화
상덕이는 공사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숨어 몰래몰래 날 촬영하고 있었다.
대놓고 촬영을 해버리면 김 반장이 뭐하는 짓거리냐며 화를 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 반장의 횡포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에 비례해 인부들의 표정은 끝도 없이 구겨졌다.
작업 마감 시간이 다 됐다.
내가 지동택 씨 대신 해야 할 일은 했으니 김 반장을 작업해야 할 차례다.
김 반장은 삼 층에 올라가서 한 씨에게 고래고래 악을 지르고 있었다.
“여기 마감 이따위로 할 거야? 이래놓고 집에 가길 바래? 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 거야!”
한 씨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하나도!”
난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화 받는 척을 했다.
“여보세요? 어 그래, 상덕아. 뭐? 오늘이 김우진이 기일이야?”
난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공사판에 있던 모든 인부들과 김 반장이 일제히 날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김 반장은 당장에 내게 삿대질을 했다.
“너 뭐하는 거야! 당장 전화 안 끊어?!”
너는 떠들어라, 나는 모르는 척할 테니.
“뭐? 오라고? 아 싫어! 내가 그 새끼 기일에 왜 가냐! 친구? 친구는 얼어 죽을! 야 그 새끼가 나한테 사기 친 게 얼만데! 학교 다닐 땐 앞에 나서서 나 왕따시킨 게 그놈이야! 그 인간한테 당한 게 나뿐인 줄 알아? 우리 반 애들 다 그 개자식한테 당했어! 그 망할 놈이 주먹 좀 쓰고 집에 돈 좀 있다고 애들 협박해서 강제로 반장 완장 차고 어떻게 했어? 툭하면 욕하고, 인격 모독에, 지 맘에 안 드는 애들 있으면 야자 끝나도 집에 못 가게 붙잡고서 청소 시키고! 아주 김 반장 그 개새끼는! 인간도 아니야, 씨팔새끼!”
물론 다 뻥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던 김 반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너, 너 빨리 안 끊어!”
“인생 그따위로 사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아 죽지! 야, 진짜 난 그게 뭐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칠 줄 누가 알았겠냐! 거기에 맞아서 김우진이! 김 반장 그 썅놈의 새끼가 뒈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야, 땜빵! 마지막 경고야! 전화 끊어!”
김 반장이 눈을 부릅떴다.
어찌나 크게 떴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끊을 내가 아니다.
아니, 어차피 전화 같은 거 오지도 않았다.
“하여튼 나이 처먹고도 정신 못 차리더니 잘된 거야! 병신 같은 게 남들보다 있는 집에 산다고 갑질 처하다가 그 꼴 난 거잖아! 하여튼 다른 사람 상처 받는지 모르고, 못된 짓만 하는 것들은 그렇게 당한다고! 난 솔직히 김 반장 그 새끼처럼 사는 것들 전부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았으면 좋겠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아!”
소리치며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내 손끝은 김 반장이 서 있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이이이익!”
김 반장은 콧김을 푹푹 내뿜으며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뛰쳐 내려오려 했다.
바로 그때!
“라이트.”
난 작은 소리로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타난 번개가 김 반장이 서 있던 바닥을 때렸다.
번쩍! 꽈릉!
“으악!”
놀란 김 반장의 고함과 함께 번개를 두들겨 맞은 바닥이 무너졌다.
콰드득! 콰득!
“어? 어어어어!”
김 반장이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추락하려 했다.
“반장님!”
한 씨가 얼른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 반장은 그런 한 씨의 손을 잡지 못했다.
“으아아악!”
“으악!”
“어어어!”
김 반장과 인부들이 모두 고함을 질렀다.
그대로 뒀다가는 삼 층 높이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 판이었다.
재수 없으면 목뼈가 부러져 죽고, 허리가 부러져 불구가 되어 버린다.
맘 같아선 그러든가 말든가 놔두고 싶지만, 그건 내가 계획했던 일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곳은 2층.
난 얼른 몸을 날려 추락하는 김 반장의 뒷덜미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철 기둥을 잡아 몸을 지탱했다.
“꾸어억!”
갑자기 목이 확 졸리자 김 반장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난 낚아챈 김 반장을 건물 안쪽으로 끌어서 던졌다.
허공을 붕 난 김 반장의 뚱뚱한 몸이 공사판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억!”
먼지 구름이 확 하고 일었다.
김 반장이 눈을 멀뚱멀뚱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자기 몸을 마구 더듬었다.
“사, 살았나? 살았어?”
“반장님! 괜찮으세요?”
“큰일 날 뻔하셨네!”
김 반장의 주변으로 인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김 반장은 얼이 빠진 얼굴로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런 김 반장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흐아아…… 으어어.”
죽을 것처럼 신음을 흘린 김 반장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난 김 반장의 곁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괜찮으시죠?”
김 반장이 말없이 날 바라봤다.
그는 거의 반탈진 상태가 되어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한 씨가 내 손을 잡고서 소리쳤다.
“자네가 살렸네! 김 반장님 자네가 살렸어! 김 반장님! 이 친구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습니다!”
“……어?”
김 반장은 아직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 삼 층에서 떨어지는 걸 이 친구가 낚아채서 건물 안으로 끌어당기는 덕에 산 거라구요!”
“그, 그래?”
“그래요! 이 친구가 김 반장님 구한 거예요! 생명의 은인이에요, 은인!”
그제야 김 반장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고, 고맙네! 고마워!”
“아니요, 뭐…… 그렇게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구요. 근데 참 이상하죠?”
“응?”
“아니 왜 제 친구 중에도 김 반장이라는 놈이 있거든요. 근데 그놈이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녀석이었어요. 오늘이 그 녀석 기일인데…… 그놈이 1년 전 오늘 번개 맞아서 죽었거든요. 그런데 오늘도 마른하늘에 번개가 쳤네요. 그 바람에 김 반장님 3층에서 떨어진 거 아니에요?”
내 말을 곱씹던 김 반장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곧 공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진다는 게 그저 속담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런 일이 벌써 두 번이나 일어났네요. 에휴,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봐요. 그쵸?”
김 반장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그, 그렇지.”
“그런데 김 반장님.”
“응?”
“제가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요. 오늘 하루 종일 일하면서 보니까 일 도와주러 오신 분들한테 너무 막 하시더라구요. 물론 작업 빨리하는 거 중요하죠. 그런데 꼭 그렇게 악쓰고 화내고, 인격 모독성 발언을 안 해도 다 알아들으실 것 같아요. 안 그래요?”
“그, 그래. 그것도 그렇지.”
“아무튼 김 반장님 오늘 저한테 목숨 빚 지신 거예요.”
“고마워! 그건 정말 고마워!”
김 반장도 자기 목숨은 꽤나 소중했던 모양이다.
죽을 뻔한 인간을 구해줬더니 태도가 이렇게나 확 변했으니 말이다.
하긴, 이런 인간들도 아무 데서나 성질내고 소리치는 건 아니겠지.
자기 위치나 입장에 따라 하는 행동이 달라질 테니.
“정말 고마우시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부탁? 뭔데? 얼마든지 들어주지!”
“인부분들한테 앞으로는 좀 잘해주세요. 친절하게 해주시고, 작업 환경 자체를 쾌적하게 해주셔야 이분들도 신이 나서 열심히 일하죠. 그렇게 윽박지르면 억지로 일을 하게 되니까 효율이 더 없을 거예요.”
“…….”
김 반장은 말없이 인부들을 둘러보았다.
작업장에 있는 모든 인부들이 김 반장의 주변으로 모여 들어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무언가 느낀 게 있는 건지, 내 얘기를 듣고 생각을 고처먹은 건지 김 반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래야지. 앞으로는 정말 그렇게 해야지.”
“네, 그거면 됐어요. 목숨 빚 진 보답으로 충분해요.”
띠링!
―추락하는 김 반장을 구해줬네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이에요. 선행을 쌓아 4링크가 주어집니다.
4링크라.
김 반장을 제외한 4명의 인부가 김 반장을 구해주길 원했던 모양이다.
나머지 인부들은 그저 놀랐을 뿐이겠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김 반장의 현주소다.
그러게 사람이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써야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도 많이 받는 것이다.
김 반장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한 씨가 그런 김 반장을 부축해 주었다.
김 반장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씨가 그런 김 반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김 반장이 한 씨를 보더니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한데 모인 인부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 그…… 앞으로는 조금 더 부드러운 작업반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
김 반장은 진심을 담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김 반장의 말을 귀담아듣는 이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표정이 심드렁했다.
김 반장도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난 인부들과 김 반장의 심정 전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김 반장은 지금 죽다 살아났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게 나다.
그렇다 보니 나한테 진정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해서, 내 부탁을 진심으로 들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인부들도 그 정도 상황은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저것이 순간의 진심으로 끝나는 게 아닌지 걱정될 것이다.
나 역시 그리되는 게 걱정이긴 하다.
그래서 안전장치를 걸어 놓아야 했다.
나는 김 반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참 멋진 말씀입니다! 감동적이네요!”
그렇게 크게 말한 뒤, 김 반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까 제가 제 친구 김 반장이라는 녀석이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했었죠? 그런데 오늘 김 반장님도 번개에 맞아 죽을 뻔하셨죠? 왜 이런 일이 지동택 씨 대신 제가 땜빵으로 왔던 오늘 일어났을까요? 그러고 보니 내 친구 김 반장도 내가 보는 앞에서 번개에 맞아 죽었네요.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거기까지 말하고서 김 반장을 떼어냈다.
내 말을 들은 김 반장은 날 저승사자 보듯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김 반장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
“앞으로도 지동택 씨 대타 필요하다 그러면 종종 올게요.”
“딸꾹!”
김 반장은 놀라서 딸꾹질을 해댔다.
그 걸 본 이 씨가 게걸스레 웃었다.
“크하하하! 생명의 은인이 다시 온다고 하니 그렇게 좋은가 봐요?”
“그러게! 아하하!”
“아, 죽다 살아났으니 오죽하겠어?”
다른 인부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웃음을 흘렸다.
김 반장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난 그런 김 반장을 부추겼다.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사실 거죠? 많이 베풀면서. 그렇죠?”
“어? 아…… 어! 그, 그럼!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