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72화
차 안에는 우리 네 사람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봉고차 운전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바로 출발했다.
인부들 사이에는 간단히 오가는 인사 말고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삭막한 기운이 차 안 가득 퍼졌다.
이들도 지동택 씨처럼 장기 인부들일 테고 그러면 제법 얼굴을 익힌 사이일 텐데 왜 이렇게 서먹한가 싶다.
어찌 되었든 봉고차는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 * *
내가 도착한 공사장은 3층짜리 건물을 짓는 중이었다.
쌓아 올려진 뼈대를 보아하니 원룸 건물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건축 전문가가 아니니 그저 짐작일 뿐이었지만.
공사장에 도착해 안전모를 쓰고 바로 일에 착수했다.
다들 베테랑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찾아 했다.
그러나 초짜인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작업반장의 눈에 띄었다.
“어이!”
도사견을 닮은 작업반장은 땅딸한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그가 미간을 더욱 구기며 날 노려봤다.
“네?”
“언제까지 멍청하게 있을 거야! 너 머저리야?”
뭐지, 이 사람?
초면에 말을 너무 거칠게 하네?
“아니…… 오늘 처음 나오는 거라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뭐? 내가 초짜들은 되도록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너 어디에서 보냈어!”
“그게 아니라. 원래 오시던 분이 사정이 생겨서 제가 하루 대타 뛰기로 했습니다.”
“대타? 웃기고 자빠졌네! 대타 뛰는 놈 새로 가르치려면 그만큼 작업 늦어지는 거 몰라? 이게 언제까지 완공돼야 하는 건지 알아?! 완공일 못 맞추면 내가 받은 돈 뱉어내야 하게 생겼는데 네가 책임질 거야? 어?”
작업반장은 짧은 시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악을 써댔다.
그러고서는 제 풀에 약이 올라 얼굴이 시뻘게져서 씩씩거렸다.
원래 공사판 분위기가 다 이런 건가?
아니면 저 사람만 이 모양인 거야?
생각 같아서는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지동택 씨한테 해코지를 할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벌써 너한테 한마디 하느라고 몇 분을 낭비했는지 알아!?”
많아봤자 겨우 2, 3분이나 지났겠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나야말로 되묻고 싶다.
“에이 염병할!”
작업반장이 안전모를 벗어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난 그것을 들어 다시 작업반장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네?”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아니요…… 공사판에서 안전모 안 쓰면 위험하니까…… 다시 주워드린 건데요.”
“하…… 이 새끼 봐라?”
작업반장이 내 손에 들린 안전모를 탁 쳤다.
제 딴에는 내가 안전모를 놓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악력은 보통이 아닌지라 안전모가 멀쩡히 들려 있었다.
그 덕분에 되레 작업반장의 손만 봉변을 당하게 됐다.
“익!”
작업반장은 아픈 손을 주무르더니 버럭 소리쳤다.
“아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러고 보니 이 새끼 선글라스를 끼고 있네? 너 제정신이야!”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어서 꼈습니다.”
“그따위 차림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겠냐고!”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의뢰고 나발이고 그냥 확 다 뒤집어엎을까 하던 그 순간.
“아이고, 김 반장님 왜 이러세요.”
나랑 같이 봉고차를 타고 왔던 인부 중 한 명이 작업반장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한 씨! 비켜! 내가 오늘 저 새끼 제대로 손봐줘야겠어!”
“그럴수록 작업 시간만 더 늦어져요. 제가 책임지고 교육시킬 테니까, 화 푸세요.”
한 씨의 만류에 날 씹어 죽일 듯 노려보던 작업반장이 한 번 봐준다는 듯 물러섰다.
그러자 한 씨가 내게 물었다.
“이봐, 신참. 여기서는 저 사람이 갑이야. 무조건 저 사람 말에 네네 해야지, 괜히 토 달고 그랬다가는 영영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너무하다니? 일만 있으면 똥밭에서라도 구를 판이야. 요즘 경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 몰라서 그래? 이렇게 욕먹으면서라도 일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이런 일도 못 잡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신참, 동택 씨 대리로 나왔다 그랬지? 그럼 잘해. 괜히 동택 씨 다음 날 끼니 걱정해야 하는 입장 만들지 말고. 알겠지?”
“……네.”
우선은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내가 시키는 것만 꾸준히 해. 그러면 돼. 힘은 좀 써?”
“네.”
“잘됐네. 별다른 기술 없을 테니까 잡부 일만 열심히 해.”
그러면서 한 씨는 내게 벽돌을 지고 나르게 했다.
작업반장은 공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부들에게 쉴 새 없이 험한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작업반장 김 씨
봉고차를 탔을 때 감돌던 그 싸한 분위기의 원인을 알았다.
작업반장 김 씨 때문이었다.
여기서 일한 지 딱 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작업반장은 인부들을 자신의 종처럼 대했다.
인격 모독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육두문자는 숨 쉬는 것처럼 내뱉었다.
인부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감정이 있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모든 걸 수용하는 건 아니다.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공사판에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울 리 없을 것이다.
속에서는 열두 번도 더 김 반장을 혼쭐내 주고 싶은 나였지만, 지동택 씨 대신 나온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인부들 역시 화를 꾹꾹 참아가며 일하는 게 티가 났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흘러 점심 때가 되었다.
“식사 사십 분 내로 끝냅시다!”
김 반장이 말했다.
인부들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항의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김 반장은 같은 식당에 오지 않았다.
인부들은 식당에서 가장 빨리 되는 음식을 달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메뉴는 저절로 통일이 되었다.
같은 식당에 들어선 인부는 총 열두 명.
네 명씩 세 테이블에 앉았다.
나온 메뉴는 김치찌개 전골.
한 테이블에 전골 하나씩이 놓였다.
한 씨는 내 옆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난 선글라스는 여전히 착용한 채로 마스크만 벗었다.
다들 열심히 밥을 먹는데 나는 김 반장의 행태에 약이 올라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한 씨가 밥을 먹다 말고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열 받아도 일단 먹어. 그래야 힘을 쓰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네요.”
“어차피 그쪽은 동택 씨 대신 하루 뛰고 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 죽었소 하고 참아.”
“하지만…….”
“괜히 자네 하나 날뛰었다가 분위기 험악해지면 여기 있는 모두가 불편해.”
난 식사하고 있는 인부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니미럴! 이래서 공부 열심히 해야 서러운 꼴, 더러운 꼴 안 당한다는 거야!”
저 끝 테이블에서 그새 밥 한 공기를 싹 비운 박 씨가 투덜댔다.
“내 새끼는 지 애비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공부시키고 있다고, 내가. 그런데 공부도 돈 없으면 못 해요. 그래서 일을 쉴 수가 없어.”
그러자 옆에 있던 이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데, 뭐 나는 배알이 없어서 이러고 있나? 내가 멸시당해서 돈 벌어가지고 내 새끼 공부 잘 시켜야, 그놈이 커서 이런 멸시 안 당할 거 아니야?”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잘못된 것이고, 잘못된 건 고쳐야 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나는 다르다.
이 상황을 개선시킬 힘이 있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다른 인부들에게, 그리고 지동택 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충 하루만 때우고 가려 했었다.
한 씨 말처럼 괜히 나섰다가 일이 더 꼬이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김 반장을 어떻게든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모르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알고 나서 그냥 이대로 돌아가기란 힘들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깊은 생각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인부들의 식사가 끝났다.
난 밥을 반 이상 남기고서 일어났다.
한 씨가 그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쓰겠어? 허기지면 힘이 안 날 텐데.”
“괜찮아요.”
한 씨는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내게 주었다.
“이거라도 먹어. 그러다가 쓰러져, 이 친구야.”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어서!”
내가 만류하자 한 씨는 초코바를 강제로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서는 씩 웃으며 공사판으로 걸어갔다.
난 한 씨가 준 초코바를 꺼내 한 입 베어 먹었다.
달았다.
아마 한 씨도 일하는 중간 힘이 빠지면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것일 테지.
“하아, 이제 진짜로 그냥은 못가겠다.”
그때 스마트 폰 벨이 울렸다.
상덕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지웅아! 어디냐?
“이 자식이, 일찍일찍 연락해야 할 거 아냐!”
원래는 아침에 연락을 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로 했었다.
그런데 늦잠을 잤는지 이제야 전화가 온 것이다.
―아니, 어제 갑자기 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바람에 잠을 설쳤어.
“웃기고 있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와! 여기 주소 찍어서 보낼 테니까.”
―알았어! 택시 타고 십 분 내로 갈게!
“어딘지 알고 십 분 내로 온대?”
―야! 춘천 바닥 어딜 가든 다 십 분 내외지, 뭐! 끊어!
상덕이와의 통화가 끝나고 난 녀석에게 문자로 주소를 찍어 주었다.
십 분 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상덕이가 도착했다.
녀석은 목에 카메라를 걸고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일할 만하냐?”
“응, 일 자체는 할 만해.…… 그런데 너 왜 그렇게 웃냐?”
“좋으니까.”
“뭐가 좋아?”
“내가 직장에서 제대로 일하는 기분 드니까!”
“그게 그렇게 좋아?”
“다른 애들은 대학 걱정, 취업 걱정 하는데 난 벌써부터 회사원 됐으니 당연히 좋지!”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너도 걱정해야 하는 게 하나 있다.”
“뭐?”
“군대 걱정.”
“……이 자식아, 사람 기분을 그딴 식으로 다운시켜 놔야 속이 풀리겠냐?”
“꼴값 그만 떨고 촬영이나 잘해. 너 동영상 편집하는 것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오케이. 오늘 촬영한 영상은 총 2분 정도로 짧게 편집해서 사이트에 올려줘.”
“알았어!”
상덕이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저 멀리서 김 반장이 노발대발했다.
“야! 거기서 뭐하는 거야! 일 안 할 거야? 빨리 안 튀어 와?”
휴, 또 시작이네.
“뭐야 저 인간?”
상덕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공사판 반장이란다. 아무튼 촬영 잘해라. 간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