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71화 (71/153)

데일리 히어로 071화

사이트 카운트의 수치는 33.

여태껏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33명이 방문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뢰 건수는 0.

“처음엔 다 그런 거지, 뭐.”

스스로를 달래고서 사이트를 닫으려 했는데, 후기 게시판에 ‘N’이 하나 떠 있었다.

‘N’은 ‘New’의 약자다.

즉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는 뜻이다.

얼른 후기 게시판을 클릭했다.

그러자 익명의 누군가가 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물론 후기 게시판에 글을 올릴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유주 누나였다.

비밀 글의 제목은 ‘감사합니다’였다.

제목을 누르니 유주 누나가 작성한 글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솔직히 제가 이 사이트에 다시 글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말 그대로 요행이라도 바라는 심정,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올렸었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죠?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린 다음 날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해결되었어요.

마치 제 인생에 신기한 마법이라도 벌어진 것 같아요.

모든 게 꿈같고 동화 속 이야기 같아요.

어쩜 이리 한순간에 답 안 나오던 상황이 정리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이 사이트의 관리인 되시는 분께서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왜…… 그런 거 있죠?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이 사이트가 저한테는 꼭 별똥별 같아요.

사이트에 소원을 빌었더니 바로 이루어졌잖아요.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더는 사채 빚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됐어요.

고마워요.

사이트 번창할 수 있도록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홍보해 드릴게요.

별똥별 같은 그런 사이트가 있다고 말이에요.

하시는 일 번창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글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유주 누나는 내가 한 일일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하겠지.

“아무튼 잘 해결되었다니 됐네.”

하루의 시작이 참 뿌듯하구나!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12월 1일이 되었다.

편의점은 예정대로 그만두었다.

선행은 매일같이 눈에 보이는 대로 쌓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것이 없어 촬영을 하지 못했다.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의 누적 방문자 수는 삼백이 넘어갔다.

그중 한 명 정도는 의뢰를 남길 법도 한데 그저 잠잠하다.

12월의 첫째 날은 새로운 월요일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상덕이와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버릇처럼 스마트 폰으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번에도 똑같겠지.’

그런 생각으로 게시판을 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도와주세요’였다.

다소 밋밋한 제목을 터치했다.

화면이 바뀌며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 사는 스무 살 여자예요.

여기에 첫 번째 의뢰를 올린 친구가 추천해 줘서 접속했어요.]

유주 누나의 친구?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유주 누나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이트 홍보를 해준 모양이다.

“뭐야? 야동 보냐?”

상덕이가 상기된 얼굴로 내 스마트 폰을 들여다봤다.

이 자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스마트 폰에 야동을 넣어놓고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보겠냐?

상덕이는 야동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 난 또.”

이런 한심한 자식 같으니라고.

“야동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걸 보고 있잖아, 지금.”

“뭔데?”

“홈페이지에 두 번째 의뢰가 올라왔어.”

“또 첫 번째 의뢰처럼 허무맹랑한 거 아니야?”

나는 상덕이에게 첫 번째 의뢰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적어도 동업을 하는 친구에게 만큼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덕이는 얼마든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의뢰 글과, 후기 글을 읽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때문에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질 않았다.

물론 내가 의뢰를 해결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들어온 의뢰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하겠으나 내 능력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 사실 그거 요행히 일이 잘 풀린 거잖아. 물론 데일리 히어로가 공짜로 의뢰를 해결해 주는 사이트라고 하지만 어떻게 사채업자 건을 해결해 달라고 할 수가 있냐?”

상덕이도 유주 누나가 올린 후기 글을 읽어본 상태다.

그래서 내가 그 일을 해결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잘 풀렸으니 된 거잖아.”

“하여튼 뻔뻔한 사람들 많다니까.”

“그래도 자기 친구들한테 사이트 소개시켜 줘서 새로운 의뢰 들어왔으니 이득이지.”

“어? 지금 그 의뢰 첫 번째 의뢰인 친구한테서 올라온 거야?”

“응.”

“올~ 이득이네? 이번엔 뭐해 달래? 같이 읽자!”

상덕이가 얼굴을 쓱 들이밀었다.

윽, 이 자식이 아침에 머리도 안 감았나?

난 상덕이의 악취를 겨우 참아가며 의뢰 글을 읽었다.

[우리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세요. 제가 여기 글을 올렸던 친구랑 알게 된 것도, 아버지끼리 공사 현장에 나가 친분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죠.

어찌 되었든 그 친구는 제법 믿을 만한 친구인지라 이 사이트 얘기를 듣고 이렇게 의뢰 글을 적어요.

음…… 친구는 여기가 별똥별 같은 사이트라고 했어요.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나서 해결되는 그런 곳이라구요.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도 그 친구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올려요.

제가 의뢰하고 싶은 건 이번 주 토요일에 아버지 대신 일터에 나가달라는 거예요.

그날은 우리 아버지 생신이시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랑 저는 둘이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날도 분명 일을 나가겠다고 하실 게 분명해요.

아버지는 평소에도 휴일 없이 일을 하세요.

때문에 생일 하루만큼은 쉬면서 저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신 상 차려 드리려고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인터넷에서 레시피도 다 뽑아놨거든요.

우리 모녀의 행복한 하루를 위해 아버지 대신 일터에 나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참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아버지가 일터에 나가는 이유는 돈 때문이니까, 그 돈도 아버지한테 드리면 안 될까요?

죄송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염치없어서요.

그래도 그냥 별똥별 같은 사이트라니 이렇게 솔직한 속내를 적어봐요.

혹시 정말 사이트 관리인께서 일을 해결해 주시는 거라면 토요일 새벽 여섯 시까지 다산 인력 사무소로 가셔서 지동택 씨 대신 왔다고 하시고, 돈은 다음 날 지동택 씨한테 드리면 된다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뭐야? 자기네 아빠가 할 노가다 대신 뛰고 돈도 받지 말아 달라고? 완전 어거지네?”

“어떻게 보면 어거지일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만든 사이트의 취지 자체가 이런 걸 부탁하는 곳이잖아. 이건 다 투자야, 투자.”

“진짜 하려고?”

“이런 게 정말 사이트 홍보에 도움 되는 의뢰라니까.”

“그런가?”

“그래. 너는 토요일날 나 따라와서 동영상이나 제대로 찍어.”

“알았어.”

상덕이는 알았다고 했으나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

믿어라, 자식아.

난 의뢰 글에 바로 댓글을 달았다.

[의뢰 접수되었습니다. 토요일날 의뢰인의 아버지 대신 다산 인력 사무소로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은 사무실에 맡겨놓겠습니다. 다만 의뢰를 해결하는 작은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의뢰인께서는 이 일이 잘 해결될 경우 후기란에 전체 공개로 후기 글을 하나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대가입니다. 댓글을 보시면 답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후기 글이 올라와야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쌓을 테니까, 이건 중요하다.

유주 누나는 개인적 사정이 많이 드러나기에 비공개로 후기를 올렸다.

그러나 이번 의뢰의 후기는 얼마든지 오픈해도 괜찮을 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후기 글 역시 익명으로 올라가니 의뢰인에게 부담이 없다.

“근데 지웅아.”

“응?”

“이제 12월달인데 월급은 언제 줘?”

“너 지난달 말쯤에 첫 월급 받았지?”

“응.”

“그럼 이번 달에도 말경에 월급 나가지 않겠냐?”

“아, 그런가?”

“그래도 너니까 10일날 챙겨줄게. 앞으로 월급은 매달 10일날 보낸다고 생각해라.”

“역시! 내가 너 그릇 큰 놈이라는 거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하여튼 단순한 녀석 같으니라고.

상덕이와 잡담을 나누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런데 그새 댓글 하나가 새로 달려 있었다.

[어? 이거…… 정말이에요? 진짜예요? 가짜 아니죠? 몰래카메라 그런 거 아니죠?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얼마든지 후기 글 올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케이.

의뢰 접수됐다.

* * *

토요일.

난 약속했던 대로 6시까지 다산 인력 사무소로 갔다.

인력 사무소엔 일거리를 기다리는 인부들 몇몇이 이미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난 사무소장으로 보이는 오십 대 아저씨에게 다가가 여기 오게 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사무소장은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한 내 행색에 사뭇 미간을 찌푸렸다.

“지동택 씨 대신 나왔다구?”

“네.”

“그런데…… 왜 얼굴을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어?”

“제가 얼굴에 화상을 심하게 입어서요.”

“선글라스 끼고 일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성인 세 명분의 일은 충분히 할 겁니다.”

“흐음…….”

사무소장은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십 분 뒤에 봉고차 올 테니, 그거 타고 가.”

“아, 그리고.”

“그리고 뭐?”

“오늘 제 일당은 가지고 계시다가 지동택 씨한테 건네주십시오.”

“뭐? 지금 무료 봉사 하겠다는 거야?”

“신세 진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달라니 그러겠지만…… 지동택 씨 오늘 무슨 일 있는 건가?”

사무소장은 뒤늦게 지동택 씨의 사정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오늘이 지동택 씨 생신입니다.”

“생일이라고?”

“네. 지동택 씨 따님께서 아버지 생일을 꼭 챙겨 주고 싶다 하시더군요.”

“허허허, 그 양반 효녀 뒀네, 효녀 뒀어. 아무튼 알았어. 이따 봉고차 타면 지동택 씨 대신 나왔다고 얘기해. 지동택 씨는 그거 하루 일하고 끝나는 게 아니야. 지동택 씨 장기 인부로 공사 현장 가는 거거든. 알았어?”

“알겠습니다.”

난 사무소장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서 내려왔다.

밖에서 조금 기다리니 봉고차 한 대가 건물 앞에 섰다.

그 무렵 사무실에서 봤던 다른 인부들 셋이 내려와서는 봉고차에 올라탔다.

나도 그들을 따라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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