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70화
남은 건 대가리 하나.
놈은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서 식은땀을 흘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손에 들린 칼이 불안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놈을 노려봤다.
대가리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녀석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결국 대가리는 내게 덤비기를 포기했는지,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대체 뭘 원하는…….”
그 전에 너도 한 대 맞아야지.
“낭아권.”
쐐애애애액! 퍼억!
내가 시전어를 말하자 주먹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대가리의 허벅지를 때렸다.
뻐억!
“……!”
대가리는 놀라서 맞은 부위를 바라보았다.
허벅지 뼈가 완전히 아작 났는지, 오른쪽 다리는 축 늘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자기 것이 아닌 걸 억지로 달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으…… 으아아아아!”
대가리가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난 손날로 그런 대가리의 후두부를 쳐 기절시켰다.
2라운드는 깨어나면 시작하자고.
[시원시원하군.]
머릿속으로 카시아스의 텔레파시가 전해졌다.
뭐야? 이 녀석 또 몰래 날 따라왔던 모양이군.
투명화 마법을 시전한 채 건물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그런 녀석들한테는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지.]
[그래서 조져놓은 거야.]
[그런데 지구에서 일을 이렇게 해결해도 뒤탈이 없겠어?]
[없도록 해야지. 보고만 있어.]
난 기절한 대가리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잔뜩 웅크리며 눈을 떴다.
“크헉……!”
대가리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려다가 오른쪽 허벅지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으악!”
난 그런 대가리의 목을 움켜쥐었다.
“큽!”
“소리치면 이거 꺾어 버린다.”
대가리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난 대가리의 목을 놓고서 말했다.
“일단 확실하게 해둘 게 있다. 난 어디에서 보낸 사람도 아니야.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움직이는 놈도 아니고. 그러니까 지금 너희들이 막 막거나 회유시킬 방법은 없어. 협상이나 거래로는 지금 당장 부러질지도 모르는 네 모가지를 지킬 수 없다는 말이야. 알아들어?”
대가리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오로지 내 감정과 내 이성, 내 판단, 내 생각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그런데 너희들이 내가 아는 가족을 건드렸어.”
“누, 누구를……?”
“한정태.”
“아……!”
대가리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알기로 이미 원금 이상의 돈을 갚았는데, 여전히 남은 빚이 터무니없더군.”
“그, 그건…… 법에 걸리지 않는 정확한 금리로 그렇게 된 거고…… 한정태가 애초에 밀리지 않고 돈을 갚았다면 이런 일은…….”
이놈도 이석호랑 똑같은 소릴 지껄이는 군.
아직 정신 못 차렸단 얘기지.
퍽!
그대로 조잘거리는 입을 때렸다.
“읍!”
대가리의 입에서 앞니 두 대가 튀어나왔다.
“내, 내 이빨……!”
“나머지도 다 털어줘?”
대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약서 가져와.”
한 쪽 허벅지가 아작 나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대가리였다.
하지만 이대로 내 말을 거역했다가는 죽을 것 같았는지 안간힘을 써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책상을 짚으며 겨우 버텼다.
대가리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잠긴 캐비닛을 열고 계약서 뭉치를 꺼냈다.
그것을 한참 뒤적이다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유주 누나 아버지의 계약서였다.
난 그것을 당장 갈기갈기 찢었다.
대가리의 눈에 아깝다는 기색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제 목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돈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 수전노가 아닐 수 없었다.
계약서는 이제 그저 수조각난 종잇장에 지나지 않았다.
난 그 종이 더미를 한손에 쥐고서 대가리의 코앞에 가져갔다.
그리고 시전어를 말했다.
“라이트.”
순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내 손 위에 있던 종이들을 까만 재로 만들었다.
“허억!”
이를 본 대가리가 놀라 뒤로 자빠졌다.
쿠당탕!
“으어억!”
제풀에 자빠졌다가 으스러진 허벅지를 부여잡고 꺽꺽대는 대가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똑바로 앉아.”
대가리가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바로 앉았다.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거야. 그렇지?”
“네…… 네.”
대가리는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말을 높였다.
완전히 제압당했다는 뜻이다.
“한 번 더 보여줄까?”
난 대가리의 몸을 가리키며 시전어를 말했다.
“라이트.”
순간 내 손 끝에서 생성된 전기가 앞으로 날아가 대가리를 감전시켰다.
파지직! 파직!
“크허억! 어어억……!”
대가리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몸을 떨어댔다.
하지만 죽을 염려는 없다.
딱 고통스러울 정도로만 뇌전의 세기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크흐…… 크흐으으…….”
겨우 충격에서 벗어난 대가리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부었다.
“이름이 뭐냐.”
내가 묻자 대가리가 황급히 대답했다.
“조, 조철희입니다.”
“조철희. 그 이름이 다시 내 귀에 들어오는 날 넌 죽는다. 알아들어?”
“네, 네!”
“방금 내가 뭘 하는지 봤지? 너 따위 놈 쥐도 새도 모르게 태워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 거 어디 가서 떠들어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아무도 네 말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사람이 갑자기 번개를 만들어 쏴댄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 것인가?
그 말 한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볼 것이다.
“또 하나.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그렇게 해. 그런데 확실한 건 난 잡혀 들어가도 얼마든지 자력으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거야.”
말을 마치며 주먹을 말아 쥐고 대리석 창틀을 겨냥했다.
“낭아권.”
시전어와 동시에 주먹이 쏘아져 나가 창틀을 가격했다.
콰아앙!
내 주먹에 얻어맞은 창틀은 그 자리에서 수십 조각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중 한 조각이 대가리의 뺨을 스치며 긴 상처를 냈다.
대가리가 흘러내린 피를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턱을 달달 떨었다.
“경찰에서 날 찾아오는 순간, 네 머리도 저 꼴 나는 거야. 알았어?”
“……네.”
대가리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제부터 절대 뒤탈이 없을 것이다.
“깔끔하게 계산 끝난 거다. 한정태 일가 건드리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얼굴 볼 일 없을 거야. 너도 그게 좋지?”
“네…….”
“그리고 한정태 씨한테 연락 넣어. 이제 남은 빚 갚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사람이 다 청산해 줬다고. 알았냐?”
“그, 그렇게 할게요.”
“간다. 적당히 설치면서 살아라.”
난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두 대의 본체를 모두 집어던져 망가뜨린 다음 밖으로 나왔다.
그것으로 첫 번째 의뢰는 완료되었다.
두 번째 의뢰
친구 대부를 작살 낸 다음 날.
학교를 파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번 일은 선행이 확실했지만, 아직 링크가 적립되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 조철희 이 자식이 유주 누나 아버지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선행의 법칙은 이렇다.
누군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보고 누군가 주워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그런 생각만 하고 그 장소를 떠나 버렸다.
한 시간 뒤, 내가 그곳에 도착해서 쓰레기를 치우면 선행 포인트가 올라간다.
그가 바라던 일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즉, 일의 해결을 원한 당사자가 그 자리에 없어도, 내가 해결했다는 사실을 몰라도, 어찌 되었든 간에 선행을 한 것이 확실하면 링크가 적립된다.
따라서 조철희가 유주 누나의 아버지한테 이제 더 이상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알리는 순간 1링크가 내게 적립될 테고, 그 사실을 다시 유주 누나의 어머니와 유주 누나가 알게 되면 2링크가 추가 적립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했다.
뭐, 조철희 그놈도 심하게 당했으니 엉망이 된 걸 수습할 여유는 줘야 하겠지.
현재 내가 적립한 링크는 74링크.
어제 오늘 선행을 해서 얻은 것과 일전에 백설우를 구해주면서 찍힌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들어온 링크를 합친 것이다.
그리고 오후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곤란해하는 손님 다섯을 더 도와준 뒤, 총 79링크를 적립했다.
이제 슬슬 유주 누나와 교대할 시간이었다.
딸랑.
10시가 되기 5분 전에 유주 누나가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누나는 애써 괜찮은 척 미소 지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지웅아, 안녕.”
“왔어요, 누나.”
“응. 포스에 정산 다 해놨니?”
“네, 루즈 나는 돈 없어요.”
“고생했어. 그만 가봐.”
“진호 형 올 때까지 있을게요.”
그런데 그때였다.
딸랑.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진호 형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늘 그렇듯이 진호 형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웬일이래?”
평소에는 늘 십 분 정도 지각하는 진호 형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무조건 십 분 지각이다.
이제는 지각하는 게 진호 형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유주 누나랑 비슷하게 오 분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로 들어간 진호 형이 유니폼을 걸치고 나왔다. 그런데 자기 것만 걸치고 나온 게 아니었다. 유주 누나의 것도 가지고 와서는 무심하게 건네주었다.
“입어라.”
“고마워요, 오빠.”
유주 누나가 유니폼을 받아 입었다.
진호 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핸드폰을 켜고 게임에 열중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유주 누나도 갑작스런 진호 형의 태도가 적응이 안 되는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진호 형이 왔으니 더 이상 내가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어, 어 그래, 지웅아. 잘 가~”
유주 누나의 인사를 받으며 난 편의점에서 나왔다.
* * *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다.
눈을 감고 있자니 곧 수마가 몰려들었다.
의식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부유하고 있었다.
그때 몽롱한 정신을 부드럽게 두들기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띠링!
―악랄한 사채업자들한테 시달리고 있던 유주 씨의 일가를 도와주셨네요. 세 분 모두 조철희의 연락을 받고 기뻐하는 중이랍니다. 수고 많았어요~ 선행을 쌓아 3링크가 주어집니다.
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혹시라도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을까 싶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소소한 의뢰가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주 누나의 의뢰처럼 스케일이 큰 건은 촬영을 해서 사이트에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대부 업체에 쳐들어가서 깽판 부리는 걸 만천하에 알릴 수는 없잖은가?
그 목적은 선행이지만 행위 자체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니 작은 선행을 요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동영상을 찍어 사이트를 홍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뢰 게시판엔 오직 유주 누나의 글만 덩그러니 올라와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