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68화 (68/153)

데일리 히어로 068화

“하아, 그래서?”

“그 원인이 뭐냐 이거지?”

“뭘 꺼 같은데?”

“여자 친구 생겼지?”

크아악!

결국에는 내가 여친이 생겼나, 안 생겼나, 그게 궁금했던 거였냐!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무슨 결론이 그런 식이야?”

“남자란 자고로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을 때 변하는 법이지. 바보 평강과 온달 공주 이야기 몰라?”

“……그거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거든?”

“에이 씨, 강아지 엉덩이나 개새끼 궁둥짝이나.”

내가 지금 이 누나랑 무슨 얘기를 하고 앉아 있냐.

“나 좀 쉬자, 누나.”

“유지웅!”

“왜!”

“연애하다가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

“뭐?”

“네 심정 알아. 이 누나가 한 인기 하잖니?”

그건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나는 빼어난 미모와 잘빠진 몸매, 그리고 가히 신급 스킬을 자랑하는 자기 관리로 주변 남정네들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대고 있다.

“누나랑 연애 한번 해보겠다고 엄청 찌질이 같던 남자애들이 헬스 열심히 다니더니 몸짱 돼서 들이댔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

“그럼 내가 몇 달 전까진 찌질이였다는 얘기야?”

“그럼 아니야?”

“…….”

반박할 말이 없다.

찌질이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태진이 패거리의 빵 셔틀이었다.

갑자기 그 시절이 떠오르니 괜히 울컥하네.

“아무튼 찌질이였던 널 이렇게 갱생시켜 놓은 여자인 걸 보면 나만큼 여우일 게 분명해. 그러니까 마음 너무 주지 말라고 충고해도 너는 마음을 무지막지하게 줘 버리겠지? 하지만 그 여자 주변엔 너 정도 되는 남자애들이 한 트럭으로 있을 거야. 한마디로 네 마음을 받아주는 척 어장관리만 하다 끝날 가능성 농후!”

“……방금 연애하다가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하라며?”

“그랬지.”

“그런데 나 연애하기도 전에 힘들어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누나 말은 운이 좋아서 그 여자가 네 마음을 받아들여 주었을 경우,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하라는 거야. 그때도 지금처럼 아주 현실적인 얘기들로 너 정신 차리게 해줄 테니까.”

결국 연애를 하든 못 하든 누나가 멋대로 만들어 버린 그 가상의 여인은 내 마음을 진실로 받아주지 않을 거란 얘기네?

“그래, 알았어.”

난 더 이상 상대하기가 피곤해져서 대충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기 전에 컴퓨터를 켜서 데일리 히어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아직까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겠지?”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이제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홈페이지를 광고할 만한 사례도 없었다.

그런데.

“어?”

의뢰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의뢰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전부 익명에 비밀 글로 게시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올린 본인과 관리자인 나뿐이다.

게시글의 제목은 ‘도와주세요’였다.

제목을 클릭했다.

화면이 바뀌며 내용이 보였다.

난 게시글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아는 동생에게 이 사이트를 소개받아 글을 올립니다.

솔직히 제가 지금 이곳에 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동생의 소개가 아니었으면 얼굴도 모르는 분께서 관리하시는…… 그리고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의뢰를 도와주는지도 모를 사이트에 제 고민을 올리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속는 셈 치고 올려봅니다.

전 올해 20살인 여자예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구요.]

어? 이거…… 유주 누나잖아?

내 얘기를 듣고 글을 올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고민인 걸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어요.

제가…… 얼마 전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어요.]

스토킹이라고?

아니 대체 어떤 놈이 그딴 짓거리를 하는 거야?

관심이 있으면 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 정정당당하게 말을 하든가!

비겁하게 이게 무슨 짓거리야?

스토킹 당하는 상대방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지 모르는 건가?

하여튼 여자 함부로 대하는 것들은 다 죽어야 돼!

……근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페미니스트가 된 거야?

아무래도 리조네의 영향인 것 같은데, 이거.

[청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벌써 보름이 넘도록 절 따라다녀요.

하지만 전 그 남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할 수가 없어요.

그 남자는 아마 우리 아빠가 사채 빚을 진 업장 사람 중 한 명일 거예요.]

사채?

유주 누나의 아버지가 사채 돈을 끌어다 썼단 말이야?

그런데 그 업장 사람이 왜 유주 누나를 스토킹 하는 거지?

[아빠가 사채 돈을 갚지 못한지 벌써 세 달째예요. 그래서 아버지를 겁주려고 저한테 사람을 붙인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디에다 고민을 말할 수도, 신고를 할 수도 없었어요.

신고를 해도 그들은 알아서 잘 빠져나갈 게 분명하니까요.

게다가 괜히 신고했다고 보복을 하려 들면 어쩌나 싶기도 했구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전혀 몰랐다.

유주 누나는 밝고 명랑한 데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도통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사채 빚이라는 게 좀 억울한 면이 많아요.

처음 아빠가 빌린 돈은 제가 알기로 천만 원 정도였어요.

당시 엄마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빌려야 했거든요. 대출 같은 건 받을 수 없었어요. 아빠도, 엄마도 신용불량자였으니까요.

돈을 마련한 덕분에 병원비는 해결했고 엄마의 병도 나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어요.

사채 빚이 대체 어떻게 뻥튀기가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갚아야 하는 액수는 불어났고 나중에는 원금보다 이자가 더 커졌어요. 빌린 건 천만 원이고, 지금까지 갚은 돈이 천이백인데, 아직 갚아야 할 돈이 이천이래요.

아빠가 중간에 몇 달 연체를 했었는데, 그때 갑자기 빚이 늘어났어요.

아빠는 찾아가서 항의했지만, 결국 변하는 건 없었어요.

그 사람들은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붙이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지금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계셔요.

엄마도 식당에서 홀 서빙 일을 하시구요.

그렇게 두 분이서 한 달 죽어라 벌어봤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아요.

제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지만 그것 역시 큰 도움이 되는 돈은 아니에요.

다달이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죠.]

유주 누나는 나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를 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밝은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대했었다.

전부터 멘탈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제가 부탁하고 싶은 건 사채업자들과 우리 가족의 악연을 끊어달라는 거예요. ……물론 억지인 거 알아요. 하지만 로또 맞는다는 심정으로 글 올려봐요.]

역시나 유주 누나는 이 사이트에 글을 올려봤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자포자기하는 심정.

그런 심정으로 그냥 글을 올려본 것이겠지.

하지만 유주 누나가 모르는 게 있다.

데일리 히어로는 내가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

사이트에 올라오는 의뢰는 내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한 들어줄 것이라는 점.

그 도덕적 기준은 명백하게 내 잣대로 정해진다는 점.

그리고 이 의뢰는 사이트에 올라온 첫 번째 의뢰라는 점.

그래서 난 유주 누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유주 누나는 방금 로또 잡은 거다.

* * *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짧게 샤워를 끝내고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은 뒤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7시 45분.

유주 누나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려면 15분이 남았다.

난 편의점이 잘 보이는 맞은편 도로 가로수 나무 뒤에 몸을 감췄다.

정확히 8시가 되기 5분 전에 점장님의 차가 편의점 옆,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다.

그리고 10분 정도가 지나 유주 누나가 편의점에서 나왔다.

유주 누나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선뜻 발을 떼지 못하고 주변을 먼저 살피는 유주 누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 유주 누나에게서 시선을 떼, 주변 여러 곳을 살폈다.

딱히 유주 누나를 미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기사 식당에서 청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나왔다.

‘청모자!’

그놈인가?

청모자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편의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빠른 걸음으로 유주 누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빙고.’

저 녀석이 유주 누나가 말한 스토커, 사채업장 사람이었다.

난 유주 누나를 스토킹하는 청모자를 미행했다.

유주 누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유주 누나의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다.

20분 정도 걸어서 옆 동네로 들어선 유주 누나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청모자가 그 뒤를, 내가 청모자의 뒤를 밟으며 똑같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들 양옆으로 쫙 늘어선 집들은 하나같이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유주 누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골목에 들어서자 유주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청모자의 뒷모습만 보였다.

길이 워낙 좁고 구불구불하며 어두웠던 탓이다.

청모자의 걸음이 전보다 빨라졌다.

유주 누나가 빨리 걷기 시작한 모양이다.

난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손에는 목장갑을 꼈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까지 걸쳤다.

빠르게 걷던 청모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고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난 청력의 감각을 극대화시켜 녀석의 통화를 엿들었다.

“네, 사장님. 집에 잘 들어갔습니다. 네? 내일요? 알겠습니다. 오늘까지 수금 안 되면 내일 보쌈해 가겠습니다.”

말인 즉, 돈 안 내놓으면 유주 누나를 내일 납치해 가겠다 이거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너희한테는 내일이 없을 것 같은데.

톡톡.

인기척을 죽이고 청모자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톡톡 쳤다.

청모자가 기겁하며 뒤로 돌아서는 순간.

퍽!

“……!”

그대로 안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던 청모자가 주먹을 말아 쥐고 휘두르려는 순간.

퍼퍽!

다시 안면에 한 방, 명치에 한 방을 때렸다.

“……헉.”

청모자는 바람 빠지는 신음을 흘리며 졸도했다.

친구 대부

기절한 청모자를 들쳐 업고 구름다리 밑으로 향했다.

사람들 시선에 띄지 않기에 여기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청모자를 짐짝처럼 내던졌다.

털퍼덕!

“억!”

땅과 충돌하는 고통에 청모자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녀석은 놀라서 주변을 살피다가 날 발견하더니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퍽!

“악!”

내 발길질에 도로 땅을 구르고 말았다.

방금 얻어맞은 턱을 움켜쥐고 파들파들 떠는 청모자에게 다가갔다.

‘이런 놈들한테는 매가 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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