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64화
다음 날 학교를 마치자마자 상덕이와 함께 대형 전자 마트로 향했다.
카메라 고르는 일은 상덕이에게 완전히 일임했다.
사실 녀석도 뭐 베테랑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보다는 카메라를 보는 눈이 있었다.
상덕이가 선택한 건 ‘캐넌 AOA 8G’였다.
가격은 140만 원 선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아주 리얼한 영상을 담을 게 아니었으니 그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다.
카드로 계산을 마치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CD기에서 80만 원을 뽑아 상덕이에게도 주었다.
‘역시 돈이 좋구나.’
전에는 만 원 한 장에 벌벌 떨던 나였다.
그런데 근래 돈이 쉽게 들어오다 보니 씀씀이가 커졌다.
하지만 허투루 쓰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듯하다.
모두 사업을 위한 투자다, 투자.
돈 한 푼 안 들이고 어떻게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겠는가.
“이야~ 진짜 간지 난다, 유지웅. 어떻게 그 찌질이 빵 셔틀이 몇 달 새 이렇게 변할 수가 있냐? 싸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첫 월급을 줬더니 상덕이의 아부가 하늘을 찌른다.
하여튼 알기 쉬운 녀석이다.
둘이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길을 걷는데, 뒤편에서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어어어어어어!”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상덕이와 난 놀라서 동시에 뒤를 바라봤다.
고함을 지르고 있는 건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혼이 나간 얼굴로 계속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원래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살짝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려는 이들도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선행을 해야 한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리치며 질주하는 소년을 보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엔 누군가 소년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소년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어떠한 연유로 저러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안정한 이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다만 그게 내가 되는 순간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주저하는 것이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
정신없이 소리치며 질주하던 소년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다.
“꺄아악!”
“저, 저런!”
사람들이 놀라 경악했다.
빠아아아아앙!
빠르게 달려가던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소년을 피해 갔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 달리던 승용차는 미처 소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이미 나는 소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에서 도로로 몸을 날려 소년을 품에 안고 바닥을 굴렀다.
쉬이이이이잉―!
승용차가 나와 소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소년을 안고 구른 곳은 반대편 차선이었으며, 그쪽에서도 초록 신호를 받은 차들이 쌩쌩 달려오는 중이었다.
소년은 내 품에서 잔뜩 웅크린 채,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소년을 들고 일어나 재빨리 뒷걸음질 쳐, 중앙선에 섰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소년은 막고 있던 귀를 마구 때리며 신음인지 말인지 모를 것들을 뱉어냈다.
“하으으으…… 으아으아어어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인가?’
인도를 걸어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나와 소년을 바라봤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달리던 차들이 정지했다.
나는 소년을 데리고서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순간, 소년의 발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반대편 인도에 있던 사람들도 건너와서는 나와 소년을 구경했다.
개중에는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진정해.”
나는 소년의 등을 쓰다듬었다.
소년은 그런 내 손을 거부하더니 온몸을 비틀어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이 녀석, 힘이 보통이 아니다.
몸에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비쩍 마른 체형인데 소 한 마리와 씨름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정도면 성인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도 소년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그마나 영혼의 힘을 흡수한 나니까 이 녀석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러다 또 도로에 뛰쳐들어 갈라!”
어떤 사람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어떤 사람은 쉴 새 없이 입만 놀렸다.
어떤 사람은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방관자처럼 팔짱을 끼고 구경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도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나같이 무조건 나서서 소년을 돕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도 이것이 내게 선행으로 인정되고, 링크를 적립해 줄 테니 이득을 따져 소년을 도운 것이다.
그냥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들이나 나나 똑같았다.
“으어어어어어어어!”
소년은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놓아줄 순 없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다시 도로로 질주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한데 줄곧 소년을 구속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게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소년의 몸엔 멍이 하나 둘 늘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문득 로레인의 노래가 떠올랐다.
리조네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었던 그 아름다운 노래가.
로레인의 목소리와 그것이 담기는 노래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
난 로레인의 액티브 스킬 천상의 목소리를 사용했다.
현재 내 영력이 11이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은 55초다.
천천히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밤하늘의 별은 영롱하게 빛나는데, 아직 나 홀로 놓지 못하는 그 사람의 흔적은 거기 어디쯤에…….”
로레인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한글로 바꿨다. 음은 그대로였다.
그러자 소년의 몸부림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 어…….”
소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소년의 눈을 마주 보며 계속 노래했다.
“꿈인 듯 손을 뻗으면 잡히는 것은 아픈 현실만. 눈앞에 보이는데 끌어안으면 언제나 꿈이었지.”
소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소년이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서 얌전히 있었다.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다 영력이 모두 소모되는 순간, 난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도 소년은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잠이 들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내 주위를 수많은 구경꾼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상덕이도 그 무리에 섞여 있었다.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중 여고생 한 명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 했다.
“쉿!”
난 검지를 입 앞에 세우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여고생이 내 품에서 잠든 소년을 보더니 얼른 손을 내렸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인파를 헤치고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전부 다섯이었다.
하나같이 덩치가 컸고,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이 꼭 경호원들 같았다.
그런데 내 짐작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중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와 소년을 보고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하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도련님.”
도련님?
지금 이 소년보고 도련님이라고 한 거야?
그는 고개를 들어 내게 말했다.
“도련님을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 네…….”
“그런데 힘이 장사이신 모양이군요.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도련님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혹시 어쩔 수 없이 위해를 가한 건……?”
사내는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동시에 소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지 문책하고 있었다.
“아니요,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노래라구요?”
“네.”
사내는 뭔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제 명함입니다. 받으십시오.”
난 군말 없이 명함을 건네받았다.
거기엔 로열 백화점 춘천 명동점 영업팀장 전혁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만, 근데 로열 백화점이라고?’
로열 백화점은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 로열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일하는 영업팀장이 도련님이라고 했으면 이 소년은…… 적어도 로열 그룹 핏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데…… 아무리 봐도 정신적으로 아픔이 있는 듯했다.
전혁철이 소년을 안아들었다.
“아무튼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겪어봤으니 아시겠지만 도련님께선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릅니다. 자폐증을 앓고 계시죠. 그래서 일반인의 십수 배에 달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다 보니 혹여라도 이번처럼 자기 멋대로 행동하려 들면 쉽게 제재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외출을 하면 이런 일이 가끔씩 일어나기도 하지요. 이해해 주십시오.”
“아…… 네.”
얼떨결에 대답을 하긴 했지만, 어째 난 지금 전혁철의 설명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못 박기 위해 늘어놓은 변명 정도로만 들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내게 저런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잖은가.
아무리 로열 그룹 도련님을 구해줬다 하더라도 전혁철과 나는 남이다. 오늘 처음 봤다. 그럼 적당한 사례를 해주고 떠나면 되는 일이다.
그의 말은 마치 후환을 남겨 놓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전혁철이 소년을 들고 일어서는데, 소년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그러자 전혁철 주변으로 정장 사내 넷이 달라붙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듯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 백설우…….”
백설우? 그게 소년의 이름인가 보다.
설우는 힘없이 손을 들어 날 가리켰다. 내 이름을 물어보는 건가?
“나는 유지웅이야.”
설우가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그때 전혁철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설우와 다섯 명의 정장 사내는 내 앞에서 멀어져 갔다.
동시에 사방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진짜 멋있다~!”
“와아! 반하겠어요, 오빠!”
“이거 유튜브에 업로드해도 되죠?”
구경꾼들은 모두 내게 열광했다.
띠링!
―위기에 처한 자폐아 소년을 구해주셨네요~? 소년을 구해주길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보답을 드려야겠죠? 선행을 쌓아 27링크가 주어집니다.
난 자폐아 소년 백설우를 구했고.
“지웅아! 내가 동영상 제대로 찍었다! 너무 급해가지고 디카로 찍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나왔어!”
상덕이를 비롯한 몇몇 구경꾼들이 내 바람대로 선행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리고 링크도 받았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됐는데, 마음 한편에 묵직한 것이 자리하고 앉아 내려가질 않았다.
이상하게 백설우가 신경 쓰였다.
마지막에 날 바라보던 녀석의 눈빛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오지랖 떨 문제는 아니지.’
애써 생각을 접고서 상덕이와 함께 인파를 뚫고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