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63화
항상 날 측은하게 바라봤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 일에 집중이 잘 안 됐을 테고, 실수가 잦아진 거지.
마르펭의 요리 실력이 줄었던 것, 그리고 그가 갑자기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마르펭은 사실 음유시인 로레인이었기 때문이었어.
요리 실력이 줄어 버린 게 아니라, 원래 요리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던 거야.
음악에 취미를 붙인 게 아니라, 그의 직업이 음악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으…… 으으으……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머리에 지독한 두통이 일었어.
두 손으로 머리를 콱 쥐고 바닥에 엎어졌나 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별이 번쩍 했어.
이마가 심하게 아팠어.
“리조네? 리조네!”
마르펭…… 아니, 로레인의 음성이 들렸어.
그가 날 들어 안았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어.
그러자 마르펭이 사라지고 로레인이 보였어.
동시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
“마르펭…… 마르펭! 으아아아아아아! 흐윽! 흐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아앙!”
난 울었어.
울고, 울고, 또 울었어.
둑이라도 터진 것마냥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로레인은…… 그런 날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어.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던 내 귀에 노랫가락이 들려왔어.
“밤하늘의 별은 영롱하게 빛나는데, 아직 나 홀로 놓지 못하는 그 사람의 흔적은 거기 어디쯤에…….”
로레인의 노래였어.
“꿈인 듯 손을 뻗으면 잡히는 것은 아픈 현실만. 눈앞에 보이는데 끌어안으면 언제나 꿈이었지.”
로레인은 계속 노래했어.
난 그의 품에 안겨 노래를 들으며 점점 안정되었어.
통곡은 훌쩍임으로 변했고, 나중엔 평온해졌지.
로레인은 내가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 그치지 않고 노래를 불러주었어.
* * *
폭풍 같은 밤이 지나가고, 로레인과 나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발코니로 나가 차 한잔을 나누어 마셨어.
“괜찮아……?”
로레인이 물었어.
“응…… 괜찮아.”
“정말……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그보다…… 고생 많았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계속 날 지켜줘서.”
“아니야.”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
괜찮다고 말한 건 당연히 거짓말이야. 아직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언제까지고 거짓된 현실 속에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나 하나 때문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연극을 하고 있었던 거였으니……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그럼 이제…… 로레인과의 관계도 확실히 정리를 해야겠지.
“연기하느라 힘들었지?”
“뭐…… 조금은?”
로레인이 볼을 긁적이면서 말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어.
“뭐가 가장 힘들었어?”
“동생 노릇 하는 거 자체가 힘들었지.”
난 피식 웃어 버렸어.
“그 애인은?”
“응?”
“내 동생 마르펭은 끝내주는 여자 친구 제이미가 있었잖아? 실제로 제이미랑 데이트도 자주 했었고. 그 덕분에 내가 더 완벽하게 당신을 마르펭이라고 믿었었나 봐.”
죽어 버린 내 동생 마르펭에겐 정말로 여자 친구가 있었어.
이름은 제이미.
그런데 마르펭이 죽어 버리자 로레인은 제이미와 연애하는 척했던 거지.
혹시라도 내가 의심할까 봐 말이야.
내 물음에 로레인이 잠시 주저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지.
“그건…… 연극이 아니야.”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아니, 처음엔 연극이었어. 네 말대로 난 네게 완벽한 마르펭이 되어야 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극은 진짜가 되어 버렸어.”
“진짜가…… 되었다고?”
“난 널 보며 힘들어했고, 제이미는 죽어 버린 마르펭 때문에 힘들어했지. 그렇게 힘든 사람끼리…… 서로를 위로해 주게 된 거야.”
“…….”
거짓이 지워진 현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충격만 안겨주고 있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미안해, 리조네. 나…… 이미 제이미와 미래를 약속했어.”
그래.
만약 내가 끝까지 널 마르펭이라 믿었다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쉬워도 축복해 줘야 했겠지.
하지만 네가 로레인인 이상……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아.
“날 이해해 줘, 리조네.”
어떻게 이해 못 한다고 할 수 있겠어, 이 상황에서?
넌 나 때문에 그 많은 시간을 희생했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그러냐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미안…… 정말로 미안해.”
로레인은 내 손을 꽉 잡았어.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렸어.
‘이게, 맞는 거겠지.’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가슴속의 불안함.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
마르펭이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실 이미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어.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마르펭이 제이미와 결혼을 해버리는 게 두려웠을 거야.
난 아마도 로레인이 연기한 마르펭을 백 퍼센트 믿지 못했는지도 몰라.
‘결국 진실은 내게 상처만을 남겼어. 뭐가 맞는 것이었을까? 진실을 모른 채 내가 만들어 놓은 동화 속에서 거짓 행복을 품에 안고 사는 것과…… 뼈저리게 아픈 진실을 알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 줄 중에 어떤 게 맞는 거지?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순간.
내 눈에 로레인과 손을 잡고 눈물 흘리는 리조네의 모습이 보였어.
난 더 이상 리조네가 아니었다.
리조네의 몸에서 혼이 빠져나와 유지웅의 인격체로 독립 된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한 건가?’
의문을 갖는 순간.
띠링!
―‘리조네의 망각’ 퀘스트를 완료하셨네요~ 리조네가 알고 싶어 했던 진실을 찾아주었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드려야겠죠? 선행을 쌓아 482링크가 주어집니다.
482링크? 대박이다!
띠링!
퀘스트 종료.
일체화되었던 영혼의 기억에서 분리되어 현실로 복귀합니다.
하아…… 끝났다.
사람 진 빠지게 하는 영혼 퀘스트.
히든 소울
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도, 돌아왔나?”
주변을 둘러보니 내 방이었다.
“하아아.”
아직도 정신이 없다.
영혼이 주는 퀘스트는 한 번 하고 나면 한동안 넋이 나가 버린다.
“이번에는 다른 퀘스트랑 진행 방식이 조금 달라서 힘들었어.”
소라스와 바레지나트의 경우 몸을 써야 하는 성질이 강했다.
그런데 리조네의 퀘스트는 마음을 써야 했다.
아픔으로 가득 찬 리조네의 심경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내 마음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엄청나게 우울하다.
“근데 내가 컴퓨터로 뭘 할라고 그랬었지?”
아, 그래.
홈페이지에 첫 글을 올리려 했었지.
“어떤 내용을 올려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띠링!
잉? 왜 또 알림음이 울려, 불안하게.
―리조네의 망각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어요~ 특전으로 히든 소울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어요.
히든 소울? 그게 뭐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자니 카시아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역시, 카시아스는 이게 뭔지 알고 있었나 보다.
[카시아스! 히든 소울이 뭐야!?]
[……히든 소울? 그게 뭔데?]
[……몰라?]
[모른다, 그런 거.]
뭐지?
왜 카시아스도 모르는 시스템이 발동하는 거야?
혹시 이거 그런 건가?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떠한 조건을 충족했을 때 발생하는 숨겨진 이벤트 같은 거?
여성의 음성은 계속 들려왔다.
―히든 소울은 말 그대로 숨겨져 있던 영혼이에요. 히든 소울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특정 영혼의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경우, 발견할 수 있답니다~ 리조네의 망각을 클리어해서 발견한 히든 소울은 로레인이에요.
로레인은 리조네의 연인이었던 음유시인이다.
―가격은 500링크!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11! 로레인의 능력은 천상의 목소리랍니다~!
천상의 목소리?
그게 뭐지?
―로레인은 데브게니안 대륙의 유명한 음유시인이었어요. 그의 노래는 듣는 이들을 모두 감동시킬 만큼 아름다웠죠. 그만큼 로레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지금 그걸 사라는 거야?
―히든 소울은 스울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없답니다. 한마디로 히든 소울이 등장했을 때 바로 구입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살 수 없게 되고 말아요. 구입하시겠어요?
500링크 정도면 크게 무리가 가는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리조네의 망각을 클리어하면서 많은 링크를 얻었다.
무엇보다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다시는 구입할 수 없다는 게 내 구매욕을 자극한다.
띠링!
기계음이 울렸고.
내 앞에 이런 글귀가 떠올랐다.
히든 소울 로레인을 구매하시겠습니까?
[Buy/Pass]
난 ‘Buy’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글귀가 흩어져 사라지더니 밝은 영혼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내 몸 안으로 스며들어와 흡수되었다.
“영혼을 제대로 산 건가?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1/11
영매 : 9
아티팩트 소켓 3/3
보유 링크 : 269
영매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났다.
로레인의 영혼을 제대로 산 것이다.
영매 탭을 터치했다.
영매
패시브 소울 : 6
―강인한 육신[소라스]
―뛰어난 청력[파펠]
―완벽한 절대미각[리조네]
―뛰어난 요리 실력[마르펭]
―뛰어난 민첩성, 근력[바레지나트]
―아이언 스킨[지그문트]
액티브 소울 : 3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Burn)[마르카스/소모 영력 5초당 1]
―천상의 목소리[로레인/소모 영력 5초당 1]
오, 액티브 소울에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었다.
바로 천상의 목소리.
“흠, 패시브 소울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뭐, 아무려면 어떤가?
하루 종일 노래만 하면서 살 것도 아닌데.
“자, 이제 정말로 게시판에 글 좀 써보자!”
타닥타닥.
난 마치 오랜 숙원을 푸는 것마냥, 비어 있는 공란에다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글을 적어 넣었다.
사실 내용은 별게 없었다.
데일리 히어로 홈페이지의 오픈을 자축하며,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즉,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글을 다 작성한 뒤, 등록 버튼을 클릭했다.
“됐다.”
이제 필요한 건, 내가 선행을 쌓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핸드폰으로 찍어도 되겠지만, 좀 더 좋은 도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수중에 들어온 돈도 두둑하겠다, 난 카메라를 장만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
아마 문을 연 매장이 별로 없겠지.
게다가 난 카메라 보는 눈이 없으니 내일 학교 끝나면 상덕이랑 같이 가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