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62화
이건 분명히 내가 한 번 겪었던 미래야.
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있어.
내 인생, 평생에 파도가 많았던 만큼 이런저런 사건들로 가득했는데, 왜 제빵사 잭 아저씨를 만났던 기억을 유독 강조했던 거지?
‘거기에 힌트가 있는 걸까?’
……잠깐, 오늘이 며칠이더라?
허겁지겁 달력을 꺼내서 살펴봤어.
“3월 14일.”
그래, 2년 전 우리 도시를 떠났던 제빵사 잭 아저씨가 내후년 3월 15일에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었지.
그게 바로 내일이야.
잭 아저씨는 돌아온 당일 파티를 열고 나와 마르펭은 그 파티에 참석했지.
당시 잭 아저씨는 파티의 시작에 앞서 건배 제의를 하며 이렇게 말했었어.
“고향이 너무 그리워 새벽안개를 헤치며 달려왔습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구요! 다들 건배! 으하하하하하!”
새벽.
잭 아저씨를 만나야겠어.
* * *
눈을 조금이라도 붙이려 했는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더라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더 그런가 봐.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새벽 세 시쯤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마을 초입에 서서 잭 아저씨를 기다렸지.
그렇게 두 시간쯤 흘렀을까.
예상대로 새벽안개를 헤치며 2년 전 마을을 떠난 제빵사 잭 아저씨가 마을로 들어섰어.
“아저씨~!”
“응? 아, 리조네 아니냐! 으하하하하!”
잭 아저씨는 여전히 호탕한 웃음으로 날 반겨주었어.
그 큰 덩치 하며 덥수룩한 수염에 불룩 나온 배에다가 익살스런 얼굴은 조금도 변함이 없지 뭐야.
그래서 더 반가웠어.
“정말 돌아오셨네요.”
“그럼 내가 안 돌아오길 바랐던 거냐?”
“그럴 리가요.”
“여기는 무엇 하나 변함이 없구나.”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기분이. 아니 그런데 넌 안 자고 왜 나와 있던 거냐?”
“아저씨를 기다렸죠.”
“나를? 으하하하하하! 그거 기분 좋은 농담이구나!”
“진짜인걸요?”
“으하하하하하! 그래그래. 이제 다시 빵집 문을 열면 서비스 두둑이 주마.”
잭 아저씨가 2년 전 마을을 떠난 건,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해서였어.
더 늙기 전에 대륙 곳곳의 모든 경치를 눈으로 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지.
“눈에 졸음이 가득하구나. 이제 그만 들어가 보거라.”
“알았어요.”
“아, 그리고 저녁에 귀환 기념 파티를 열 예정이니 꼭 오거라~! 마르펭도 데리고 오라고!”
“네, 그럴게요.”
잭 아저씨는 손을 흔들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어.
그래, 오늘 저녁.
그 파티에서 내가 망각한 것이 무언지 알아내는 거야.
부서지는 현실
“어때, 마르펭? 같이 가야지.”
오늘은 영업을 조금 일찍 끝냈어.
잭 아저씨가 여는 파티에 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뒷정리를 하는 마르펭에게 물었더니 녀석은 모른 체하는 거야.
“뭘?”
“오늘 하루 종일 몇 번씩 물었잖아! 잭 아저씨 귀환 파티에 가자구! 그래서 식당까지 일찍 닫은 거 아냐.”
“아…… 그게, 난 별로 내키지 않는데.”
“왜? 잭 아저씨가 만드는 빵 엄청 좋아했으면서. 무엇보다 보러 가지 않으면 잭 아저씨 삐칠지도 몰라.”
“사실 난 좀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 누나.”
그래, 마르펭은 계속 이렇게 파티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었어.
마르펭은 잭 아저씨를 좋아했고, 잭 아저씨도 마르펭을 좋아했었는데, 왜 이다지도 파티에 가려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히 이유가 있어.
세상에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건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 투성이긴 했지.’
소피아부터 시작해 볼까?
그 똘망똘망하던 사람이 갑자기 넋 나간 듯 멍청해졌잖아.
게다가 날 가끔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일 년 전 식당일을 일제히 그만둬 버린 직원들도 이상해.
왜 그만두려 하냐고 묻는 말에,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한 이가 없었어.
그리고 마르펭도 일 년 전부터는 식당일에 큰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요리가 자신의 인생인 양 살아가던 놈이었는데, 지금은 칼이 많이 무뎌졌어.
과거, 비욜라트 마스터 쉐프 대회에서 우승했던 영광은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린 거야.
이제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내 레시피가 없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그래도 한때는 왕국을 넘어서서 대륙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던 마르펭이었는데, 지금은 왕국은커녕 도시에서 그나마 이름을 날리는 정도잖아.
‘마지막으로 오늘 파티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그 모든 것들의 비밀을 풀어야겠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무조건 같이 가!”
“누나, 정말 피곤하다니까?”
난 마르펭의 팔을 와락 잡아끌었어.
“무슨 말로 피해가려 해도, 안 돼.”
“누, 누나.”
“안 된다고 했잖아.”
강경한 내 말투에 마르펭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고.
“알았어.”
고개를 끄덕였어.
내가 이겼지?
* * *
“제빵사 잭의 귀환 파티에 와주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으하하하하하!”
잭 아저씨의 저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모두의 손에는 샴페인과 와인이 담긴 잔이 들려 있었지.
제빵사의 파티답게 테이블 위엔 가지각색의 빵과, 샌드위치, 조각 케이크, 타르트 등등 화려한 먹을 거리들이 가득해서 절로 행복해지는 거 있지.
“고향이 너무 그리워 새벽안개를 헤치며 달려왔습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구요! 다들 건배! 으하하하하하!”
“건배!”
잭 아저씨의 건배 제의에 다른 사람들도 건배를 외치며 잔을 높이 들었어.
물론 나도 함께했지.
그런데 이 즐거운 자리에서 마르펭의 얼굴은 영 밝지 못했어.
계속 눈치를 보는 듯한…… 그리고 엄청나게 불편해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어.
대체 저 녀석이 왜 그러는 걸까?
절대 낯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말야.
난 결국 못 참고서 마르펭의 옆구리를 쿡 찔렀어.
“윽! 쿨럭! 쿨럭!”
샴페인을 마시던 마르펭이 사레들렸는지 기침을 심하게 했지. 조금 미안한데?
“왜 그렇게 샌님처럼 굴어?”
“응?”
“원래 이런 자리에선 제일 신나했잖아.”
“그게…… 말했잖아. 오늘 좀 피곤하다고.”
난 마르펭의 눈을 똑바로 쏘아봤어. 마르펭이 그런 내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뒤로 슥 물러났지. 하지만 난 손을 쭉 뻗어 녀석의 벨트를 틀어쥐었어.
“누, 누나! 이거 놔.”
“마르펭!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하아, 그런 거 없어요.”
“아니, 그런 거 같은데.”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어.
“여어~ 리조네, 잘 있었어? 오늘은 잭의 귀환기념일이기도 하지만, 모험가 매튜가 삼 년 만에 이 마을을 다시 들른 날이지! 혹시 그새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샹그리아 식당에도 몇 번 갔었지, 아마?”
그는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모험가 매튜 씨였어.
내가 알은척을 하려는데, 매튜 씨는 내 주위를 살피더니 이렇게 물었어.
“근데 마르펭은 어디 있나?”
이상하지.
마르펭은 내 옆에 줄곧 붙어 있었고, 지금도 서 있는데, 못 알아보다니 말야.
“여기 있잖아요~ 마르펭, 기억나지? 모험가 매튜 씨.”
“아…… 응. 안녕하세요.”
마르펭이 인사를 건넸어.
그런데 매튜 씨는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
그러다 한마디 툭 던진 말이.
“마르펭? 이거…… 안 보는 새 많이 변했구나.”
이거였어.
마르펭이 삼 년 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졌나?
난 마르펭을 바라봤어.
그런데…… 역시 뭔가 있어.
마르펭 이 녀석,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 보라고.
매튜 씨와 마르펭, 그리고 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분위기를 풀어볼까 하는데, 뒤통수가 따끔한 거야.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어.
‘뭐야…… 이거?’
갑자기 혼란스러웠어.
그런데 그때, 잭 아저씨가 다가왔어.
“매튜! 이 친구야! 날 보러 왔으면서 뭐하는 거야? 일루 와!”
“어? 어…… 어어. 그래, 그러지.”
그러더니 잭 아저씨는 매튜 씨를 끌고서 발코니 밖으로 나갔어.
‘지금 들어야 돼.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지금의 난 예전과 달라.
일반인을 초월하는 청력으로 발코니에서 나누는 둘의 대화를 충분히 엿들을 수 있었어.
잭 아저씨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어.
“후…… 매튜, 많이 놀랐지?”
그러자 매튜 씨의 음성이 뒤따랐어.
“어떻게 된 거야, 잭? 나만 이상해진 건가? 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거지?”
“자네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왔으니 모르겠지. 나도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 때쯤, 쟈스민 부인이 말해주는 걸 듣고서야 알았어.”
뭘…… 알았다는 거야?
“역시 그랬군.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그래, 자네 짐작대로야. 마르펭은…….”
마르펭?
마르펭이 뭘 어쨌다는 거지?
“진짜가 아니야.”
……!
* * *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어.
마르펭은 피곤하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파티에서 들었던 잭 아저씨와 매튜 씨의 대화를 떠올렸어.
‘리조네의 친동생 마르펭은 1년 전에 사고로 죽었다더군.’
‘뭐…… 뭐? 아니 대체 어쩌다가…….’
‘새로운 요리에 쓰일 야생초를 구하러 숲으로 향했다가 몬스터의 습격을 당했다나 봐.’
‘저런…… 한데, 왜 다른 사람이 마르펭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
‘그는…… 마르펭이 아니지만, 마르펭과 제법 닮은 청년이지. 삼 년 전, 자네가 이 마을에 들렀을 땐, 그가 잠시 다른 마을로 유랑을 떠나서 보지 못했을 거야.’
‘맞아. 난 그의 얼굴이 기억에 없네.’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지. 이름은 로레인. 사 년 전, 리조네의 연인이 된 사내일세.’
‘아니…… 근데 왜 리조네는 그를 마르펭이라고 하는 건가?’
‘정신병의 일종인 것 같아. 마르펭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리조네는 그와 닮았던 로레인을 마르펭이라고 믿어 버린 거지.’
‘그렇다는 건……?’
‘로레인은 리조네를 위해서 여태껏 마르펭인 척 살고 있었던 거야.’
‘허허…… 그런 일이.’
‘참 딱한 일이지.’
그 순간 거대한 해머가 뒤통수를 꽝 때리는 것 같았어.
그리고 내가 믿고 있던 현실이 모두 부서졌어.
“마르펭이…… 마르펭이 아니라고?”
믿을 수가 없었어.
다 거짓말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고.
하지만…… 정말 거지 같게도 그 대화가 지금껏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설명해 주었지.
일 년 전 소피아를 제외한 모든 종업원들이 일을 그만두었던 것.
그건 아마 입단속을 시키기 위한 소피아의 조치였을 거야.
유일하게 식당에 남은 소피아는 늘 내 상태가 신경 쓰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