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61화
멍하다.
나는 어딘지 모를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시선은 저 먼 산등성이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내 금발 머리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상쾌했다.
띠링!
―리조네의 망각 퀘스트를 수락하셨네요. 지금부터 지웅 님은 리조네의 세상을 가상 체험하게 될 거예요. 지웅 님 본인이, 리조네가 되어서요.
어? 잠깐…… 리조네는 여자 아니었나? 그럼 내가 지금…… 여자가 되었단 말이야?
―리조네의 기억을 인스톨할게요. 이번이 세 번째니 이제 익숙하시죠? 조금 어지러울 거예요.
여인의 음성이 끊어지는 순간, 리조네의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왔다.
‘난 커서 엄청나게 큰 식당을 차릴 거야!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난 만날 내 식당에서 그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거야!’
‘푸하하하! 누나 바보 같아!’
‘비웃었냐, 마르펭! 싸우자!’
어린 시절의 리조네와 마르펭이 보인다.
그런데 너무 어렸을 적이기 때문인지 마르펭의 얼굴은 조금 흐릿하다.
‘누나! 나도 꿈이 생겼어. 대륙 최고의 요리사가 될 거야!’
‘엥? 어렸을 때, 나한테 바보 같다고 비웃던 놈이 갑자기 웬 요리사?’
‘마음이 담긴 음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이니까!’
‘꺄악~! 마르펭! 축하해! 비욜라트 마스터 쉐프 대회에서 우승하다니! 넌 최고야, 내 동생~! 정말 꿈을 이뤘구나!’
‘누나, 내가 생일 선물 기대하랬지? 이 식당이 우리가 함께 꾸려 나갈 곳이야! 누나가 전국 각지의 음식을 맛보면서 만들어낸 그 레시피! 내가 그대로 재현해서 우리 식당을 전국 제일의 식당으로 만들게! 같이 잘해보자고!’
‘마르펭~ 너 갑자기 요리 실력이 확 줄었다? 식당 좀 잘된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누나의 절대미각이 너무 깐깐한 거지.’
‘하긴 뭐…… 손님이 줄어든 건 아니니까. 그래도! 안일해지면 바로 헤드락이다?’
‘누나의 레시피대로만 하면 요리 생초보도 일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
‘시끄러워! 그리고 요새 왜 그렇게 하모니카를 불어대는 거야? 얼마 전엔 기타까지 장만한 거 같더라?’
‘요새 음악에 취미가 좀 붙어서.’
‘마르펭~ 이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너랑 나 둘뿐이야. 그렇지? 근데…… 종종 난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네가…… 갑자기 떠날 것만 같아.’
‘잭 아저씨! 오래간만이에요! 2년 만이죠? 그쵸?’
‘으하하하하! 오래간만의 귀환 기념으로 파티를 열 테니 꼭 오거라!’
‘마르펭! 같이 가야지?’
‘난 좀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 누나.’
‘그런 게 어디 있어! 무조건 같이 가!’
‘제빵사 잭의 귀환 파티에 와주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으하하하하하!’
‘여어~ 리조네, 잘 있었어? 오늘은 잭의 귀환기념일이기도 하지만, 모험가 매튜가 삼 년 만에 이 마을을 다시 들른 날이지! 혹시 그새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샹그리아 식당에도 몇 번 갔었지, 아마? 근데 마르펭은 어디 있나?’
‘여기 있잖아요~ 마르펭, 기억나지? 모험가 매튜 씨.’
‘마르펭? 이거…… 안 보는 새, 많이 변했구나.’
‘매튜! 이 친구야! 날 보러 왔으면서 뭐하는 거야? 일루 와!’
‘마르펭, 지금 이 분위기…… 나만 느끼는 거야? 다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나한테만…….’
띠링!
―리조네는 어쩐지 모르게 동생이 떠나갈까 봐 불안해하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원인을 밝혀내지 않는 한, 리조네는 계속해서 불안해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겠죠? 리조네가 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줄 수 있으시죠? 건투를 빌겠어요~
“아…… 아아.”
눈을 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내 이름은 리조네…… 나는 연년생 동생 마르펭이 있어.
우리 둘은 어렸을 적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었지.
하지만 고아원에 들어가지는 않았어.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을 아껴 쓰며 시장 거리에 나가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잡일을 닥치는 대로 해나가며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니까.
머리가 좀 크고 난 다음에는 마르펭이 그럴듯한 직장을 잡았어.
그 녀석 눈썰미가 좋았거든.
마시장에서 망아지들을 등급별로 나누는 일을 했어.
마르펭은 망아지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건강 상태가 어떤지, 근육은 얼마나 탄력 있고 단단하게 붙었는지, 비틀어진 골격은 없는지, 앞으로 덩치가 얼마나 더 자랄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냈지.
마르펭이 일급 종마라고 꼽는 녀석들은 어김없이 1년이 지날 때 즈음 그 진가를 드러냈어.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멋진 종마의 품격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얘기야.
그리고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녀석도 속으로 앓고 있는 지병이 있을 경우 기가 막히게 짚어냈지.
한번은 마르펭이 잔병치레 한 번 한 적 없는 젊은 말을 지나치다가 내일 죽겠다고 해버렸더니 다음 날 정말로 죽어 버렸지 뭐야.
그런 마르펭의 눈썰미가 소문이 나서 나중엔 우시장에서 일거리가 들어왔어.
마르펭은 송아지들의 품종을 나누고, 어른 송아지들을 돌아보며 속병이 있는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지 등등에 대해 판단해 주었지.
그렇게 마시장과 우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제법 벌어왔고, 난 동생이 번 돈을 몽땅 챙겨서 전 대륙을 여행했어.
3년이 지나, 유명하다는 세계의 음식을 모두 먹어보고 온 철부지 누나를 마르펭은 나무라지 않았어.
다만 요리사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
원래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었잖아?
좋은 식재료를 구분하는 감각이 장난 아니었지.
식자재와 조리 도구를 다루는 솜씨도 제법이었고.
알고 보니 내가 없는 3년 동안 혼자 밥 해먹다가 저절로 늘게 됐었나 봐.
마르펭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서 1년 동안 열심히 요리에 매진했지.
그리고 라만자 왕국 최고의 요리사를 가리는 경연 대회인 비욜라트 마스터 쉐프 대회에서 우승을 했어.
거기서 탄 상금으로 식당을 차렸고,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전 왕국에 우리 남매의 식당이 자리하게 되었지.
식당의 이름은 ‘샹그리아’였어.
우리 남매의 성을 따서 지었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고, 더 바랄 것도 없었어.
개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를 사랑하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렸다는 거?
그래서일까?
마냥 행복한 하루하루뿐인데, 나는 내 동생도 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치밀어 올라.
지금도 그래.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곧 영업 시작할 건데, 땡땡이치는 거야?”
마르펭.
역시 넌 불안해하는 날 혼자 두지 않지.
예쁜 내 동생.
“이리 와봐, 마르펭.”
마르펭이 순순히 내 옆으로 다가와서 서자, 뭔지 모를 시원한 향이 코를 간질였어.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몸 어디에서 이런 향이 나는 걸까?
“아래를 봐봐.”
이번에도 순순히 말을 듣는 마르펭.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우리 가게 앞의 풍경은, 벌써부터 모여들어 줄을 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어.
“어때?”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꿈만 같지, 늘.”
“그렇지?”
귀여워.
난 참지 못하고 마르펭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어.
하지만 착한 내 동생은 화도 한 번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야.
“어렸을 땐 머리 만지는 거 참 싫어했었는데, 너.”
“그랬나?”
“응, 지금은 순한 양 같아서 좋아. 너 같은 남자친구를 만나야, 이 누나가 호강할 텐데, 그치?”
내 농담에 마르펭은 그저 미소 지었어.
* * *
영업이 시작되면 하루 종일 전쟁이야.
주문을 받고 서빙을 돕고, 무전취식하려는 치사한 인간들 잡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종업원들이 실수로 접시를 깨는 일도 종종 있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다 그렇잖아?
그때는 종업원을 혼내기보단, 바닥 청소부터 먼저 해야 돼.
무엇보다 손님들의 식사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야.
오늘도 그런 실수가 벌어졌어.
그런데 문제는 그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야.
쨍그랑!
“죄, 죄송합니다!”
벌써 여기서 서빙을 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최고참 종업원이자 베테랑인 소피아가 접시를 깨뜨린 거야.
‘왜 저러지?’
소피아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단 한 번도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없었어.
늘 정신이 바로 박힌 맑은 눈동자로 주변을 신경 썼고,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찾았었지.
나는 소피아에게 단 한 번도 꾸중을 하지 않았어. 꾸중할 게 있어야지?
그런데 일 년 전부터 저 모양이야.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 물어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해.
게다가 요즘엔 가끔씩 측은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것 같더라고.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일 년 전, 다른 종업원들이 내게 쿠데타라도 하듯 집단으로 그만뒀을 때도 끝끝내 남아주었던 소피아였어.
직원들이 왜 다 그만뒀냐고?
우습지만 이유를 몰라.
그냥…… 이라고 하면 더 우스우려나?
그런데 진짜 그냥이야.
아니면 소피아가 가끔 날 측은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에 답이 있거나.
난 나름 직원들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직원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숨소리도 듣기 싫은 악마였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모르겠어.
그런 생각 오래 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아무런 생산성도 없어.
시간을 좀먹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런데 생각을 접으려는 순간 문득 떠올랐어.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날 떠난 것도 딱 그 무렵이었지.’
일 년 전 그 시절.
가을의 말미와 겨울의 초입이 겹쳐지던 그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내가 모르는 마법에라도 걸렸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때가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던 걸까?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젠장.
나도 모르게 주방으로 들어갔어.
마르펭은 열심히 요리를 하는 중이야.
칼 솜씨가 확실히 좀 둔해졌지만…… 그렇다고 요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건 아니니까 잔소리는 하지 않겠어.
‘마르펭…… 너는, 갑자기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그러지 않길 바랄게.
* * *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따라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눕혔어.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
그래…… 지금의 난 온전한 나, 샹그리아 본점의 마스터 리조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또 다른 나, 유지웅의 인격과 그의 모든 힘들이 깃들어 있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오늘따라 유독 식당 내부의 모든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잘 들렸던 건.
이건…… 파펠의 능력이었지.
뛰어난 청력으로 손님들 사이에 오가는 얘기를 듣는 것도 나름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그런데 지금 내가 남의 얘기나 듣고 있을 때는 아닌데 말야.
나는 누구보다도 내 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불안감의 원인은 무언지.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음에도 왜 이리 공허한 것인지.
가슴 한편이 뚫려 버린 기분이야.
‘이 문제를 해결할 키워드는 어디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