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59화
[알았어.]
난 카시아스가 시킨 대로 대답했다.
“주식으로 벌었어.”
“주식? 네가 주식을 했다고?”
“응, 용돈 받을 때마다 괜찮은 주식에 넣고 기다렸더니 뻥 뛰었네.”
“증거를 보여라!”
하, 나 이놈 참.
증거? 좋아, 보여주지.
마침 오늘 통장 개설하면 넣으려고 파이트 머니를 챙겨 온 참이다.
난 가방에 넣어두었던 돈 봉투를 꺼내 안에 든 수표 뭉치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상덕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그, 그게 다 얼마야?”
“어마어마하지?”
“어마어마한 정도가 아닌데…… 고딩이 이만한 돈을 만질 수 있는 거야?”
“지금 만지고 있잖아?”
“그, 그러네. 아무튼 정말 달에 팔십씩 준다는 거지?”
“응, 네가 일만 제대로 한다면.”
일단 내 수중엔 파이트 머니도 두둑하게 있다. 물론 그 돈으로 언제까지고 상덕이에게 월급을 줄 순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들려는 사이트가 계획대로만 운영된다면 선행 포인트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쌓일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포인트로 골드바를 살 수 있다.
골드바는 금은방을 운영하는 박인비의 어머니에게 좋은 값으로 팔 수 있다.
그걸로 상덕이에게 월급을 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홈페이지가 대박이 나서 선행 포인트도 많이 쌓이면 그만큼 상덕이의 월급을 올려줄 생각이다.
“같이 할 거야, 말 거야?”
난 돈 봉투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물었다.
상덕이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무조건 할 거다!”
“좋아.”
“그런데 뭘 어떻게 만들어 달라는 건지 자세히 말 좀 해봐.”
“길바닥에서는 좀 그렇고, 어디 카페라도 가서 얘기하자.”
* * *
상덕이와 나는 한적한 카페에 마주 앉아 각자 시킨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내 얘기를 한참 듣던 상덕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도움 요청 글이 올라오면 그것을 해결하고, 해결 사례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 이거지?”
“그렇지.”
“그럼 도움 글 올릴 게시판이 하나 필요하겠고, 동영상만 업로드되는 게시판이 하나 필요하겠네.”
“응.”
“근데 굳이 이럴 필요 있어? 그냥 유튜브에 업로드하면 되는 거 아니야? 동영상에다가 네 연락처 같은 거 남겨 놓고…….”
“물론 유튜브에도 동영상을 업로드할 거야. 알아보니 파트너십 계약 같은 게 있다더라. 내가 업로드한 동영상을 플레이할 때마다 짤막한 광고가 먼저 재생되게 한 다음 조회 수 1,000당 1달러에서 3달러를 주는 그런 제도야.”
“그럼 됐네? 홈페이지 없어도 되겠네.”
이 멍청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홈페이지 포기하면 지도 일자리 사라지는 거라는 생각을 못 하나?
에효, 일단 이해부터 시키자.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봤겠냐? 그런데 유튜브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렇지. 난 제대로 된 나만의 사이트를 가지고 싶어. 그래서 이걸 사업화시킬 거라니까? 계속 키울 거라고.”
“사업화? 하긴…… 홈페이지가 유명해지면 여기저기서 배너 계약이 들어오긴 하지. 그것도 잘만 굴리면 제법 돈 되더라고.”
“그래, 바로 그거라고.”
물론 거짓말이다.
내가 홈페이지를 만들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사람들이 내 선행을 보고 눈살 찌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내가 지나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는 동영상을 찍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것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면,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려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도와주는 선행 사이트에 ‘사례’로 올라오면 그런 생각을 싹 지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영상을 감상하게 된다.
동영상을 보는 이들은 곤경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받길 원할 테고, 내가 그걸 해결해 주는 순간 링크가 적립된다.
일전에 우리 가게에서 깽판을 치던 양아치들을 혼내줬을 때, 그 영상을 아랑이가 찍어서 학교 게시판에 업로드했을 때처럼 말이다.
당시 링크가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쌓였었다.
난 그걸 바라는 것이다.
“알았어. 내가 일주일 안에 만들어줄게.”
“오케이!”
“그런데 홈페이지 이름은 뭐라고 할래?”
“홈페이지 이름?”
“그게 가장 중요한 거잖아. 이름 빨 무시 못 한다, 너.”
“흠……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그걸 생각 못했네?
뭐라고 지을까.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아니야, 이건 너무 통속적이고 뻔해.
조금 세련되게 영어로 지어볼까?
헬퍼! ……이것도 좀 유치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매일매일 도와드려요? 도움을 주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영웅처럼 나타나 일을 해결해 드립니다, 라는 이미지로 가야 하는데.
뭐 좋은 거 없을까?
영웅…… 히어로.
매일매일 도와드립니다. 매일매일…… 데일리…… 히어로?
데일리 히어로! 이거다!
“데일리 히어로(Daily Hero).”
“엉?”
“홈페이지 이름. 데일리 히어로로 해줘.”
데이트
상덕이와 헤어지고 난 뒤, 은행에 들러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었다.
거기에 내가 번 돈을 전부 입금했다.
대략 1,700만 원 정도 됐다.
그리고 명함집으로 가서 나와 상덕이가 쓸 명함을 오백 장씩 주문했다.
명함 디자인은 주인아주머니가 내미는 견본 중 가장 심플하고 세련된 걸로 해서, 일반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로 된 카드 명함을 선택했다.
명함은 사흘 뒤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날 하루는 편의점 알바를 갔다 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다음 날도 학교는 오전 수업을 하고 끝났다.
늘 학교 끝나면 집에 들렀다가 다시 알바 나가기 바빴는데, 요새는 시간이 남아도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형식적으로 메고 온 홀쭉한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웅아~!”
돌아보니 다름 아닌 아랑이었다.
“아랑아.”
아랑이가 열심히 달려와 내 앞에 서서는 헐떡댔다.
“하아, 하아.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빨라? 급한 일 있어?”
“응? 아니.”
“오늘 혹시 약속 있니?”
“없어. 아…… 저녁에 편의점 알바 가야 돼.”
“몇 시에?”
“여섯 시.”
“그럼 그 전까지는 시간 괜찮은 거네?”
“응, 그렇지.”
“잘됐다~! 나랑 점심 먹을래?”
“점심?”
“응, 저번에 이랑이 일로 보답도 하고 싶고. 새로 생긴 맛집 두 군데를 알아놨거든. 어때? 괜찮지? 같이 갈 거지?”
아랑이는 아기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서 날 바라봤다.
내게 보답을 한다기보다는 맛집에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은데?
하여튼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웠다.
난 피식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자.”
“좋아!”
아랑이가 폴짝 뛰며 내게 팔짱을 꼈다.
어라……?
난 당황해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랑이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한 건지 뒤늦게 인지하고 얼른 내 곁에서 떨어졌다.
“미, 미안해, 지웅아.”
“어? 아, 아냐. 난 괜찮아.”
“…….”
“…….”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거야.
대처를 이상하게 하는 바람에 괜히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 그럼 가보자, 아랑아. 그 맛집이라는 데.”
“어? 아, 그래. 하나는 학교 근처에 있어. 조금만 걸어가면 돼.”
“가깝네?”
“그치?”
아랑이와 나는 약간의 어색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길을 걸었다.
* * *
아랑이가 날 인도한 곳은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샤브샤브집이었다.
한데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맛집이라고 소문이 퍼진 건지 홀엔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아랑이가 먹는 양이 있기 때문에 기본으로 샤브샤브 3인분에 소고기와 해산물, 그리고 사리를 곱빼기로 추가했다.
테이블 중앙에 놓인 육수가 끓자, 아랑이는 야채와 소고기, 해산물을 적당히 넣었다.
우리는 맛있게 익은 음식들을 건져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랑이는 내 별거 아닌 얘기에도 재미있어하며 많이 웃어주었다.
나 역시 아랑이가 하는 소소한 말들이 정말 즐겁고 재밌었다.
아랑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고 같이 먹는 식사가 맛있었다.
샤브샤브집에서 한 시간 반가량 있으면서 결국 도합 10인분 정도를 먹어치웠다.
내가 2인분을 먹었고, 나머지는 다 아랑이가 처리했다.
음식값을 아랑이가 계산하고서 우리는 두 번째 맛집으로 향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어? 눈 내린다.”
아랑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오늘 폭설 주의보라고 했었는데.
한 송이 두 송이 흩날리기 시작하던 눈이 점점 많아지며 이내,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와아~! 신난다~!”
아랑이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좋아했다.
입을 살짝 벌리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이 정도로 내리면 많이 쌓이겠지?”
아랑이가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응, 그럴 거야.”
“우리, 두 번째 맛집 갔다가 나올 때 눈 쌓여 있으면 눈사람 만들까?”
여자와 함께 만드는 눈사람이라니?
내게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얘기였는데, 이제 현실이 되어 다가올 줄이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눈사람 좋지~!”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랑이가 말갛게 미소 지었다.
* * *
두 번째 맛집은 양 꼬치 전문점이었다.
그곳은 거리가 조금 있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아랑이는 양 꼬치 전문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춘천에는 그럴듯한 양 꼬치 전문점이 없었거든. 그래서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정말 맛있는 곳이 생겼대.”
그러고 보니 난 양고기를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양고기가 그렇게 맛있어?”
“음…… 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조금 갈리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고기보다 맛있다고 그래.”
“기대되네.”
“혹시 맛보고서 네 취향이 아니다 싶음 말해. 조금만 먹고 나와서 다른 데 가게.”
“알았어, 그럴게.”
“아, 택시 왔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후평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양고기집 앞에서 내렸다.
지금은 점심도 저녁도 아닌 그 사이의 어중간한 시간인데,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도 대단하네?”
내가 혀를 내두르자 아랑이가 피식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더 대단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아들이 할 소리야?”
“그런가?”
“그럼~ 춘천에서 가장 잘나가는 음식점은 누가 뭐래도 닭발 옆차기일걸?”
하긴, 우리 가게는 오픈한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파리가 날렸던 적이 없다.
늘 만석에 번호표까지 뽑고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수두룩했다.
‘아무래도 분점을 하나 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이제 가게 하나로는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