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58화 (58/153)

데일리 히어로 058화

점심은 집에 가서 먹어야 된다, 인마.

“지웅아.”

태진이가 나가려다 말고 날 불렀다.

“왜?”

“넌 축구 안 해?”

“관심 없어.”

“한 게임 뛰지?”

저 녀석이 갑자기 왜 나랑 축구를 하자는 거야?

“무슨 꿍꿍이냐?”

태진이가 자고 있는 상덕이의 머리카락을 괜히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자존심 회복 정도라고 하면 되겠냐?”

“뭐?”

“내가 애들 앞에서 너한테 대판 깨졌잖아. 쪽팔려서 사실 학교 나오기 싫었는데 오기로 다녔다. 지금은 애들이랑 친해져서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서 축구로 설욕하고 싶다, 뭐 그런 거야?”

“겁 나?”

그 말에 나는 너털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태진이가 제법 남자다워졌다.

아직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 스포츠로 결투 신청을 해올 줄이야.

녀석이 저렇게 나오는데 안 받아주면 남자가 아니지.

“좋아, 하자.”

그렇게 말하고 벌떡 일어서는데 어째 기분이 영 이상했다.

‘언제부터 내가 남자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걸 따졌지?’

이것 역시 바레지나트의 인격이 내게 미친 여파다.

한데 축구가 그냥 공 몰고 가다가 상대방 골대에 넣으면 끝인 거지?

* * *

나는 스포츠에 관해서는 완전 무지한 사람이다.

운동에 관심이 없어서 아예 등지고 살았더니 축구는 발로 공 차는 거, 농구는 손으로 공 넣는 거, 야구는 방망이로 공 때리는 거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기본 상식 외에는 그 어떤 규칙도 모른다.

넓은 운동장에 태진이와 나를 중심으로 우리 반 남학생들이 여덟 명씩 나누어 섰다.

나는 운동장 중앙선에 서 있었다.

내 앞엔 태진이가 공을 들고 마주 섰다.

심판은 없었다.

녀석은 동전을 꺼내더니 내게 물었다.

“체육 시간 끝날 때까지 시합하는 거고, 시간이 다 되기 전이라도 한쪽 팀이 먼저 다섯 골을 넣으면 이기는 걸로, 어때?”

“좋을 대로.”

“앞면, 뒷면?”

“앞면.”

태진이가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맑은 소리를 내며 튀어 올라간 동전이 다시 내려오자 그것을 한 손으로 잡아 반대쪽 손등에 탁 엎었다.

태진이가 동전을 덮은 손을 천천히 치웠다.

드러난 것은 뒷면이었다.

“내가 이겼네? 먼저 공격한다.”

“좋을 대로.”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거야.”

느닷없이 경고한 태진이가 다리를 현란하게 놀리며 내 옆으로 치고 나갔다.

난 태진이를 막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몸을 돌려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태진이는 마치 축구공이 발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몰고 나가면서 우리 팀 수비수와 공격수를 모두 제치고 골대 앞까지 다다랐다.

아무도 태진이를 막지 못했다.

태진이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녀석은 정말로 환상적인 드리블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태진이와 골키퍼의 일대일 상황이 벌어졌다.

태진이는 달려 나가던 속도의 힘을 실어 공을 세게 찼다.

뻥!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철썩!

태진이가 주먹을 꽉 쥐며 날 돌아보았다.

“와…… 진짜 축구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그냥 태진이는 축구 선수 하는 게 낫지 않겠냐?”

“애초부터 체진반(체육대 진학반) 같은 거 했었어야 돼. 저 재능을 가지고 양아치 짓거리만 하고 다니다 보니 세월 다 갔지 뭐.”

태진이가 축구를 그렇게 잘하는 거였구나.

이제야 알겠다.

이전의 나는 워낙 운동을 못하다 보니 그냥 모든 아이들이 다 축구를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보다 여러모로 강해지고 난 지금은 태진의 움직임이 확실히 또래의 학생들보다 월등히 좋다는 걸 구별할 수 있었다.

태진이가 내 곁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 쳤다.

“여전히 축구는 젬병인가 봐? 이거 너무 나한테 유리한 종목으로 붙자고 한 거 아닌가 몰라.”

그 말에 난 씩 웃었다.

“이제부터 다를 거야.”

태진이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 말이 허풍처럼 들린 모양이다.

다시 공을 중앙선에 놓고 나와 태진이가 마주 본 채 섰다.

“간다.”

나는 시합의 재개를 알린 뒤, 공을 높이 차올렸다.

뻥!

태진이가 박장대소하며 공을 따라 달렸다.

“푸하하하! 야! 지금 야구하냐?”

그래 웃어라.

나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나보다 앞서 있던 태진이와 상대방 선수들을 빠르게 따라잡은 뒤, 순식간에 치고 나가 지면에 탕! 하고 튕겨 올라오는 공을 그대로 걷어찼다.

뻐엉!

내 발에 얻어맞은 공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골키퍼가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막지 못했다.

철썩!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일대일이 되었다.

태진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축구 좀 했냐?”

“아니.”

“근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납득 못 하는 태진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너 나한테 얻어맞은 것도 갑자기 그랬던 거잖아.”

“…….”

“이제 네 골 남았다.”

* * *

축구 시합은 딱 십 분 만에 종료되었다.

이후로도 내가 네 골을 연달아 넣어 버린 것이다.

태진이가 넋 나간 얼굴로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내가 이겼지? 이제 나 들어가서 쉰다. 너희들끼리 놀아라.”

교실에 올라와서 창문을 내다보니, 태진이는 여전히 운동장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 * *

4교시가 끝났다.

그러자 영원히 깨지 않을 사람마냥 자고 있던 상덕이가 귀신같이 일어났다.

“뭐야? 끝났어?”

“그래. 집에 가자.”

“응, 얼른 가서 밥 먹어야겠다, 흐아암~!”

학교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상덕이는 계속 피곤해했다.

연신 하품을 하고 눈물을 찍찍 흘려 댔다.

“너 어젯밤에 야동 봤냐?”

“뭐?”

“야동 보면서 밤 새웠냐고.”

“아니거든!”

“근데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려?”

“홈페이지 만드느라 밤을 새워 버렸어.”

“홈페이지?”

“응.”

“무슨 홈페이지?”

“그냥…… 내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업로드하고 하는 그런 공간.”

어라? 이놈 봐라?

“네가 홈페이지를 만들 줄도 알아?”

“그게 그렇게 신기하냐?”

“신기하지. 잘하는 거라고는 먹는 거랑 잠자는 것밖에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홈페이지를 만들다니.”

“나 예전부터 홈페이지 많이 만들었거든?”

“그래, 알았다.”

상덕이가 만들어봤자 애들 장난 수준이겠지.

내가 그렇게 대화를 끊어 버리니 상덕이는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스마트 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러더니 내게 뭔가를 보여줬다.

그것은 잘 꾸며진 인터넷 홈페이지였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것이 제법 감각 있는 사람이 만든 곳인 것 같았다.

“이거 뭐야?”

“내가 만든 홈페이지다.”

“……뭐?”

“봐봐, 여기!”

상덕이가 인터넷 주소 창을 가리켰다.

“상덕 닷컴!”

주소 창엔 정말로 ‘Sangduck.com’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진짜 네가 만들었다고?”

“그래!”

정말 놀랄 노 자였다.

상덕이의 평소 이미지와 너무 대비되는 홈페이지였다.

하얀색 바탕에 파스텔 톤으로 배열된 메뉴와 검은 선으로 그려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가 서로 잘 조화되는 느낌이었다.

“야, 상덕아.”

“왜? 이제 좀 이 형님의 능력이 피부에 와 닿냐?”

“그래. 이건 놀려먹지 못하겠다. 장난 아닌데?”

“지, 진짜?”

“응.”

“야…… 네가 진심으로 칭찬하니까 좀 이상해. 그 정도로 괜찮아?”

“그렇다니까. 너 왜 이런 재능을 감추고 있었어?”

“그게…… 재능인가? 그냥 심심해서 만드는 건데.”

상덕이는 홈페이지 제작을 하나의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재능이라는 걸 몰랐기에 굳이 누군가한테 자랑도 하지 않았던 것일 테지.

“IT시대에 이것보다 더 좋은 재능이 어디 있어?”

“그런 거야?”

“그렇지, 인마!”

“으헤헤헤헤.”

상덕이가 바보 같이 웃었다.

근데 웃는 얼굴이 진짜, 리얼하게 바보 같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덜떨어지는 녀석이 이런 재능을 갖고 있던 거지?

아무튼 다행이다.

내심 상덕이 미래에 대해 은근히 걱정을 했던 터였다.

상덕이 어머니도 상덕이가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며 내게 근심을 털어놓곤 했었다.

그런데 이런 재능이 있었으니 앞으로 밥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사실 상덕이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으면 전문가의 손이 닿은 홈페이지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참에 너 아예 진로를 이쪽으로 잡아라.”

“응? 진로를?”

“그래. 그런 거 잘만 만들어도 돈 엄청 번다고 하더라.”

“그런가? 근데 뭐…… 일단 날 써준다는 사람이 있어야 돈을 벌지.”

“그거야 샘플 같은 걸 열심히 만들어서 여기저기 광고하다 보면…….”

말을 하는 와중, 번개 같이 내 머릿속을 두들기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난 그대로 굳어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자 상덕이가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야, 갑자기 왜 그래? 왜? 왜?”

“……상덕아.”

“아, 진지 빨지 마. 무서울라 그러잖아.”

난 상덕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 나랑 동업하자!”

“……뭐? 동업?”

“응.”

상덕이가 내 손을 탁 털어 뿌리쳤다.

“난 요리 못해.”

“요리 하자는 게 아니고 이 답답아.”

“그럼?”

“내가 지금 홈페이지가 필요하거든?”

“홈페이지? 뭐하려고?”

“사람들 무상으로 도와주려고.”

“뭐? 그게 무슨 빌 게이츠 대출받는 소리야?”

“말 그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연을 올리면 그걸 내가 도와주려고 한다는 거지.”

상덕이는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나도, 다짜고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이해는커녕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며 타박부터 놓을 것 같다.

이 삭막한 세상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며 살아도 밥 벌어먹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무상으로 남을 도와주려고 한다니?

상덕이가 한숨을 쉬었다.

“됐다.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돈 줄게.”

“……돈 준다고?”

상덕이가 눈을 번쩍 빛냈다.

“응.”

“얼마나?”

“달에 무조건 팔십 이상은 줄게.”

“진짜?!”

“그래.”

상덕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모로 꺾고 날 게슴츠레 살펴봤다.

“근데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 자식이 평소엔 멍청한 게 이럴 땐 또 호락호락하지 않네?

“어떻게 하다 보니 돈이 좀 생겼어.”

“어떻게 했는데?”

이거 어떻게 뻥을 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카시아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식 했다고 해라, 멍청한 놈.]

[어? 카시아스? 어디 있냐?]

[네 뒤에.]

또 투명화 마법 써서 따라오고 있었나 보군.

[그런데 주식이라니? 나 아직 고딩인데?]

[부탁이니 이제 곧 성인이 될 나이면 네가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 좀 가져라. 주식은 주식 계좌만 개설하면 미성년자도 할 수 있다. 물론 부모님이 함께 가야 계좌를 개설해 주는 곳도 있지만, 아무튼 상덕이가 그런 질문까지 하지는 않을 테니, 주식으로 벌었다고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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