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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54화 (54/153)

데일리 히어로 054화

진행 요원을 따라 난 전의 그 큰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대기실에 나 혼자밖에 없었다.

뭐지?

방콕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시합이 끝나지 않은 건가?

아니다.

모든 나이트의 시합이 끝난 뒤에라야 진행 요원이 이 대기실로 안내를 해준다.

‘그럼 2회전에서 이기고 3회전에 나가지 않기로 했나?’

아까 봤던 방콕의 이미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살육을 즐기는 것 같은 녀석이었다.

그럼 이겼는데 3회전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건 무리가 있다.

해서, 지금 상황에 가장 그럴듯한 건 방콕이 2회전에서 매드 맨에게 졌다는 가정이다.

‘모니터를 좀 볼걸.’

설열음과 말다툼을 하다 성질이 나서 모니터를 확인할 생각도 못 했다.

혼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진행 요원 한 명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나이트 어벤저?”

“네.”

“3회전 참가자는 나이트 어벤저 혼자입니다.”

“방콕은요?”

“나이트 방콕은 2회전에서 매드 맨과 전투를 벌이다 사망했습니다.”

……역시, 그랬어.

그나저나 방콕도 블레이드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은 있는 듯했다.

그런데 매드 맨에게 졌다니.

‘다운 타운에서 만들어낸 전투에 미친 광인이라 그랬었나?’

녀석들이 제법 강한 모양이다.

“따라서 나이트 어벤저는 3회전에서 매드 맨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출전하시겠습니까?”

“3회전까지 승리하면…… 분명히 세이브 카드를 주는 거지?”

“드립니다.”

“출전하겠어.”

매드 맨이라는 놈이 아무리 강해봤자 인간이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전하시죠.”

난 진행 요원을 따라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의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으며 나직이 말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9/9

영매 : 8

아티팩트 소켓 2/2

보유 링크 : 1,048

보유 링크가 1,048이다.

새로운 영혼을 사려면 우선은 영력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영력 탭을 터치했다.

영력 : 9

영력을 10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20링크입니다.

[Yes/No]

당연히 업그레이드지.

예스를 터치.

영력은 10이 되었고, 11로 업그레이드하려면 150이 더 든단다. 이것도 예스를 터치.

영력 : 11

영력을 12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70링크입니다.

[Yes/No]

업그레이드 비용이 점점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구나.

영력은 11까지면 됐다.

이제 남은 링크는 778.

500링크의 영혼과 250링크의 영혼을 하나씩 살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전투에서 굉장한 궁술과 굉장한 리더십은 그다지 도움 되는 능력이 아니었다.

내가 활을 들고 싸우는 게 아니니 굉장한 궁술은 사나 마나고, 리더십 역시 서로 죽이겠다고 덤비는 상대에게 먹힐 종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티팩트는 어떨까?

“소울 커넥트.”

난 경기장으로 향하다 말고 소울 스토어에 접속했다.

* * *

“그새 돈을 불려 오셨네요?”

라헬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녀석이 손을 딱 튕기자 네 개의 영혼이 나타났다.

“어떤 영혼으로 사실 건가요?”

“됐고, 아티팩트를 보여줘.”

“네? 아티팩트요? 좋은 능력이 많은데, 아티팩트는 뭐하러 보려고 하세요. 자자, 저는 개인적으로 쟈비아의 능력을 추천…….”

“내가 가진 링크로 살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어, 없어?”

“……있는데요.”

이 자식이 하여튼 뭘 사러 올 때마다 수작질이야.

“그럼 당장 보여줘.”

“그러죠.”

라헬이 다시 손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엄지손가락만 한 투명한 유리병이 나타났다.

병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뭐야?”

“인피니트 포션(Infinite Potion)이에요.”

“인피니트 포션?”

그대로 직역해 보면 무한의 묘약이라는 뜻인데.

라헬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강대강 설명을 해나갔다.

“이 병에 들어 있는 건 힐링 포션이랍니다. 다친 곳을 낫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죠. 한 번 음용한 뒤, 뚜껑을 닫아놓으면 저절로 힐링 포션이 다시 차게 되는데, 그 기간이 한 달 정도 걸려요.”

뭐? 그거 엄청 좋잖아!

게다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아티팩트야!

“효과는? 어느 정도지?”

“뭐, 이걸 마시면 어지간한 내상, 외상은 다 낫긴 하는데 지웅 님은 아이언 스킨까지 얻으셨으니 별로 다칠 일이 없잖아요? 사봤자 돈 낭비라고 사료되는데요?”

“늘 얘기했잖아. 그런 건 내가 판단한다고.”

“……정말 지웅 님한테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이 쓰레기 같은 아티팩트를 사겠다구요?”

“응.”

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라헬의 미간에 세로줄이 새겨졌다.

“진심이세요?”

“응.”

그러자 라헬이 미간을 폈다.

대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굴에서는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요? 정말 사겠다는 거죠?”

이 자식이 오늘따라 끈질기네.

다른 날보다 분위기도 더 무겁고.

“사겠어.”

라헬이 말없이 날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갑자기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세요, 그럼. 700링크 잘 받아갈게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매번 내게 필요 없는 능력을 팔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저놈한테 뭐가 남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오늘은 유독 기분 나쁘네.’

난 코앞에서 부유하고 있는 인피니트 포션을 쥐었다.

그러자 라헬이 고개를 삐딱하게 모로 꺾고서 팔짱을 끼고 날 쳐다봤다.

잘 가라 마라 인사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소울 스토어와의 접속이 끊겼다.

세이브 카드

라헬 때문에 찝찝한 기분을 떠안은 채 경기장으로 향했다.

난 인피니트 포션의 설명을 보기 위해 마인드 탭을 열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1/11

영매 : 8

아티팩트 소켓 3/2

보유 링크 : 78

아티팩트 소켓을 터치했다.

팅.

아티팩트 소켓 : 3/2

착용 중인 아티팩트

―레이븐 링

―비욘드 텅

보유 중인 아티팩트

―레이븐 링 : 레이브란데가 만든 반지. 반지를 착용한 자는 자신이 사들인 영혼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할 수 있다.

―비욘드 텅 : 레이브란데가 만든 목걸이. 링크로 사들인 영혼의 능력을 십수 배 이상 강화시킬 수 있다. 단, 강화 유지 시간은 30분이며, 하루에 한 가지 능력밖에 강화할 수 없다. 강화시킨 능력의 유지 시간이 끝나면 그날 하루는 그 능력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인피니트 포션 : 레이브란데가 절명의 미궁에서 발견한 고대의 아티팩트다. 인피니트 포션은 자체적으로 힐링 포션을 만들어낸다. 힐링 포션이 생성되는 기간은 한 달이다. 힐링 포션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병에 가득 채운 다음 그것을 전부 마셔야 한다. 만약 힐링 포션이 병에 가득 채워지지 않았는데 마시거나, 가득 채워졌다 하더라도 전부 마시지 않는 경우,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인피니트 포션의 효과 범위는 신체의 일부가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은 한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단, 상처가 난 지 2시간이 지나지 않아야 한다.

아티팩트 소켓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200링크입니다.

[Yes/No]

‘그래, 이거야!’

이랑이가 상처를 입은 지 이제 겨우 한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매드 맨을 최대한 빨리 제압하고 이랑이에게 힐링 포션을 먹여야 돼.’

난 소울 스토어에서 산 인피니트 포션을 상의 안주머니에 잘 넣고 단추를 잠갔다.

문제는 아직 아티팩트 소켓이 2개밖에 없어서 인피니트 포션의 효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대로 그냥 마셔 버리면 아무런 효과도 받지 못한다.

해서, 아티팩트 소켓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데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링크는 78이 전부다.

‘매드 맨을 이기면 또다시 링크가 들어오겠지.’

적어도 130링크 이상만 들어와 주면 된다.

제발 내게 돈을 거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면서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 * *

매드 맨이 전투광인이라 우악스럽고 포악한 인간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마주한 매드 맨은 그와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검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거한의 대머리였다.

그것 말고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하지만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블레이드와는 또 달랐다.

그는 분명 블레이드보다 강했다.

대기실에서 한 번 마주했던 방콕도 이 녀석에게 당했다.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

―시합 시작하세요.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매드 맨이 다가왔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그 중간쯤의 속도로 성큼성큼 다가오는가 싶더니 한순간 속도를 높여 지척에 나타났다.

‘빨라.’

내가 지금껏 상대했던 어느 인간보다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가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쉭!

날 자신의 사정권에 둠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었다.

쉭!

난 피하지 않고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지금 내 머릿속엔 이랑이를 어서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상대방의 전력 분석이고 뭐고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매드 맨을 작살낸다!

콰앙!

나와 녀석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그리고 밀려난 건 매드 맨이었다.

하지만 놈은 굴하지 않고 계속 힘겨루기를 하려 들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어대면 물어뜯어 줘야지!

내가 더욱 힘을 주어 주먹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콰드득!

매드 맨의 손뼈가 모조리 부러졌다.

녀석이 그제야 주먹을 빼려 했다. 동시에 반대쪽 주먹을 내 옆구리에 박으려 들었다.

그 순간 난 내질렀던 주먹을 회수하지 않고 더 내질렀다.

빠르게 질러 나간 주먹이 그대로 매드 맨의 턱을 후려쳤다.

퍼억!

매드 맨이 옆으로 비틀거렸다.

덕분에 놈이 휘두른 주먹은 내 옆구리를 지나쳐 애꿎은 허공만 때렸다.

빡!

정강이로 놈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안 그래도 비틀거리던 녀석이 무게 중심을 완전히 잃고서 주저앉았다.

난 그대로 날아올라 발뒤꿈치로 매드 맨의 정수리를 내리찍으려 했다.

그런데 매드 맨은 팔을 들어 올려 그것을 막았다.

콰앙!

우두둑!

정수리 대신 매드 맨의 팔이 아작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놈이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뼈가 부서질 때도, 턱과 정강이를 맞았을 때도, 그리고 팔뼈가 부러진 지금도 신음을 흘리기는커녕 표정의 변화조차 없다.

그저 처음과 똑같이 무감정한 얼굴로 몸을 벌떡 일으켜 재차 공격을 시도할 뿐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매드 맨은 데스 파이트 관계자들이 전투만을 위해 만든 광인이라고 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어렸을 때 봤던 홍콩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제목이 뭐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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