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53화
어느새 양손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날 노려보며 단검을 들어 올린 블레이드.
“크흐…… 크흐윽!”
피를 토하고 신음을 몰아쉬면서도 눈빛만큼은 죽지 않았다.
그래, 그 정도로 무너지면 안 되지.
넌 더 고통 받아야 하니까!
난 블레이드에게 달려갔다.
녀석이 자세를 취하고 한 손에 든 단검을 역수로 쥐어 허벅지에 붙였다. 그리고 다른 손은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이랑이에게 썼던 수법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당할 바보는 없다. 아니 설령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난 당하지 않는다.
녀석이 오른손으로 단검을 던지는 척 모션을 주고 왼손의 단검을 던지려 했다.
그 순간 이미 난 블레이드의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한데 그것조차도 페이크였다.
블레이드는 다시 오른손의 단검을 던졌다.
안타깝게도 속임수는 그 교묘한 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탕!
날아드는 단검을 쳐냈다.
블레이드가 왼손의 단검을 날리며 빠르게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새로 꺼내 든 두 개의 단검을 내 가슴과 목을 향해 휘둘렀다.
난 날아든 단검마저 쳐내고 놈이 휘두른 단검 두 자루를 그대로 맞아주었다.
카캉!
단검은 아이언 스킨으로 강철처럼 단단해진 내 피부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블레이드가 놀라서 눈을 홉떴다.
“낭아권!”
한 번 더 낭아권을 시전했다.
뻐어어억!
이번엔 주먹이 블레이드의 턱에 작렬했다.
“크악!”
블레이드가 뒤로 날아가려는 순간.
턱!
허공에 붕 뜬 다리를 잡아 땅으로 메쳤다.
콰앙!
“크허억!”
하늘을 보고 쫙 뻗은 블레이드의 복부를 발뒤꿈치로 내리찍었다.
뻑!
“……!”
블레이드는 숨이 턱턱 막히는지 제대로 된 고함도 지르지 못한 채 몸을 웅크렸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이랑이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 가득 찬 분노를 달래기엔 부족하다.
블레이드는 내게 계속 얻어맞는 와중에도 단검을 놓지 않았다.
난 놈의 오른 손목과 왼 손목을 동시에 잡고 힘을 주었다.
두두둑! 두둑!
“크아아아아악!”
녀석의 양손목이 가루가 되었다.
자연히 놈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단검을 놓쳤다.
단검 두 자루를 집어 들고 날끼리 부딪쳐 강하게 긁어내렸다.
그러자 타타탁! 하며 불씨가 튀었다.
그 순간.
“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을 시전했다.
시전어가 튀어나가는 순간 작게 튀던 불씨가 크게 불어났다.
그것을 조종해 블레이드의 상의에 옮겨 붙게 했다.
화르르륵!
블레이드의 상의가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으아…… 으아아아악! 아아악!”
블레이드는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
난 버둥거리는 녀석의 오른쪽 발을 잡아 단검으로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서걱.
“끄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잘린 부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블레이드는 잘린 부위가 아픈 건지, 타들어 가는 몸이 아픈 건지, 미치도록 소리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내가 마법으로 제어하고 있는 불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상의를 태우고 살을 녹이고, 머리카락과 눈썹을 모조리 태워먹은 불길이 이제는 얼굴로 옮겨 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화르륵~!
그 순간 내 영력이 전부 소모되어 불이 꺼졌다.
“흐…… 끄으으으…….”
블레이드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양손목이 부러지고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끊긴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난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크어…….”
이젠 소리칠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블레이드는 곧 죽을 것처럼 시들거렸다.
난 그런 블레이드의 앞에 쪼그려 앉아 놈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죽이지 않는다. 병신이 된 몸으로 평생 노예 짓거리나 해라.”
내 안의 어디에서 그런 독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소라스? 바레지나트?
누가 내 인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 독을 심어준 것이 고마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랑이를 반불구로 만들어 버린 블레이드를 어설프게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정말로 용서할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몸을 일으켜 블레이드를 등지고 경기장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멋지다!”
“으하하하하! 죽이는 것보다 더 잔인한데!”
“3회전도 나올 건가? 기대하지, 어벤저!”
“미친 복수의 화신이 나타난 건가?”
“방금 그 불은 어떻게 일으킨 거야?”
“정말 크레이지한 녀석이 등장했어! 앞으로 난 저 미친 자식한테 건다!”
이른바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는 관객들은 난리가 났다.
그들은 블레이드를 잔인하게 응징한 내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진짜 미친놈들이야.”
더럽다.
이곳은, 지독하게, 더럽다.
띠링!
―이번에도 지웅 님께 도움 받은 사람들이 고마움의 마음을 보내왔네요. 선행을 쌓아 418링크가 주어집니다.
……역겹다.
* * *
“삼 회전도 진출하실 건가요? 방금 전 시합에서 승리했으니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육백만 원 정도 되네요.”
설열음이 카시아스를 품에 안고서 대기실로 찾아와 물었다.
1회전 시합에서는 팔백만 원 정도 가져갈 수 있다고 하더니, 2회전 시합에서 오히려 액수가 줄어들었다.
이 액수는 객석의 관객들이 배팅하는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삼 회전 출전할 거예요.”
“다행이네요.”
……뭐? 지금 뭐라 그런 거야?
“방금 다행이라고 했어요?”
“네.”
“제정신이에요? 왜 다행이라고 한 겁니까?”
다운 타운에 진력이 나니 설열음도 고깝게 보였다. 그런데 심히 신경 거슬리는 말까지 내뱉는다.
그렇다 보니 내 입에서 나오는 말투도 자연스레 까칠해졌다.
하지만 설열음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평소처럼 무감정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냥요.”
한데 마지막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카시아스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
“카시아스랑 조금 더 있고 싶어서? 그래서 내가 3회전에 나가길 바라는 겁니까?”
“……그래요.”
“하, 너무하네.”
이 여자도 제정신이 아니다.
자기가 고양이랑 더 있고 싶다고 목숨이 걸린 시합에 한 번 더 나가길 바라다니?
다운 타운은 제정신 박힌 인간이 올 곳이 못 된다.
“3회전은 나갈 건데, 달봉이는 이제 저한테 주시죠.”
“어차피 시합엔 데리고 나가지 못할 텐데, 제가 보살피고 있을게요.”
“싫어요.”
“지웅 씨 고양이도 아니잖아요.”
“제 고양이 맞아요.”
“아까는 모르는 고양이처럼 대했잖아요.”
“그때부터 제 고양이 삼기로 했어요.”
설열음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는 볼을 조금 부풀리고서 뭔가에 잔뜩 심통 난 아이 같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러다 작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다시 평상시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설열음이 카시아스를 내게 내밀었다.
“데려가세요.”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무감정한 태도로 돌아왔다.
난 카시아스를 넘겨받았다.
“건투를 빌게요. 전 이만.”
설열음이 차갑게 뒤돌아서 가버렸다.
카시아스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조금 더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봐서 뭐해, 이런 더러운 곳.]
[열폭하는 거냐?]
이 자식이 지금 열폭의 뜻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
열등감 폭발한다는 걸 열폭이라고 한다.
아주 잘못된 인터넷 용어다.
[내가 여기서 열폭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 그냥 다 짜증나. 이랑이가 여기에 와서 다친 것도, 그걸 보며 즐거워하는 거지 같은 인간들도.]
[그런 개인적인 감정들을 싹 지우고 보면 다운 타운은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다. 지상의 지구보다 훨씬 발달한 과학이 존재하고, 그것을 오로지 쾌락과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이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그게 기분 더럽다는 거야.]
[다운 타운을 알게 된 사람 중 십 퍼센트 정도는 너처럼 생각하겠지. 그리고 십 퍼센트는 기회의 땅이라 생각할 테고, 나머지는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할 거다.]
이 똥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뭔가 말이 좀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아.]
[아니, 이상해. 다운 타운을 알게 된 사람 중 십 퍼센트는 나처럼 불쾌해할 거라는 건 인정해. 대부분이 나이트의 자격으로 여기에 오게 된 이들이겠지. 그리고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녀석들은 필시 귀족이라 불리는 관객 놈들이겠지. 나처럼 나이트의 자격으로 온 게 아닐 테니 살판나겠지. 돈만 있으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욕구에 충실할 수 있는 곳이니. 그런데…… 이곳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한다는 건 무슨 말이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가 따져 물으니 카시아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가 시합에 나갔을 때 설열음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다운 타운 혹은 데스 파이트를 관리하고 있는 상부의 사람과 전화를 하는 것 같더군.]
[그런데?]
[설열음이 이런 말을 했다. ‘근 삼 개월간 귀족의 작위를 단 나이트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귀족의…… 작위를 단 나이트?]
[그래. 나이트들도 다운 타운에서 귀족이 되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야. 그게 돈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딱 봐도 다운 타운의 귀족들은 어마어마한 부호들이다.
그런 이들과 똑같은 귀족이 되어 면을 트고 지내게 된다면 그 인연 자체가 곧 엄청난 백이 될 것이다.
물론 귀족이 된 첫날부터 그럴 순 없겠지.
귀족 딱지를 달게 되는 순간 기회의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이고, 그 이후로 다른 귀족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좋은 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다시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어떠한 노력을 들이든 저들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인생이 달라질 건 분명했다.
[그래도 구역질 나는 곳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
[하지만 난 점점 더 흥미로워, 이곳이.]
[뭣 때문에?]
[과연 다운 타운은 인간의 변태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장소일까? 그 뛰어난 과학기술로 하는 짓거리가 고작 이거라고? 콜로세움은 다운 타운의 진짜 설립 목적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콜로세움 이면에 감춰진 다운 타운의 진짜 설립 목적이 뭔지, 그게 궁금해. 다운 타운을 만든 인간들은 무얼 하려는 것일까?]
카시아스가 그렇게 얘기하니 나도 의문이 들었다.
설열음은 여기는 콜로세움을 위해 만든 장소이고, 진정한 다운 타운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럼 그곳은 어떤 모습인 걸까.
그리고 거기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어떤 인간들이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지하 세계를 만든 것일까.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아까 내 대기실을 찾았던 진행 요원이었다.
그가 물었다.
“3회전에 출전하실 겁니까?”
“네.”
“따라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