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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50화 (50/153)

데일리 히어로 050화

서걱!

사시미가 넘어지는 순간 핵주먹이 뻗었던 왼팔의 살이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쫙 벌어졌다.

“으아아아악!”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졌다.

핵주먹은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객석에서는 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바로 그거야!”

“더! 더! 더어어어어!”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경기를 즐거운 유희거리로 여겼다.

사시미가 벌떡 일어나서 핵주먹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핵주먹은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인지 사시미의 단순한 공격을 막지 못했다.

푹!

사시미가 핵주먹의 복부를 뚫고 들어갔다.

이대로 나이트 사시미가 승리하는 것인가 싶었던 순간.

콱!

핵주먹이 남은 한 팔로 사시미의 목을 움켜쥐었다.

놀란 사시미가 핵주먹의 복부에서 칼을 뽑으려 했다.

그런데 뽑히지 않는 모양인지, 끙끙대며 애를 쓰고 있었다.

―근육에 힘을 주어 사시미를 물었군. 아무래도 일부러 복부를 내어준 모양이야.

카시아스가 대번에 상황을 간파했다.

그럼 처음부터 저걸 노리고서 칼을 맞은 거란 말이야?

핵주먹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사시미의 목을 쥔 핵주먹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럴수록 사시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크헥! 켁!”

사시미가 컥컥거리며 게거품을 물었다.

그의 동공이 풀리는가 싶더니 눈이 뒤로 까뒤집어졌다.

칼을 쥐고 있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기절한 것이다.

핵주먹은 사시미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콰앙!

“커헉!”

나이트 사시미가 고통에 정신을 차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복부에 사시미가 날아들어 꽂혔다.

푹!

“아악!”

핵주먹이 자신의 복부에서 뽑은 사시미를 꽂아 넣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뽑아 그의 오른손 팔꿈치에 사시미를 쑤신 뒤, 손목까지 쫙 내리그었다.

“으아아아악!”

사시미는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오른팔을 움켜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핵주먹이 그의 머리를 발로 세게 후려쳤다.

퍼어억!

“컥!”

사시미의 눈이 휙 돌아가며 대자로 널브러졌다.

몸을 파르르 떨다가 축 처지는 것이 다시 기절했거나 죽은 것 같다.

그때 사회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이트 사시미, 전투 불가. 나이트 핵주먹의 승리입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희비가 갈렸다.

핵주먹에게 건 사람들은 환호하고 사시미에게 건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

경기장에 쓰러진 사시미에게 진행 요원인 듯 보이는 사람이 다가가 맥을 짚었다.

그러더니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모아 오케이 사인을 어딘가로 보냈다.

―나이트 사시미의 숨이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많은 금액을 배팅한 귀족분께 드리겠습니다.

다시 경기장에 들것을 든 두 명의 진행 요원이 들어와 기절한 사시미를 실어 경기장 동문으로 빠져나갔다.

핵주먹은 상처 난 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이 나왔던 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갖고 곧 1회전 제2시합이 시작되겠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싸움이 끝났다.

이랑이의 싸움

첫 번째 경기 이후 순식간에 세 경기가 치러졌다.

그중 두 경기에서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귀족’이라 불리는 관중들은 사람이 죽었을 때 더욱 큰 환호성을 보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경기를 치르러 다시 두 사람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거구의 백인이었다.

금발에 벽안이었고,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에 청바지와 하얀 티를 입고 있었다.

그는 양손에 짧은 단도를 한 자루씩 들었다.

사회자는 그를 나이트 블레이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상대로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이랑이였다.

이랑이의 닉네임은 나이트 핸섬.

대충 자기가 아는 영어 단어 중 괜찮은 것 하나를 말한 듯한 느낌이다.

닉네임이야 어찌 되었든 좋다.

‘이겨라, 꼭.’

난 처음 다운 타운에 왔을 때보다 지금 더 이랑이가 걱정되었다.

데스 파이트에 출전한 인간들은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 같은 녀석들이 출전해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개중엔 오로지 싸움의 쾌락을 즐기는 듯한 인간도 있었다.

이곳은 싸우다 사람을 죽여도 법의 제지를 받지 않는다.

살육에 미친 놈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지구에 제법 강한 인간들이 많이 숨어 있었군.]

카시아스의 말이었다.

[그러게. 나도 놀랐어. 난 오로지 이랑이만 좀 특이할 거라 생각했는데.]

극천무라는 고유의 전통 무술을 일인전승 받은 이랑이는 어지간한 사람에게는 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만날 싸움만 해대는 깡패들도 이랑이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데스 파이트에 출전한 인간들의 수준은 전부 이랑이와 엇비슷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더 강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과연 나이트 블레이드란 백인은 어떨지…….

[시작한다.]

카시아스의 한마디가 잡념을 털어내고 모니터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이랑이는 크게 긴장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양손을 탁탁 털었다.

반면 나이트 블레이드는 목석처럼 가만히 서서 이랑이를 바라보았다.

“이랑아, 제발 진지하게 싸워라.”

나처럼 이랑이도 대기실에서 지금까지의 전투를 모니터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전혀 긴장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강하거나, 자만했거나, 단순히 철이 없거나 셋 중 하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랑이가 여기 출전한 다른 나이트들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이랑이가 망설임 없이 블레이드에게 달려갔다.

블레이드는 단검을 든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자세로 그런 이랑이를 쏘아보았다.

이랑이가 블레이드의 앞에서 땅을 박차고 뛰어오를 듯하다가 갑자기 자세를 낮춰 하복부로 파고들었다.

속임수를 쓴 거다.

화면에 크게 잡힌 블레이드의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이랑이가 뛰어오를 줄 알고 미리 시선을 움직인 것이다.

‘통했나?’

이랑이의 주먹이 블레이드의 낭심을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그래, 이건 개싸움이야. 치사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까 버려!’

일단 이겨야 한다.

패자는 말이 없다.

이긴 자만이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위로 향하던 블레이드의 눈이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동시에 그가 무릎을 들어 올렸다.

뻐억!

“……!”

이랑이가 안면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이랑이의 상체가 뒤로 확 젖혀졌다. 다행히도 녀석은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블레이드의 단검 두 자루가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이랑이는 아슬아슬하게 블레이드의 공격을 피했다.

어찌나 간발의 차로 피하는지 보는 내 심장이 연신 덜컹거렸다.

계속된 공격에, 방어에 치중하던 이랑이가 반격을 시도했다.

블레이드의 단검 공격이 잠시 주춤하는 틈을 타 물 찬 제비처럼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장심을 올려 쳐 블레이드의 턱을 노렸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목을 뒤로 젖혀 이를 피했다.

이랑이는 빗나간 공격에 아쉬워하지 않고 바로 연계기에 들어갔다.

몸을 바짝 낮추고 오른발을 길게 뻗어 왼발을 축으로 바닥을 쓸었다.

블레이드가 낮게 점프해 그것을 피하는 순간, 몸을 한 바퀴 빙 돌리며 일어난 이랑이가 강력한 킥을 날렸다.

퍼억!

블레이드는 미처 그 공격까지는 피하지 못하고서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콰당!

옆으로 죽 날아간 블레이드는 바닥을 굴렀다.

녀석은 벌떡 일어나 단검 두 자루를 다시 고쳐 쥐었다.

그런데…… 놈의 단검 하나에 피와 흙이 묻어 있었다.

카메라가 이랑이의 모습을 잡았다.

이랑이가 오른쪽 종아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블레이드가 이랑이의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반격을 가한 것이다.

한데 그 반격이 너무 셌다.

살을 주고 뼈를 친 격이다.

블레이드는 이랑이에게 맞은 옆구리를 꾹 누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골절상을 입은 모양이다.

몸을 꼿꼿하게 펴지 못하고서 왼쪽으로 지나치게 구부린 것이, 고통이 제법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랑이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살을 깊게 찔린 채 베인 건지 피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랑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미소와 여유도 사라졌다.

반면 블레이드는 고통을 참고 있긴 했으나 아직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다리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이랑이 대신 블레이드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귀족들은 거센 함성을 질러댔다.

개중에는 대놓고 이랑이를 죽이라 소리치는 귀족도 많았다.

까드득!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신 차려, 이랑아.”

블레이드가 이랑이의 근처까지 다가와 섰다.

그가 왼손의 단검을 역수로 쥐어, 허벅지에 딱 붙였다. 오른손은 단검을 엄지, 검지, 중지로만 잡아서 앞으로 내밀었다.

자세가 마치 다트를 던지려는 사람 같았다.

이랑이의 눈이 블레이드가 내민 단검에 집중되었다.

순간, 난 그게 속임수임을 깨달았다.

“그게 아니야, 이랑아!”

벼락처럼 튀어나간 내 외침과 함께 블레이드의 양손이 교묘하게 움직였다.

블레이드는 오른손을 터는 척하며 왼손을 들어 올려 단검을 날렸다.

이어 한 바퀴를 빠르게 돌면서 오른손의 단검도 집어 던졌다.

이랑이는 당황한 듯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서 조금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먼저 던진 단검은 무사히 흘려보냈고, 두 번째 던진 단검엔 귓불이 잘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이어 단검 두 자루가 더 날아들었다.

블레이드가 허리춤에 숨기고 있던 단검들을 더 뽑아 연이어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랑이는 단검이 두 개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미처 그다음에 날아들 단검에 대비하지 못했을 테고, 그 결과는…….

푸푹!

“으아아아아아아악!”

처참했다.

“이랑아!”

난 모니터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이랑이가 어깨와 복부에 단검을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꼭 거짓 같았다.

아니,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너부러진 이랑이의 모습은 명확한 현실이었다.

블레이드가 괴로워하는 이랑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랑이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는 블레이드의 눈동자는 지독하게 무감정했다.

그가 이랑이에게 말했다.

“패배를 인정해라. 네 목숨을 소중히 하고 싶다면.”

“…….”

이랑이가 말없이 블레이드를 노려봤다.

“애초에 너와 난 무게가 다르다. 장난처럼 데스 파이트에 출전한 네 녀석과는 짊어진 삶의 고통이 다르단 말이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이랑이는 이를 악물고서 블레이드를 쏘아봤다.

“……까지마.”

“뭐?”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씨발!”

이랑이가 허리를 탕 튕겼다.

누워 있던 그의 몸이 용수철처럼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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