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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8화 (48/153)

데일리 히어로 048화

“네.”

“데스 파이트에 참가 신청 하실 건가요?”

“네.”

“확답을 주신 이상 번복은 불가능해요.”

“번복 안 합니다.”

“곧 모시러 갈게요.”

뚝―

통화는 아주 간결하게 끝났다.

너무 간단해서 정말로 참가 신청이 된 건가 싶었다.

“지웅아…… 너…….”

아랑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서 입만 뻥긋거렸다.

무천도사는 석상이라도 된 것마냥 굳어 버렸다.

세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게 오가는 대화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중, 검은색 재킷, 검은색 가죽 바지로 무장을 한 여인이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블랙 카드를 건넨 설열음이었다.

“…….”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안 거지?

이건 무천도사가 날 추천한 이후부터, 데스 파이트 주최자들이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같이 가시죠, 지웅 씨.”

대단히 불쾌했지만 어쨌든 가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난 대답 없이 일어섰다.

그러자 부드럽고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랑이었다.

“지웅아.”

그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난 애써 미소 지으며 아랑이를 달랬다.

“괜찮아, 아랑아. 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해.”

“하지만…….”

“꼭, 이랑이랑 무사히 돌아올게.”

솔직히 아랑이의 손을 놓기 싫었다.

하지만 난 억지로 이를 뿌리쳤다.

“그럼 가볼까요?”

설열음이 앞장섰고, 난 그 뒤를 따랐다.

내 뒤로 무천도사의 깊은 한숨이 느껴졌다.

* * *

설열음은 날 바이크 뒤에 태우고 인적이 없는 시골 마을의 숲 초입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바이크에서 내리자마자 500원짜리 동전만 한 육각형의 납작한 유리 펜던트를 꺼내 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뭡니까?”

내 물음에 설열음이 되물었다.

“지웅 씨는 지구의 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그다지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모르는 건 죄예요.”

“네?”

“아는 건 힘이 되죠.”

설열음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얼굴에 표정이란 게 전혀 존재치 않는다.

툭툭 던지듯이 내뱉는 말투와 억양이 없는 목소리 역시 감정이 조금도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마네킹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미 지구의 과학은 인간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있어요. 최근 뉴스에서 투명 망토를 개발했다는 기사를 접했을 거예요. 하지만 투명 망토는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었어요. 그것을 개발한 회사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쳤을 뿐이죠.”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죠?”

“공간 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미국 물리학자 한 명이 광자를 두 개로 분리시키고 두 광자 사이에 벽을 두었죠. 그리고 한쪽 광자에다가 원자 상태의 물질 데이터를 넣자 벽 너머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어요.”

……무슨 얘기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의 현상을 가지고 공간 이동 기술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건 무리가 있겠죠. 많이 접근하긴 했으나 새 발의 피예요. 그러나 크레용이란 회사는 이 공간 이동 기술을 이미 한 세기 전에 발명했고, 은밀하게 사용해 왔어요.”

“지금…… 저한테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설열음은 내 물음에 뚱딴지같은 대답을 했다.

“버뮤다 삼각지대 아시죠?”

“알아요.”

“그게 왜 생겼을까요? 그냥 자연적으로? 아니에요.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기현상, 초자연적 현상에는 이유가 있어요. 버뮤다 삼각지대는 크레용 사가 공간 이동 실험을 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공간의 균열이 일어난 지역이에요. 그래서 그곳에 잘못 접근해 버린 모든 것들이 어딘지도 모를 이상한 공간으로 가버리게 되는 거죠.”

이걸 지금 믿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설열음은 의심 가득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믿어도 돼요. 크레용 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곳이에요. 어린이들이 크레용으로 장난처럼 그린 꿈같은 일들을 실현시켜 주는 회사죠.”

그래서 이름을 크레용이라고 지은 거야?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설열음이 왜 자꾸 나한테 허무맹랑한 과학 기술들에 대해 어필하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마치 이런 내 생각을 다 읽은 것처럼 말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포털을 이용하면 대부분 패닉에 빠지더라구요.”

포털?

블랙 카드에 그것은 다운 타운으로 진입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포털이에요.”

설열음이 들고 있던 펜던트를 살짝 흔들었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공간 이동 해서 다운 타운으로 진입할 거예요.”

“……네?”

“익숙해지기 전까진 심각한 멀미가 동반되니 알고 계세요.”

“잠깐만요, 지금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그때 머릿속에서 카시아스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재미있겠군. 이건 마치 텔레포트 마법과 비슷해.]

[뭐야, 너. 같이 간다고 하더니 꽁무니 뺀 줄 알았잖아. 어떻게 따라왔어?]

[바이크 뒤에 타고 왔다.]

[그보다 지금 정신없으니까 말 걸지 마.]

[싫다.]

카시아스가 단호하게 의사표명을 함과 동시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옹~”

“고양이?”

설열음이 내 뒤편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투명화 마법을 해제한 카시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폴짝!

카시아스는 내 어깨에 폴짝 뛰어올라 머리를 내 뺨에 마구 비벼대며 울었다.

“냐옹~”

“당신을 좋아하는 모양이군요.”

“이 고양이가요? 설마요.”

카시아스는 더욱더 격하게 머리를 비벼댔다.

가증스러운 자식.

“그곳에 고양이가 가도 될까요?”

“네, 크게 상관없을 거예요.”

……뭐지?

카시아스를 보는 설열음의 눈동자가 무지하게 흔들리고 있다.

혹시 이 여자, 고양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가?

그나저나 카시아스 이놈은 그냥 얌전히 따라오면 되지, 왜 모습을 드러내고 난리야?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몰래 합승할 경우 저 포털이라는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어쩔 거냐?]

[설마.]

[공간 이동이라는 건 아주 예민한 기술이다. 마법사들도 백에 하나가 다룰까 말까 한 것이 바로 이 공간 이동 마법이지. 지금 저 여자는 너와 자기 자신만을 대상으로 한 포털을 열려 했겠지. 그런데 거기에 내가 무임승차하면 탑승 질량이 사전 정보와 달라져 포털이 오작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확실해?]

[내 가설이지만 맞을 거다.]

카시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열음이 펜던트를 손에 쥐고서 카시아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양이가 추가되었으니 정보를 재입력해야겠네요.”

정말이었네.

[거봐라.]

“이제 됐어요. 포털을 열게요.”

설열음이 육각 모양 펜던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펜던트에서 푸른빛이 쏘아져 나갔고, 그것은…… 공간을 찢었다.

이렇게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푸른빛이 마치 용접 불처럼 허공을 길게 찢었고, 찢긴 공간은 양옆으로 쫙 벌어져 시커먼 속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게 기이한 게, 앞에서 보면 분명 찢긴 공간이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이런 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네가 날 만난 건 가능한 이야기냐?]

카시아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딴지를 걸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더 복잡해져요. 그냥 이 포털로 들어가면 다크 타운으로 진입한다. 그것만 알고서 들어가세요.”

“알았어.”

나 역시 더 이상 머리 복잡해지는 건 사양이다.

“내가 먼저 들어가요?”

“제가 먼저 들어갈까요?”

“음…….”

내가 망설이자 설열음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뭡니까?”

“혼자 들어가는 게 무서우신 거죠? 그럼 같이 들어가요.”

설열음이 날 포털로 잡아끌었다.

“자, 잠깐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내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난 포털 속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포털에 들어서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다.

찢겨진 검은 공간 너머로 보이는 현실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벌어진 균열은 빠르게 닫혔다.

그 광경은 마치 거인의 눈이 감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데스 파이트

단순히 심한 멀미 정도가 아니었다.

어둠이 사위를 지배하는 순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아찔함이 이어졌다.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으으윽.”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을 토했다.

찰나간의 고통이 지나가고 닫혔던 공간의 문이 다시 열렸다.

여전히 난 설열음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정신없어하는 날, 설열음이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약해 빠진 놈.]

카시아스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 어깨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카시아스를 상대해 줄 정신은 없었다.

“하…….”

포털은 정말 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다.

사위는 더 이상 숲이 아니었다.

발밑엔 흙 대신 강철 바닥이 깔려 있었고 저 멀리 커다란 돔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외관은 흡사 야구 경기장 같은 모양이었다.

그 외에 이렇다 할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넓은 황무지 위에 저 건물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위에서 우리처럼 포털을 타고 와 다운 타운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기 집 드나들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나처럼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이들도 몇 보였다.

아마 데스 파이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다운 타운에 발을 들인 나이트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하늘이 있어?”

다운 타운은 지하에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했었는데, 어째서 하늘이 있는 걸까?

설열음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진짜 하늘이 아니에요. 홀로그램이죠.”

“홀로그램?”

“시각을 속여 환상을 보게 해주는 기술이라고 하면 이해하겠어요?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이래서 모르는 게 죄라는 거예요.”

아무튼 진짜 하늘이 아니라 이거군.

“그럼 저 위엔 뭐가 있는 겁니까?”

설열음이 발을 한 번 탁 굴렀다.

“이것과 같은 강철이죠. 지반을 받쳐야 이 공간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 넓은 공간도 기본적으로 돔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야구 경기장 같은 돔이 새끼 돔이라면 그것을 품은 다운 타운은 어미 돔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짜 하늘이 존재하니 어마어마하게 넓은 경기장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운 타운은 이게 전부입니까?”

“아니요. 여기는 데스 파이트를 치르기 위한 장소일 뿐이에요. 다운 타운의 간부와 시민들이 사는 마을은 따로 있어요. 정확하게 얘기해 드리죠. 이곳의 지명은 3구역. 2구역은 시민들이 사는 마을이고 1구역은 간부들이 사는 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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