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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7화 (47/153)

데일리 히어로 047화

무천도사가 내게 바라는 것.

“만약 이랑이가 노예가 된다면, 제가 데스 파이트에 나가 세이브 카드를 획득하길 바라는 거군요.”

“…….”

무천도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만,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이었다.

“너무…… 너무 위험해요. 위험한 일이에요. 지웅아, 하지 마.”

아랑이는 거의 사정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아랑이에게 대답하지 않고 무천도사에게 물었다.

“이랑이가 언제 사라졌죠?”

“새벽 여섯 시. 그 시간이면 늘 조깅을 나가니, 그런가 보다 했지. 한데 수련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장에 오지 않아서 녀석의 방에 가봤더니…… 블랙 카드가 있었네.”

“이랑이가 다운 타운으로 간 게 확실해요?”

그러자 아랑이가 끼어들었다.

“이랑이는 전부터 다운 타운에 너무 가고 싶어 했어. 할아버지는 이랑이의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면서 당장은 꿈도 꾸지 말라 하셨었고.…… 게다가 이랑이가 내 전화를 이렇게까지 안 받은 적은 처음이야.”

“그래도 그렇지 아직 확실한 정황도 모르는데…….”

“아니.”

무천도사가 내 말을 끊었다.

“확실한 정황은 있지.”

무천도사의 손엔 어느새 스마트 폰과 이랑이가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 카드가 들려 있었다.

무천도사는 스마트 폰으로 카드에 적힌 번호를 찍었다.

그리고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마트 폰에서 많이 듣던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므로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결번이라고?

무천도사가 착잡한 음성을 토해냈다.

“블랙카드를 받은 이가 커플러에게 연락을 취해 다운 타운으로 향한 경우, 여기 적힌 번호는 사라져 버리지. 이랑이는 다운 타운으로 간 거야.”

“이랑아…….”

결국 아랑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난 이 상황이 점점 답답해졌다.

“무천도사님.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무언가?”

“애초에 왜 이랑이에게 다운 타운에 대해 언급하신 겁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랑이가 데스 파이트를 선망하지도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건…… 이랑이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그 녀석은 데스 파이트에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끓는 피를 주체 못하고서 동경해 버리고 말았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이랑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니요?”

“내가 젊은 시절 데스 파이트에 나갔었던 건 알고 있는가?”

“네, 아랑이한테 들었어요.”

“난 거기서 총 다섯 번의 시합을 했지. 그중 네 번을 이기고 마지막 시합에서 지고 말았네. 당시 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어. 지금의 이랑이처럼. 그래서 세 번의 시합에서 이겼을 당시 세이브 카드 대신 돈을 선택했지. 때문에 싸움에서 패하고 난 뒤엔 영락없이 노예가 될 판이었어.”

무천도사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았다.

그의 음성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지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한데 날 가지게 된 도박꾼…… 그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서양인이었지. 아무튼, 그 제임스가 제안을 하나 했다네. 내 운명을 후세에게 맡겨보지 않겠느냐고. 받아들인다면 노예로 삼지 않을 테니, 지상으로 올라가면 두 번 다시 이곳에 발 들이지 말고 후세 양성에 힘쓰라고 말일세.”

무천도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빙빙 돌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그저 비참하게 노예로 살다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그만 그러겠다 하고 말았지. 집으로 돌아온 뒤엔 지금껏 그곳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어. 참을 수 없는 패배감과 죄의식에 술을 먹고서 친구들에게 그곳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곤 했지. 하지만 하나같이 나를 주정뱅이, 혹은 정신병자 취급할 뿐이었어. 아무도 믿지 않았지. 다운 타운의 사람들도 내 입을 단속하려 들지 않았어. 어차피 믿을 이가 없다는 걸 아는 거지.”

한참 무천도사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는 와중.

[그것 참, 흥미롭군.]

잊고 있었던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로 말을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도장 안에 카시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다.

[숨어서 뭐하는 짓이야? 도둑고양이냐?]

[똥고양이보다는 낫네. 고맙다.]

뭐야? 그런 말을 맘속에 담아두고 있었어? 참 속도 좁다.

[아무튼 지금 무천도사님 얘기 들어야 하니까 조용해.]

[다운 타운이라는 곳, 제법 가고 싶어져.]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은근슬쩍 말을 건 이유가 되도록 데스 파이트에 참가했으면 하는 희망 사항을 내비친 거지?

무천도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당시 내겐 아들이 하나 있었네.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녀석이었지.”

그 아이는 당연히 아랑이의 아버지일 테지.

“나는 녀석에게 극천무를 전승할 수 없었어. 데스 파이트 참가자 모집은 기본적으로 추천 제도이긴 하지만,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서, 참가할 자격이 안 될 경우 거절당하지.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사람을 추천한 당사자에게 ‘사고’를 입힌다네.”

“사고라니요?”

“정확히 말하자면 사고로 위장한 형벌이지. 사지 중 하나를 평생 못쓰게 해서 불구로 만들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죽이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 아랑이 아버지께 극천무를 전수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렇지. 날 풀어준 당사자가 후세에게 운명을 걸어보자고 했으나 약한 사람을 추천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한데 이랑이한테는 극천무를 전수하셨잖아요.”

그 질문에 무천도사의 미간이 깊이 패었다.

무천도사는 또다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얘기해주겠네. 목이 많이 타는군.”

* * *

우리는 무천도사의 차를 타고 나와 카페에 들어섰다.

집 안에서는 아랑이의 부모님이 혹시나 들을까 싶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천도사는 앞에 놓인 녹차 한 모금으로 입술을 축였다.

“후우. 참으로 내가 미련했던 게지. 다 내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인 거야.”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그러세요?”

“난 내 핏줄들이 고통 받지 않길 바랐지. 한데 그 반면 극천무가 이대로 실전되어 버리는 것 역시 원치 않았어. 핏줄의 안녕과 극천무의 실전 사이에서 고민하던 난, 결국 이랑이에게 극천무를 일인전승 하기로 마음먹었네. 하나, 그렇게 될 경우 제임스가 이랑이를 데스 파이트에 추천할 수도 있으니, 늘 이랑이에게 데스 파이트와 다운 타운의 위험성에 대해서 강조했지.”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되어 버린 거군요.”

“그렇지. 이랑이는 다운 타운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동경해 버리고 말았다네. 결국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발 이랑이에게 블랙 카드가 오지 않길 비는 것과 녀석을 계속해서 강하게 성장시키는 것뿐이었지.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구만. 모든 건 내 탓이야.”

모든 것을 털어놓은 무천도사의 얼굴은 그새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제임스라고 했었나?’

그 인간은 진정한 악질이다.

사실 이건 조금 냉정하게 말해보자면 무천도사 한 명만 괴롭고 끝날 일이었다.

한데 그는 무천도사를 비롯해서 그의 후손들까지 괴롭혔다.

무천도사는 다운 타운에서 돌아온 이후 여태껏 걱정과 경계 속에 살아왔다. 만약 이랑이가 오늘 블랙 카드를 받지 못했으며, 다운 타운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무천도사의 여생은 여전히 걱정과 경계로 점철될 것이 뻔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편히 눈감지 못하겠지.

한마디로 이래도 저래도 무천도사의 삶은 가시밭길이 되고 만다.

제임스는 무천도사를 살려준 게 아니라, 더한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결국 제임스는 이랑이의 존재를 알아챘고, 그를 데스 파이트의 나이트로 추천한 거네요.”

“그렇지. 강요는 하지 않겠네, 지웅 청년. 아니, 그럴 염치도 없지. 사실 내가 다운 타운에 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이미 난 두 번 다시 그곳에 발 디딜 수 없는 몸.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네를 나이트로 추천했네. 미안하이.”

무천도사는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안 가면 그만인 거니까.”

“……그렇지.”

그때 카시아스가 말을 걸었다.

[안 갈 생각이냐?]

[그건 왜 물어?]

[다운 타운이라는 곳, 호기심이 생긴다. 가라.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직접 봐야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구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군.]

[네가 가라고 하면 가야 돼?]

[그래.]

너무 당연하게 말하니까 화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데스 파이트에 나갔다가 잘못되면?]

[그럼 이랑이가 잘못되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네가 위험하게 된다면 내 힘으로 어떻게든 탈출하게 해줄 테니 걱정 마라.]

카시아스는 너무나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런 카시아스의 말에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스스로 대마법사라고 하는 만큼 위기에서 날 구해줄 정도의 능력은 확실히 있는 거겠지.

그래, 결정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무천도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궁금한가?”

“추천은 어떤 시스템으로 하는 거예요?”

“그건 데스 파이트에서 한 번의 승리를 거두고 복귀할 경우, 주최 측에서 알려줄 거네.”

타인에게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그 방법이 뭔지 알려줄 수 없다는 거죠?”

“그렇지.”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서요. 데스 파이트에서 승리하고 들어야겠어요.”

“지웅아!”

“……진심인가?”

아랑이와 무천도사가 동시에 말했다.

“진심입니다.”

“지웅아, 무슨 말이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충분히 얘기 들었잖아.”

아랑이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감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지금은 이런 감정에 빠질 때가 아니겠지.

“그래서 더 안 갈 수가 없어. 만약 이랑이가 잘못되면?”

난 다운 타운이 어떤 곳인지, 데스 파이트에 출전한 선수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천도사가 저토록 걱정하는 것을 보면 이랑이의 수준으로 참가했다간 십중팔구 화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한 모양이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울러 카시아스도 내가 다운 타운으로 향하길 원한다.

최악의 경우 카시아스라는 보험을 믿으면 된다.

녀석은 나와 이랑이의 안전을 보장해 줄 테니.

“…….”

아랑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랑이도 나도 전부 다 걱정될 테지.

칼을 뽑았을 때 바로 휘둘러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난 블랙 카드를 꺼내 그곳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딱 한 번 울렸을 때, 바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설열음이에요. 지웅 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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