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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4화 (44/153)

데일리 히어로 044화

투명화한 상태로 내 책상에 올라와 있는 카시아스가 말했다.

“문제를 푸는 시늉이라도 해보지 그러냐.”

“의미 없는 짓이야.”

오히려 내게 의미 있는 건 그동안 모은 링크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나흘 동안 난 53링크를 더 모았다.

한 방 크게 선행을 쌓을 만한 꺼리가 없었기에,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다 줍고, 동네 개똥도 내가 다 치웠다.

누군가 무거운 걸 들고 가면 무조건 들어줬다.

한데 이런 경우 자기 물건을 들고 튀려는 거 아니냐며 의심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오명까지 얻어가면서도 난 선행을 그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모은 링크는 총 254였다.

‘이렇게는 안 돼. 아무래도 뭔가 수를 내야겠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행을 쌓아 링크를 얻기 가장 쉬운 건 동영상을 촬영해 업로드시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 선행을 일부러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올려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영 골머리 썩는 문제다.

내가 머리를 움켜쥐고 고민하는 사이, 시험 감독관이 시험지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내게 의미 없는 수능이 시작되었다.

* * *

수능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수능이 다섯 시에 끝나 겨우 편의점 알바 시간대에 맞출 수 있었다.

열 시가 되어 유주 누나와 알바를 교대하고 아버지 식당으로 갔다.

닭발 옆차기는 오늘도 만원이었다.

오일 닭발에 푹 빠진 손님들이 술과 함께 그 맛을 즐기며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지웅아! 서빙!”

“네!”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서빙을 했다.

정신없이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새벽 세 시가 되었다.

알바생들과 주방 보조 아주머니, 상덕이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아버지와 식당 내부를 청소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간이 새벽 다섯 시.

누나와 엄마는 당연히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두 사람 다 거실에서 뜬눈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난 이게 뭔 상황인지 몰라 눈만 꿈뻑거렸다.

“엄마, 왜 안 잤어?”

“지나야, 너 왜 일어나 있어? 더 푹 자야 회사 나가서 안 졸지.”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는 누나에게 물었다.

모녀는 시선을 교환하더니 씩 웃고서 거실 중앙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엔 큰 상이 놓여 있었다.

상 위엔 위에 갖가지 요리와 초가 하나 꽂힌 케이크가 보였다.

“웬 케이크?”

“오늘 울 엄마 다시 태어난 날이거든.”

“뭐?”

아빠와 내가 엄마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엄마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글썽이더니 한 손으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설마……?’

엄마가 울음을 참느라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겨우 열었다.

“지웅아, 여보. 나 이제 괜찮대. 백혈구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대! 골수 이식 안 받아도 살 수 있대!”

“뭐, 뭐? 그게 정말이야, 당신?”

“정말이야! 정말이라고!”

“우와아아아아아아!”

아버지가 엄마를 얼싸안았다.

나도 누나와 진하게 포옹을 했다.

“병원에서는 나더러 기적을 경험했대! 이런 경우는 처음이래! 나 살았어, 여보! 얘들아, 엄마 이제 살았어!”

“축하해, 엄마!”

“고마워, 지웅아!”

“흐으윽! 크흑!”

갑자기 울음이 왈칵 터졌다.

매일 아침마다 엄마에게 전이시킨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을 비욘드 텅으로 강화시킨 보람이 있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엄마의 말이 맞다.

우리 가족은 지금 기적을 체험하고 있었다.

“나 오늘 잠 안 자! 밤새 술 마시고 일 나갈 거야!”

“아버지! 나도 오늘 학교 안 갈 거예요!”

“넌 어차피 수능 쳐서 안 나가도 상관없잖아!”

“누나도 직장 나가지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미친놈아! 흐이이이이잉~!”

결국 누나도 눈물이 터졌다.

우리 가족은 서로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11월의 셋째 주 목요일.

그날은 수능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카시아스.

* * *

요즘 우리 집은 축제 분위기다.

엄마의 병이 거의 다 나아서 가족 모두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오늘은 일요일.

편의점 알바를 쉬는 날이다.

그리고 내가 아랑이네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하다.

아랑이의 집이 어딘지를 모르니, 일단 늘 그렇듯 조각 공원에서 만나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발걸음도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흠흠흠~”

내 어깨에 올라탄 카시아스는 내 콧노래를 듣고 짧은 감상을 말했다.

“가창력을 높여주는 영혼이 있다면 반드시 사라.”

“흠! 흠흠흠~! 흠흠흠흠!”

“유치한 놈.”

맘대로 떠들어라.

난 오늘 기분 최고다.

어째 모든 일이 다 술술 잘 풀리는 것만 같다.

약속 시간은 오전 열한 시.

그런데 약속 시간보다 좀 빨리 나와서 조각 공원까지 걸어가는 중이다.

50분 정도 걸었더니 조각 공원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목적지에 도착이다.

그런데.

부다다다다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뿌리며 저 멀리서부터 검은 바이크 한 대가 달려왔다.

난 그 바이크를 그냥 한 번 슬쩍 보고 말았다.

한데 바이크가 내 앞에 섰다.

바이크를 모는 사람은 가죽 바지와 라이더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아래위로 전부 검은색이었고 심지어 부츠와 헬멧까지 검은색, 즉 올 블랙이었다.

그가 헬멧을 벗었다.

순간 헬멧 안에 감추어져 있던 붉은 장발이 촤르르륵 쏟아져 내렸다.

‘여자?’

자세히 보니 의상 밖으로 드러난 몸매가 남성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과 엉덩이가 나오고 허리는 잘록 들어갔으며 팔은 얇은데 허벅지는 또 적당히 굵다.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스캔하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여인은 헬멧을 핸들에 걸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저요? 저한테 주는 건가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검은색 직사각형의 카드 봉투였다.

난 얼떨떨해하며 그것을 넘겨받았다.

그와 동시에 여인은 다시 헬멧을 쓰고 브레이크를 잡은 채, 핸들을 당겼다.

부다다다다다!

엔진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지만 바이크는 출발하지 않았다.

마침 신호등이 보행 신호로 바뀌었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반대 쪽으로 건너가 버리는 바람에 이제 여인과 나 둘만 서 있게 되었다.

여인이 헬멧의 고글을 살짝 열고 말했다.

“저는 설열음이라고 해요.”

“설…… 여름?”

여인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열. 음. 열음.”

“열…… 음?”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설열음이라니, 참 특이했다.

“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시고, 입맛이 동한다면 안에 적힌 번호로 연락 주세요.”

자신을 설열음이라 밝힌 여인은 고글을 내리고 핸들을 당겼다.

부다다다다다다!

바이크가 빠르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던 것뿐인데 특이한 여인이 접촉해 오더니 검은 카드 봉투를 건네고 갔다.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이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려던 걸 잘못 건넨 거 아니야?

“빨리 열어봐.”

카시아스가 재촉했다.

“응.”

난 검은 봉투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검은색 카드가 나왔다.

카드엔 빨간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To. 유지웅 님

뭐야, 이거. 기분 나쁘게.

난 그 밑의 내용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천도사의 고백

내 손에 쥐어진 블랙 카드의 내용을 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았다.

To. 유지웅 님.

안녕하세요, 유지웅 님.

전 다운 타운(Down Town)의 커플러(coupler : 연결자) 설열음이라 해요.

당신을 다운 타운의 명예로운 나이트(Knight)로 초대하는 바이니, 심사숙고하여 연락 주시기 바라요.

*다운 타운이란?

지구의 지하에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하며, 크레용(Crayon) 사(社)에서 만든 포털(Portal)을 통해서만 진입 가능하다.

*나이트란?

다운 타운에서 데스 파이트(Death Fight)를 펼치는 기사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010―4X27―372X

“……하.”

한숨밖에 안 나온다.

대체 이게 다 뭘까?

‘장난 친 건가?’

하지만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장난 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게다가 카드엔 내 이름도 적혀 있다.

날 아는 사람 중엔 이런 식의 장난을 즐기는 이가 한 명도 없다.

‘전화를 걸어봐?’

전화를 걸면 그다음엔 어쩌라는 건지도 사실 모르겠다.

내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천사가…… 아니, 아랑이가 앞에 서 있었다.

“지웅아~ 안녕?”

“어…… 아랑아, 안녕.”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불러도 못 들어?”

“나 불렀었어?”

“그래~! 길 건너편에서 신호 바뀌었길래 빨리 오라고 불렀는데, 완전 쌩~ 이더라?”

“아, 미안.”

“근데 그거 뭐야?”

아랑이가 내 손에 들린 카드를 살폈다.

“다운 타운의 커플러…… 설열음…… 다운 타운?!”

카드에 적힌 내용을 읽던 아랑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래, 아랑아?”

“나…… 여기 뭐하는 곳인지 알아.”

“안다고? 네가 어떻게?”

아랑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다녀왔던 곳이야.”

“……어?”

무천도사가 다녀왔던 곳이라고?

“지금은 가지 않는 것 같지만 젊은 시절 자주 오가셨다고 했었어. 우리 할아버지 만났을 때 기억나?”

“응, 기억나.”

“그때 이랑이가 할아버지한테 했던 말도 기억나?”

이랑이가 무천도사한테 했던 말?

뭐더라?

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렇게 오래됐던 일은 아닌지라 당시 이랑이가 뭔가 허둥거리며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어 녀석이 했던 말도 생생하게 리플레이 되었다.

‘저기, 할아버지! 혹시 지웅이 형한테 그 일…… 시키려는 건 아니지?’

그래, 나도 당시 이랑이가 말하는 ‘그 일’이라는 게 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랑이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갔었다.

“아랑아. 이랑이가 말했던 그 일이라는 게 혹시 이거야?”

“맞아. 할아버지가 널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할아버지는 뼛속까지 무인이셔. 그래서 이랑이도 강하게 키우려 하고 있고. 이랑이가 극천무를 일인전승 받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는 강하지만 아직 할아버지 눈에 찰 정도는 아니거든.”

그런데 나는 눈에 찼다는 거지, 지금?

“그래서 날 마음에 들어 한 거랑, 다운 타운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사실…… 이랑이는 다운 타운에 너무 가고 싶어 해. 그런데 거기는 정말 위험한 곳이거든. 그래서 할아버지는 늘 불안한 거야. 이랑이가 멋대로 다운 타운에 가서 잘못될까봐. 물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는 했지만…… 아무튼 할아버지는 그런 이랑이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셨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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