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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1화 (41/153)

데일리 히어로 041화

퍼석!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힘을 잃고 쓰러져 작은 경련을 일으키다가 굳었다.

그 사이 세 마리의 좀비가 지척에 다다랐다.

한 놈은 낭아권으로 대가리를 아작 내고.

“낭아권!”

퍼걱!

또 한 놈은 머리를 세로로 잘라 버리고.

서걱!

그 뒤에서 비틀거리는 마지막 한 놈은 손으로 머리를 잡아 그대로 끌어 내리면서 니킥!

퍼걱!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머리만 노리면 끝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아이언 스킨으로 안전지대에 있는 내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동료들은 좀비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싸워야 했다.

좀비를 최대한 빨리 처리할수록 동료들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으아아아아압!”

미래를 모두 알고 있으며 전보다 훨씬 강해져 돌아온 내게, 이 던전은 더 이상 죽음의 장소가 아니었다.

* * *

스켈레톤 다음엔 좀비, 그다음엔 구울, 마지막엔 그 세 언데드 몬스터가 다 나와서 설쳐 댔다.

하지만 모든 언데드 몬스터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아이언 스킨으로 인해 난 무적자처럼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그 덕분에 언데드 몬스터는 그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적이었고, 전투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생에서는 나와 하슬란만 도착할 수 있었던 던전의 마지막 공동에 입구에서 살아남은 모든 이가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는 공동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깬 다음엔 배를 채웠고, 그다음엔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한데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이 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 동료들에게 지금 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비추어지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하슬란만 날 의심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날 의심하고 있었다.

“너 바렌 아니지?”

베스퍼가 거의 확정적으로 얘기했다.

난 그 말을 긍정했다.

“응. 바렌은 아니고 바레지나트야.”

“말장난하자는 거 아니다.”

“말장난 같아 보여?”

“……설명 좀 해봐.”

베스퍼는 나와 입씨름을 해봤자 도움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서 한발 물러났다.

그러자 동료들의 궁금증 가득한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가면 나에 대한 신뢰가 막판에 깨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돼선 안 된다.

결국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요즘 잠들 때마다 미래를 보게 된다면 믿겠어?”

“뭐, 이 미친놈아?”

수이트란체, 넌 다 좋은데 여자가 너무 입이 거칠어.

“꿈에서 미래를 보게 된다고.”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면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엉? 혹시 이 던전을 시공한 게 나라고 말할 셈이야? 그거 네가 밤일 잘한다는 농담보다 더 재미없는 거 알지?”

“푸하하하하하!”

내 말에 갑자기 마젤란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자 수이트란체가 도끼눈을 하고 소리쳤다.

“내가 밤일 잘한다는 건 농담이 아니잖아, 마젤란!”

“난 농담 같은데.”

순간 카발이 마젤란에게 소리쳤다.

“너 이 새끼, 수이랑 배꼽 맞췄어?!”

마젤란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딱! 쳤다.

“도통 기억이 안 나는걸?”

그러자 베스퍼가 낄낄댔다.

“했네, 했어.”

카발이 붕 날아 마젤란을 덮쳤다.

“수이에 대한 내 마음을 아는 놈이!”

“케켁! 카, 카발. 목은 놓고 얘기해.”

그러자 수이트란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카발. 너 나 좋아해?”

카발은 죽어 버리란 심정으로 목 조르던 마젤란을 옆으로 집어 던지고서 수이트란체를 바라봤다.

“좋아하면 뭐! 그러면 안 돼?”

“아니, 돼.”

“……어?”

“우리 사귀자.”

“……어?”

“오늘 밤에 죽여줄게, 내가.”

“……어. 바라는 바야.”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런데 마젤란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래, 카발. 밤에 웃겨 죽을지도 몰라. 수이의 테크닉은 유아 수준이거든.”

“죽인다, 마젤란!”

“꺼져, 멍청아!”

마젤란은 결국 카발과 수이트란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이는 바람에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는 더 깊이 있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소동을 일으킨 사람은 다름 아닌 마젤란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익살스러운 얼굴로 윙크를 날렸다.

하여튼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 * *

마지막 쉼터인 공동에서 나와 외길로 이어지는 통로를 죽 걸었다.

통로의 끝엔 작은 철문이 달려 있었다.

그것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우리가 쉬었던 장소보다 더 작은 공동이 나타났다.

뭐, 공동의 사이즈는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공동의 중앙에 황금 상자가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저 상자 안엔 금은보화가 들어 있겠지?”

마젤란의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저 상자는 여는 즉시 우리를 저승으로 안내할 것이다.

전생에서 나와 하슬란은 상자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엄청난 폭발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다들 나가 있어.”

잔뜩 깔린 내 목소리가 음울하게 공동을 울렸다.

“나가 있으라니?”

수이트란체가 물었다.

“여기 있다간 죽어.”

“누구한테? 너한테?”

“달콤한 사탕한테.”

내가 눈짓으로 황금 상자를 가리켰다.

“이 새끼야, 너 혼자 다 처먹으려는 거 아니야?”

던전의 끝까지 오면서 여태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바스토가 소리쳤다.

그가 다른 용병들을 제치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며 입을 놀렸다.

“인생 골로 갈 뻔한 거 겨우 넘겨서 여기까지 왔더니, 갑자기 먹을 거 보자마자 나가라고?”

바스토가 코앞까지 다가섰다.

“이 또라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하, 씨팔 진짜.

이 새끼는 말로 해선 안 되겠다.

내 주먹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퍽!

“억!”

안면을 맞은 바스토가 뒤로 죽 날아가 나뒹굴었다.

바스토의 코가 주저앉았고, 쌍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바스토, 이 미친 새끼야. 까고 말해서 내가 동료들 다 살려서 여기 오는 것보다 혼자 오는 게 더 쉽거든? 저거 혼자 차지할 생각이었으면 뭣하러 그랬겠냐? 대가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

“그 모양이니까 놀음판에서 만날 호구 노릇하다 오는 거야, 병신아. 멍청하면 입이라도 겸손해야지. 오래 살고 싶으면 여기 나가서도 혀 단속 잘해라.”

한마디 독하게 쏘아붙이고서 황금 상자로 다가갔다.

“마지막 경고야. 다 나가, 날 믿는다면.”

“……나가자.”

하슬란이 말했다.

그의 한마디는 와이번 용병단원들에게 절대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나가고 나서, 나는 목에 걸고 있던 비욘드 텅을 그러쥐었다.

이것은 한국의 유지웅이 얻게 된 물건이었으나 바레지나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유지웅은 오늘 아침 엄마에게 비욘드 텅의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바레지나트는 던전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비욘드 텅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난 비욘드 텅으로 강화시키고 싶은 능력을 떠올렸다.

‘지그문트의 아이언 스킨.’

내 의지는 비욘드 텅에 전달되었고, 육각 모양의 펜던트가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내 피부를 뚫고 심장 속에 스며들었다.

아이언 스킨이 십수 배 이상 강화된 것이다.

“이제 됐어. ……연다.”

두 손을 황금 상자에 얹었다.

이 던전은 고대 유라시어스 시대에 만들어진 페이크 던전일 가능성이 컸다.

유라시어스 시대를 살아가는 왕들은 죽어서 무덤에 묻힐 때, 자신의 재물을 함께 묻으면 그것을 저승에서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한데 그 때문에 왕릉이 도굴꾼들이나 트레저 헌터에게 파헤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왕들은 머리를 썼다.

도굴꾼과 트레저 헌터를 유인할 페이크 던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죽으면 그곳에 묻혀 있다 공표하라 명을 내리는 것이다.

하나, 왕은 정작 보물과 함께 다른 곳에 묻히게 되고, 페이크 던전 안에는 금은보화 대신 온갖 트랩과 언데드 몬스터들이 드글거리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길드 마스터 람차크가 언젠가 해줬었지.’

절대 페이크 던전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도 그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우리에게 거짓 의뢰를 떠넘겨 페이크 던전에 갇히도록 만들었다.

람차크가 이 일에 대해서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늙은 너구리는 눈치가 백 단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수전노이면서, 어디에 붙어야 훗날이 편할지 귀신 같이 아는 사람이다.

‘여기서 나가면 람차크 당신부터 찾아갈 거야.’

상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덜컥.

상자 뚜껑은 어렵지 않게 열렸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번!”

난 그와 동시에 화 속성 초급 마법 번을 시전했다.

그리고 나를 확 덮쳐 오던 불길을 조종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

“끄으으으으윽!”

폭발의 여파가 워낙 심해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길을 조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피부는 아이언 스킨으로 보호받았지만, 충격파가 온몸을 두들겨 댔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내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불길을 가까스로 제압하다가 벽에 등을 부딪혔다.

콰아앙!

“커헉!”

뱃속의 장기가 다 끊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나트!”

“괜…… 아?!”

“열리…… 큭! 문이……!”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 속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파펠의 청력 덕분이었다.

화르르르르륵!

상자에서 튀어나온 화염이 동공 안을 가득 채우고 끊임없이 날 잡아먹으려 했다.

내가 지금 번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은 단 45초.

제발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끝나주기를 바라는 순간.

“떨어져!”

내 고함과 함께.

콰아아아아아앙!

한 번의 폭발이 더 일었다.

“끄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전보다 더한 충격파가 내 몸을 화염과 함께 짓눌렀다.

콰드득! 콰득!

벽 속으로 몸이 박혀 들어갔다.

전신의 뼈가 부서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가장

“……렌!”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면 그냥 놔두고, 해가 떴다면 늦잠 자게 놔둬.

눈을 뜨고 싶어도 내 의지와 달리 계속 몸이 축축 처진다고.

“힐링 포션! 개새끼들아! 아끼지 말고 모조리 다 갖고 와!”

“그게 다야! 우리가 이 마당에 뭐한다고 그걸 숨겨, 씨팔!”

뭐야, 단장? 왜 베스퍼랑 싸우고 있어?

“너 이 씨팔새끼야! 이렇게 뒈지면 가만 안 둬! 가만 안 둔다고!”

시끄러워, 단장. 귀청 떨어지겠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폭음 때문에 얼얼해 죽겠다고.

“……하라고! 외상은 괜…… 근데…… 장기가……!”

뭐지?

왜 말을 그렇게 해, 마젤란.

중간중간 끊어먹지 말고 똑바로 하란 말야.

“살아……! ……지나트!”

살아? 지나트? 아…… 나? 살아나라고? 걱정하지 마. 죽은 게 아니라 자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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