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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0화 (40/153)

데일리 히어로 040화

그러자 부단장 베스퍼가 다가와 고민하는 하슬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믿어주지? 딱 한 시간만 앞장서게 해봐.”

“가볍게 정할 일이 아니야.”

“바렌도 가볍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슬란이 또다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조금이라도 병신 같이 굴면 뒤로 보낸다.”

“얼마든지.”

하슬란의 허락을 얻어내 겨우 선두에 설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살아서 나갈 시간이다.

던전의 끝

“멈춰.”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별다를 것 없는 통로 앞에서 내가 말했다.

날 따라오던 동료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무겁게 깔린 네 목소리가 쪽팔리지 않으려면 통로에 뭔가 있어야 할 텐데, 그치?”

베스퍼가 짓궂게 말했다.

난 대답 대신 돌멩이 하나를 들어서 던졌다.

텅.

돌멩이가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슈슈슈슈슉!

좌우의 벽과 바닥에서 뾰족한 창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와우!”

“벌집될 뻔했네.”

전생에서는 용병단원 중 가장 촐싹대는 마젤란이 괜한 호기를 부린답시고 하슬란을 지나쳐 가다가 벌집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런 마젤란을 위험하다며 말리러 쫓아가던 카발도 온몸에 바람구멍이 나고 말았다.

“눈썰미가 제법이잖아, 바렌?”

어느새 마젤란이 다가와 자신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앞으로 더 위험한 트랩이 많이 있을 테니까 잠자코 따라와.”

“옛썰!”

마젤란은 내가 자기 목숨을 구했다는 걸 전혀 모르고서 여전히 활기찼다.

그래, 저런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마젤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들은 집단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블랙 와이번 용병단원 중 제일 정신없고, 속없어 보이는 마젤란이지만, 사실 그는 스스로의 감정을 가장 잘 컨트롤할 줄 아는 남자다.

나는 그가 인상 한 번 찌푸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아플 때도, 그는 늘 웃었다.

지금도 찢어지는 가슴을 감추고서 이렇듯 광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 테지.

“지금 술 처먹고 취한 인간 없지? 비틀거리다 창에 스치면 중독돼서 열 걸음 걷기도 전에 뒈지니까 조심해.”

“창에 독이 발라져 있어? 그건 어떻게 알았냐? 진짜야?”

그렇게 묻는 건 로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생에서 창에 스쳐 중독되어 죽었던 인간이 바로 그였다.

“궁금하면 스쳐 보든가.”

로이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난 사위에서 튀어나온 창끝을 조심조심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던전은 복잡한 미로였으며, 어마어마한 트랩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난 앞장서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했고, 위험한 트랩들도 모두 간파해 냈다.

이미 전생에서 이 던전을 수십 일 동안 헤맸고, 온갖 트랩을 다 건드리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내 머릿속에 명확히 박혀 있다.

운이 좋았던 거다.

내가 다른 용병들보다 나은 거라곤 민첩성과 근력뿐인데, 그게 날 살렸다.

재빠른 반사 신경과 무식한 힘이 트랩을 피하고, 막아내는 데 도움이 될 줄은 몰랐었다.

던전을 헤쳐 나간 지 오 일째.

스물 남짓한 동료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도 내 말을 완벽하게 신용했다.

하지만 하슬란은 너무나 능숙하게 던전을 헤쳐 나가는 날 미심쩍게 보고 있었다.

그래, 나 같아도 이상하겠다.

누군가의 계략으로 갇히게 된 던전을 제 집 앞마당처럼 헤쳐 나가니, 충분히 이상하게 볼 만하지.

오늘도 잠을 자고 눈을 뜨자마자 곳곳의 트랩을 피해가며 1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좁은 통로가 끝나고 넓은 공터가 나와,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다른 동료들도 말린 과일이나 건육 따위를 씹으며 허기를 달랬다.

서로 간에 오가는 말이 없던 와중, 카발이 툴툴댔다.

“근데 진짜 람차크 그 새끼 미친 거 아니야? 뭐? 고블린 토벌? 이게 C―급 일이라고?”

람차크는 우리와 제법 안면을 트고 지내던 발탄 시의 길드 마스터다. 그는 고블린 토벌 건이 들어올 때마다 늘 우리에게 먼저 일을 맡겼다.

이번에도 그런 일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의문의 폭발이 일었고, 입구가 막혔다.

폭발에 휩쓸린 동료 열세 명이 죽었다.

통탄스런 노릇이다.

“애초부터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람차크에게 그런 의뢰를 한 거다. 우리는 보기 좋게 걸려든 거고. 입구에서의 폭발 역시 우리를 이곳에 몰아넣은 쳐 죽일 놈들이 미리 준비해 뒀던 것일 테지.”

하슬란의 말이었다.

“이야, 똑똑하네, 우리 단장. 그걸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어?”

베스퍼가 하슬란에게 빈정댔다.

하지만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의 스타일임을 알기에 누구도 베스퍼를 질책하지 않았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야?”

블랙 와이번 용병단의 유일한 여자 용병, 수이트란체가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물음에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과거의 마지막은 이 던전 안에서 끝나고 마니까.

‘이 일의 배후엔 어떤 음모가 있는 걸까.’

단순히 던전을 나가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난 살아남은 동료들과 이 던전을 무사히 나갈 것이고, 우리에게 함정을 판 놈들을 찾아낼 것이며, 마지막으로 제이미에게 청혼을 할 것이다.

반드시.

* * *

트랩은 그 종류도 많고 가지각색이었다.

땅이 꺼지고 커다란 바위가 굴러 오는가 하면, 독화살이 날아들고 살상 가스가 흘러나왔다.

난 그 모든 트랩에서 동료들을 지켜냈다.

던전을 헤맨 지 열흘.

이제 거의 모든 트랩을 다 건너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이 안전한 건 아니다.

트랩이 끝났으니 앞으로는 몬스터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몬스터가 아니라,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언데드 몬스터들과 말이다.

언데드 몬스터는 생각만해도 치가 떨리는 끔찍한 놈들이다.

전생에서 난생처음 놈들을 상대해 본 나로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무리 썰어도 살아나고, 몸이 조각나도 달려드는 그 저주받은 존재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엔 거의 모든 동료가 죽은 상황이었다.

구사일생의 사투 끝에 언데드 몬스터 공략법을 알아냈지만, 그땐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살아남은 용병들은 무작정 몬스터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결국 최후의 최후까지 목숨을 부지한 건 나와 하슬란 단장, 둘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둘도 결국 던전의 끝자락에 다다라서 죽고 말았다.

이제는 그 모든 죽음을 되갚아줄 때다.

“모두 무기 들어.”

직선으로 길게 뻗은 통로가 저 앞에서 우측으로 꺾여 있었다.

바로 저곳이 경계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때부터 언데드 몬스터들의 영역이다.

스르릉.

나도 검을 뽑았다.

유지웅은 검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바레지나트는 용병으로 살며 숱하게 검을 잡아왔다.

뛰어난 검술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 특유의 민첩성과 근력으로 실력에 비해 괜찮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들 긴장해. 모퉁이 너머에 안 좋은 기운이 득실 거려.”

사실 스켈레톤 군단이 진을 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기에 참았다.

“달려!”

내가 달리자 용병들도 따라 달렸다.

난 선두로 나서서 모퉁이를 돌자마자 검을 난폭하게 휘둘렀다.

아직 넓은 통로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흙바닥을 파헤치며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솟구쳐 올랐다.

“으아아아아압!”

퍼걱!

멋대로 휘두르던 내 눈먼 검에, 선두에 서 있는 스켈레톤 한 마리의 머리가 작살났다.

하지만 스켈레톤은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콰직! 콰득!

난 쓰러진 스켈레톤의 사지를 밟아 부러뜨렸다.

이렇게 해놓아야 놈들이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놈들은 허리가 잘려도 두 팔이 붙어 있으면 땅에 상반신을 붙인 채로 검을 휘두른다.

상대하기 아주 거지 같은 놈들이다.

“죽어, 이 새끼들아! 낭아권!”

내가 쓰러뜨린 스켈레톤을 짓밟으며 달려든 다른 스켈레톤에게 낭아권을 시전했다.

유지웅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주먹이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퍽!

낭아권에 맞은 스켈레톤은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전투불능이 되었다.

난 다시 검을 쥐고서 횡으로 크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스켈레톤들은 녹슨 검을 들고서 내 공격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의 난 무서울 게 없었다.

전생에서야 우리 쪽 동료들의 수도 적고 내가 믿을 거라곤 조금 다룰 줄 아는 칼 한 자루와 남들보다 뛰어난 민첩성, 근력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피부는 녹슨 검으로는 기스도 못 낼 아이언 스킨이다.

거기에 소라스의 강인한 육체로 인해 몸은 안팎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근력도 업그레이드됐다. 뿐만 아니라 낭아권을 사용할 수 있으며 불씨만 있다면 화 속성 초급 마법도 시전 가능하다.

그런 상황이니 겁이 사라졌고, 대신 용기가 자라났다.

“다 죽어, 이 새끼들아!”

난 크게 외치며 쉴 새 없이 스켈레톤들을 도살해 나갔다.

내게 1차적으로 조각이 난 스켈레톤들은 다른 용병들에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과 전투를 펼쳤고, 삼십 분이 흐른 뒤에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스켈레톤은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누구 한 명도 죽지 않았다.

* * *

“솔직히 놀랐다.”

하슬란이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 걸으며 말했다.

“뭘 말이에요?”

“네가 그런 실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어.”

“사람이 숨기고 사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매력 있는 거 아니겠수?”

“……너, 바렌이 맞는 거냐?”

하슬란이 날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100퍼센트 토종 바레지나트는 아니다.

지금의 난 헤슬베니아 왕국 시민 바레지나트가 맞지만 유지웅의 인격도 섞여 있다.

“그럼 내가 귀신이라도 됩니까?”

괜히 뜨끔해서 오히려 당당하게 받아쳤다.

하슬란은 그 이후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언데드 몬스터 좀비 군단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 * *

어떻게 보면 좀비들은 스켈레톤보다 처리하기가 더 쉽다.

모가지를 자르거나 대가리를 박살 내면 끝이다.

한데 상대하기가 뭣 같은 이유는, 놈들에게 물리면 그 사람도 좀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좀비가 될 걱정이 없었다.

좀비가 날 물어봤자.

와득! 콰자자자작!

지금처럼 아이언 스킨으로 인해 제 이빨만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빨이나 닦고 입으로 애무하든가!”

내 손에 들린 검이 신명나게 휘둘러졌다.

서걱!

방금 내 어깨를 문 좀비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난 바닥에 떨어진 좀비의 대가리를 발로 밟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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