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38화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이 확 하고 사라졌다.
“어?”
“45초가 지나서 영력이 전부 소모되었다. 때문에 마법도 시전할 수가 없지. 불은 내가 마법으로 만든 것이니 태울 수 있는 매개체가 없어, 자연 소멸한 것이고. 불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제한시간 내에 다른 매개체로 옮겨 붙여야 한다.”
“아, 벌써 45초나 지났어?”
“그래. 아무튼 이제 번을 사용할 때 5초당 1의 영력이 소모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응.”
현재 내 영력은 9.
따라서 5초에 영력 1을 소모하는 번을 연속으로 사용할 시 45초가 한계다.
45초가 지난 뒤엔 영력이 다시 차오르는 1분 뒤에야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력은 1분에 1씩 차오른다.
따라서 1분을 기다렸다 바로 번을 사용하면 고작 5초밖에 불길을 다룰 수 없다.
아무튼 좋다.
이제부터 나는 마법사다.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 마법사!
가슴 벅찬 타이틀이 아닌가?
“다음은 아이언 스킨을 시험해 봐야 하는데.”
내가 말을 하자마자 카시아스가 입에 송곳을 물고 다가왔다.
“이걸 써라.”
“……송곳은 갑자기 어디서 났냐.”
“네 책상 서랍을 뒤졌지.”
난 카시아스의 입에서 송곳을 빼앗았다.
“이걸로 내 살을 찌르라고?”
“아이언 스킨을 얻었으니 아무 이상 없을 거다.”
“무리야.”
“찌질한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어서 해.”
결국 카시아스의 성화에 못 이겨, 송곳으로 내 손등을 조준했다.
“이대로 찔러?”
“힘껏.”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두렵다.
난 눈 딱 감고 그대로 송곳을 손등에 찔러 넣었다.
그런데.
턱.
송곳이 무언가 단단한 물건에 가로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송곳 끝이 닿은 손등은 별 느낌이 없었다.
눈을 떠 보니 송곳 끝과 손등이 맞닿아 있었다.
난 송곳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하지만 송곳은 내게 아무런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이거 진짜 신기하네.”
“괜히 아이언 스킨이겠냐.”
“그렇단 말이지.”
난 열려 있는 창틀에 왼손을 넣고 오른손으로 창문을 세게 닫았다.
콱!
찌이이잉―
“윽!”
피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속이 아려왔다.
“뭐, 뭐야, 이거? 은근히 아프잖아?”
“당연하지. 아이언 스킨은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해줄 뿐, 속살까지 그리 만드는 건 아니니까.”
“하! 피부 믿고 몸 막 굴리다간 속병 나기 딱이겠네?”
“나중에 링크를 더 모으면 속까지 강철로 만들어진 놈의 영혼을 살 수 있겠지.”
“흐으, 참 일찍도 말해준다.”
학교나 가자.
바레지나트의 원한
교문 입구에서부터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많은 학생이 날 보고서 수군거렸다.
딴에는 내가 자기들이 하는 말을 못 들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에겐 파펠의 청력이 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니 남학생, 여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아주 잘 들렸다.
“저 오빠 맞지?”
“응. 그 동영상에서 양아치들 쫓아내던 오빠 맞아.”
“장난 아니다. 기럭지 봐.”
“얼굴도 제법 괜찮지 않아?”
“넘보지 마라, 내 거다.”
“거울이나 보고 그런 얘기 해, 이년아.”
“지랄. 지는?”
이건 두 여학생의 담화.
“야, 저 선배다.”
“동영상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젓가락 박히는 거 봤냐?”
“존나 놀랐다. 근데 그거 조작이잖아?”
“이 새끼는 뭐만 하면 조작이래. 니 인생이 조작이다, 븅신아.”
“야야. 그거 조금만 연습하면 다 해. 내가 아는 형은 동전도 박아.”
“진짜?”
“그럼 비싼 밥 처먹고 거짓말 하겠냐?”
“근데 저 선배한테 처맞던 게 태진이 그 3학년 씹새끼 맞지?”
“씨팔, 속이 뚫리더라. 그 개새끼한테 삥 뜯긴 게 얼만데.”
“삥이나 뜯기고 다니고, 병신.”
“지는? 나는 그 새끼 그 아버지가 그, 뭐냐, 국가의원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봐준 거야. 나라 큰일 하시는 분 아들이니까.”
“국가의원? 국회의원이겠지. 국가원수랑 국회의원이랑 섞었냐? 어휴, 이 새끼 이거 열여덟 살 맞아?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시끄러! 삥 뜯긴 새끼가.”
“너도 뜯겼잖아!”
“에라이, 병신들아. 그러니까 나처럼 무술을 배워놓아야지. 낄낄낄.”
“너 태권도 노란 띠잖아, 좆밥아.”
“아 나, 이 어이없는 새끼. 어디 무적태권 햇병아리 같은 노란 띠가 나대? 넌 새끼야, 재수 좋아서 삥 안 뜯긴 거지, 재수 없어서 걸렸으면 제발 때리지 말아달라고 속옷까지 벗어줄 새끼야.”
“아이 씹새들 진짜.”
이건 2학년 남학생 세 명의 대화였다.
아주 어린놈들이 입이 상당히 걸지다.
아무튼 내 동영상이 어느새 학교 학생들한테도 다 퍼졌단 말야?
전부 다는 아니지만 학생의 삼분의 일 정도는 내 얼굴을 알아보고서 수군덕대기 바빴다.
* * *
교실에서 태진이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태진이 패거리의 일원이자 쌍둥이 형제인 상호, 상진이는 등교를 한 상황이었다.
결석을 해도 같이 하는 녀석들이 어쩐 일인가 싶다.
아니, 지금 남 생각할 때가 아니다.
교실에서의 상황도 교정과 다를 게 없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날 훔쳐보며 쑥덕대기 바빴다.
이미 우리 반엔 소문이 다 퍼진 모양이다.
근데 그 동영상이 그렇게까지 인기 있었으면 링크가 더 많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학교 학생의 삼분의 일이 봤다는 건, 그들이 어디 이런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그 동영상을 접했다는 뜻이다.
그럼 그 동영상이 제법 많이 퍼져 불특정 다수의 사이트에 업로드되었다는 얘기다.
설마 우리 학교 학생들만 동영상이 업로드된 사이트에 우연히 동시 접속해서 봤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 아침 이후로는 링크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건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지웅아.”
다들 내게 직접 말도 못 걸고 쑥덕대기만 할 때, 다정한 음성을 던져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랑이었다.
“아랑아.”
“동영상 봤어?”
“아, 너도 그 동영상 봤구나.”
“응, 어땠어?”
“어떻긴.”
“기분 나빴어?”
“아니.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조금 얼떨떨해서 그렇지 기분은 좋아.”
그래, 이런 경험이 기본적으로 익숙지가 않은 인간이다, 나는.
사실 얼떨떨한 감정을 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몰래 내 얘기를 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그 얘기들이 하나같이 좋은 것뿐이다.
어떻게 기분이 나쁠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 동영상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링크도 많이 벌었고, 그걸로 비욘드 텅을 사서 어머니에게 준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을 강화시키고 학교에 왔다.
뿐만 아니라 마르카스와 지그문트의 영혼도 샀다.
지금 심정으로는 동영상을 찍어 업로드한 사람에게 포옹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 동영상에서 뭐 이상한 거 발견 못 했어?”
“이상한 거?”
“응.”
“글쎄?”
“나는 안 나왔잖아.”
“응?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네?”
“동영상이 어디에 업로드됐었는지는 알아?”
“아니…… 그냥 동영상 검색해서 하나가 뜨길래, 바로 보기 눌렀지.”
“동영상 업로드한 사이트로는 접속 안 했고?”
“응, 귀찮아서.”
“그거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왔잖아. 우리들 이야기 게시판에.”
“아, 그랬던 거야?”
가만…… 우리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는 건 현 재학생뿐이다.
졸업생들도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은 이용 불가하다.
그렇다면 동영상을 찍어 올린 것은 우리 학교 재학생이라는 얘기다.
한데 동영상에서 아랑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아랑이, 네가……?”
아랑이가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이 모든 것이 아랑이 덕분이란 말이야?
진짜 아랑이 넌 어떻게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하는 짓까지 이렇게 예쁘니!
“고마워, 아랑아!”
덥썩!
난 아랑이를 그대로 껴안았다.
그토록 안아주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너였구나!
“넌 천사야! 나한텐 로또 복권보다 더한 행운이야! 진짜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어? 어…… 고마워.”
“하하하!”
얼마나 기쁜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아랑이는 그에 반해 너무 조용했다.
아랑이 뿐만이 아니다.
교실 전체가 정적으로 가득 찼다.
주위를 둘러본 난 그제야 적막의 원인이 나였음을 알아챘다.
“미, 미안!”
난 아랑이에게서 얼른 떨어졌다.
“아니…… 괜찮아.”
아랑이가 뺨을 붉게 물들인 채 말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
아무리 정신이 없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도 그렇지, 상대방 동의도 없이 와락 안아 버리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랑이를!
“기분 나빴지?”
난 안절부절못하며 아랑이에게 물었다. 당연히 아랑이가 화낼 줄 알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분 나쁘지 않았어.”
“지, 진짜?”
“응.”
휴, 다행이다.
얼굴만큼 마음씨도 곱다니까.
“아무튼 고마워, 아랑아.”
“뭐…… 동영상 올린 거?”
“응. 그 동영상 덕분에 내가 제법 득을 본 게 좀 있거든.”
“그래? 다행이다~ 근데 그 동영상 새벽에 확인해 보니까 지워졌더라구.”
“왜?”
“아마 학교 위신 해친다는 이유에서겠지, 뭐.”
하긴.
동영상엔 태진이의 얼굴과 내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학교 측에서는 충분히 난감할 수도 있다.
게다가 태진이의 아버지가 시의원이니 그런 동영상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테지.
‘그래서 링크가 더 들어오지 않는 거였어.’
동영상이 삭제되었으니 그것을 보는 사람도 없어졌을 테고, 당연히 링크는 들어오지 않게 된다.
잠시 동안 참 쏠쏠했었는데 아쉽게 됐다.
“아, 그리고 이번 주말에 우리 집 오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응. 걱정 마.”
그때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아랑이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후, H/R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난 남자 녀석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감히 아랑이를 껴안아?”
“지웅이 저 새끼, 이제 보니 완전 색마였네?”
“아오…… 내 여신을.”
“진짜 부럽다, 개자식.”
……청력이 뛰어나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 * *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엄마가 손수 차려준 저녁을 먹은 뒤, 편의점으로 향했다.
홀로 카운터를 지키던 점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지웅아! 오늘도 정해진 알바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오는 의리! 너와 같은 알바생들이 있어서 편의점의 미래는 밝다!”
역시 언제나 파이팅이 넘치신다.
“별일 없었죠?”
“나한테는 별일이 없는데 유주한테는 별일이 있는 모양이야.”
“무슨 일이 있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