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37화
“그렇구나.”
“누나는?”
“누나도 친구랑 저녁 약속 있다고 나갔어~”
“저녁 약속은 무슨. 술 약속이겠지.”
“너무 타박하지 말고, 그러려니 해.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늦게까지 야근하고 오는데 스트레스가 안 쌓이겠니? 그렇게라도 풀어야지.”
“그래도 젊은 여자가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지. 건강도 문제고 말야.”
우리 누나는 엄청난 술고래다.
엄마는 술을 입에도 못 댄다. 아빠가 술을 좀 하시긴 하지만, 누나만큼은 아니다.
전에 한 번 누나가 술을 사 들고 와 집에서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혼자 마시기 심심하다며 나를 과자와 음료수로 꼬드겨 말동무 좀 해달라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누나는 단 두 시간 동안 홀로 소주 세 병과 맥주 피처 두 개를 비웠다.
엄청나게 빨리, 많이 마셨는데도 그저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로 잠을 청했다.
술 못 마시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싶었다.
아무튼 누나도 밖으로 나가고 아버지는 새벽에나 들어오실 테니 오늘은 엄마랑 나랑 오붓하게 저녁을 먹게 되겠군.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난 엄마에게 다가가 손을 지그시 잡았다.
“응? 뭐 할 말 있어?”
“아니, 엄마 오늘 아침부터 계속 집안일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아서 손 마사지라도 해주려고.”
“나 참, 간지럽게 왜 이래?”
“가, 간지러워?”
사실 나도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그렇긴 하다.
평생 이런 말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무뚝뚝한 인간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엄마도 적응이 어려울 테지.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엄마는 반찬 만드는 걸 잠시 미뤄두고 바닥에 엉덩이를 깔았다.
“그럼 한번 받아보자, 아들이 해주는 마사지.”
“오케이.”
난 자연스럽게 엄마의 손을 마사지해 주며, 비욘드 텅으로 강화하고 싶은 능력을 떠올렸다.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
내 염원이 비욘드 텅에 닿았다.
비욘드 텅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와 내 손을 타고 엄마의 손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 역시 내 눈에만 보이고 엄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푸른빛은 엄마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팔뚝을 지나 어깨를 너머, 심장에 멈춰 서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이 강화된 모양이다.
내게 손 마사지를 받던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음?”
“왜 그래?”
“아니…… 몸이 좀 시원해지는 기분이라서.”
“추워?”
“추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시원해.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좋네?”
이건 확실히 능력이 강화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겠지?
어찌 되었든 엄마는 기분이 좋다고 했으니까.
제발 이번에는 빠른 차도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난 엄마의 손을 정성스레 안마해 주었다.
* *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난 마인드 탭을 열었다.
그리고 들어온 링크를 확인했다.
이름 : 유지웅
…….
…….
보유 링크 : 549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링크가 320.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잤는데 지금은 549로 늘어 있었다.
초반에 초스피드로 올라가던 링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오른 것이다.
이제는 동영상의 약발이 조금 떨어진 모양이다.
일단 영력을 9까지 업그레이드시켰다.
7에서 9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든 총비용은 130링크였다.
아직도 419링크가 남았다.
250링크짜리 영혼 하나를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다.
“소울 스토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통 세수를 한다던가?
나는 소울 스토어부터 접속했다.
* * *
라헬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시 한번 설명해 달라구요?”
“응. 250링크가 필요한 그 영혼 둘. 저번에는 애초에 살 생각이 없어서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어.”
“그러죠.”
라헬은 두 개의 영혼 중 오른쪽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지그문트. 250링크와 9의 영력이 필요하죠. 지그문트의 능력은 아이언 스킨(Iron Skin). 강철의 피부를 가지고 있답니다. 사실 이건 지그문트가 어떤 무술을 연마해서 얻게 된 게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정말 운이 좋게도 용병 노릇 하며 ‘샤사스의 궁금한 던전’ 중 한 곳에 던전 탐사단으로 지원했는데, 그 던전에서 얻은 어떤 보물로 인해 아이언 스킨을 얻게 되었죠. 강철 피부인만큼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작은 상처 하나 낼 수 없다는 거.”
라헬이 그 옆에 있는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블랑. 링크와 필요 영력은 지그문트와 같아요. 블랑의 능력은 굉장한 창술이랍니다.”
“굉장한 창술?”
“그렇죠. 블랑은 창을 상당히 잘 다루는 랜서(Lancer)였습니다. 기사는 아니지만 일반 병사 중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사람이었죠. 그는 처음엔 어느 시골의 이름 없는 귀족 저택에서 문지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실력을 알아본 도시의 큰 귀족 듀나스 백작의 눈에 띄어 이후로 백작가의 사병이 되었더랍니다. 그의 뛰어난 창술은 그를 단 1년 만에 사병단장으로 승진시켜 주었죠. 그대로 아무 사고 없이 계속 정진했으면 기사의 작위를 손에 넣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사병단장이 된 그해, 그의 운이 다했죠. 죽음을 맞았다는 얘기예요.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라헬이 두 영혼을 양손으로 하나씩 가리켰다.
“어느 영혼을 데려가실 건가요?”
지그문트와 블랑.
지그문트의 능력은 강철 같은 피부를 갖게 해주는 아이언 스킨. 블랑의 능력은 굉장한 창술이란다.
두 개 중에서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건 아이언 스킨이 아닐까?
세상 살다 보면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강철 같은 피부를 갖고 있으면 상당히 괜찮을 것 같은데.
창술은 당장 어디 써먹을 데가 별로 없을 듯하다.
오히려 150링크로 살 수 있는 마르카스의 화 속성 초급 마법이나 레퓌른의 수 속성 초급 마법이 더 메리트 있는 것 같다.
‘지금 나한테 400링크 이상이 남았으니 지그문트와 마르카스의 능력을 사는 게 좋겠어.’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망설임 없이 말했다.
“마르카스와 지그문트의 영혼을 사겠어.”
“왜요?”
“왜라니? 나한테 필요하니까.”
“굳이 영혼의 힘을 사라는 법은 없어요. 300링크면 저번처럼 골드바를 사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구요.”
그렇게 말을 하는 라헬의 앞에 100g짜리 골드바가 나타났다.
“어때요?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이게 또 약을 팔려고 하네.
“그냥 영혼이나 내놔.”
“칫, 매일 재미없게.”
“뭐, 인마?”
“드리죠, 마르카스와 지그문트.”
라헬이 두 개의 영혼을 밀었다.
서로의 밝기가 미세하게 다른 두 영혼이 내 몸으로 들어와 스며들었다.
이제 새로운 힘 두 개가 더 내 것이 되었다.
자고로 새것을 얻었으면 바로바로 사용해 봐야 하는 법.
라헬과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 소울 스토어에서 나왔다.
어둠이 사라지고 아침 햇살을 가득 품은 내 방이 나타났다.
난 내 몸을 훑어보고 손으로 만져 보기도 했다.
일단 겉보기에는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
내가 새로 얻은 힘이 액티브 소울인지 패시브 소울인지 보기 위해 마인드 탭을 열고 영매 항목을 터치했다.
영매
패시브 소울 : 6
―강인한 육신[소라스]
―뛰어난 청력[파펠]
―완벽한 절대미각[리조네]
―뛰어난 요리실력[마르펭]
―뛰어난 민첩성, 근력[바레지나트]
―아이언 스킨[지그문트]
액티브 소울 : 2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Burn)[마르카스/소모 영력 5초당 1]
지금 가만 보니 내가 얻은 능력 앞에 붙는 형용사들이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혹은 아예 붙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저 형용사들이 능력의 어떠한 기준을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아이언 스킨은 패시브 소울이고, 화 속성 초급 마법, 다른 말로 번은 액티브 소울이다.
번을 사용할 때는 5초당 1의 영력이 소모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재충전 시간에 대한 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번은 재충전이 필요 없는 건가?”
혼잣말이었는데 갑자기 카시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깜짝이야!”
놀라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시아스는 어느새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어쩐지 갑자기 춥더라.
카시아스는 내가 놀란 건 별로 관심도 없다는 투로 할 말을 이어나갔다.
“번은 네 영력이 제로가 됐을 경우, 다시 충전되면 얼마든지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낭아권처럼 스킬 자체에 재충전이라는 제약이 걸려 있지 않아.”
“그건 좋네. 그런데 5초당 1의 영력이 소모된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이야?”
“직접 한번 번을 사용해 보면 이해가 쉽겠지.”
카시아스는 말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나도 따라서 창밖을 봤다.
보이는 건 그냥 마당과 담벼락이었다.
“네가 습득한 번은 화 속성 초급 마법 단계다. 그 단계에서는 자체적으로 불길을 일으킬 수 없지.”
“뭐? 그럼 화염 마법이 무슨 소용이야?”
“대신 이미 발화된 불길은 컨트롤할 수 있다. 바람과 상관없이 네 마음대로 불길을 낼 수 있고, 작은 불씨를 크게 키울 수도 있지. 일단은 내가 작은 불씨를 만들어주마. 난 화 속성 최상급 마법 헬파이어(Hell Fire)의 단계를 익혔으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도와줄 거면 조용히 도와주기나 할 것이지 꼭 자기 자랑을 끼워 넣는다.
아무튼 좋다.
지금은 내 능력 사용해 보는 게 더 급하니 넘어가기로 하고.
“잘 봐라.”
카시아시가 말을 끝내는 순간 마당에 작은 불씨 하나가 타올랐다.
“이제 화 속성 마법을 시전해.”
“어떻게?”
“번이라고 말하고 화염을 네 의지대로 조종해라.”
“알았어.”
난 불씨를 바라보며 시전어를 말했다.
“번.”
그러자 그 작은 불씨가 내 정신의 일부와 동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난 불씨의 온도와 크기, 그리고 움직임을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씨를 내 능력으로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바람의 영향을 무시하며 어디까지 불길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도 느껴졌다.
‘우선은 불씨를 키운다.’
내가 의지를 발하자 작은 불씨가 어른 주먹만큼 커졌다.
‘불길을 조종한다.’
이번에는 위로 가지런히 타고 있는 불을 바람에 휘날린 것처럼 옆으로 늘어지게 만들어보았다.
불꽃은 내 의지대로 만족스럽게 움직여 주었다.
“하하!”
가슴이 벅찼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지금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타오르는 불길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다!
이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 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지구에서 태어난 어느 누가 이런 마법을 시전할 수 있을 것인가?
난 새 장난감을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불꽃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부피를 키웠다 줄였다 하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