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35화
당시 난 맨주먹으로 녀석이 휘두르던 스위치 블레이드를 산산조각 냈었다.
“다음번엔 그 꼴 나는 게 네가 될 거라고 말했을 텐데?”
양아치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야, 족제비.”
“네, 네?”
이젠 족제비의 입에서도 알아서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넌 어떻게 경고하면 저 멍청한 두 인간처럼 헛지랄 안 하고 한 번에 알아먹을래?”
“…….”
족제비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여태껏 상황 파악만 하고 있던 존재감 없는 나머지 한 놈은 모기를 닮았다.
“야, 모기.”
“저, 저요?”
한 번에 알아듣는 걸 보니 나 말고도 여러 사람한테 모기 닮았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난 수저통에서 다시 젓가락 한 쌍을 집었다.
“이번에는 이거 너랑 족제비 이마에 하나씩 꽂힐지도 모른다.”
“왜, 왜요! 저,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니, 이미 한 거야. 태진이랑 저 노란 대가리 양아치 새끼랑 같이 다닌 것 자체가 뭔가를 한 거라고! 안 그러냐, 태진아?”
“……씨팔.”
뭐? 씨팔?
이게 완전히 정신 줄 놨구나.
“다시 말해봐.”
“씨팔,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모르는 사람 많은 곳에서 날 쪽 줘야겠냐고!”
이 미친 새끼가.
짜악!
내가 태진이의 뺨을 후려쳤다.
“악!”
태진이의 목이 격하게 돌아갔다.
그에 따라 몸도 옆으로 휙 틀어졌다.
태진이가 얻어맞은 뺨을 손으로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녀석의 입술은 모조리 터져 피범벅이 되었다.
“그럼 내가 한번 물어보자. 너는 대체 무슨 권리로 너보다 나이 많이 잡수신 우리 아버지한테 함부로 대했냐? 그것도 아버지 가게에서, 아버지 손님들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무시하고 쪽 줘야겠냐고!”
짜악!
이번엔 반대 쪽 뺨을 때렸다.
“아악!”
태진이가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쌌다.
“내가 틀린 말 했냐?”
“아, 아니…….”
이미 태진이의 눈엔 공포만이 가득했다.
억울함도, 분노도, 수치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렁이가 밟아서 꿈틀거리면 꿈틀거리지 못할 정도로 더 세게 밟아야 한다.
쥐가 궁지에 몰려서 고양이를 물면, 그 쥐의 허리를 끊어 놓아야 한다.
태진이는 지금 발끈했다가 완벽하게 짓밟힌 지렁이, 허리가 끊어진 생쥐가 되었다.
비로소 확실하게 놈을 제압한 것이다.
태진이가 얻어맞자 나머지 셋은 두 손을 가지런히 앞에다 모으고서 내 눈치를 살폈다.
“너희들한테 경고하는데, 이제 앞으로 어디서든 날 마주치지 마라. 식당에서 밥 먹다가 내가 들어온다 싶으면 도망쳐. 만약에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처먹고 있으면 다음 날부터 밥 씹기 힘들게 만들어줄 테니까. 태진이 너는 학교에서 최대한 내 눈에 띄지 마라. 멀리 떨어져서 앉고 우연히 눈 마주치면 바로 깔아. 곁으로 지나다니지도 말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 내가 들어오면 끊고 나가. 알았냐?”
“응…….”
태진이는 대답했고 나머지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희한테는 우리 집 음식 안 파니까, 당장 꺼져.”
꺼지라는 욕이 그놈들한테는 살려주겠다는 호의로 들렸나보다.
네놈의 얼굴이 일순 밝아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식당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너무 오버했나?’
그냥 조용히 밖으로 끌고 나가서 해결할걸.
내가 설레발쳐서 가게 분위기 안 좋다고 손님들 다 떨어져 나가면 어쩌지?
괜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런데.
띠링!
―맛집에 들어와서 분위기 흐리던 개망나니 넷을 혼내주셨네요! 손님들이 불편해서 힘들어 하던 와중이었는데, 아주 좋은 일 하셨어요. 지웅 씨 덕분에 닭발 옆차기를 찾은 손님들은 다시 평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행을 쌓아 47링크가 주어집니다.
어라?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이이익―!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이야~ 멋있다!”
“저분 사장님 아드님이잖아요? 와, 강하게 키우셨네!”
“사장님 멋있어요! 아드님도 짱!”
“꺄악~! 오빠 멋져~!”
사람들 반응이 내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아무래도 모두 양아치 무리를 누군가 제압해 주길 바랐던 모양이다.
지금 가게에 있는 손님이 대략 서른 조금 넘고, 밖에서 줄 서 있던 손님은 열이 넘었었다.
47링크가 들어온 걸 보면 거의 모든 손님이 도움을 원한 것 같다.
‘하긴 나만해도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양아치들이 와서 난동 부리면 별로지. 짜증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나한테 불똥 튀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되고.’
얼마 전까지만해도 나는 지금 식당에서 식사만 하고 있는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모습이다.
아니, 냉정하게 따지자면 사실 난 그 대부분보다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바람을 해결해 주는 입장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함으로 차올랐다.
탁탁.
아버지가 내 뒤통수를 가볍게 두들겼다.
“너 언제 그렇게 담이 좋아졌냐?”
“좀 됐어요, 아버지.”
“장하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늠름한 아들의 모습을 보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팔을 확 두르더니 기분 좋게 소리쳤다.
“여러분~! 식사하시는데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제가 각 테이블마다 음료수 한 병씩 서비스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짱!”
“브라보~!”
테이블에서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내 옆엔 아랑이가 다가와 있었다.
아랑이와 나는 시선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었다.
아버지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미소 띤 얼굴로 내게 속삭였다.
“구멍 난 기둥은 네가 수리해 놔라.”
“……네.”
부자간에 사리에 참 밝으시네요, 아버지.
* * *
아랑이와 나는 식당에서 나와 카페에 들어갔다.
아랑이는 아메리카노, 나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 인비를 처음에 만났을 때, 그녀가 반 강제로 끌고 들어왔던 그 카페였다.
여자들한테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카페에서 얻은 링크가 47이니까 이제…… 261링크인가?’
300링크까지는 39링크가 남았다.
하루 이틀만 더 열심히 선행을 쌓으면 충분히 모을 수 있는 포인트다.
“지웅아.”
“응?”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아랑이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랑이가 살짝 주저하다가 말했다.
“나랑 있는 거 지루해?”
“어? 아니? 하나도 안 지루한데?”
“응…… 그렇구나.”
“왜? 지루해 보였어?”
“카페에 들어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딴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아…… 미안. 그게 아니라 잠깐 생각할 문제가 좀 있어서.”
“큰 문제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이제 됐어.”
“그럼 다행이고. 난 지루한 줄 알았지. 지루한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건 시간 낭비밖에 안 되잖아. 그런 거 싫거든.”
“아니라니까~”
시간 낭비일 리가 있겠니?
우리 반 남학생들은 모두 너랑 데이트하는 걸 꿈 같은 일로 여길 텐데.
아랑이 너는 아직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지웅이 넌 참 특이한 거 같아.”
“내가 왜?”
“학기 초에 봤을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잖아.”
다를 수밖에.
카시아스를 만나고 나서 완전히 달라졌으니, 안 달라지는 게 더 이상할 판이다.
“그게…… 용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더라구.”
“용기?”
“응. 근데 그 용기라는 게 참…… 그렇더라. 다른 외적인 힘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낼 수 있어야 그게 진정한 용기일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거든.”
“네가 어떤 상황을 겪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응.”
[똥 폼 잡지 말고 카페에서 나갈 때 내 것도 사라. 난 단 게 좋다.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로 부탁하마.]
분위기 좋았는데 갑자기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참고로 카시아스는 자기 몸을 투명화시킨 뒤, 날 따라 카페에 들어왔다.
지금은 카페 테이블 아래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왜 네 걸 사야 하냐.]
[인생 역전 시켜놨더니 고마운 줄을 모르는군.]
[알았다, 알았어. 살게.]
그렇게 카시아스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띠링!
―지웅 님의 행동에 감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정말 대단하죠? 선행을 쌓아 2링크가 주어집니다.
……뭐?
내 행동에 감동을 해?
내가 지금 뭘 했는데? 난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데?
카시아스랑 속으로 티격태격한 게 감동할 만한 일인가?
내가 멍하니 있으니 아랑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역시 심각한 고민 있는 거 아니야?”
“어? 그런 거 아니야.”
그때 또다시.
띠링!
―완전히 보너스네요, 이건. 축하드려요, 지웅 님~! 선행을 쌓아 4링크가 주어집니다.
대체 뭐지?
내가 무슨 선행을 쌓고 있다는 거야?
링크가 쌓이는 건 좋은데, 뭐 하고 있는 게 없으니까 의아할 따름이다.
“아랑아.”
“응?”
“혹시 내가 너랑 대화하는 것 말고 지금 뭐 다른 일 했니?”
“복숭아 아이스티…… 마신 거? 깊이 뭔가를 고민했던 거?”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웅아, 아무래도 너 오늘 피곤해 보여. 그만 집에 들어가고 학교에서 보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띠링!
―선행을 쌓아 7링크가 주어집니다.
또 터졌다!
왜 자꾸 링크가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들어오는 링크의 수가 점점 더 커져 간다.
벌써 잠깐 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벌어들인 링크가 13링크다.
대체 나도 모르는 선행을 내가 어디서 하고 있는 거야?
도플갱어라도 나타난 건가?
[카시아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그게 뭔데?]
[나중에 얘기하지. 지금은 네가 발정 나서 꼬시려는 암컷한테나 잘해라.]
[암컷이라니! 사람이거든?]
[…….]
카시아스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아랑이는 남은 아메리카노를 호록 마시고서 일어났다.
나도 복숭아 아이스티를 벌컥벌컥 마셨다.
* * *
“오늘 즐거웠어, 지웅아.”
“응, 나도.”
나와 아랑이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띠링!
―선행을 쌓아 21링크가 주어집니다.
…… 이젠 불안할 지경이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엄청 잘해주면 괜히 찝찝해지는 기분 알 거다.
지금 딱 그런 기분이다.
“다음번엔 이랑이 데리고 식당 찾아갈게. 같이 식사하자. 오늘은 아저씨한테 대접받았으니까, 그때는 손님으로 와서 제대로 계산하고 먹을게.”
“그러지 않아도 돼.”
“계속 그러면 내가 불편해서 못 와.”
“……흠, 알았어.”
“아, 그리고 수능 끝난 다음…… 그러니까 이번 주 일요일 날 시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