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34화
그 테이블은 손님용이 아니라 직원용이었다.
직원들이 짬 나는 시간에 밥을 차려 먹는 곳이었다.
나와 아랑이는 그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아버지가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친구는 닭발 좋아하나?”
“네. 엄청 좋아해요.”
“뼈 있는 닭발 먹을래, 무뼈 먹을래?”
아랑이가 고민을 했다.
나는 그런 아랑이의 고민을 한 번에 끝내주었다.
“아버지, 모든 메뉴 1인분씩만 다 내주세요.”
“뭐? 전부 다?”
“네.”
“다 못 먹을 텐데?”
“그런 걱정은 마시구요.”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이놈이 무슨 패기인가 싶은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주방에 대고 주문을 했다.
아버지가 가버리자 아랑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지웅아, 진짜 장난 아니다.”
“뭐가?”
“그냥…… 네가 닭발 옆차기 사장님 아들이라니 뭔가 조금 이상하고 그래.”
“어떻게 이상한데?”
“그냥 신기하고 되게 좋아~ 나 무슨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야.”
신데렐라 스토리.
별 볼 일 없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썸을 타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 주인공이 대기업 회사 장남이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말한다.
먹을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아랑이한테는 맛집 사장 아들인 내가 대기업 사장 아들과 동급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 좋다.”
“나도 기분 좋아. 로또 맞은 것 같아. 근데 인터넷에서 보니까 여기 대표 메뉴는 다 사장님 아들이 개발했다고 하던데…… 그럼 그거 혹시?”
이거 쑥스럽네.
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맞아, 내가 개발했어.”
“진짜? 정말 대단하다, 지웅아! 내 이상형이 요리 잘하는 남잔데!”
“어?”
“응?”
아랑이와 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그대로 정지한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뚜~ 뚜루뚜뚜~ 하는 경음악이 흘렀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큼! 크흠!”
“…….”
이렇게 어색할 데가.
근데 아랑이의 이상형이 요리 잘하는 남자라고?
이거 어쩌면…… 내가 아랑이랑?
머릿속에서 그런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할 무렵, 테이블이 세팅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일 닭발과 무뼈 오일 닭발이 나왔다.
워낙에 시킨 게 많아서 나머지 메뉴는 시간을 좀 두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닭발을 본 아랑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와~ 비주얼 장난 아니다. 진짜 맛있을 것 같아.”
“얼른 먹어봐, 아랑아.”
“응, 잘 먹겠습니다!”
아랑이가 무뼈 닭발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홉떴다.
“이거, 정~ 말 정말 맛있어!”
아랑이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서 얼른 입을 가렸다.
식당에 있는 모든 손님이 우리 테이블을 잠시 쳐다봤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컸다.
서빙을 하던 아버지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미, 미안. 목소리가 좀 컸지?”
“아니야, 괜찮아.”
아무래도 아랑이는 맛있는 걸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기분이 좋았던 건, 그녀와 함께 갔던 어떤 맛집에서도 지금처럼 흥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웅아, 이거 대박이야. 엄청 맛있어. 나 이렇게까지 맛있는 닭발은 처음이야. 아니, 닭발을 떠나서 최근에 내가 먹은 모든 음식 중 제일 맛있어.”
“그 정도야?”
“응! 난 음식 맛 가지고 거짓말 안 해!”
내가 아랑이랑 친하게 지낸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녀의 음식 사랑은 익히 잘 아는 바다.
따라서 음식 맛으로 거짓말 안 한다는 말도 충분히 신뢰가 갔다.
아랑이는 오일 닭발과 무뼈 오일 닭발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리고 하나는 볶음밥, 다른 하나는 치즈밥을 볶아서 그것도 게 눈 감추듯해치웠다.
이후 오돌뼈와 주먹밥, 오일 닭똥집이 나왔다.
아랑이는 그 메뉴들도 맛있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쉬지 않고 젓가락을 놀렸다.
그렇게 우리 식당의 전 메뉴를 해치우는 동안 누룽지탕과 계란찜은 세 번이나 다시 주문했다.
“하아, 정말 잘 먹었다.”
아랑이가 텅 비어 버린 식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먹어줘서 고마워. 내가 다 뿌듯하다.”
“아니야. 맛있으니까 다 먹었지. 맛없었으면 이렇게 싹 비우진 못했어.”
“만족스러운 거지?”
“응, 엄청. 그리고 지웅이 너도 달라 보이고.”
“뭐 때문에?”
“아까 말했잖아. 네가 요리를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어.”
“아…….”
그거 말하는 거였구나.
요리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던.
그런 생각을 하니 또 괜히 어색해지는 것 같아서 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맛집 탐방 이걸로 된 거야?”
“응. 너무 맛있는 걸 먹어서, 다른 걸 먹어봤자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아. 이제 계산하고 나가자.”
“계산? 무슨 계산? 여기 우리 식당이잖아. 그리고 지금 이건 아버지가 나랑 내 친구 밥 한 끼 대접한 거고.”
“한 끼……라고 하기엔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잘 알고 있는데?”
“괜찮아. 아버지도 돈 받고 팔 생각 없었을 텐데, 뭐. 계산한다고 하면 오히려 서운해하실걸?”
“그런가? 음…… 그럼 내가 나가서 차 한잔 살게. 어때?”
“좋지.”
단둘이 식사를 한 다음, 차까지 한잔하다니?
이거 진짜 데이트잖아?
아니, 나만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정작 아랑이는 단순히 호의에서 차를 사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일단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을 텐데 굳이 나한테 전화를 한 걸 보면 호감이 조금 더 있긴 한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자리를 옮겨야겠다.
내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그때 갑자기 매장 밖이 시끄러워졌다.
알 수 없는 선행
소란스러움은 매장 바깥에서 식당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오, 줄 존나 기네.”
“뭐 씨팔, 닭발이 다 똑같지, 뭐 얼마나 잘났다고 이렇게 유난이야?”
“이 엄동설한에 손님을 겁나 기다리게 하고.”
“아저씨! 주문 받아요!”
네 명의 남자가 자기들끼리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식당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모든 손님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네, 손님.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가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주문 좀 받으시라구요.”
“번호표 주시겠어요?”
“무슨 번호표?”
“대기표 없으세요? 줄 서 계시는 분들한테 전부 드리는데요.”
“아니, 대기표를 뭐 하러 받아요? 우리는 매장에서 먹을 게 아니라 포장해 갈 거예요. 오일 닭발 사 인분 포장해 줘요.”
목소리도 얼굴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 아버지를 상대하는 태도가 참 엉망이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포장도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 계시다가 들어오셔서 주문해야 하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그건 다음 손님부터 그렇게 하시고, 우리는 그냥 지금 주문 좀 할게요.”
“그건 안 됩니다, 손님.”
“아, 좀 그냥 해달라구요!”
이제는 어린놈이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콰앙!
게다가 옆에서 식사하고 있던 손님의 테이블을 걷어찼다.
손님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녀석을 노려봤다.
“뭐야, 저놈들?”
“아니, 왜 이유도 없이 행패야?”
테이블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놈 주변에 있는 세 놈 중 두 사람의 얼굴이 낯익다.
난 깽판을 치기 시작한 놈에게 다가갔다.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말이 너무 거치네?”
그러자 아버지를 상대하던 놈이 날 노려봤다.
“넌 뭐야?”
아버지가 날 말렸다.
“가만있어, 지웅아!”
“아니요, 아버지. 가만 못 있겠어요.”
난 말을 하며 익숙한 얼굴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둘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한 놈은 우리 반 태진이였고, 또 다른 한 놈은 편의점에서 깽판 부리고, 인비를 협박하던 양아치였다.
나 참,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학교 밖에서는 이놈들이 아주 잘 붙어 다니고 있었구나.
“태진아.”
“어, 어?”
난 아버지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던 족제비 닮은 놈을 가리켰다.
“우리 아버지 가게에서 저 새끼 뭐 하는 짓거리냐?”
“혀, 형인데.”
“그래, 너한테 형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개새낀데. 그만 짖게 할래?”
내 말에 태진이가 난감한 기색을 온몸으로 표했다.
바들바들 떨었다는 얘기다.
족제비가 날 노려보며 분노를 표출했다.
난 녀석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양아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어, 어?”
양아치가 놀라서 대답했다.
“어? 내가 네 친구야?”
“아, 아니요.”
“저 족제비 새끼 수습해서 다섯 셀 동안 데리고 나가.”
“뭐? 족제비? 너 미쳤냐?”
족제비가 나한테 들이대려는 순간.
퍽!
양아치가 족제비의 뒤통수를 갈겼다.
“억!”
족제비가 놀라서 양아치를 돌아 보니, 양아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를 악물고 읊조렸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 파악 안 되냐, 이 새끼야?”
“아, 형님. 딱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왜 저런 새끼한테 쫄고 그러세요?”
양아치와 태진이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족제비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왜 나한테 쪼는지 궁금하지?”
그때쯤 이미 식당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버지도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식당 밖에서 줄을 선 채 기다리던 사람들도 안으로 들어와 상황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봐라.”
난 옆 테이블에 있는 수저통에서 젓가락 한 쌍을 꺼내 앞으로 던졌다.
쐐액!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젓가락 한 쌍이 족제비의 오른쪽 뺨과 왼쪽 귀를 스쳐 지나갔다.
퍼퍽!
곧 젓가락 한 쌍은 식당 건물 나무 기둥에 박혔다.
족제비의 뺨과 귀에는 가는 선혈이 그어졌다.
녀석이 바짝 얼어서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족제비와 태진이, 양아치, 그리고 그 패거리의 나머지 한 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무 기둥에 박힌 젓가락을 보더니 턱을 쩍 벌렸다.
“고개 돌려.”
네놈이 동시에 날 바라봤다.
“하여튼 끼리끼리 어울려 다닌다더니.”
그 말에 가장 찔리는 사람은 태진이랑 양아치일 것이다.
두 놈 다 나한테 된통 혼난 장본인이니까.
“따로따로 꼴통 짓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몰려다니면서 꼴통 짓거리들이냐?”
태진이와 양아치는 서로 날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태진이에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딴 식으로 나랑 엮이면 그땐 가만 안 있는다고 했지?”
태진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너.”
이번엔 양아치를 노려봤다.
“그때 내가 박살 낸 거 뭐였는지 기억나?”
양아치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