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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33화 (33/153)

데일리 히어로 033화

“엄마, 오늘은 컨디션 좋아 보이네?”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지 뭐야? 일찍 일어난 김에 실력발휘 한번 해봤지~”

엄마가 방긋 웃으며 브이(V)자를 그렸다.

엄마의 밝은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는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중인지라 아침 식사는 셋만 하게 되었다.

엄마가 밥을 먹으면서 누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지나야. 넌 다시 미대 들어갈 생각 없니?”

누나는 여전히 시선을 텔레비전에 고정한 채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미대는 무슨 미대. 옛적에 포기했어.”

“이제 아버지 벌이가 조금 되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되지 않겠어?”

“에이, 됐어. 사실 미대 나와서 밥벌이 제대로 하란 법도 없고. 그냥 지금 다니는 회사 열심히 다니다가 사장 아들이나 꼬실래.”

“미쳤냐? 사장 아들이 너한테 넘어가게.”

“엄마. 나 남자들한테 완전 인기 많아. 엄마 유전자 몰빵 이잖아. 어디 빠지는 곳이 있어야지.”

“그래, 너 빠지는 곳 없지.”

“그렇지?”

“응. 엄마 소싯적엔 너보다 더 예뻤어.”

그건 맞다.

엄마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지금의 누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걸 알기에 누나도 반박을 못 하는 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다음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누구랑 결혼했니? 사장 아들? 재벌가 장남? 전도유망한 청년 사업가?”

“…….”

누나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여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야. 내실을 가꿔야지.”

어째…… 누나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아버지를 디스하는 방향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누나가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지웅아.”

“응?”

“엄마가 전부터 물어보려던 건데, 요즘 운동하니?”

아, 내 몸이 전과 많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의문이 들 법하다.

사실 집에서는 맨몸을 거의 보이지 않고 다녔다.

지금 내 몸은 근육으로 꽉 차 있다.

한데 매일 호리호리하던 애가 갑자기 근육질이 된 걸 보이면 의구심을 가질 게 분명하니, 긴팔 긴바지로 몸을 꽁꽁 가리고 다녔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긴 했다.

“응. 운동한 지 제법 됐어.”

“그랬구나. 엄마는 몰랐네?”

“괜히 요란 떨 거 없으니까 말 안 했지, 뭐. 근데 엄마 된장찌개 진짜 맛있다.”

“엄마 실력이 어디 가니? 아빠도 엄마 음식으로 꼬신 거잖아~”

참 아이러니다.

우리 엄마 같은 절세미인이 오히려 아빠를 꼬셨다니.

‘어제까지 내가 모은 링크가 214.’

내가 지금 목표로 하는 건 300링크다.

그것으로 또 골드바를 사려는 건 아니다.

이번에 내가 사려는 것은 두 번째 아티팩트, 비욘드 텅이었다.

그게 엄마의 병을 고치게 할 수 있는 해답이었다.

비욘드 텅은 영혼의 능력을 삽십 분 동안 십수 배로 강화시켜 준다.

지금 엄마에겐 내가 전이시켜 준, 라모나의 힘이 있다.

비욘드 텅으로 그 힘을 강화시켜 주면, 엄마의 병을 고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비욘드 텅에도 리스크는 있다.

비욘드 텅은 하루에 단 하나만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아울러 강화시킨 능력의 제한 시간 30분이 지나면, 그 능력 자체를 하루 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즉 내가 만약 이 능력을 엄마에게 쓴다면, 자가 치유력이 30분 동안 십수 배 이상 올라가는데, 그 이후엔 하루 동안 자가 치유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더 호전되고 있었다.

오늘만해도 그렇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토록 즐거운 얼굴로 상을 차리신 것만해도 대단하다.

그러니 하루 정도 자가 치유력을 잃는다 해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을 듯했다.

차라리 그것보다 삼십 분 동안 십수 배 강화된 자가 치유력으로 파괴된 몸속의 밸런스를 바로잡는 게 더욱 이득일 것이다.

‘300링크까지 앞으로 86.’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 *

아버지의 식당은 일주일 중 월요일 하루를 쉰다.

일요일엔 별다른 약속이 없는 나인지라 오늘도 일찍부터 식당일을 도우려고 했다.

한데 갑자기 약속이 생기고 말았다.

내가 식당일 돕는 것도 팽개치고 약속을 잡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아랑이였다.

아랑이랑은 저번처럼 조각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분명히 이랑이도 함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랑이만 혼자 나왔다.

게다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한껏 더 꾸미고 나온 모습이었다.

보자마자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아주 넋을 놨군.]

내게서 멀찍이 떨어져 따라 걷던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로 말했다.

[너도 남자라면 저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안 나가겠냐? 질투나면 난다고 솔직히 얘기해.]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랑이는 누가 봐도 예쁘니까.]

[아니, 왜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냔 말이다.]

[……뭐?]

서,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지?

[너…… 여자야?]

당황하는 내게 카시아스는 코웃음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놀라는 꼴이 귀엽군.]

[뭐야, 이 자식이! 사람 놀리면 재미있냐!]

[재미없으면 뭐하러 놀리냐.]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

이 녀석이랑 더 말 섞어봤자 정신 건강에 하등 도움될 게 없다.

지금은 아랑이와 만나는 신성한 시간이다.

릴렉스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아랑아~ 혼자 왔어?”

난 아랑이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에 닿자마자 말을 걸었다.

방금 내 말투랑 표정 안 어색했겠지?

“응.”

어? 단답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이랑이의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를 끌어 나가자!

“이랑이는 어쩌고?”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게 실은…….”

아랑이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혹시 이랑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 녀석, 주먹은 제법 쓸 테지만 싸우면 안 되니, 길가다 누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거 아니야?

아니면 큰 사고라도 났나?

그것도 아니면 무슨 병에 걸렸다거나?

내가 상상의 나래를 계속해서 펼쳐 나가는 와중 아랑이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저기…… 사실 오늘 이랑이랑 같이 놀려고 했었어.”

“응, 그런데?”

“이랑이가 갑자기 친구들이랑 농구하러 간다고 하는 바람에…… 널 부른 거야.”

“아, 그런 거야?”

“응. 미안해! 그래도 거짓말하긴 싫었어. 꿩 대신 닭이라는 느낌 들어?”

아랑이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양 볼을 붉게 물들이고 날 올려다봤다.

‘……엄청 귀여워.’

장화신은 고양이는 저리 가라다.

그녀의 빨갛고 도톰한 입술이 자꾸만 날 유혹하는 것 같다.

[변태 새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로 뭐라 지껄이든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화났구나?”

내가 대답이 없자 아랑이가 더 미안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 아니! 절대. 요만큼도 화 안 났어.”

“정말?”

“응. 꿩 대신 닭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앞으로도 이랑이가 바람맞히면 언제든지 불러~”

“진짜 화 안 난거지?”

“그렇다니까.”

“하아~ 다행이다.”

아랑이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살짝 내리눌렀다.

어떻게 너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귀엽고 예쁘냐.

앞에 서 있는 사람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구나.

“그래서 오늘 이랑이랑 뭐하기로 했었는데?”

“아, 맛집 가려고 했거든.”

“맛집?”

“응.”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랑이와 밖에서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랑이는 나를 데리고 무려 다섯 군데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맛집을 들를 때마다 기본 3인분 이상씩은 먹어치웠고, 마지막까지 배가 무지하게 부른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도 전혀 살이 찐 몸매가 아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엄청나게 많이 먹는 사람들이 쇼프로에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었다.

그것도 아랑이가 말이다.

아무튼 아랑이가 오늘 나를 만나자고 한 목적도 맛집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응해줘야지!

내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먹어주겠어.

“저번엔 내가 너무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가는 바람에 힘들었지?”

“어?”

얘가 내 속을 읽었나?

“미안. 먹을 것만 생각하면 이성을 놓아 버리나 봐. 나랑 이랑이는 좋았지만 지웅이는 좀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오늘은 한 군데만 갈 예정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디 갈 건데?”

“일단 애막골로 가자.”

“애막골?”

“응. 거기에 내가 못 가본 맛집이 있거든. 벌써부터 엄청 기대돼.”

음식 얘기를 하는 아랑이의 얼굴에 기대감을 품은 미소가 가득 번졌다.

그 모습이 꼭 장난감을 선물받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 어서 가자.”

아랑이와 난 택시를 잡고 애막골로 향했다.

* * *

“아랑아…… 가보고 싶다던 맛집이 여기야?”

“응. 이름도 재미있지? 닭발 옆차기래~ 호호. 누가 지었는지 작명 센스 최고인 듯.”

“……저기, 아랑아.”

“응? 아…… 줄이 너무 긴가? 기다리기 힘들어? 그럼 다른 데 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나도 인터넷에서 알아봤는데 여기 음식 맛보려면 기본 이삼십 분은 기다려야 한대.”

그게 아니야, 아랑아.

여기 우리 가게란 말이야.

“근데 여기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맛집 파워 블로거도 극찬을 하고, 카페나 클럽 같은 데서도 최고의 닭발 맛집이란 글이 많이 올라왔어. 용용닭발보다 훨씬 맛있대. 그래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어.”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하는 아랑이의 모습이, ‘같이 기다려 줄 거지?’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아랑아.”

“왜? 좀 그래?”

“아니.”

난 아랑이의 손을 잡고 길게 늘어선 줄을 벗어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 지웅아, 여기 줄 서서 기다려야 돼~”

내가 홀에 발을 들이자마자 아버지가 날 확인하고서는.

“서빙……!”

을 하라고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내 옆에 선 아랑이를 보더니 눈을 꿈뻑거리다가 말했다.

“지웅아, 옆엔……?”

“반 친구요. 아랑이에요. 아랑아, 인사해. 우리 아버지야.”

“아버지……? 어? 그, 그럼?”

“응. 여기가 우리 아버지 식당이야.”

“진짜?”

“그래~!”

아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무 놀라 입을 벌린 모양이다.

아랑이는 아버지와 날 번갈아 보다가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웅이랑 같은 반 친구, 연아랑이라고 해요.”

“이거, 지웅이가 친구를 데려온 적이 처음이라 영 어색하네. 허허허허.”

“아버지, 아들 배고파 죽겠어요. 밥 좀 줘요.”

“응? 그래그래, 밥 줘야지!”

아버지는 식당을 둘러보더니 주방으로 향하는 구석자리에 안 쓰는 테이블 하나를 치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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