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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32화 (32/153)

데일리 히어로 032화

북적거리던 매장은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겨우 한가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손님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한 테이블, 두 테이블씩 계속해서 손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다시 대박 행렬이 이어졌다.

매장의 홀이 가득 찼고 손님들은 또 식당 앞에 줄을 섰다.

닭발은 불난 듯 팔려 나갔고, 그와 함께 주류들도 소모되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손님이 더 많이 몰려드는 바람에 결국 여덟 시 이후로는 손님을 받지 못했다.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은 아쉬워하거나 짜증을 내며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짜증을 냈다 하더라도 분명히 다음번에 다시 올 거라는 걸.

맛집을 들르려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는지 보자’라는 심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건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상당히 성공한 요리사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 요리사는 이런 조언도 했었다.

손님들이 식당의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텔레비전을 없애라.

그래서 난 텔레비전을 없애 버렸다.

확실히 손님들은 같이 온 상대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여덟 시까지 받았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폐점을 하니 오후 열 시였다.

오늘 준비한 닭발은 싹 다 팔았다.

상덕이 어머니는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몰라서 100인분 정도의 음식을 준비해 두었었다.

“내일부터는 200인분은 준비해야겠네요.”

가게 뒷정리를 하며 상덕이 어머니가 말했다.

“지웅이네 식당이라서가 아니라 여기 닭발 진심 맛있어요!”

카운터 위에 올라앉아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던 인비가 말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근데, 너 안 가?”

내가 인비에게 물었다.

“가야 돼?”

인비가 되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안 가도 된다.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배는 안 고프니?”

“고파요.”

“저런~ 그런데 닭발이 다 떨어졌으니 다른 거라도 사 먹어야겠네. 옛다.”

아버지가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인비에게 주었다.

인비는 그것을 보자마자 단 한 번 거절 없이 냅다 가져갔다.

“와~ 오만 원씩이나?”

“인비 덕분에 오늘 대박 났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고마워요~ 오빠! 아니, 지웅이 아버지~!”

“오빠? 오빠도 나쁘지 않구나. 하하하하!”

“호호호호!”

……둘이 아주 쿵짝이 잘 맞는다.

처음에 아버지는 인비를 조금 꺼려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호객 행위를 제대로 하고 나서는 무슨 소중한 귀빈 대하듯하고 있었다.

오만 원을 받고 뿌듯해하는 인비에게 상덕이가 조심조심 다가왔다.

“저기…… 인비 씨.”

“응?”

“내일 혹시 시간 있…….”

“없어.”

“그럼 다음 주 금요일은……?”

“없어.”

“다음 주 토요일은요? 영화 보러 갈래요?”

“성당 가야 돼.”

“일요일은요?”

“교회 가야 돼.”

“……성당은 천주교고, 교회는 기독교잖아요?”

“둘 다 믿어. 난 불교도 믿어.”

“그럼 오늘 저녁에 밥 먹을래요?”

“배 안 고파.”

“조금 전에 배고프다고…….”

“돈 받았더니 배불러졌어.”

“아…….”

참 저 둘도 대단하다.

한 명은 어마어마한 철벽녀, 한 명은 여자가 철벽 치는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들러붙는 모태 솔로남.

상덕이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녀석은 결국 도를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인비 씨, 전부터 어디서 본 것 같았어요.”

“어디서?”

“그 왜…… 후평동에 영화관 있잖아요.”

“아, 거기?”

“네. 우리 거기서 분명히 스치듯 봤었어요! 이거 운명 아니에요?”

“그래서 다음부터 그 영화관 안 가.”

“아…….”

완전히 망했네.

물 건너갔으니 그만 눈독 들여라, 상덕아~

* * *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오늘 하루 매출을 계산해 보니 총 128만 3천 원이었다.

“많이 벌었네?”

아버지와 내 곁에서 돈 계산 하는 걸 본 엄마가 말했다.

“근데 이게 순수익이 아니라서.”

“그런 거야?”

“응. 재료비랑 갖가지 가게 세금,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아버지는 말을 하며 계산기를 타타탁 두들겼다.

그러자 나온 금액은 41만 3천 원이었다.

“40만 원 정도네. 128만 원 벌어서 고작 이거 남는 거야? 가만있어 보자…… 하루에 40이면 한 달이면 얼마냐. 한 달을 삼십 일로,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는 가정하에 26을 곱하면…….”

입으로 읊조리는 대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결과 값을 뽑아낸 아버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버지의 곁에서 계산기를 바라보던 나와 엄마도 굳었다.

계산기에 적힌 액수는 무려.

“처, 처, 처, 천만 원?!”

천만 원 정도였다.

그것도 순수익이 천만 원인 것이다!

“세상에, 천만 원이라니…….”

엄마가 놀라서 입을 가렸다.

우리 가족이 한 달에 천만 원씩이나 벌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대박 행렬을 이어가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난 자신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오늘처럼 계속해서 좋은 매상을 올릴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있는 빚 다 갚고 돈을 모으면서 살 수는 있을 거야.”

“여보…….”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다 우리 아들 덕분이야. 오일 닭발 만들어낸 게 이 녀석이잖아.”

“장해, 정말. 우리 아들.”

엄마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분이 양쪽에서 머리를 쓰다듬으니 가르마가 오 대 오로 타진다.

“그런데 언제부터 요리에 취미가 있었니?”

사실 요리엔 전혀 취미가 없었다.

지금도 딱히 취미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리조네와 마르펭의 힘을 얻어 요리를 잘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딱히 할 말이 없어 난 말을 돌렸다.

“그보다 엄마, 몸은 좀 어때?”

엄마가 포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전보다 훨씬 나아.”

“정말?”

“그럼~ 이러다 다 나아 버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렇게 되면 좋은 거지!”

“그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는 요새 병이 더 악화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호전되지도 않는 상태인 것 같았다.

라모나의 힘을 주었으니 금방 좋아질 거란 기대는 너무 과한 모양이다.

라모나의 힘으로는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 고작이었나 보다.

‘무슨 수를 내야 돼.’

언제까지 엄마가 병마와 쾌유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게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떡하든 엄마의 병은 내가 치료해 줄 것이다.

반드시.

맛집 데이트

가게를 차리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수능은 이제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학생은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수능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애초부터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어차피 망한 수능 괜히 책상 앞에 앉아 들어오지도 않는 책 들여다보며 시간을 버리긴 싫었다.

그래서 오늘도 늘 그렇듯 편의점 알바를 했고, 알바가 끝나자마자 아버지 식당으로 향했다.

‘닭발 옆차기’

식당의 상호가 오늘도 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식당 앞에는 닭발을 맛보기 위해 찾아왔다가 내부가 꽉 차 대기하는 팀이 셋이나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술손님들로 시끌벅적한 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상덕이 어머니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이틀 전까지는 혼자서 하셨는데, 도저히 손님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 보조 아줌마 한 명을 구했다.

그리고 홀에도 아르바이트생이 생겼다.

처음에는 상덕이가 학교를 파하고 찾아와서 서빙을 도왔었다.

한데 상덕이 이 자식은 서빙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실수로 떨어뜨리고 엎어 버리는 게 더 많았다.

그래서 알바를 구했다.

아버지는 서빙 알바 두 명과 함께 열심히 음식과 술을 날랐다.

물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것도 아버지 몫이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문에 걸어놓은 종이 크게 울렸다.

딸랑~!

아버지가 반사적으로 입구를 돌아봤다.

그리고 들어선 사람이 나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반갑게 소리쳤다.

“서빙해라!”

“넵!”

어느 안전이라고 거절하겠는가?

난 앞치마를 두르고 아버지 대신 홀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 * *

식당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문을 닫았다.

아르바이트생들과 상덕이 어머니를 들여보내고 아버지와 둘이서 뒷정리를 마쳤다.

모든 일을 끝내고 식당 문을 잠그니 새벽 네 시였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카시아스는 어느새 날 따라와 어깨 위에 올라섰다.

아버지는 그런 카시아스의 모습을 종종 봤다.

처음에는 웬 고양이냐며 신기해하셨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오늘은 얼마나 버셨어요?”

“집에 가서 계산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이백 정도는 될 걸?”

“그럼 순이익이 70정도 떨어지겠네요.”

“용돈 올려달라고 하지 마라.”

“안 그럽니다!”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그 바람에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아버지는 요즘 농담도 곧잘 하신다.

우리 집이 한참 힘들 때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 작은 농담도 하지 않았었다.

원래 유쾌하고 장난끼 많고 유머러스한 분이었고, 그 모습을 아는 난 아버지의 힘없는 모습이 대단히 가슴 아팠다.

하지만 요즘 아버지는 예전의 모습을 점점 되찾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식당일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편안 하니 살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식당이 잘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계속 이렇게만 되어주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될 겁니다, 아버지.

더더욱 잘되게, 모든 일이 잘 풀리게.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릴게요.

* * *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어제도 난 아버지 식당일을 도와드렸다.

집에 들어오니 새벽 다섯 시였고, 늦게 잠이 든 만큼 점심 때까지는 뻗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부엌에서 흘러 들어오는 구수한 냄새와 통통통통, 도마 위에서 칼이 춤추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가 보니 한 상 가득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누나는 벌써 나와 상 한편에 자리를 잡고서 아침 드라마를 보는 중이었다.

“어머, 어머. 개막장이다, 진짜~! 어떻게 지가 사랑했던 사람의 동생이랑 눈이 맞을 수가 있어?”

난 그런 누나의 옆에 앉아서 나지막이 말했다.

“누나 지금 대단히 대단하게 아줌마 같아.”

누가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상당히 상당하게 얻어맞고 싶지?”

“정중히 정중하게 사과할게.”

“얌전히 얌전하게 입 다물어라.”

“응.”

그나저나 요새 엄마가 해주는 아침밥을 도통 먹어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안 좋으니 일찍 일어나 행동하기가 불편한 탓이다.

‘전보다 좀 좋아지신 건가?’

“야, 밥 좀 퍼.”

누나가 발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알았어.”

주방으로 가서 밥 그릇 세 개를 꺼냈다.

마침 엄마는 다 끓인 된장찌개를 들고 상 위에 놓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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