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30화
아버지가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제정신 아닌 사람이 많은 것 같네요.”
그리 말하는 아버지의 시선이 주방으로 향했다.
우리도 조금 전에 상식 밖의 사람 하나를 가게에서 내쫓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보다시피 우리 가게 꼴이 이래요. 손님도 하나 없고, 언제 문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아버지의 그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게만큼은 내놓을 생각을 안 하셨었다.
가게가 우리 가족의 유일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은 그 가게마저 처분할 생각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난 저릿한 가슴을 한 차례 탕! 두들겼다.
그러자 아버지가 자연스레 날 바라봤다.
“아버지, 그래서 비장의 무기를 갖고 왔잖습니까?”
“비장의 무기라니?”
난 망설임 없이 반찬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직 조리 전인 무뼈 국물 닭발이 담겨 있었다.
“이거…… 닭발 아니냐?”
“네. 이게 우리 가게를 살려줄 거예요.”
아버지는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이미 이 동네는 용용닭발이 꽉 잡고 있다. 거기 이기지 못하면 닭발 장사 해봤자 가망 없어. 몇 년 전까지만해도 수두룩하던 닭발집들이 용용닭발 들어오고 나서 우루루 문 닫아 버렸잖냐.”
그렇게 비관적인 말들을 내뱉던 아버지가 아차! 하며 상덕이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이 닭발…….”
상덕이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거 지웅이가 만든 거예요. 저는 그냥 조금 거들기만 했구요.”
“네? 지웅이가요?”
아버지는 경악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서 날 바라봤다.
그리고 닭발을 슬쩍 바라보더니 멀찍이 떨어져 코를 막았다.
……뭡니까, 그 반응은?
제가 만든 요리를 무슨 화학무기 취급하시네요.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 놈이 만들어 온 닭발이라니. 말 다했다.”
“일단 드셔보시고 말씀하시죠?”
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이, 이거 뭐냐, 대체!”
무뼈 국물 닭발을 먹은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아버지는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쁘게 젓가락을 놀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1인분을 전부 비워 버렸다.
국물도 마시려는 아버지를 말리고서 볶음밥을 만들어 드렸다.
아버지는 그것마저도 모두 드시고 나서야 놀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 거냐?”
“맛있죠?”
“맛있는 정도가 아니야! 용용닭발보다 훨씬 낫구나!”
“그거 만들려고 저랑 아줌마랑 고생 좀 했어요.”
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맛의 여운이 오래가는지 한참 동안 말을 못 잇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리 좀 해보자. 아무튼 이걸 너랑 상덕이 어머님이 만들었다 이거지?”
“네.”
“그럼 이건 완전히 우리가 개발한 거네?”
완전히라고 하긴 조금 그렇다.
기본 베이스는 용용닭발의 레시피에서 벤치마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가 만든 국물 닭발은 들어가는 재료 두 가지가 교체되고 기존의 비율 배합도 바뀌면서 완전히 그 맛이 달라졌다.
때문에 누구도 용용닭발의 맛을 가져와 바꿨다고는 생각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약간의 거짓말은 해도 되겠지.
“그럼요, 아버지. 우리가 개발한 거예요. 우리 가게 거라구요.”
“그리고 이 닭발 레시피를 상덕이 어머님이 알고 계시니까 주방에 들어오시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테고요?”
“얼마든지요.”
상덕이 어머니가 가슴을 쭉 내밀었다.
“좋습니다. 상덕이 어머니께서 주방일 해주시는 거, 대환영입니다! 그리고 이 닭발을 우리 집 메인 메뉴로 내거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하아, 돈이죠, 뭐.”
역시나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상덕이 어머니는 품에서 삼백구십여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내밀어 테이블 위에다 탁! 올려놓았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 내가 미리 상덕이 어머니에게 준 돈이다.
아버지 식당 앞에서 나와 상덕이 어머니는 작은 작당을 했었다.
“아주머니. 이 돈, 제가 할아버지 유품 팔아서 마련한 거라는 건 아시죠?”
“알다마다.”
“그러니까 돈의 출처는 비밀로 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한테 이 돈을 제가 건네 드리기 힘들어요.”
“그래서 내가 대신 건네달라 이거지?”
“네. 사실 다른 방편이 없어요. 고3인 제가 할아버지 유품을 팔지 않는 이상, 이 돈을 어디서 구했다고 하며 드리겠어요.”
“알았어, 걱정 마. 이 아줌마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그래주시겠어요?”
“이래 봬도 고등학교 다닐 땐 촉망받는 연극배우였단다? 물론 동아리 내에서만 인정받았지만.”
“진짜? 엄마가? 그때나 지금이나 못생겨도 연기 잘하면 다 배우 했었구나.”
퍽!
“끄엑!”
그러한 연유로 지금 테이블 위에 놓인 돈 봉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상덕이 어머니가 되었다.
“이게…… 뭡니까?”
아버지가 상덕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열어보세요.”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본 아버지가 안을 확인하고 헛숨부터 들이켰다.
“헙!”
“보셨어요?”
“이거, 돈…… 아닙니까?”
“네. 정확히 삼백구십만 원이에요.”
“근데 이 많은 돈은 왜……?”
“투자금이에요.”
“투, 투자금이라니요?”
“메인 메뉴 닭발로 바꾸려면 이것저것 새로 사야 하는 것이 많을 거예요. 가게 내부도 닭발집처럼 살짝 손봐서 리모델링하고, 간판도 바꿔야겠죠? 거기에 필요한 돈, 이걸로 해결하세요.”
“하, 하지만…….”
“지웅이 아버지! 아니, 사장님!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이건 투자금이에요! 나중에 다 돌려받을 테니까 그렇게 아시라구요.”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할 말을 잃고 돈 봉투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겨우 이 상황을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투자금 고맙게 받겠습니다.”
저 말을 하기까지 스스로의 자존심과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야 했을까.
그 마음이 상덕이 어머니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상덕이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져서 코를 살짝 훔쳤다.
“에이그~ 눈에 뭐가 들어갔나. 큼! 흠! 아무튼 오늘은 그만 들어가 볼게요. 내일부터 나와서 가게 청소도 하고, 리모델링도 도와주고 할 테니까 사장님은 어떻게 내부를 바꾸면 좋을지 고민 좀 해주세요.”
“네네, 그렇게 할게요.”
“상덕아, 가자.”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상덕이네 가족이 가게를 나서려했다.
“상덕이 어머니.”
그런데 아버지가 상덕이 어머니를 불렀다.
상덕이 어머니가 뒤돌아서자 아버지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상덕이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도 감사드려요, 아주머니.
* * *
가게 리모델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국물 닭발을 메인 메뉴로 내걸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한 지 6일이 지났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바꾼 것은 가게 내부가 아니라 간판이었다.
간판부터 바뀌어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일반음식점이 닭발집으로 바뀐다는 걸 빠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식당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오갔다.
나와 아버지, 상덕이 어머니는 열심히 떠오르는 제목들을 내뱉었다.
전설의 닭발, 닭발의 신, 명인 닭발, 원조 닭발, 매운불 닭발, 국물 닭발 등등 여러 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특징이 보이지 않아 애매하던 차에, 회의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예능프로만 시청하던 상덕이가 대폭소하며 한마디를 던졌다.
“푸하하하하하! 꿀처럼 단 귤을 한 글자로 줄이면/귤! 닭발 옆차기 하는 소리하고 있네! 크크크크!”
순간 우리 세 사람은 일제히 상덕이를 바라보았고, 상덕이는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을 껐다.
다음 날, 우리 가게엔 닭발 옆차기라는 간판이 걸리게 되었다.
이후, 금요일까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열심히 선행을 쌓는 것만큼이나 가게 일을 많이 도왔다.
내부 디자인은 이전과 완벽하게 달라졌다.
메뉴판도 새로 만들었고, 가게의 식기들도 매장 분위기에 맞게 바꿨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토요일.
드디어 가게가 오픈하는 날이다.
아버지와 상덕이 어머니, 상덕이, 그리고 난 오전부터 가게에 나와 분주했다.
닦은 바닥을 몇 번이나 다시 닦고, 테이블 위를 계속해서 행주로 훔쳤다.
혹여라도 어디 불청결해 보이는 곳이 없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사실 오늘은 어머니도 너무 오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안정을 취해야 하기에 오려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만류했다.
어머니는 정말 몸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으니, 가도 될 것 같다 고집을 부렸다.
하나, 완강한 아버지 때문에 결국 집에 계시기로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본인의 착각이 아니길 기도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넘겨준 라모나의 능력이길 바랐다.
어찌 되었든 어머니는 지금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제 곧 가게를 오픈할 시간이다.
내 시선이 가게의 벽 한편에 자리한 메뉴판으로 향했다.
메인 메뉴는 오일 닭발과 무뼈 오일 닭발 두 가지였다.
오일 닭발의 뜻은 양념 숙성 기간이 오 일이기 때문에 오일이라고 붙인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오일이 들어가는 줄 알겠지.
그렇게 닭발 이름만으로 그 뜻을 재미있게 유추하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메인 메뉴 밑으로 오일 오돌뼈, 오일 닭똥집, 계란찜, 주먹밥, 누룽지탕의 부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다시 그 밑으로는 국물에 볶아 먹을 수 있는 사이드 메뉴인 볶음밥과 치즈밥이 보였다.
그 외엔 다 음료수, 주류 같은 것들이었다.
메뉴판은 디자인이 참 예쁘게 나왔다.
사실 저 디자인을 해준 건 다름 아닌 상덕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녀석이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리고 디자인 프로그램도 썩 잘 다뤘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쪽으로 잘만 굴리면 밥벌이는 하면서 살 것 같다.
“자, 이제 오픈입니다!”
아버지가 크게 외친 후, 잠가놓았던 가게 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로 겨울의 찬바람과 함께 환한 빛이 스며들어 왔다.
그것이 내게는 마치 희망의 한 조각처럼 보였다.
드디어 우리 가족의 앞날을 바꿀 닭발 옆차기가 오픈했다.
팽팽한 줄다리기
가게를 오픈한 건 오전 10시.
이제 곧 점심 때가 되니 손님들이 들어올 거란 기대를 가지고서 매장을 지켰다.
한 시간이 흘러 11시가 되었다.
아직까지 손님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보통은 12시쯤이 되어야 허기를 느끼고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니까.
하지만 12시가 되어서도 우리 가게엔 손님이 전혀 걸음을 하지 않았다.
“하아,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