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29화
그리고 들어가는 과일 자체도 두 가지를 바꾸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다시 한 건 나였다.
리조네의 절대미각은 기존에 있던 음식의 맛을 어떻게 하면 더욱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지도 파악해 버린다.
내가 리조네의 힘을 얻은 초반에는 그저 음식에 깃든 재료들을 파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데 이 힘이 익숙해지면서 이제 나도 더 나은 맛을 위해 재료의 비율을 재조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더불어 무엇을 빼고, 어떤 것을 넣으면 전혀 색다르면서도 더욱 좋은 맛을 뽑아내는 것이 가능한지도 알았다.
눈앞에 놓인 숙성 양념 소스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내가 검지로 양념 소스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한참 동안 혀를 굴려 양념 소스의 맛을 음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됐다.’
지금까지 먹어봤던 그 어떤 양념 소스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이것으로 국물 닭발을 만들면 분명히 된다는 확신이 왔다.
“맛있어요.”
“맛있어?”
“네. 바로 이거예요!”
내 확답에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어머니, 바로 국물 닭발 좀 만들어볼게요.”
“그래그래!”
상덕이 어머니가 하루 전 과일 소스에 재워놨던 무뼈 닭발을 가지고 나왔다.
닭발을 재운 그 과일 소스는 방금 맛봤던 오 일 숙성한 양념의 베이스가 되는, 즉 내가 배합을 다시 한 과일 소스였다.
난 과일 소스에 재운 무뼈 닭발과 오 일 숙성한 양념 소스를 이용해서 무뼈 국물 닭발을 만들었다.
요리에는 어떠한 화학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았다.
요리가 완성되어 갈수록 맛있는 냄새가 사방에 퍼져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조금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도 식욕을 자극하는 극강의 냄새였다.
“야, 이거 다 된 거 아니야?”
급기야 상덕이는 날 재촉하기 시작했다.
마침 요리는 완성되었고, 난 그것을 상에 올렸다.
우리 세 사람은 한 손에 젓가락을 들고서 동시에 닭발 하나씩을 공략했다.
그리고 그걸 입에 넣어 씹는 즉시.
“……!”
“……!”
“……!”
우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
곧 세 사람의 젓가락은 바쁘게 움직이며 닭발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분식집에서 그 많은 음식을 먹고 온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손놀림이었다.
순식간에 무뼈 닭발이 동나고 국물만 남았다.
이제 우리 세 사람의 손엔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다들 살짝 식은 국물을 한입씩 떠먹고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쳤다.
“볶음밥!”
그렇다.
이건 완벽한 볶음밥 국물이다.
상덕이 어머니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더니 밥 한 공기에 참기름과 깨소금, 김 가루, 그리고 김치와 양배추를 잘게 썰어 얹어서 갖고 왔다.
그것을 남은 닭발 국물에 넣고 가스레인지에 가열하며 빠르게 볶았다.
볶음밥은 금방 완성되었다.
다시 상 주변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전투적으로 숟가락을 휘둘렀다.
처음 한 숟갈이 내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풍부한 맛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 역시 나와 비슷한 얼굴이겠지.
이건 정말 초대박이다.
무뼈 국물 닭발은 물론이고, 남은 국물에 볶아 먹는 밥까지!
‘여기에 치즈도 추가하면 더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치즈는 호불호가 갈리니, 볶음밥 메뉴를 정할 때 볶음밥과 치즈밥이라는 메뉴를 나누어서 넣어야겠다.
잠시 동안의 감상 이후 다시 우리 셋의 숟가락은 바빠졌고, 볶음밥이 금방 동났다.
“푸하아~! 잘 먹었다!”
상덕이가 불룩 나온 배를 두들기며 드러누웠다.
상덕이 어머니도 트림을 꺼억~ 하고서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 역시 배가 불러 터질 지경이다.
그런데도 불쾌하지 않고 즐거웠다.
이거면 됐다.
용용닭발의 것을 뛰어넘는 맛이다.
“아주머니! 이제 됐어요. 우리 이걸로 시작하면 돼요!”
“그래, 지웅아! 이거네, 이거야!”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닭발 중에 제일 맛있어!”
“그렇지?”
상덕이 어머니가 상덕이에게 물었다.
“응! 엄마가 만든 건 진짜 완전 맛없는 거였네!”
뻐억!
“어억!”
상덕이의 복부에 어머니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닭발 옆차기
우리 세 사람은 비장의 무기를 챙겨 아버지의 가게로 찾아갔다.
아버지는 카운터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어서 오…… 응? 지웅아. 상덕이도 왔네? 아이고, 상덕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우리 가족과 상덕이네 가족은 서로 안면이 있다.
아직 우리 가족이 힘들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상덕이네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에는 종종 가족끼리 만나 외식도 하고 그랬었다.
하지만 우리 집이 힘들어지고 상덕이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힘들어지는 바람에 한동안 왕래가 없었다.
“오래간만이에요, 지웅이 아버지. 제가 너무 연락도 없이 무심했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리 가족이야말로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런데 어쩐 일로……?”
아버지가 궁금한 듯 물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들고 있던 커다란 반찬 통을 턱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이게 뭐냐?”
“우리 가게를 살릴 요리예요.”
“뭐? 우리 가게를 살린다니?”
“기대하세요. 개봉박…….”
내가 뚜껑을 막 열려는 찰나, 내 귀에 누군가의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그래, 그렇다니까. 여기 사장 완전 호구야. 손님이 하나도 없고, 그 덕분에 나도 죙일 노는데 다달이 월급은 꼬박꼬박 줘. 완전 노 났지.”
……뭐야, 이거?
파펠의 뛰어난 청력이 누군가의 작은 음성을 잡아냈다. 난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파악했다.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사장이야 망하든 말든. 난 나 받을 거 제대로 챙겨서 나오면 되는 거지. 그치? 네가 들어도 신기하지? 다른 데서는 한 달도 못 돼서 쫓겨났는데 여긴 벌써 반년이 넘었다니까. 내일 망하면? 오늘까지 일한 거 다 달라 그래서 다른 데 가야지.”
이 음성은 주방 아주머니의 것이 틀림없었다.
여태껏 그 아주머니가 날 보고 제대로 인사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목소리가 어떤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가게 주방에 있을 사람은 그 아주머니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아버지를 험담하고 있는 것도 그 아주머니일 것이다.
난 뚜껑을 열려다 말고 주방으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주방 아주머니는 앉은뱅이 의자에 엉덩이를 깔고서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소곤소곤 통화 중이었다.
“돈 줄 거라니까. 보통 호구가 아니야. 망해서 이번 달 치 못 준다 그러면 내가 가만있게? 바로 고소할 거야.”
하, 더는 못 들어주겠네.
“저도 아주머니 고소하는 수가 있습니다.”
내 음성에 주방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아주머니는 얼른 전화를 끊고 딴청을 부렸다.
“어, 어휴. 소, 손님인 줄 알았네.”
“아주머니.”
“응? 왜, 왜요?”
“방금 통화하시는 내용 다 들었거든요?”
“내가 무슨 통화를 했다 그래?”
“전화하면서 이 집 가게 사장이 호구니, 어쩌니 하셨잖아요!”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버지가 다가왔다.
주방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날 번갈아가며 보더니 몹시 당황했다.
아버지가 그런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지금 우리 아들이 하는 말 정말입니까?”
“아, 아니에요. 제가 엄한 말 잘못했다가 변 당할 일 있어요? 그, 그런 적 없어요.”
웃기고 있네.
“제가 더 얘기해 볼까요? 우리 가게 손님이 하나도 없고, 그 덕분에 아주머니도 종일 노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나와서 완전 노 났다구요? 가게가 내일 망하더라도 오늘 일한 것까지 급여 챙겨달라 할 거라구요? 안 챙겨주면 고소할 거라구요!”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자 아주머니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내, 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 그래! 이것 봐, 학생! 이런 식으로 생사람 잡아도 되는 거야! 엉?!”
궁지에 몰리니 아주머니는 목소리를 키웠다.
그에 내가 한마디 더 하려드니 아버지가 그런 날 말렸다.
“그만해라, 지웅아.”
“아버지!”
“아주머니, 지금 그럼 내 아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요?”
“그래요! 자식 교육을 대체 어떻게 시켰길래, 이렇게 생사람을 잡아그래!”
저 아주머니가 흥분해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나보다.
사장 앞에서 그 사장의 자식을 욕하고 교육에 대해 운운하다니.
아버지는 그래도 끝까지 화를 참아 넘기셨다.
“아주머니. 제 아들, 공부도 못하고 교우관계도 원만치 않고 딱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놈입니다. 그런 걸 두고 교육 잘못시켰다고 한다면 저야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이 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애먼 죄 뒤집어씌워 모함할 놈은 아닙니다. 전 그렇게 키웠습니다.”
“……네, 네? 아니 나는…… 사장님이 잘못 교육시켰다고 그런 말 하려던 게 아니라…….”
“제가 지금 무슨 말씀 드리는지 모르시겠어요? 난 내 새끼 믿습니다.”
“사, 사장님?”
“나가주세요. 어제까지 일한 건 계좌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뒤돌아섰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내가 여기 아니면 어디 일할 데 없을까 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아주머니는 마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화난 걸음으로 가게를 나가 버렸다.
“어머어머,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대?”
상덕이 어머니가 혀를 찼다.
그러자 상덕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말야. 근데 엄마, 방금 그 아줌마 생긴 게 좀 엄마 닮지 않았어?”
퍽!
“꺽!”
상덕이 어머니가 상덕이의 얼굴에 니킥을 날렸다.
하여튼 매를 벌어요, 매를.
* *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난 다음, 아버지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후우, 주방 아주머니가 나가 버렸으니 이제 어쩐다.”
그 말에 상덕이 어머니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 어렸다.
“아버지.”
“응?”
“새로운 주방 아주머니 제가 모시고 왔잖아요.”
“뭐? 어디?”
주변을 살피던 아버지의 시선이 상덕이 어머니에게 꽂혔다.
“설마……?”
“맞아요. 상덕이 어머니께서 우리 가게 주방에서 일해주실 거예요.”
“그게…… 그래도 되는 건가?”
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좀 미적지근한 아버지 반응에 상덕이 어머니가 애타는 얼굴이 되었다.
“왜요? 제가 여기서 일하는 건 싫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상덕이 어머니 구름다리에서 포차 하시잖아요? 닭발 열심히 팔고 계신 분을 갑자기 우리 주방으로 들여놓기가 좀…….”
그 말을 듣고 나서 상덕이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 또 뭐라고. 그 일이라면 걱정 말아요. 포차 정리했어요.”
“네? 아니, 왜요?”
“얼마 전에 사고가 좀 있었거든요. 요샌 워낙 미친놈이 많아서 그런 식으로 불법 포장마차는 운영 못 하겠더라구요. 마음이 어찌나 불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