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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27화 (27/153)

데일리 히어로 027화

그러나 상식적으로 부모님이 그런 말을 믿을 리 없다는 게 문제다.

‘어쩐다.’

고민하며 집으로 향하는 내게 카시아스가 물었다.

“골드바를 사서 좋아?”

“그럼 돈 들어오게 생겼는데 안 좋아?”

“나중을 생각한다면 골드바보단 아티팩트나 영혼의 힘을 사는 게 더 좋았을 텐데.”

“……근데 왜 안 말렸어?”

“이제는 슬슬 네가 혼자의 판단으로 해나갈 때다. 언제까지 내 그늘에서 태양을 피할 생각이냐? 그리고 난 분명히 말렸다.”

“꼬리로 대충 한 번 친 거?”

“그래, 그거.”

“고맙다. 열성적으로 뜯어말려 줘서.”

“고마운 줄 알면 됐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햄이나 내와라.”

냉장고에 햄 남아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미리 말해두지만 차가운 건 싫다. 잘 구워서 내와.”

하여튼 바라는 것도 많다.

한데…… 앞으로는 카시아스가 내 판단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그것 참 편하겠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겁이 나기도 한다.

내가 나 혼자만의 판단으로 앞으로의 일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 * *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상덕이네 집.

오늘 나는 상덕이 어머니와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카시아스는 오늘도 나를 쫄래쫄래 따라오다가, 어깨에 올라탔다가 머리에 올라탔다가, 그 상태로 투명화했다가, 아무튼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며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상덕이네 집은 구름다리 근처라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상덕이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난 무심코 카시아스에게 물었다.

“근데 카시아스.”

“왜?”

“레이브란데는 왜 이런 마법을 만든 거야?”

“본래는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였었지.”

“그런데 사용 못 한 거야?”

“그래. 왜인지는 묻지 마라. 나도 자세히 모른다.”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마법의 존재 의의는 뭘까? 왜 이런 마법을 만든 거야? 어디다 쓰려고? 레이브란데는 대마법사였다며? 그럼 충분히 강했을 테니 힘이 필요했던 건 아닐 테고.”

카시아스는 내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나는 네게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시전했다. 그리고 넌 그 마법 속에서 선행을 쌓아 얻은 링크로 영혼의 힘을 사지. 그리고 그 영혼들의 힘을 이용해 다시 선행을 쌓게 되겠지.”

“그렇겠지?”

“네가 그 영혼들의 힘으로 선행을 쌓으면 네가 산 영혼들은 위로를 받는다.”

“위로? 무슨 위로?”

“자신의 힘을 빌려준 매개체가 착한 일을 해서 다행이라는 위로. 그렇게 위로를 받은 영혼들은 네게 자신의 힘만을 남겨두고 저승으로 가게 되지. 하지만 가끔 소라스처럼 커다란 한을 가진 영혼들은 기억 속으로 들어가 직접 그것을 풀어주어야 저승 가는 길을 밟는다.”

“내가 선행을 쌓는데, 영혼들한테 왜 위로가 돼?”

그리고 그 영혼들은 굳이 내게 위로를 받아야 저승으로 가는 건가? 위로받지 못하면 저승으로 못 가는 거야?

“네가 사는 영혼은 하나같이 이승에 미련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것들이야. 그 미련이 바로 한이 되는 것이고. 한을 품은 영혼은 저승으로 가기엔 너무 탁해서 이를 씻어내야 하지. 한데 네가 영혼의 힘으로 선행을 쌓으면 맑은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것이 탁한 영혼을 세척한다. 이것을 위로한다고 하지. 그렇게 위로받은 영혼은.”

“내게 선물처럼 자신의 힘만 남기고 저승으로 간다?”

“그렇지.”

이거 무슨 내가 액받이 무녀라도 된 기분이다.

미련이 남아 한을 품은 영혼의 힘을 사들여 선행을 하고, 그렇게 발생하는 맑은 에너지로 탁한 영혼을 세척해 위로해 주면, 그 영혼들이 승천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레이브란데는 엄청난 박애주의자라서 죽은 영혼들의 성불까지도 신경 쓴 거야?”

“그건 아니겠지.”

“그럼 뭔데?”

“유지웅, 난 네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차마 다 못하는 얘기가 있을 수도 있어. 지금은 모든 것을 얘기해 줄 때가 아니다. 그러니 질문은 거기까지만 해.”

카시아스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니 나도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결국 아쉽지만 오늘은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벌써 상덕이네 집 앞에 도착했다.

상덕이는 어머니와 둘이서 주택 반지하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상덕이에게 전화를 하니, 곧 어머니와 둘이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어제 내가 아침에 찾아갈 것이라 얘기를 해둔 터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완벽히 나를 사업 파트너로 인식하고 계셨다.

해서 내가 찾아가면 상덕이와 함께 날 맞으러 나오신다.

“지웅아, 아침 먹었어?”

“아니요.”

“그럼 안으로 들어오지 그러니. 밥부터 먹고 뭘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상덕이 어머니가 내 끼니를 걱정해 주신다.

정말 좋은 분이시다.

“괜찮아요. 오늘은 다른 곳부터 들렀다가 맛있는 아침 먹으러 가요. 제가 사드릴게요.”

그러자 상덕이가 눈을 빛냈다.

“정말? 그럼 난 스테이크!”

저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스테이크라고 믿는 놈이다.

“알았다, 알았어. 아무튼 그 스테이크 먹으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열심히 걷자.”

“왜 걸어?”

“여기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럼 어디서 해결해야 하는데?”

“금은방.”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100g 골드바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그것을 본 상덕이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경제관념 제로인 상덕이는 ‘우와~ 금이네?’ 하고 말 뿐이었다.

“지, 지웅아. 그, 그, 골드바 어디서 났…… 딸꾹!”

상덕이 어머니께선 결국 딸꾹질까지 하신다.

“엄마, 왜 그래? 나 몰래 뭐 맛있는 거 먹었지? 그치?”

상덕이 저놈 머릿속엔 먹는 것 말고 다른 건 들어 있지 않나 보다.

“뭐 먹었어! 어쩐지 아침부터 방에서 라면 냄새 나는 것 같더라니! 라면 먹었지! 그치!”

상덕이가 상덕이 어머니의 앞섶을 움켜쥐고 바락바락 소리쳤다.

“엄마 미워어어어어어!”

“이 자식이 왜 이래!”

퍽!

결국 상덕이 어머니의 주먹이 녀석의 정수리에 꽂혔다.

“아악!”

상덕이가 정수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하여튼 저거저거 나이만 처먹었지, 하는 꼬라지는 초등학생이야, 아주.”

상덕이는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상덕이 어머니를 노려봤다.

상덕이 저 녀석은 꼭 어머니 앞에서 애가 된다.

뭐, 제 말로는 혼자 자기를 키우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일부러 과하게 애교를 부리는 거라고 하지만…… 이건 애교를 넘어서서 그냥 덜떨어진 수준이다.

게다가 평소에도 좀 덜떨어져 보이긴 한다.

성격 자체가 워낙 즉흥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생각이 없고,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이거다.

그래서 어디 모자란 놈은 아닌데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을 때가 제법 많다.

아무튼 저놈도 빨리 사람 돼야 하는데, 쯧쯧

“아무튼 지웅아, 이게 그 골드바라는 거지?”

“네, 맞아요.”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은 거짓말이 있다.

난 최대한 무거운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착 가라앉은 무거운 음성. 스타트 좋고.

“우리 할아버지 유품인데요…… 제가 몰래 들고 나왔어요.”

“하, 할아버지 유품?”

“네. 이거라도 팔아야지 무뼈 국물 닭발 만드는 재료값도 충당하고, 우리 가게 리모델링 비용도 댈 수 있지 않겠어요?”

그 말에 상덕이 아주머니는 심란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아버지 유품을…….”

“아주머니, 할아버지 유품도 우리 집이 잘살고 있을 때나 유품이지, 이대로 망해 버리면 결국 언젠가는 팔리게 될 거예요. 망해서 이걸 팔아봤자 누구 코에 붙이겠어요? 빚 갚는 데 다 나가겠죠. 그럴 바엔 지금 팔아서 투자자금으로 삼자는 거예요. 그래서 돈 많이 벌면, 그때 다시 똑 같은 걸로 사서 돌려놓으면 되지 않겠어요?”

내 일장연설에 상덕이 어머니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조금 께름칙하다~ 아줌마는. 게다가 네가 그걸 들고 금은방에 가봤자 주인이 사주기나 하겠니? 딱 봐도 고등학생인데.”

“그래서 아주머니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

“네. 아주머니께서 저 대신 골드바를 좀 팔아주시면 안 될까요?”

“내, 내가?”

상덕이 어머니가 적잖이 당황했다.

“아주머니 말씀대로 제가 가져가 봤자 사려드는 사람도 없을 테고, 설사 산다고 해도 가격을 무지하게 후려칠 게 뻔하잖아요. 그러니까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세요.”

내가 골드바를 내밀자, 상덕이 어머니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정말…… 괜찮겠니? 각오 단단히 한 거야? 그리고 말이다…… 지금 네 행동 대단히 맹랑한 거 알지? 고딩이 할아버지 유품 빼돌려서 친구 어머니한테 대신 팔아달라 그러고 말야.”

“네, 잘 알아요.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서 투자금을 마련하겠어요? 아주머니, 제발 도와주세요, 네?”

내 간절한 부탁에 상덕이 어머니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상덕이 어머니는 엄지손톱을 까드득 씹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그렇게 해야 우리가 살아요. 아주머니도 우리도 함께 잘돼야 하잖아요, 네?”

난 상덕이 어머니를 더 흔들었고, 결국.

“하아, 그래. 이 마당에 내가 무슨 배부른 걱정을 하고 앉아 있는 건지, 원. 해보자. 가자, 지웅아. 근데 지금 문을 연 곳이 있을까?”

“있을 거예요.”

“상덕아, 들어가서 엄마 코트 좀 갖고 나와.”

“엄마.”

“응?”

“라면 진짜 안 먹었…….”

“이노무 새끼가!”

후다닥!

상덕이가 바람처럼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법의 완성

우리 세 사람은 문을 연 금은방 집을 찾아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말끔한 세미 정장 차림에 안경을 낀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도 미모가 제법인 데다 몸은 슬림하고, 화장을 세련되게 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풍겼다.

아주머니는, 물론 영업용이겠지만,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이세요?”

상덕이 어머니가 물었다.

“네~ 제가 사장이에요.”

상덕이 어머니가 내게 미리 받아놓았던 골드바를 꺼냈다.

그것을 본 금은방 사장님의 눈이 찰나지간 번뜩였다.

하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미소로 속내를 감췄다.

“이것 좀 팔려고 하는데요.”

“골드바네요?”

“네, 순금이에요.”

“100g짜리고…… 24K인데…….”

사장님은 골드바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각인이 없네요?”

저 소리 나올 줄 알았다.

이미 골드바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온 후였다.

각인이라는 건 골드바에 찍혀 있는 제품인증서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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