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26화
율리아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내내…… 걱정했어. 네가 살인을 저지르는 건 싫지만, 네가 죽는 건 더 싫어.”
“율리아…….”
율리아가 힘든 미소를 지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자.”
“응.”
난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율리아의 마음은 확인했어.’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확실해졌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
율리아는 방에서 나가려는 내게 겨우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난 안도하며 그녀의 방에서 나왔…… 이런 멍청한!
“율리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잡아 당겼다.
그런데.
“…….”
율리아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놀란 듯 날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순간 내 이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율리아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것은 곧 뜨거운 키스로 이어졌다.
율리아는 날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꽉 끌어안아 주었다.
이 시간이…… 오래도록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비참했던 마지막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새로운 과거가 내 영혼을 달래주었다.
띠링!
―‘소라스의 소원’ 퀘스트를 완료하셨네요~ 소라스와 율리아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주셨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드려야겠죠? 선행을 쌓아 312링크가 주어집니다.
띠링!
퀘스트 종료.
일체화되었던 영혼의 기억에서 분리되어 현실로 복귀합니다.
두 번의 기계음이 들린 후, 난 소라스의 육신과 정신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부유했다. 율리아를 안고 있던 난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온전한 소라스 본인이었다.
하나로 합쳐졌던 두 사람의 인격이 완벽하게 분리되었고, 지금 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소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이 세상에 올 때 봤던 환한 빛이 일어 날 감싸 안았다.
속이 지독하게 울렁거렸고, 전신에서 엄청난 진동이 일었다.
동시에 소라스의 세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100g 골드바
“…….”
멍했다.
조금 전까지 난 소라스이기도 하고 유지웅이기도 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버리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비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탁!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지 않았으면, 볼썽사납게 자빠졌을지도 모른다.
“으…… 머리야.”
이마를 짚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도 소라스가 느꼈던 그 많은 감정이 내 것처럼 생생해서 안정되지 않았다.
“어이.”
“……이왕이면 이름으로 좀 불러줄래?”
어이가 뭐야, 어이가. 고양이 주제에.
“퀘스트를 해본 소감은 어때?”
소감이라.
솔직히 얘기하자면.
“거지 같아.”
“그렇군.”
카시아스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남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복잡 미묘한 기분에 머리가 터지려 그러는데 웃어?
진짜 악취미다.
“아무튼 퀘스트는 무사히 마쳤군.”
“그래. 불행 중 다행이지.”
퀘스트를 실패하면 소라스의 영혼이 사라진다.
그건 소라스의 힘도 사라진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 최악의 경우는 막았다.
그리고 보상으로…… 어? 잠깐만.
“내가 보상으로 받은 게…….”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당시 워낙 내 정신이 아니었던지라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5/5
영매 : 6
아티팩트 소켓 1/1
보유 링크 : 345
난 마인드 탭을 열었다.
그리고 수치를 주르륵 확인하다가 보유 링크에서 시선이 멎었다.
“사, 삼백사십오 링크?”
“소라스의 소원을 들어준 것도 선행으로 치더군. 그래서 네게 주어진 것이 312링크다.”
대, 대박이다!
단번에 312링크라니!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큰 만큼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크구나!
‘가만. 가장 싼 영혼인 소라스의 소원을 들어준 것으로 312링크면, 더 비싼 영혼의 소원을 들어줄 경우 얼마가 들어오는 거야?’
못해도 500링크 이상은 들어오지 않을까?
아무튼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었다.
“당장 소울 스토어에서 나머지 영혼들을 살까?”
“신 났군.”
그럼 이런 상황에서 신 나지 않으면 그게 정신병자지.
내가 지금 사지 못한 영혼은 150링크짜리 마르카스와 레퓌른이다.
마르카스는 화 속성 초급 마법, 레퓌른은 수 속성 초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마법사가 되는 거야. 21세기 지구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마법사가 된다고…….”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꿈은 아니겠지?
하지만 들뜬 내 심정과 달리 카시아스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런 카시아스가 얄미워 물었다.
“또 뭐가 불만인데?”
“불만 같은 거 없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늘 이 표정이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여태껏 난 카시아스에게서 심드렁한 얼굴 아니면 비웃는 얼굴만 쭉 봐왔다.
그 외에 다른 감정 표현을 하질 않는다.
아무튼 링크가 생겼으니 영혼을 사야 한다.
한데 마르카스와 레퓌른의 힘을 사용하려면 7의 영력이 필요하다.
현재 내 영력은 5.
두 단계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난 마인드 탭에 보이는 영력을 터치했다.
팅―
영력 : 5
영력을 6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5링크입니다.
[Yes/No]
당연히 예스.
그리고 한 번 더.
영력 : 6
영력을 7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0링크입니다.
[Yes/No]
이번에도 예스를 터치.
이것으로 내 영력은 7이 되었다.
남은 링크는 딱 300.
두 개의 영혼을 모두 살 수 있는 액수다.
“소울 커넥트.”
당장 소울 스토어에 접속했다.
* * *
……이건 예상 못했던 상황인데.
“어쩌시겠어요?”
라헬은 고민에 빠진 내 모습이 즐거운 듯 만족스레 웃으며 물었다.
난 내 앞에 놓인 마르카스, 레퓌른의 영혼과 250링크의 새로운 영혼 둘, 골드바, 그리고 300링크 값어치의 아티팩트 하나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링크를 많이 들고 왔더니 갑자기 선택지가 많아진 것이다.
우선은 250링크로 살 수 있는 영혼들부터 살펴보자면, 그들의 힘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10이다.
현재 내 영력은 7.
여기서 8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만도 50이 든다.
그러니 9로 업그레이드하는 순간 이미 250링크의 영혼을 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두 영혼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럼 합리적으로 당장 살 수 있는 건 마르카스, 레퓌른의 영혼과 아티팩트, 100g 골드바다.
그중 무려 300링크나 하는 아티팩트는 일시적으로 영혼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목걸이였다.
그것 역시 레이브란데가 만든 것으로, 이름은 비욘드 텅(Beyond Tongue)이었다.
이건 지구식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고 데브게니안 대륙 말로는 발음하기도 힘든 단어였다.
아무튼, 대충 초월의 언어라는 뜻이 담긴 이름 같았다.
비욘드 텅을 착용하고서 원하는 영혼의 능력 중 하나를 강화시키면, 본래의 힘에 십수 배 이상 강력한 힘을 낸다고 한다.
이를테면, 낭아권의 위력이 십수 배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욘드 텅이 하루에 뻥튀기할 수 있는 능력은 한 가지뿐이다. 다른 능력을 강화시키려면 하루가 지나야 한다.
더불어 강화되었던 힘은 삼십 분까지만 효력을 발휘하고, 삼십 분이 지나면 그날 하루 동안은 강화시켰던 능력 자체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저런 리스크가 제법 붙지만 그래도 상당히 탐나는 물건이긴 하다.
‘역시 비욘드 텅을 사는 게 맞을까?’
그런데 당장 그걸 사서 어디에다 쓰나 싶었다. 사실 비욘드 텅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참 전부터 골드바에서 번쩍거리는 황금빛이 내 합리적 사고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골드바라는 걸 뉴스에서만 봤지,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으로 보니 더 욕심이 났다. 그만큼 지금 우리 집엔 돈이 간절했다.
골드바의 가격은 300링크.
라헬은 내 소지금을 파악하자마자 가장 먼저 골드바부터 보여주었다.
300링크면 100g 골드바를 살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욕심난다.
그냥 오다가다 들은 말로 요즘 금 시세가 1g에 42,000원 정도 한다고 했다.
그럼 100g이면 420만 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골드바를 가지고 금은방에 가서 판다면 저 가격을 고스란히 회수할 순 없다.
금이란 살 때 보다 팔 때 시세가 더 내려간다.
더불어 어린애라 얕잡아 볼 테니, 여러모로 속이고 후려쳐서 헐값에 골드바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래도 너무 멍청하게만 행동하지 않으면 큰돈을 만들 수 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우리 집에 가장 필요한 건 현실적으로 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돈이 벌리려면 아버지의 가게가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돈이 될 만한 영혼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가게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용화할 수 있는 구조로 가게를 바꾸려면 목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은 그 목돈을 끌어올 수 있는 곳이 없다.
나는 아직 고3이다.
난 결국.
“골드바를 사겠어.”
300링크로 골드바를 사는 쪽을 택했다.
라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 잘하셨네요. 역시 지웅 님의 혜안은 탁월하십니다.”
완전히 조롱하는 어투라 뭔가 당한 듯한 느낌이 든다.
툭.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바짓단을 살짝 건드렸다.
뭔가 제지하려 했던 거 같은데, 그 태도가 강경하지는 않았다.
라헬은 내가 마음이라도 바꿀까 싶은 건지 얼른 골드바를 코앞까지 밀어놓았다.
난 그것을 집었다.
“그럼 안녕히 가시죠.”
라헬은 인사와 함께 사라졌고, 어둠도 물러갔다.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 집 앞 골목길이 날 반겼다.
그리고 내 손엔 찬란하게 빛나는 골드바가 들려 있었다.
고작 100g 밖에 안 하는 것이 대단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게…… 사백이십만 원짜리야.”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 큰돈이었다.
카시아스를 만나 선행을 쌓아, 처음으로 영혼의 힘을 얻었을 때만큼 가슴이 뛰었다.
이걸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니, 오해부터 하실라나?’
고3이 어디서 이런 골드바를 구한단 말이야.
당장 훔친 자리에 그대로 갖다 놓으라 하시겠지.
‘돈으로 바꾸는 거야, 어떻게든 처리한다 치고…….’
그 많은 돈을 뭐라고 하면서 아버지께 드리지?
편의점에서 열 달 치 월급을 가불받았다고 할까?
말도 안 된다.
아니, 우리 점장님 성격이라면 인정에 호소할 경우 충분히 그리해 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