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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24화 (24/153)

데일리 히어로 024화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엉망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난 그런 하루를 모두 바꿀 것이다.

비록 이것이 내 기억 속의 상황을 토대로 재구성된 가상현실이라 할지라도.

그 가상현실 속에서라도 비참했던 마지막을 바꾸고 싶다.

* * *

이전의 내 인생을 돌이켜 보자면, 우사 청소는 나와 투크마가 쉬지 않고 일한 끝에 점심나절쯤 돼서야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링크로 산 다른 영혼들의 힘으로 인해 육체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중에서도 바레지나트의 영혼이 특히 도움이 된다.

덕분에 오전 열 시경에 의뢰받은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브락튼 씨에게 경과보고를 하러 여관에 들렀다.

거기서 열심히 홀 청소를 하는 율리아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요즘 율리아와 나는 둘만 있게 되면 어색해서 이런 식으로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었다.

‘그때는 오늘이 그녀를 보게 되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몰랐지.’

오늘 밤, 나는 죽는다.

기사 맥케니언 팰렌의 검에 목이 잘려 차가운 주검이 된다.

난 그 끔찍한 기억을 바꿔놓아야 한다.

“후우.”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팰렌의 검에 살이 베이던 그날카로운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휘이이이잉―

가을바람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난 지금 내 집 지붕에 올라 누워 있다.

오전의 하늘은 저녁 무렵 내릴 비를 예상하지도 못하는지 그저 청명하기만 하다.

“……좋다.”

율리아를 다시 만난 것도 좋지만, 내 고향, 내 집 지붕 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난 사자(死者)의 몸으로 혼령만 남은 채 생생하게 즐기고 있다.

‘레이브란데와 계약하기를 잘했어.’

처음엔 레이브란데가 죽은 자의 영혼을 농락하는 사령술사인 줄 알았다.

사령술사라는 놈들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영혼과 그들의 복수를 대신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자신의 수하처럼 부린다.

레이브란데도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 생각했다.

산 인간이 죽은 영혼을 느끼고 대화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레이브란데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은 마법사였다.

난 시골 촌뜨기지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살아생전 레이브란데라는 이름과 그 앞에 붙는 칭호를 한 번도 못 들어 본 건 아니다.

‘초월마법사’

그것이 그의 이름 대신 불리는 칭호였다.

여태껏 대륙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위대한 마법사를 초월한 전무후무한 마법사.

난 그와 계약했고, 내 한이 어린 기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다.

* * *

내가 어렸을 적엔 지금보다 더 외지고 작은 마을에 살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노인과 애, 어른을 다 합쳐 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순박하고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이 있기에 삶이 풍족하지 못했어도 마음은 넉넉했다. 그런데 소소한 일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도적단이 우리 마을을 습격했다.

그들은 매서운 흉기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다.

여자들은 강간당했다.

내 어머니도 도적들에게 강간당한 뒤 목이 잘려 죽음을 맞았다.

아버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런 어머니를 뒤로한 채 날 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을 치던 와중에 화살 한 대를 어깨에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 떼를 따돌렸다.

그러나 상처를 돌보지 못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덧나고 곪아 터져 나중에는 어깨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산짐승을 잡아 와 내 끼니를 해결해 줬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산짐승을 사냥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 꼭 고기를 구워 내게 먹였다.

시간이 흐르고, 도망의 나날이 길어지면서 아버지는 빠르게 야위었다.

그러다 민가가 보이는 어느 도시 입구에서 내게 강해지라 이르고는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야 난 붉게 물든 바지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의 살을 잘라 내게 구워 먹였던 것이다.

충격을 받고 목이 터져라 우는 나를 그 도시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소년들이 발견했다.

난 그들의 손에 거두어져 소매치기로 자라났다.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에 응석받이였지만,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난 나보다 나이 많은 녀석들을 모두 누르고서 소매치기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내 인생은 그렇게 뒷거리만 전전하다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늘 그렇듯 만만한 상대를 물색해 소매치기를 하던 어느 날.

허름한 노인의 주머니를 털려다가 실패했다.

노인은 그의 앞섶을 파고드는 내 손을 낚아챘다.

놀란 나머지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잘못 걸렸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범인의 눈이 아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생각하는데, 노인은 내 기골이 장대하니 자신을 따라가지 않겠냐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난 노인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노인은 자신이 사는 마을로 날 데리고 온 이후부터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살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열심히 무술을 익혔다.

하지만 내겐 재능이 없었다.

타고난 체격은 좋았으나 결국 그게 다였다.

노인은 날 포기했고, 나도 더 이상 노인의 곁에 있기가 힘들었다.

찬바람이 불던 가을날 새벽.

잠든 노인의 등에 대고 절을 한 뒤,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걸었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멀리멀리 걸었다.

이후, 마지막 내 인생의 종착점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브락튼 씨와 투크마가, 그리고 율리아가 사는 이 마을이다.

스승님에게 어쭙잖게 배운 무술 실력 하나를 재산 삼아 투크마와 용병 노릇을 하며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푼돈을 모아 다 허물어져 가는 작은 집 하나를 얻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과도 친해졌으며, 첫사랑까지 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내가 태어난 인생 중 가장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해 준 곳이다.

맥케니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아무런 고통도.

* * *

바람이 분다.

한참 동안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뺨이 축축한 게, 꿈을 꾸며 울었던 모양이다.

아직 하늘에 해는 가장 높이 떠서 볕을 내리고 있었다.

‘점심인가?’

내가 짐작할 새도 없이 밑에서 투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라스! 점심인데 거기서 뭐해! 지붕이랑 연애하냐? 내려와!”

이건 내 기억 속에 남은 환상일진대, 그 안에서 다시 잠들어 꿈을 꾸다니.

레이브란데의 마법은 확실히 상식으로 이해 못할 부분이 많다.

“그래, 내려갈게.”

난 지붕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그날렵한 동작에 투크마가 혀를 내둘렀다.

“뭐냐, 방금?”

“뭐가?”

“무슨 깃털 같다? 그렇게 살포시 내려앉는 건 여태껏 본 적이 없어. 어제까지의 네 몸놀림이 아닌데? 그러고 보니 아까 우사 치울 때도 그렇고, 하룻밤 새 뭔 일이 있었기에 드워프가 된 거야?”

드워프.

힘세고 날렵하기로 정평이 난 난쟁이 종족이다.

“아주 엄청난 일이 있었지.”

“엄청난 일?”

“그런 게 있어. 뭐 먹을래?”

내 물음에 투크마가 활짝 웃었다.

“맛있는 거.”

새로운 과거

해가 지고 땅거미가 몰려온다.

그리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비가 내렸다.

오늘 나의 하루는 최고였다.

전생에서 엉망이었던 것들을 모두 바꿔놓았다.

미래를 안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다.

내가 어떤 바보 같은 실수를 하는지, 예상치 못한 사고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모두 알고 있으니,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정해져 있던 과거는 새로운 과거가 되어 내 기억 속에서 재정립되었다.

이제 더는 우울한 마지막 하루는 존재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을 완벽하게 끝내려면 마지막 단계가 하나 남아 있었다.

맥케니언 팰렌.

그 자식과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레이브란데의 마법으로 육신이 강해졌다. 낭아권이라는 기술도 익혔다.

하지만 그것이 맥케니언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모른다.

백 퍼센트 이길 거란 확신도 없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소라스의 입장에서는 유지웅에게 퀘스트를 준 것이 조금 빨랐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유지웅의 입장에서는 소라스의 퀘스트를 받아들인 게 성급했었나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완연한 밤이 찾아왔고, 나는 브락튼 씨의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여관의 홀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홀엔 나 말고도 여관비가 부족한 여행객 몇몇이 앉아 있었다. 그중 일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준비를 했고, 또 다른 이들은 고개를 처박고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이 시간엔 늘 율리아가 홀의 서빙을 도맡는다.

내가 홀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니 율리아가 다가왔다.

역시나 예뻤다.

전생에서는 낮에 소젖을 짜던 율리아의 아름다운 얼굴이 잊히질 않아 여기에 찾아왔었다.

하지만 오늘 난, 율리아와 나의 마지막을 바꾸기 위해 찾아왔다.

“맥주?”

율리아가 물었다.

한데 그 태도가 낮과는 조금 달랐다.

투크마가 없으니 나를 일대일로 대하는 것이 살짝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웃으면서 서로의 낯을 볼 상황이 아니긴 하다.

“응. 그리고 익힌 달걀이랑.”

“응.”

율리아가 억지 미소를 짓고서 주문을 받아 갔다.

잠시 후, 진한 맥주와 익힌 달걀이 담긴 접시가 테이블에 놓여졌다.

물론 그것을 서빙한 사람은 율리아였다.

“많이 마실 거야?”

“아니, 그냥 적당히.”

“응……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

율리아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카운터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휙.

역시나 율리아가 날 돌아봤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소라스.”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응.”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랑 불편하게 지내는 거 싫어. 우리 전처럼 다시 편하게 지내자. 근래 너랑 나 사이에 오갔던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친구 이상의 감정들은 다 없었던 거야. 어때?”

“싫은데.”

“왜 싫은데?”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네가 네 마음을 나한테 표현하려 할 무렵, 맥케니언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도 아니까.

그래, 처음에 난 끝까지 내가 외사랑만 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었어.

너도 날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맥케니언에게 화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더더욱 밀어냈던 거였지.

기사가 눈독 들인 여자를 평민이 탐내다간 모가지가 날아갈 테니까.

지금이라도 친구로 지내면, 그래서 맥케니언이 날 영원히 경계하지 않는다면, 내 목숨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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