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22화
“어머니.”
“응?”
“포장마차 오늘부로 접으시는 게 어때요?”
“뭐? 너 제정신이냐?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살라고?”
상덕이가 길길이 날뛰었다.
하여튼 생각 짧은 새끼.
“조용해 봐, 인마. 어머니. 어머니께서 조금만 도와주면 제가 이 닭발을 용용닭발보다 더 맛있게 만들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가게 대표 메뉴로 내걸면 입소문 타고 호황 누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주방 맡고 계시는 아주머니는 요리를 너무 못하셔서 여러모로 힘이 들어요. 어머니께서 대신 주방에 들어와 주시면 어떨까요?”
“내, 내가?”
“네. 어차피 포장마차에서도 계속 닭발 장사 하셨으니까 손에도 익고 괜찮으실 것 같은데요. 물론 아버지께서 월급도 꼬박꼬박 드릴 거예요.”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상덕이는 벌떡 일어서서 어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엄마, 해! 얘네 가게는 불법 아니잖아! 엄마 항상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거 불안하다고 했었잖아! 여기서 불안하게 이러는 것보다 지웅이네 식당 들어가는 게 훨씬 낫겠다!”
“그래도…… 그게 말처럼 쉽니? 아직 지웅이 아버지께서 허락한 것도 아니고.”
말하는 걸 들어 보니, 할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면 주방에 와주시는 거죠?”
“그거야 뭐…….”
상덕이 어머니께서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 그럼 일단 같이 끝내주는 국물 닭발 요리를 만들어봐요. 그게 완성되면 그때 아버지한테 들고 가서 얘기해 보는 거예요.”
“엄마! 그렇게 하자. 나도 도울게.”
상덕이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깊은 생각 끝에 겨우 승낙하셨다.
“그래, 그럼. 인생 어쨌든 부딪쳐 보는 거라고 누가 그러더라. 해보자, 지웅아.”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걸로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
이제 곧, 용용닭발을 능가하는 닭발 요리가 탄생할 것이다.
소라스의 소원
보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이제 수능이 코앞에 닥쳤다.
그동안 난 학교와 집, 편의점을 오가며 열심히 선행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링크가 총 148.
그중 15링크를 소모해 영력을 두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최종적으로 남은 링크는 133링크였다.
태진이 사건처럼 큰 게 한번 터져 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3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번에도 병원비가 상당히 나왔고, 아버지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친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에게 손을 벌려 겨우 목돈을 마련해서 병원비를 냈다.
그에 어머니는 늦은 밤 가족들 몰래 화장실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는 일이 많아졌다.
일찍 잠이 드는 누나와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는 모르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내 청력은 이미 초인의 수준에 달해 있었으니까.
아직 병원 측에서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저 여전히 골수이식만이 살길이라 말하는 중이다.
라모나의 자가 치유 능력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라모나의 능력으로도 백혈병은 어쩔 수 없는 건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가게가 어려워 침울한 나날을 보낸다.
누나는 꾸준히 직장에 나가는 중이다.
나는 상덕이네 어머니와 열심히 닭발 요리를 개발 중이다.
지난 보름 동안 하루 숙성시킨 소스부터 보름 숙성시킨 소스까지 계속 닭발을 요리해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딱 오 일 숙성시킨 양념으로 조리를 했을 때 가장 맛이 있었다.
용용닭발과 거의 근접할 정도의 맛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용용닭발을 확실하게 누를 수 있는 맛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엔 숙성 기간을 한편으로 미뤄두고, 무언가를 더 첨가하면 맛이 살지를 연구하는 중이다.
아니면 들어가는 재료의 배합을 달리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은 조금만 연구하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음식 재료의 배합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리조네의 힘이 내게 해답의 길을 계속해서 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 학교생활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태진이 패거리를 제압해 버린 이후, 날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유난히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딱 두 명, 상덕이와 아랑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나도 고3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딱히 친구들과 더 친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카시아스와는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 보낸다.
그리고 그건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자꾸 바레지나트의 영혼을 사라는 거야?”
바레지나트는 100링크를 주면 살 수 있는 영혼으로 뛰어난 민첩성과 근력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내가 욕심나는 건.
“난 마르카스의 영혼을 살 거야.”
마르카스는 150링크를 주면 살 수 있는 영혼이고 화 속성 초급 마법, 즉 번의 단계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내가 마법사가 된다니?
생각만해도 기분 좋은 일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카시아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당장 너한테 실용적인 건 바레지나트의 영혼이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이게 진짜…….”
“내 말 들어서 여태껏 손해 본 적 있냐?”
“……없지.”
“화 속성 초급 마법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다만 더 실용적인 걸 먼저 사라는 거지.”
“에효, 알았다. 소울 커넥트.”
이번엔 참 오랜만에 접속하는 영혼 상점이었다.
어둠 속에서 라헬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
“바레지나트 살게.”
“……이제는 인사도 못 하게 하시네요.”
라헬은 나랑 말싸움해 봤자 득 될 게 없다는 걸 알고서 순순히 바레지나트의 영혼을 건네주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라헬이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인사는 잘하던 녀석인데 이번엔 등을 휙 돌리고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난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체격 자체는 변한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몸 안에서 샘솟는 기운이 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팔다리를 휘두르다가 제자리에서 살짝 점프해 보았다.
놀랍게도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주먹을 뻗었다.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력한 펀치가 튀어 나갔다.
민첩성과 근력이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3/5
영매 : 6
아티팩트 소켓 1/1
보유 링크 : 33
마인드 탭에서 보이는 영매의 숫자가 날 뿌듯하게 만든다.
열심히 선행을 해서 사들인 영혼이 벌써 여섯이다.
엄마에게 준 것과, 박인비를 괴롭히던 양아치에게 준 영혼까지 합하면 여덟이었다.
‘그나저나 인비한테는 연락이 안 오네?’
난 인비가 하도 적극적으로 나오기에 번호를 강탈해 간 그날 바로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에겐 전화 한 통, 문자 하나가 없었다.
뭐, 연락 없으면 나야 편하지.
난 마인드 탭을 닫고 다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데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패턴이 발생했다.
소라스의 소원이 발동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응? 뭐야, 이건?”
소라스의 소원이라니?
소라스는 내가 처음으로 사들였던 영혼이다.
소라스가 가지고 있던 능력은 강인한 육신이었다.
그런데 그 소라스의 영혼이 지금 내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는 건가?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
“카시아스, 이게 뭔지 설명해 봐.”
“네가 흡수한 영혼 중, 한을 많이 남기고 죽은 영혼은 그런 식으로 대신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퀘스트를 보내기도 한다.”
“이거 수락해야 돼?”
“그건 네 선택이지. 수락해서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보상이 주어질 테고.”
“클리어 못하면?”
“……그 영혼의 힘이 사라진다.”
뭐야, 이 엄청난 리스크는?
차라리 무엇일지도 모를 보상 포기하고 퀘스트를 수락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근데 어떤 조건으로 인해서 이런 퀘스트가 발동되는 거야?”
“영혼이 판단하기에 자신의 한이 맺힌 사건을 네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겠다 싶은 수준으로 강해졌을 때, 또는 그것을 해결할 만한 능력을 얻었을 때지.”
“중요한 건 그건 순전히 영혼의 잣대로 판단한 것이라는 거고.”
“그래.”
정말 부담되는 퀘스트다.
하지만 뭐 엄청나게 힘들 것까지야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소라스는 5링크로 산 영혼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영혼들보다 그 능력이 변변찮다.
때문에 그가 해결해 주기를 원하는 사건도 스케일이 그닥 크진 않을 것이다.
뭐, 마왕을 때려잡아라! 이런 건 아닐 테니까.
삼류 무사 수준의 육신을 가진 사람이 그토록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을 리 없잖은가.
“수락해 봐?”
“좋을 대로.”
이번엔 카시아스도 강요를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더 고민하다가 결국.
팅―
‘Yes’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찬란한 빛이 일었다.
그것은 곧 내 전신을 집어삼켰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며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갈 것처럼 흐려졌다.
덜컹! 덜컹!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으나 전신에서 엄청난 진동이 일었다.
이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찔한 기분과 함께 내 몸이 어딘가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여전히 눈앞엔 환한 빛만이 가득했다.
그러다 한순간, 갑자기 빛이 사라졌다.
“……?”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 어디인지 모를 이상한 방 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뭐야……?”
내가 말해놓고 내가 놀라 입을 다물었다.
지금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그것을 말했고 심지어 알아들었다.
이게 지금 어찌 된 상황인 걸까?
그때 누군가 낡은 방문을 확 열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어디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옷을 걸친 거한의 대머리 사내였다.
그가 날 보며 말했다.
“아직도 자냐, 소라스?”
……소라스?
내가 소라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