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21화
“닭발 하나 만들어놓고 심각할 게 뭐가 있어?”
환장하겠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요리 과정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문제점을 알 수가 없었다.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지이이이잉―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상덕이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상덕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웅아, 그 새끼 왔어!
그 새끼?
아, 상덕이가 말했던 바로 그 인간.
늘 가게에 찾아와서 깽판을 피운다는 인간이 오늘 찾아왔나 보다.
“알았어, 지금 갈게!”
난 대충 외투를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야! 이 밤중에 어디 가!”
누나가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 금방 올게.”
“아니, 일찍 올 거면 오는 길에 소주 사 오라고.”
“……나 고3이거든?”
하여튼 생각이 있는 건지, 원.
* * *
상덕이네 어머니가 하는 포장마차는 구름다리 근처 공터에 있다.
구름다리는 우리 집에서 뛰어가면 오 분 안에 도착한다.
집을 나와 달려가는 내 어깨 위로 카시아스가 올라탔다.
“어디 가냐.”
“상덕이네 포장마차.”
“선행하러 가는군.”
“매일 같이 깽판 치는 인간이 또 왔대.”
“어떻게 해결하는지 기대하마.”
* * *
내가 도착했을 때, 상덕이네 포장마차 내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좁은 포장마차에 사십 줄의 더벅머리 아저씨 하나가 들어와서는 손에 집히는 것들을 마구 집어 던지고 있었다.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는 그런 더벅머리 때문에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본 상덕이가 두 팔을 마구 휘두르며 외쳤다.
“지, 지웅아! 저 새끼야! 저 미친놈이라고!”
그 소리에 더벅머리는 날 바라봤다.
더벅머리의 얼굴은 반이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완전히 풀어져서 초점이 제멋대로인 눈은 흡사 광인을 보는 듯했다.
대체 왜 유독 상덕이네 가게에서만 행패를 부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제압하고 봐야 할 일이다.
난 더벅머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더벅머리가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어 내게 휘둘렀다.
턱.
그것을 손으로 잡아서 휙 당겼다.
더벅머리는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내게 끌려왔다.
그런 더벅머리의 복부에 무릎을 박아 넣었다.
퍽!
“꺽!”
더벅머리가 허리를 꺾으며 신음을 흘렸다.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주먹으로 명치를 때리고, 뺨을 후렸다.
퍽! 짝!
“크헉!”
더벅머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지웅이 잘한다!”
난 더벅머리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저씨, 뭐하는 겁니까? 왜 남의 가게 와서 매일같이 행패를 부리셨어요?”
“너, 너 뭐야!”
“이 포장마차 운영하시는 아주머니 아들 친군데요.”
“근데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그럼 이유도 없이 매일 행패 부리면서 영업 방해하는 아저씨를 그냥 놓아둡니까? 아저씨 여기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거 다 알고 행패 부린 거죠?”
“……뭐?”
더벅머리의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
“뭔가 세상에 불만은 엄청나게 많은데, 어디 풀 데는 없고, 그렇게 술만 마시다가 이 포장마차가 만만해 보이니까 행패 부린 거잖아요.”
“이 어린 새끼가!”
더벅머리가 일어서려 하는 걸, 발로 목을 짓밟아 제지했다.
“컥!”
“처음엔 그냥 곤조 한번 부렸는데, 그냥 넘어가니까 그다음부터 간이 커져서 매일 스트레스 풀러 온 거죠?”
지금도 포장마차 안은 난장인데 상덕이와 상덕이 어머니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애초부터 사람을 해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그럴 깡도 없다.
그저 스트레스를 풀 만만한 대상을 찾고 있다가 재수 없게도 상덕이 어머님의 포장마차가 먹잇감이 된 것이다.
“크윽!”
“어린놈한테 맞으니까 어때요? 억울하죠? 신고하고 싶으세요? 그럼 신고하세요. 물론 이 포장마차도 불법이니까 벌금은 내야겠죠. 그런데 지금 아저씨가 한 짓은요? 한 달 동안 매일 찾아와서 위협적인 행동 하고, 가구들을 부수고, 위협적인 행위로 사람을 협박하고. 그거 다 제대로 따지면 누가 더 세게 두들겨 맞을 것 같아요?”
말하다 보니 짜증이 확 솟구친다.
난 상덕이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이 아저씨 그냥 신고하는 게 어떠세요?”
하지만 상덕이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 지웅아. 지금 우리 형편에 벌금 맞으면 그거 어떻게 감당하니? 그나마도 여기 관리하는 분한테 얼마씩 쥐어줘서 매번 그냥 넘어가는 건데, 사건 터지면 여태껏 공들였던 것이 다 허사가 된다니까.”
……상덕이 어머니는 여태껏 이 구역 담당 경찰에게 뇌물처럼 푼돈을 건네준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벌금 맞는 일 없이 장사를 했던 거고.
사실 벌금 한 번 정도는 맞아도 아주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포장마차를 철거하면 그다음엔 다시 어디에 포장마차를 세워서 단골을 끌어모은단 말인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도시는 포장마차 사업에 유난히 인색하다.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게 하는 제도도 있지만, 아직 이 지역에는 그런 제도가 확실히 자리 잡지 못했다.
상덕이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 인생도 어지간히 불쌍한 것 같은데…… 그냥 잘 타일러서 보내줘.”
“네, 그렇게 할게요.”
난 한 손으로 더벅머리를 번쩍 들어 포장마차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구름다리 밑으로 데리고 갔다.
더벅머리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악했지만 내 힘 앞에선 어떠한 저항도 소용없었다.
더벅머리를 바닥에 휙 던졌다.
털썩.
“아이고!”
“아저씨, 경고하는데 두 번 다시 여기 찾아오지 마세요. 아저씨가 찾아왔다는 얘기 들려오면 그 즉시 저, 여기로 옵니다. 우리 집에서 가깝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오늘처럼 조용히 안 넘어가요. 아셨어요?”
“…….”
더벅머리는 말없이 일어나서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어둠 속으로 도망쳐 사라졌다.
띠링!
―상덕이네 가족을 못살게 굴던 나쁜 아저씨를 혼내주셨네요? 선행을 쌓아 2링크가 주어집니다.
* * *
상덕이 어머니와 상덕이는 연신 내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 지웅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치? 내가 말했잖아. 지웅이 변했다니까? 예전의 그 약골이 아니야, 엄마.”
“내가 딱히 뭐 해줄 건 없고, 닭발이라도 구워줄 테니까 먹고 가.”
그러고 보니 상덕이 어머니도 닭발을 팔고 있었지.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난 사양하지 않았다.
어질러진 가게를 상덕이와 함께 대충 정리한 다음 테이블에 앉으니 어머니가 연탄불에 구운 닭발이 나왔다.
“자~ 먹어봐.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상덕이 어머님은 푸짐한 외모답게 닭발을 큰 접시 한가득 올려주셨다.
“잘 먹겠습니다~”
상덕이와 나는 닭발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데 이 닭발……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용용닭발만큼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확실히 몇 수 위였다.
“왜 그래? 맛없어?”
내 표정이 좀 심각했던 모양이다.
“아니요, 맛있어요.”
“그런데 왜 그런 얼굴이야, 인마.”
상덕이가 타박을 주었다.
난 그런 상덕이를 무시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 닭발 어떻게 요리하신 거예요?”
“응? 그냥 만들던 대로 만든 거지. 왜?”
“……잠깐만요. 저 얼른 집에 좀 갔다 올게요.”
* * *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새 내가 만든 닭발을 거의 다 먹은 누나가 날 보며 물었다.
“소주 사 왔어?”
“지금 소주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난 누나가 먹다 남긴 닭발을 빈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닭발 양념에 필요한 재료들도 봉지에 담아 다시 집을 나섰다.
* * *
“이게 다 뭐냐?”
내가 포장마차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들을 보며 상덕이가 물었다.
상덕이 어머니는 그걸 차근차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닭발 만드려고 했구나.”
“네, 맞아요.”
“지웅이가 요리에 관심 있었니?”
“그랬던 건 아닌데…… 사실 우리 아버지 가게가 요즘 상황이 안 좋거든요. 그래서 좀 새로운 종목으로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기막힌 닭발 양념 비법을 알아내서 그대로 만들어봤어요. 한데, 그게 생각처럼 나오지가 않아서요.”
“어디 한번 만들어볼래?”
“네.”
난 상덕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집에서 했던 그대로 닭발을 만들었다.
상덕이 어머니는 완성된 닭발을 진지하게 음미하시고는 빙긋 웃으셨다.
“맛있네?”
상덕이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거지. 정말 탁월하게 맛있어야 돼. 어머니, 뭐가 문제일까요?”
상덕이 어머니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좀 놀란 건, 지웅이가 만든 이 양념 소스는 정말 기가 막히다는 거야. 그런데 닭발이랑 같이 버무리면 뭔가 붕 뜬 듯한 맛이 되어 버리잖니.”
“맞아요.”
“내가 보기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주머니는 내가 만든 완성된 양념 소스를 한편에 밀어두고, 과일만 따로 갈아두었던 양념 소스에 생닭발을 재웠다.
“이게 뭐예요?”
“닭발을 과일을 갈아 만든 양념에 재워서 그 맛이 닭발 안에 스며들도록 하는 거지. 그리고 네가 지금 만든 이 양념 소스도 바로 사용하는 것보단 더 오래 숙성해서 사용해야 제맛이 날 것 같은데?”
아……!
바로 그거였구나!
나는 여태껏 그저 내가 알아낸 맛의 재료들을 완벽한 비율로 섞어서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보 같았어.’
내겐 영혼의 힘으로 얻은 절대미각과 요리 솜씨가 있지만, 경험이라는 게 부족했다.
결국 부족한 것을 상덕이네 어머니가 채워주었다.
“중요한 건 비법 양념을 얼마나 숙성시켜야 가장 맛이 있는지가 될 것 같네?”
“그렇구나…… 전 짐작도 못했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뭘. 우리 지웅이가 도와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맑게 웃으며 말씀하신 상덕이 어머니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이 짓도 이제 못해먹겠다. 된통 데고 나니까 진이 쫙 빠지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