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19화
한데 그 순간.
“……!”
맛의 신세계를 보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짠맛, 단맛, 매운맛, 고소한 맛이 조화롭게 뒤섞여 혀를 자극했다.
어느 것 하나 유난히 튀질 않았다.
닭발은 부드럽게 씹혀 특유의 풍미를 입안에 터뜨리고서 목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비린내도 없었다.
“와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이어, 내 머릿속에 양념에 들어간 재료들이 좌르르륵 떠올랐다.
가게 내부에 써놓은 것처럼 이 매운 닭발 양념엔 다섯 가지의 과일이 들어가 있었다. 그 과일들의 맛은 모두 내가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양념에 들어간 부재료 역시 모두 혀에 익숙하고 무엇인지 짚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재료들의 비율 배합도 예상이 되었다.
즉…… 나는 이 집 닭발 양념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말이다.
드디어, 아버지 가게를 살릴 만한 회심의 메뉴를 찾아냈다.
“이거야…….”
내 말에 아랑이가 유난히 좋아했다.
“그치? 맛있지?”
“형, 그 정도로 맛있어요?”
두 사람이 내 의도를 조금 오해하긴 했지만, 맛이 없는 건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맛있다.”
“기분 좋다~ 지웅이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니까 사주는 보람이 있는 것 같아. 그 전까지는 맛있다고 해도 이런 반응 보이지 않았었잖아~”
아랑이는 맛집의 음식을 먹어보고 그에 대한 감동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기쁜 모양이다.
그럼 마음껏 기뻐해 줘야지!
안 그래도 난 지금 닭발이 맛있어서 기쁘고, 가게를 구원할 메뉴가 생겨서 기쁘다!
“정말 짱이야, 아랑아!”
“와아~! 마음껏 먹어, 지웅아!”
“응!”
아까도 말했듯이 이미 난 배가 부른 상태다.
그런데 이 무뼈 국물 닭발은 계속해서 들어갔다.
우리 셋은 순식간에 닭발을 해치운 뒤, 주먹밥을 국물에 찍어서 먹었다.
결국 여섯 번째 맛집의 음식도 깨끗이 비워 버렸다.
정말 대단한 남매들이다.
* * *
“오늘 정말 즐거웠어, 지웅아.”
“나도 즐거웠어요, 형~”
우리 세 사람의 맛집 탐방은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아랑이는 정말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도 좋았어. 다음번엔 내가 점심 살게.”
“정말?”
아랑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정말로 먹을 걸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응. 이랑이도 같이 와.”
그러자 이랑이가 씩 웃었다.
“어쩐지 그때는 제가 바빠질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되묻자 이랑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도 눈치가 있어요, 형. 우리 누나 맘에 들죠?”
“…….”
정곡을 찔렸다.
그래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카시아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언감생심 아랑이를 마음에 두지도 못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랑이가 점점 마음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반해 유주 누나의 존재는 조금씩 희석되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더니.
“그럼 지웅이 형, 다음에 또 봐요~”
이랑이가 어느새 아랑이 옆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그래, 이랑아.”
“잘 들어가, 지웅아.”
“응~ 아랑이도.”
두 남매는 작별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 * *
나는 대형 마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당장 닭발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대형 마트에 가면 과일 코너에 정육 코너까지 다 있으니 재료를 구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카시아스는 그런 내 어깨에 올라탄 채 말을 걸었다.
“마트에 가면 담배 좀 사라.”
“뭐, 인마?”
“네 덩치로 사복 입고 다니면 학생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그러니 한 보루만 사. 요새 하도 담배를 못 피웠더니 입이 심심하다.”
“웃기고 있네.”
고양이가 무슨 담배를 피운다는 건지, 원.
“그럼 술이라도 사라. 이곳의 술은 역시 소주가 좋더군. 비 오는 날은 막걸리도 나쁘지 않고.”
“술도 담배도 절대 사는 일 없을 거야.”
“누구 덕에 이 정도까지 살 만해진 건데? 배은망덕한 놈.”
“뭐라고 도발해도 소용없어.”
그나저나 아랑이는 지금 이랑이랑 집에 잘 가고 있겠지?
둘이 돌아가면서 무슨 얘기를 나눌까?
내 얘기를 하고 있을까?
진짜 궁금하다.
이러면 안 되지만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육백만 불의 사나이였다면 남의 이야기 훔쳐 듣는 것쯤 일도 아닐 텐데.
‘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런 능력이 있었잖아?
남들보다 뛰어난 청력을 가진 영혼을 소울 스토어에서 팔고 있었어!
“소울 커넥트!”
난 다급하게 소울 스토어에 접속했다.
현실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고 어둠이 가득한 세상이 나타났다.
이어 늘 그렇듯이 라헬이 상냥한 미소를 띤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군요, 유지웅 님.”
“파펠의 영혼을 사겠어.”
“뛰어난 청력을 가진 파펠 말입니까?”
“응.”
“지웅 님께선 소울 스토어에 방문하신 첫날, 파펠의 능력이 별로 쓰잘 데 없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내가 그런 거 아냐. 카시아스가 그랬지.”
“한데 갑자기 파펠의 능력은 어찌 찾으시나요?”
“달라면 그냥 내놔.”
라헬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얼굴은 영 마땅찮은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라헬이 손으로 허공을 슥 훑었다.
그러자 미약하게 빛나는 영혼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내게 다가와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파펠의 힘은 내 것이 되었다.
“더 필요한 영혼은 없으신가요? 현재 보유하고 계신 돈이 39링크이니 아르마의 영혼을 살 수 있으신데요.”
아르마는 30링크짜리 영혼이다.
그 힘은 황당하게도 남성을 유혹하는 것.
하지만 내가 남성을 유혹해 뭐하겠느냔 말이다.
“간다.”
난 얼른 소울 스토어를 벗어났다.
검은 공간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현실 세상이 날 반겼다.
순간.
“……윽!”
난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사위에서 오만가지 잡소리가 다 들려왔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인근 가게들의 주방에서 나는 요리 소리, 설거지 소리, 누군가의 욕설, 고양이 울음소리, 개가 짖는 소리, 여인의 다급한 비명 소리, 하수도에 물이 내려가는 소리 등등.
이루 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갖가지 소리가 한 번에 고막을 흔들어놓았다.
“크윽!”
이 소리들을 계속 듣다가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정신 차려라, 유지웅. 파펠의 뛰어난 청력은 네가 마음먹은 대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차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야. 진정하고 소리를 차단한다고 생각해 봐.”
“으윽! 알았어……!”
카시아스의 말대로 난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마음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소리가 차단되었다.
나중에는 평소의 청력보다 살짝 더 좋아진 정도의 수준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하아, 죽을 뻔했어.”
“띨띨한 놈.”
“시끄러워. 갑자기 그런 능력이 훅 들어오니까 놀란 것뿐이야.”
“어서 마트나 가자. 술이랑 담배를 사야 하니까.”
“끈질기네, 진짜. 그런 거 안 산다니까.”
난 다시 마트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잠깐.
아까 내가 들었던 여러 가지 소리 중에 분명…… 여자의 비명 소리도 섞여 있었는데?
“안 가고 뭐해?”
탁!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목을 쳤다.
“카시아스, 이 능력이 주변의 소리 중 원하는 소리만 극대화시켜 들을 수도 있다고 라헬이 말했었지?”
“그래. 왜? 아랑이가 네 흉보는 소리라도 들렸나?”
일단 무시하자.
저놈이랑 얘기하다간 복장이 터질지도 모르니.
난 다시 청력을 확장했다.
그러자 전처럼 시끄러운 소리들이 내 고막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를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 포착했던 여인의 비명도 사실 아주 찰나의 것이었다.
누군가 여인의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중간에 끊기는 듯한 그런 비명.
‘괜한 오지랖일지도 몰라. 끼어들어선 안 되는 일일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단순히 선행을 쌓아 링크를 얻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내가 너무 필사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난 타인의 위기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 되어 버렸나 보다.
하물며 이토록 다급해 보이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만약 이대로 그냥 모른 척 가버린다면 계속해서 그 여인의 비명이 귓전에 남아 날 괴롭힐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아까 들었던 비명을 찾던 그 순간.
“꺅!”
찾았다!
난 소리가 난 쪽으로 몸으로 돌리고 무작정 달렸다.
“가만히 있어, 쌍년아.”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린 곳 부근에서 남성의 험한 말이 들려왔다.
“내가 오늘까지 돈 갖고 오라고 했지?”
그는 돈을 요구했다.
“없어! 없다고 했잖아!”
“없어? 그럼 네 몸 팔아서라도 만들어 와!”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우리 이미 헤어졌잖아!”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사귈 때 나랑 같이 빌린 돈은 해결해야지.”
“하! 내 이름으로 빌린 돈은 다 갚았거든? 그리고 그 돈 내가 한 푼이라도 쓴 적 있어? 다 네가 술 마시고 도박하는 데 썼잖아.”
“내가 나 혼자 좋자고 그랬냐! 한탕 제대로 해서 너도 호강시켜 주려고 그랬던 거잖아, 썅! 너 진짜 이러기야? 내가 지금 그 사채 빚 안 갚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대충 상황이 짐작된다.
여자는 사채를 빌린 남자랑 사귀었고, 그 당시 여자의 이름으로 사채를 더 빌려서 남자에게 준 모양이다.
그 상황에서 헤어졌고, 여자는 자기 이름으로 빌린 돈을 다 갚았지만 남자는 아직 갚지 못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빌린 돈 다 나한테 떠넘길 생각이었지?”
“좋을 대로 생각하고, 돈이나 만들어 오라고.”
“……개새끼.”
짝!
“악!”
여인이 욕설을 하자마자 얻어맞은 모양이다.
난 계속 달렸고 점점 소리는 가까워졌다.
그러다 어느 골목에 도착했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의 막다른 길에 뺨을 감싼 여인과, 그 여인에게 다시 손찌검을 하려는 남자가 보였다.
“저기요!”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남자는 손을 멈추고서 뒤돌아봤다.
여인의 떨리는 시선이 내게 향했다.
“뭐야, 넌?”
남자가 인상을 팍 쓰며 내게 다가오려다가 그대로 굳었다.
덩달아 나도 다른 의미로 굳었다.
녀석의 얼굴은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당신…… 나 알지?”
“…….”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술 취해서 편의점 들어와 깽판 치던 그 인간 맞지?”
“…….”
여전히 녀석은 말을 못했다.
확실했다.
유주 누나와 함께 편의점에 있을 때, 자기가 피우던 담배를 알아서 내놓으라고 깽판 치다가 나한테 혼나고 도망친 그 인간이었다.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