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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6화 (16/153)

데일리 히어로 016화

재춘이는 지금 내 앞에서 무릎 꿇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아직 매점에는 매점 아주머니와 상덕이, 나, 재춘이 패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난 꿇어앉은 재춘이의 손을 놓아주었다.

녀석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축 쳐졌다.

“오늘 일 나만 알고 있을 거야. 만약에 괜히 보복한답시고 나 찾아오면 이 사건 다 떠벌리고 다닌다. 서로 모르는 척하고 지내자.”

말을 마치며 재춘이의 턱을 걷어찼다.

재춘이가 뒤로 널브러지며 의식을 잃었다.

난 사마귀, 잠자리, 고릴라에게 눈짓했다.

녀석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주춤주춤 다가와 재춘이를 데리고 매점을 나갔다.

그때 내 눈에는 보였다.

사마귀 등에 업힌 재춘이의 손에 환한 빛이 이는 것을.

카시아스가 잊지 않고 회복 마법을 시전해 준 것이다.

재춘이는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이 한바탕 꿈같겠지.

손이 부러졌다 다시 붙은 것도 모를 거다.

아마 손이 부러졌다고 느껴질 만큼 아팠었다고 기억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춰서 생각하게 마련이니까.

자, 이제 링크 포인트가 오르려나?

그런 기대를 하고 매점 아줌마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것들이 왜 매점 안에서 싸우고 지랄들이야! 너희들도 나가!”

돌아오는 건 호통이었다.

“……죄송합니다.”

난 매점 아주머니에게 사과하고서 매점을 나와야 했다.

아주머니에겐 재춘이 패거리를 쫓아내 주는 것보다 매점에서 싸우지 않는 게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이번 일은 선행으로 쳐주지 않아 노카운트다.

그 자리에 다른 학생이라도 많았으면 조금의 링크나마 얻었을지 모르는데.

그나저나 매점 음식 또 못 먹었다.

아무래도 난 매점과 연이 없는 모양이다.

상덕이도 졸지에 같이 쫓겨나는 바람에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이 녀석은 매점 음식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야…… 너, 너 방금 우리 학교 짱 이겼어.”

“응. 그런 것 같더라.”

“그런 것 같더라? 그게 다야? 너 이제 오늘부터 짱이야!”

“짱은 무슨…… 내가 그런 거 해서 뭐하냐.”

“근데 왜 이겼어?”

“뭘?”

“재춘이 왜 이겼냐고? 짱 하기 싫으면 졸라 얻어맞지, 왜 이겼냐!”

이놈이 근데 왜 성질이야?

“시끄러, 시끄러. 아까 내가 재춘이한테 얘기하는 거 들었지? 너도 비밀이다. 만약에 네가 발설해서 재춘이가 쪽 당하면 너 죽을지도 몰라. 재춘이 성격 알지?”

상덕이가 놀라서 입을 다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쥔다.

“나 결심했어.”

“뭘?”

“앞으로 네 옆에 꼭 붙어 다닐 거야. 그럼 어디 가서도 맞을 일 없을 거 아냐?”

“참 대단한 결심이다.”

“그런데 지웅아, 내가 궁금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고 싶은데…….”

“뭔데?”

“재춘이 앞에서 완전 너 행동 장난 아니던데, 안 무서웠어?”

무섭진 않았다.

하지만 싸움을 하는 행위 자체는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든다.

상대가 누구든 폭력이라는 건 긴장을 동반한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재춘이 자체는 뭐.

“별거 아니더라.”

능력 전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밖에 울리지 않았는데, 점장님의 활기찬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지웅아!

“점장님, 오늘 혹시 많이 바쁘세요?”

―오늘은 일주일 전에 산 게임기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게임만 할 예정이다!

별일 없으시구나.

“혹시…… 오늘 저 한 시간만 늦게 가면 안 될까요?”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엄마 병원에 들렀다 오려구요.”

―뭐?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부탁해라! 아끼는 아르바이트생이 엄마 병문안을 가겠다는데 보내주지 않는 건 의리가 아니야! 대도무문(大道無門)! 옳은 길을 가는 덴 거칠 것이 없다! 너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 아닌 이상, 난 언제까지도 의리를 지키겠다!

점장님이 열혈스러운 분이라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점장님. 그럼 일곱 시까지 가겠습니다.”

―편의점의 평화와 안녕은 걱정 말고 어서 엄마를 문병하여 웃음과 평안함을 드리고 오도록! 의리!

통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 * *

버스를 타고 엄마의 병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카시아스는 내 가방 위에 올라타 투명화한 상태였다.

내가 병원으로 들어서자 카시아스가 작게 속삭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그래. 그게 맞아. 그러지 않으면 150링크나 주고 이 반지를 살 이유가 없잖아?”

난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레이븐 링을 만지작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 엄마의 이름이 적힌 1인 병실 앞에 섰다.

사실 이것도 한숨이 나온다.

병원에서 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6인실과 무균실이다.

보험이 안 된다고 치더라도 6인실은 하루 2만 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1인실은 하룻밤 입원비가 34만 원이나 한다.

엄마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병원에서 한 달이 조금 넘게 입원하며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때에도 1인실에 입원하는 바람에 치료비가 무려 3,500만 원가량 나왔다.

그 치료비 중 1,000만 원 정도가 입원비였다.

엄마는 백혈병 관련 보험을 들어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산정 특례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신청했고, 나가야 할 액수가 조금 낮아졌다.

그렇다고 무리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치료비로 나간 건 천 단위의 금액이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받을 땐 그나마 6인실이 있었기에 1차 때보다 치료비가 덜나왔다.

한데 이미 우리 가족은 이 두 번의 치료비로 인해 집 보증금을 날리고, 빚을 지게 되었다.

지금은 엄마께서 3차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해 계시는 중이다.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금액이 청구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엄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다. 항암 치료만으로는 완치가 어렵고 골수이식을 해야 60퍼센트 정도의 완치율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난 처음 엄마가 백혈병에 걸렸단 얘기를 들었을 때,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골수이식을 바로 하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골수이식은 항암 치료를 한 다음에야 시행할 수 있는 수술이고, 이 또한 엄마와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의 골수여야지 이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에 우리 가족이 전부 검사를 받았지만 골수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다.

조혈모세포의 일치 확률은 자식과의 경우가 5퍼센트, 비혈연자와의 경우 0.005퍼센트라고 한다.

한마디로 골수이식은 수술 완치율 60퍼센트가 문제가 아니라, 골수를 이식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0.005퍼센트의 사람을 찾아내는 게 문제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의 근심은 날로 더 커져 갈 수밖에 없었다.

똑똑.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안에서 힘 빠진 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가 내 얼굴을 보고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웅이 왔어?”

난 침대로 다가가 간이의자에 앉았다.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거짓말.

항암 치료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이제는 나도 잘 안다.

벌써 그게 3차째다.

엄마는 날로 수척해졌고, 눈엔 생기가 많이 사라졌다.

제발 이게 효과가 있기를…… 무너져 가는 우리 가족에게 기적을 가져다주기를.

난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사실 이렇게 손을 잡는 행동이 참 낯설다.

“응?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용돈 필요하니?”

엄마도 좀 쑥스러운지 괜히 날 타박했다.

난 엄마의 손을 잡은 상태로 전이하고 싶은 능력을 떠올렸다.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

그러자 내 가슴에서 미세한 빛이 일렁였다.

그것은 내 팔을 타고 흘러 반지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맞잡고 있던 엄마의 손으로 스며들어 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서 엄마를 바라봤다.

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그 빛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저 놀란 내 얼굴만 보고서는 피식 웃었다.

“왜? 정곡을 찔렸어? 진짜 용돈 필요한가 보구나?”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네 나이 때면 늘 돈이 부족할 때지.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랴, 연애도 하랴, 그렇지?”

엄마가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미안한데요, 엄마.

고등학교 입학한 후부터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어요.

“아무튼 용돈 같은 거 없어도 되니까 걱정 마. 요샌 학교 끝나면 바로 편의점 알바 가야 해서 어디 돈 쓸 일도 없어.”

“네가 고생이 많다.”

엄마가 내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그 바람에 괜히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엄마 보러 와서 그런가?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네.”

“정말?”

“응~ 정말 그래. 신기하다. 이래서 가족이 좋은 건가 봐.”

“다행이다, 엄마. 진짜 다행이야.”

“앞으로 더 다행스러운 일들만 일어나야 할 텐데, 그치?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아들.”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가 쓴 모자에 시선이 갔다.

원래 저 자리엔 모자 대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다.

이대로 있다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 그만 가볼게.”

“벌써?”

“아르바이트 시간 미루고 온 거라서~ 가봐야 돼.”

“아, 그래.”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엄마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엄마는 우리 집안이 힘들어진 게 모두 자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마음에 큰 짐을 얹고 살고 있다.

“엄마, 힘들어도 치료 잘 받고.”

“그래. 힘낼게, 아들.”

“또 올게요.”

“응~”

지금은 저렇게 힘없는 모습이지만, 사실 어머니는 밝고 명랑하고 유머러스한 분이었다.

언제쯤 그때의 맑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

병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괜히 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입을 꾹 틀어막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병원을 나와서야 난 눈물을 닦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후우우.”

“사내 녀석이 눈물이 그리 많아서야, 원.”

카시아스, 넌 이런 상황에서도 얄미운 소리만 골라서 하는구나. 남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대단하다.

“시끄러워. 그나저나 라모나의 능력이 엄마한테 도움이 될까?”

“충분히.”

“정말?”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은 일반인보다 뛰어나다. 자가 치유력이란 비정상적 상태인 몸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능력을 뜻하지. 그것이 외상이든 내상이든 병이든 간에 전부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야. 물론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다면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아마 나을 수 있을 거다.”

“……아아!”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카시아스는 얄미운 녀석이지만, 어쩐지 그가 하는 말이라면 믿음이 갔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어머니의 병만 고칠 수 있다면 그다음엔 못할 것이 없다.

빚은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된다.

그리고 돈을 더 벌면 누나도 다시 대학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가게도 되살릴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건 작은 빛이 아니라 찬란한 태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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