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15화
“죄송합니다아…….”
기가 팍 죽은 상덕이가 고개를 숙였다.
수학 선생님은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하여튼 상덕이 이놈은 기본적으로 사교성이 없고 모든 사람 앞에서 기가 죽는다.
유일하게 기를 펴고 막 대하는 상대가 나 하나다.
이마를 문지르는 상덕이에게 물었다.
“근데 너 갑자기 무술엔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냐?”
17년 상덕이의 인생은 무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일본 애니메이션을 섭렵하고, 피규어를 수집하고, 만화 속 여자 캐릭터들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오타쿠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무술에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 물음에 상덕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 우리 엄마가 하는 포장마차에 이상한 놈이 매일 찾아와서 그래.”
상덕이의 엄마는 구름다리 근처 공터에서 작은 포장마차를 하고 계신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메인 메뉴는 매운 닭발이다.
나는 한 번도 안 먹어봐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근근하게 손님은 있는 모양이다.
“이상한 놈이라니?”
“몰라. 매일같이 술 취해서 와가지고 닭발이랑 소주랑 시켜서 처먹다가 더 취하면 난동을 부려.”
“그럼 받지 않으면 되잖아.”
“받지 않으면 어디 다른 데서 더 마시고 와서 또 난동을 부리잖아.”
“경찰을 불러, 그럼.”
“우리 엄마가 포장마차 하는 것도 합법이 아닌데, 어떻게 경찰을 불러?”
“아…… 그런가?”
“벌써 한 달째야. 저번에 한 번은 그…… 막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고딩 양아치들이 갖고 다니는 작은 칼 있잖아? 스위치 블레이드? 그거 가지고 손장난 치고……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이러다가 살인나는 거 아닌가 싶었다고.”
“너…… 그래서 무술 배우고 싶었던 거야?”
“으, 응.”
상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상덕이네 형편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상덕이는 아버지가 없이 엄마랑 단둘이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엄마 혼자 상덕이를 키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상덕이가 무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다닐 돈이 어디서 나오기도 힘들었을 테지.
아무튼 상덕이의 고민이라는 게 처음에는 별거 아닌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 듣고 보니 이거 그냥 넘기기엔 문제가 있었다.
“상덕아.”
“응?”
“그 일 내가 해결해 줄게.”
“진짜?”
“응. 근데 오늘 밤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이따 갈 수 있을 것 같으면 연락할게. 어머니 포장마차 몇 시까지 하시지?”
“새, 새벽 세 시! 나도 엄마랑 같이 있을 거야.”
“알았어. 연락할게.”
“진짜 네가 도와줄 거야?”
“그렇다니까.”
상덕이가 울먹였다.
녀석은 또다시 잔뜩 흥분해서 크게 소리쳤다.
“고맙다, 이 새끼야!”
수업하던 수학 선생님도 소리쳤다.
“나가, 이 새끼야!”
쐐애애애액― 딱!
“악!”
전보다 더 긴 분필이 상덕이의 이마를 강타했다.
* * *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난 상덕이와 매점으로 향했다.
사실 전까지는 매점을 내 의지로 가본 적이 없었다.
빵 셔틀 유지웅에게 매점은 내가 아닌, 태진이 패거리가 먹을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는 곳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뭘 먹을까?’
태진이 패거리가 싫다 보니 매점도 싫었다. 그래서 학교 매점에서만 사 먹을 수 있는 특이한 빵이라든가, 매점 아주머니가 만들어 파는 각종 튀김을 맛볼 기회가 없었다.
상덕이와 매점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매점 안에는 태진이만큼 유명한 패거리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만화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테이블을 둘러싼 네 학생은 만화책을 보며 낄낄댔다.
그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머리를 빡빡 민 덩치 큰 녀석으로 만화책을 보면서 콜라를 홀짝이는 중이다.
저 녀석 이름이…… 아, 박재춘.
재춘이와 함께 다니는 세 명의 이름은 모르겠다.
평소엔 눈도 마주치기 힘들어 얼굴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대충 훑어보니 세 놈이 각각 사마귀, 잠자리, 고릴라를 닮았다.
사실 저 넷의 관계는 패거리라기보다는 박재춘과 추종자들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재춘이는 자타공인 우리 학교 쌈짱이다.
고2 때까지는 일진 놀이를 하며 사고란 사고는 무수하게 치고 다녔었다.
그런데 고3이 되면서 일진 놀이를 그만뒀다.
졸업할 때가 되니 녀석도 슬슬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하나, 여태껏 해오던 불량한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박재춘한테 알아서 기었다.
때문에 박재춘이 크게 사고를 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정글의 왕처럼 군림하며 모든 학생을 업신여겼다.
그 거만함을 학생들은 전부 불편해했다.
“니들 안 가냐? 점심시간부터 계속 여기 죽치고 앉아 뭐하는 거야?”
매점 아주머니가 재춘이 패거리에게 핀잔을 주었다.
점심 때 매점에 와서 여태껏 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재춘이 패거리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이거 지금 내가 저놈들 내쫓으면 선행 점수 오르려나?’
링크에 욕심이 생기다 보니 이제는 별의별것들에 다 관심이 간다.
전이었으면 이런 생각조차 못 했을 텐데.
재춘이 패거리를 쫓아낼까 말까 고민하던 와중, 사마귀와 눈이 마주쳤다.
“…….”
“…….”
녀석은 말없이 날 노려봤다.
나도 가만히 바라봤다.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마귀가 눈을 부릅뜨더니 들고 있던 만화책을 테이블에 턱 얹었다.
그러자 고릴라가 사마귀를 쳐다보더니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난 고릴라의 눈도 피하지 않았다.
고릴라가 어이없어 하는 웃음을 흘리더니 만화책 한 권을 내 앞으로 툭 던졌다.
“야. 그것 좀 들고 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시비를 걸려는 것이다.
난 만화책을 그대로 짓밟았다. 그에 고릴라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뒈지고 싶냐?”
나왔다.
양아치들의 전매특허 대사.
상황이 그쯤 되자 잠자리와 재춘이도 몸을 돌려 날 바라봤다.
재춘이가 내 얼굴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픽 웃었다.
“너 1반 빵 셔틀이지?”
아무래도 쟤네들한테는 식당에서의 일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고릿적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재춘이와 태진이는 제법 친하다.
노는 놈들은 노는 놈들끼리 잘 어울리니까.
그런데도 재춘이가 모른다는 건, 태진이가 입단속 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왜? 시킬 거 있어?”
내가 물었다.
재춘이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네가 밟은 그 책, 네 셔츠로 발자국 깨끗이 닦아서 가져와.”
난 내 발에 깔린 만화책을 주웠다.
재춘이 패거리의 눈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듯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부우욱!
내 손에 들린 만화책이 반으로 찢어졌다.
누가 여러 장 겹친 종이 찢는 게 힘들대?
지금의 내 힘으로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너 지금 뭐하냐?”
잠자코 있던 잠자리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크크큭! 돌았네, 저거.”
재춘이가 웃으면서 사마귀와 고릴라를 바라봤다.
두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좀 맞자, 응?”
사마귀가 빠르게 다가와 내 뺨을 후리려 했다.
하지만.
짝!
“억!”
먼저 뺨을 후린 건 내 쪽이었다.
사마귀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머리를 따라 몸도 핑 돌았다. 갑자기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리는 사마귀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퍽!
“악!”
사마귀가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등을 찧었다.
“크헉!”
녀석이 숨 막히는 신음을 흘림과 동시에 고릴라가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주먹이 더 빨랐다.
뻑!
“억!”
명치를 얻어맞은 고릴라가 뒤로 자빠졌다.
두 놈이 쓰러지니 잠자리가 날아들었다.
녀석이 달려와 발로 내 복부를 밀어 차려 했다.
몸을 틀어 피하고 내민 다리를 잡아 위로 휙 털었다.
다리를 따라 잠자리의 몸이 붕 들어 올려지며 허공에 일자로 누웠다.
그 상태에서 복부에 내 팔꿈치가 작렬했다.
뻑!
“꺽!”
콰당!
땅에 그대로 떨어진 잠자리.
배에서, 등에서 엄청난 충격이 일어 숨쉬기도 힘들 것이다.
순식간에 세 명을 제압했다.
남은 건 재춘이 하나였다.
재춘이가 날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난 그런 재춘이에게 말했다.
“아까 나한테 뭐하라 그랬지? 잘 못 들었거든. 가까이 와서 말해봐.”
내 도발에 재춘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내 뒤에 서 있던 상덕이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잔뜩 얼어 있었다.
“이 좆만 한 새끼가 어디서 방방 뛰어!”
험한 욕설과 함께 저벅저벅 다가오는 재춘이의 포스는 확실히 고3 학생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 제법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재춘이에게 벌벌 기는 이유가 있었다.
절대적인 강자의 카리스마.
그런 게 재춘이에겐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그런 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 카리스마 따위 단숨에 부숴 버릴 만큼, 나는 강해졌다.
쐐애액!
내게 다가오는가 싶던 재춘이는 어느새 거리를 줄이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 행동이 상당히 민첩했다.
태진이의 주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 봤자 내겐 어른 앞의 어린아이밖에 되지 않는다.
턱.
손을 올려 태진이의 주먹을 막았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난 키가 큰 만큼 손도 발도 컸다.
농구공도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재춘이의 주먹이 제법 튼실하지만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손에 힘을 꽉 줬다.
두득!
“크윽!”
뭔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재춘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쐐액!
재춘이가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턱.
그것마저도 잡고 감싸 쥔 다음 힘을 주었다.
드드득!
“아악!”
재춘이가 기어코 비명을 질렀다.
“무릎 꿇어.”
내가 말했다.
재춘이는 독사 같은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안 꿇어?”
주먹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드드득! 두둑! 우두둑!
손뼈가 모조리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뒤처리 걱정할 일 없도록 카시아스가 도와줄 테니.
“끄어어…… 끄으으으……!”
재춘이의 앙다문 입에서 피가 흘렀다.
실수로 혀라도 씹었나?
재춘이의 얼굴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꿇어라.”
“끄으으!”
“안 꿇어?”
이제는 손 자체를 아작 낼 셈으로 힘을 줬다.
빠드드득! 빠드득!
손뼈가 가루가 났을 것이다.
재춘이는 결국.
“끄하아아……!”
털썩.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내가 굳이 이 녀석을 무릎 꿇리려 하는 이유는 자존심을 꺾어놓기 위해서다.
재춘이를 보는 순간 이 녀석은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모른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내가 아무리 녀석을 두들겨 패도, 태진이처럼 고분고분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심을 부러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