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14화
참 무시무시한 얘기를 웃는 얼굴로 잘도 해대는 라헬이다.
그때 카시아스가 끼어들었다.
“번(Burn). 한글로는 타오르다 정도 되려나? 데브게니안 대륙에선 화 속성 초급 마법의 단계를 그리 부른다.”
“뭐? 그 세계에서도 영어 써?”
“당연히 네 녀석 지식에 맞게 이곳 언어로 바꿔서 얘기해 준 거지.”
“아아, 그렇구나.”
아무튼 불을 다스리는 마법이라니, 그것도 참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당장 내게 필요한 능력은 아니니까 패스.
“그럼 마지막 영혼이 되겠습니다~! 이름은 레퓌른! 마르카스와 같은 마법사였고, 수(水) 속성 초급 마법을 익혔지요. 가격은 똑같이 150링크! 필요한 영력도 7로 동일합니다. 어떻습니까? 구미가 당기는 영혼이 있으신지요?”
“아무래도 여기에선 리조네와 마르펭의 능력을 사는 게 좋겠어.”
“탁월한 선택이시네요~”
어쩐 일로 라헬이 기분 좋게 영혼들을 내게 밀어주려 했다.
그때 카시아스가 라헬을 저지했다.
“잠깐!”
“왜 그러시죠?”
라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시아스가 날 사납게 노려봤다.
“너, 지금 네 영력이 몇인지 모르냐?”
“알지. 2.”
“그럼 지금 사려는 영혼들의 힘을 흡수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3…… 아, 그렇지! 영력부터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데!”
“멍청한 놈. 정신 똑바로 차려. 영력이 모자라는데 무턱대고 영혼을 샀다간 그 영혼의 힘을 흡수하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꼴이 되니까.”
카시아스가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60링크와 내게 꼭 필요한 힘을 그냥 공중분해시킬 위기의 상황이었다.
“칫.”
라헬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하여튼 저 인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손해를 보면 라헬한테 어떠한 이득이라도 돌아가는 건가?
카시아스는 녀석이 단순히 그런 인격으로 프로그래밍된 것뿐이라 했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난 마인드 탭을 열어 영력을 터치했다.
팅―
영력 : 2
영력을 3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링크입니다.
[Yes/No]
당연히 ‘Yes’를 터치했고, 3링크가 소모되면서 영력 수치가 3으로 올랐다.
“이제 영혼 내놔, 사기꾼아.”
내 말에 라헬이 건성건성 영혼들을 밀어냈다.
두 개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흡수되었다.
“60링크 확실히 받았습니다~ 이제 156링크가 남으셨네요. 또 다른 영혼을 살 의향이 있으신가요?”
아직 필요하지 않는 능력에 섣불리 링크를 소비할 생각은 없다.
“아니. 이제 영혼은 됐어. 다음에 다시 오…….”
내가 돌아가려 하는데, 라헬이 그런 날 붙잡았다.
“잠깐만요. 영혼이 필요 없다면 이런 물건은 어떠신가요? 지금 지웅 님이 갖고 계신 링크로 살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습니다만.”
아티팩트?
그러고 보니 카시아스는 내게 링크로 아티팩트라는 마법 물건들도 살 수 있다고 했었다.
난 라헬이 팔려고 하는 아티팩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뭔데? 보여줘 봐.”
라헬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영혼들이 사라졌다. 이어, 내 앞에 작은 반지가 나타났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얇은 실 반지였다.
한데 색이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닌 것이 조금 애매했다.
“반지네?”
“보통 반지가 아닙니다.”
“그럼?”
“능력 전이 반지죠.”
“능력 전이 반지?”
“네. 지웅 씨는 그 반지로 남에게 도움을 줘 선행을 쌓을 수도, 지웅 씨와 험난한 세상 같이 헤쳐 나갈 동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
“자세히 좀 설명해 봐.”
“지웅 씨가 150링크를 지불하고 그 반지를 장착하는 순간! 지웅 씨가 저에게서 산 영혼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는 말이죠.”
“내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고?”
“네네. 어때요? 매력적인 아티팩트죠? 이 아티팩트의 이름은 레이븐 링! 레이브란데 님이 직접 만든 반지로, 본인의 애칭을 따서 붙였더랍니다~ 사시겠어요?”
라헬이 눈을 반짝이며 날 유혹했다.
하지만 저걸 사서 대체 어디에 쓴다는 거야?
내 능력을 남한테 전이시켜서 득 될 게 하나도 없잖아?
어쩐지 라헬 저놈이 강력 추천을 하더라니.
그나저나 레이브란데라는 작자도 참 고약하다.
이런 쓸데없는 물건을 아티팩트랍시고 만들어서 나한테 팔려고 들다니.
“됐어. 아티팩트는 없던 일로…….”
말을 하던 내 머릿속에 갑자기 번개가 쳤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아쉽습니다. 나름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아티팩트는 사지 않는 걸로 할게요.”
“잠깐.”
“네? 왜 그러시죠?”
“사겠어.”
“레이븐 링을요?”
“응.”
“방금 쓰레기나 다름없는 사상 최악의 아티팩트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뭐 꼭 말로 해야 아나요? 그런 취급을 하셨다 이거죠.”
“아무튼 살 테니까, 내놔.”
“그러죠, 그럼.”
레이븐 링이 허공에서 날아와 내 오른쪽 약지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약지에 꼭 맞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150링크 잘 받았습니다. 이제 6링크 남으셨네요? 그걸로 살 수 있는 건 5링크의 영혼 파펠과 라모나뿐인데, 살 생각 없으시죠?”
라헬이 싱긋 웃으며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난 아직 살 것이 남아 있었다.
“5링크로 라모나의 영혼을 사겠어.”
“……네? 라모나를요?”
라헬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밑에서는 카시아스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을 보니 녀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모양이다.
“뭐…… 원하신다면.”
라헬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겨 라모나의 영혼을 불러냈다. 그리고 영혼을 슥 밀었다. 내게 다가온 영혼이 몸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마지막으로 5링크 잘 받았습니다. 이제 1링크 남으셨네요? 선행을 쌓아 돈 많이 버시면 다시 찾아주세요.”
라헬이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어둠이 물러가고 주변은 다시 현실 세상으로 돌아왔다.
내 손엔 소울 스토어에서 구입한 레이븐 링이 착용되어 있었다.
“이게 정말 내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할 수 있게 해준단 말이지?”
“속고만 살았냐?”
카시아스가 당장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마인드 탭을 열어라.”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3/3
영매 : 5
아티팩트 소켓 1/1
보유 링크 : 1
아티팩트 소켓이 0/1에서 1/1로 변했다.
“네가 현재 소지할 수 있는 아티팩트의 개수는 하나다. 아티팩트 소켓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지. 따라서 링크를 모아 새로운 아티팩트를 구입하게 된다 해도, 그것의 능력은 사용할 수 없어.”
“그럼 아티팩트 소켓도 업그레이드해야 돼?”
“물론. 업그레이드하면 착용 가능한 소켓의 개수가 늘어나지. 소켓의 수보다 많은 아티팩트를 구입한다면, 그때그때 네게 필요한 아티팩트를 교체해 가며 사용해야 되겠지.”
“알았어. 그래서 레이븐 링은 어떻게 사용해야 돼?”
“아티팩트 소켓을 터치해.”
카시아스가 시키는 대로 글자를 터치했다.
팅―
그러자 아티팩트 소켓이란 글자가 최상단으로 위치하며 다른 글자들을 지우고 이런 문구가 나타났다.
아티팩트 소켓 : 1/1
착용 중인 아티팩트
―레이븐 링
보유 중인 아티팩트
―레이븐 링 : 레이브란데가 만든 반지. 반지를 착용한 자는 자신이 사들인 영혼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할 수 있다.
아티팩트 소켓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Yes/No]
“그다음엔?”
“보유 중인 아티팩트 카테고리에서 레이븐 링을 터치.”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터치터치.
팅―
[레이븐 링]
자신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하고 싶다면, 링을 착용한 후, 타인과 접촉한 상태로 전이하고 싶은 능력을 떠올립니다.
이게 다야?
“사용법이 은근히 간단하네.”
“사용법이라도 간단해야 네가 그 머리로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따라올 수 있겠지.”
“말 좀 예쁘게 해라.”
탁!
윽! 저게 또 꼬리로 내 뒷목을!
“어서 가자. 점심시간 다 끝나겠다.”
오늘도 내가 참는다.
별거 아니네
점심시간 이후, 교실에서 날 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변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왕따로 지내던 시절에는 이보다 더 불편한 시선들도 받아냈었다.
차라리 지금이 낫다.
단지 내게 집중되는 관심이 익숙지 않을 뿐이다.
다만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다.
이번 사건으로 아랑이가 날 폭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생각이 좀 제대로 박힌 여자들은 남자가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식당에서 야구방망이로 태진이 패거리를 두들겨 팼으니…….
물론 그 사건은 게슈타포의 개입으로 인해, 내가 진짜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흉내만 내며 겁을 준 것이라고 정리되었다.
그래도 당시의 내 모습은 무서웠을 것이다.
‘토요일 점심 약속도 다 물 건너가는 거 아니야?’
내가 고민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내 책상 위로 툭 떨어졌다.
꼬깃꼬깃 접은 쪽지였다.
누가 던진 거지?
쪽지를 펴 보니 예쁜 필체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너를 지키라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하라는 얘긴 아니었어. 괜찮은 거지? 앞으로는 적당히 용기 내는 법도 배워봐. 토요일 날 늦지 마.
‘아랑이다!’
쪽지를 건넨 사람은 아랑이었다.
다행히 아랑이는 날 이상하게 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유독 날 이상하게 보는 놈이 있었다.
바로.
“야, 얘기 좀 해봐.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바뀐 거냐니까?”
상덕이다.
난 반에서 짝이 없이 늘 혼자 앉아 있었다.
우리 반 학생 수가 홀수이다 보니 왕따이던 내가 자연스레 혼자 앉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상덕이 이놈이 자기 책상을 내 책상 옆에 붙이면서까지 붙어 앉았다.
“너 무슨 일 있었지? 그렇지?”
“시끄러워. 공부해, 공부.”
“분명히 뭔가 있는데…… 몸도 내가 관심 가져 주지 않은 몇 달 새 부쩍 좋아진 거 같고. 뭐, 무술 같은 거 배웠어?”
“아, 그래. 배웠다.”
“역시! 그럼 그렇지. 뭐 배웠는데?”
“넌 말해도 몰라.”
“야, 뭔데~! 구제가 안 되던 왕따 유지웅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정도면 엄청난 무술일 거 아냐?”
“글쎄 말해도 모른다니까.”
“나도 좀 배우자!”
상덕이가 흥분해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한참 열의에 차서 수업을 하고 있던 수학 선생님이 냅다 분필을 던졌다.
“지금 열심히 가르치고 있으니까 열심히 배우면 되잖아, 인마!”
하얀 선을 그리며 맹렬히 날아온 분필이 상덕이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다.
딱!
“아야!”
그 광경에 학생들이 모두 폭소했다.
“박상덕, 너 인마. 한 번만 더 소란 피우면 내쫓아 버린다!”